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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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어도 보통이 아니어도 충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

"어쩌면 나는 여전히 보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페인트>라는 작품으로 청소년문학의 자리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굵게 새긴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18세 애늙이 아들, 34세 철없는 엄마' 라는 힌트에서 미혼모 모자자의 어떤 신파적 스토리를 예상한다면 그 예상은 전혀, 전혀 맞는 부분이 없을 것이다.^^

최지혜 씨는 디자인을 먼저 봤다. 나는 가격표를 흘낏거렸다. '미친거 아니야?' 이 한마디를 어금니 사이로 짓씹었다. (p. 7)

"됐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마음에 들어. 그냥 그거 해. 이제 곧 추워질 거야. 제대로 된 점퍼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그래요. 누나가 사 주는 건데. 좋겠다. 누나가 동생 옷도 사 주고"

짝짝 박수를 치는 종업원을 향해 최지혜 씨가 은근한 미소를 보냈다.

"누나 아닌데요"

그런가 보다, 할 것을 우리의 최지혜 씨는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들이에요, 제가 낳은 아들" (p. 8)

"결혼 일찍 하는 것도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아빠가 크신가 보다."

"나 결혼 안 했는데. 그리고 우리 아들은 아빠 없어요"

싱긋이 웃는 엄마와 달리 점원은 아예 울어 버릴 기세다. (p. 9)

최노을. 고2의 훤칠한 남학생이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노을이에겐 가족이라곤 엄마 한명, 친구라고는 성하 한명 뿐이었다. 그 한명 뿐인 친구가 생기기 전의 엄마와 단둘만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서로 한팀으로 믿고 의지하며 당차게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고2 아들은 애늙은이가 34세 엄마는 철없는 엄마로 보여지게 됐을 뿐이다.

엄마는 부러 나이 들게 꾸민다거나 노숙한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언제나 자유로운 모습으로 생활했고 나도 그런 엄마를 한 번도 창피해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남들에게 굳이 우리 모자의 'Too Much Information'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은 늘 한결같다. (p. 11)

열 여섯 살 차이나는 모자. 고1때 아들을 낳은 엄마를 아들은 창피해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세상에 처신하는 방법을 엄마보다 어쩌면 아들이 먼저 터득한 것도 같은 상황이 됐다. 자신을 낳기 위해 가족과도 의절하고 어린 나이에 홀로 세상과 맞서기 시작한 엄마를 보며 큰 아들은 조숙하다면 조숙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어린 나이였다. 그 미숙함이 '청소년 소설' 특유의 성장하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소용없었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없다니. 왜 자신들의 생각을 멋대로 진실이라 믿는 걸까? 성하가 학원에서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했을때? 나는 신을 향해 당당히 맹세할 수 있었다. 양파 표피 세포 하나만큼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p. 24)

고2아들과 젊은 엄마의 설정도 사실 '보통'이라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 인데, 하나뿐인 친구 성하는 여자다. 그러니까, '여자 사람 친구' 하지만 정말정말정말 두 사람은 '친구' 다. 제일 친한 절친이자 어려서부터 유일하다시피한 친구가 여자라는 것도 어쩌면 '보통' 이 아닌 셈이다. 소설을 읽을 수록 노을이에겐 '보통'이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 늘어만 간다. 노을이 가장 원하는 것은 '보통의 삶'인데 말이다.

벌써 5년이다. 어리게만 보이던 남자가 오직 한 여자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봐 온 시간이. 정말 미련하다 못해 답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p. 35)

최근 엄마에게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노을은 늘 원해왔다. 엄마가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자신에게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남자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남자가 노을의 머리를 복잡하다 못해 터질 지경의 고민에 빠뜨리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며 모두들 독하다고 말하는데, 10대라고 무조건 게임에 열광하리란 건 명백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독한 게 아니라 그저 나랑 만지 않을 뿐이다. '대한민국10대=게임'은 너무 단순한 공식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집안일 하는 게 몇 배 더 마음 편한 열여덟도 세상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p. 40)

보통이 아닌 상황들이 늘어나지만 작품 속에서 화자인 노을의 말투는 항상 생기발랄하다. 가볍지 않음을 가볍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청소년문학의 매력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대한민국10대=게임' 이 일반화의 오류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다...;;; ㅠㅠ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아빠가 아닌 지극히 생물학적인 관계로서의 아버지 말이다. 내 입에서는 단 한번도 '아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묻고 싶지 않았다. (p. 52)

내가 세상에 빛을 본 순간부터 오늘까지 엄마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아왔으니까. 최지혜씨에게는 어쩌면 외로움조차 사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바란다. 엄마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가슴 따뜻한 사랑이라는 것을 해 봤으면, 하고 말이다. (p. 56)

게임도 안하고 집안일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본인의 연애엔 관심없고 엄마의 연애에 온통 신경쓰는 열여덞 아들이라니~! 잘 컸네, 잘 컸어!!!

나는 정확한 시급 외에 모든 돈을 다시 금고에 넣어 두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일한 만큼만 받고 싶었다. 남에게 괜한 호의를 받는 게 싫었다.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기 싫어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사람들은 내게 다른 시선을 던지니까. 그 누구도 나를 보며 혹은 엄마를 향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가급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중략)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여기곤 한다. (p. 59)

노을인 주말이면 성하네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성하의 아버지는 노을이 엄마의 공방이 있는 건물에서 중국집을 하신다. 그런데 이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이또한 보통이 아니라면 보통이 아닌 사항이 노을에게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 여자애 나 소개해 달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구를 누구에게 소개해 달라고?

"그 성하라는 애, 너랑은 그냥 친구 사이라면서. 왜, 안 돼?"

노을이에게 고민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녀석인 동우가 어느날 우연히 성화와 노을이 함께 다니는 걸 보고는 성하를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 성하가 갑자기 여자로 보이게 된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를 소개시켜 줘 본 적은 없다. 동우가 친구인건 맞다. 하지만 동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서로의 사생활을 굳이 캐려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묶어준 친구 사이였다. 그런 둘을 소개시켜줘도 될까?

"엄마가 좀 평범한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것 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 누군데? 아니, 평범함이 대체 뭔데?" (p. 106)

평범한 사랑이란 뭘까? 사랑에 관해 과연 평범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오히려 특별함 아니야?" (p. 121)

"괜찮다고 한마디 해 줘. 누구보다 당사자가 제일 힘들 테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에 나쁜 사랑은 없어."

녀석이 말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 사랑은 있겠지만" (p. 125)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동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상대가 엄마라면 그렇게 쉽게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알았냐?' (p. 127)

엄마는 아니 최지혜씨는 노을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도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니, 노을이가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동우에게 '평범한 사람'이 뭘까 물었을때 들은 동우의 답변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답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때의 동우의 대답은 노을이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한 거이었다. 노을이에게 보통이 아닌 상황이 본인도 모르게 또 추가된 것이라고나 할까.

"전에도 네가 한번 말했지? 평범한 삶, 보통의 인생"

귓가에 성하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그냥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지 않을까?" (p. 143)

세상은 점점 더 평범함과 보통을 잃어 갔다. 평균으로 삼아야 할 것도, 기준으로 내세워야 할 법칙도 시나브로 무너져 내렸다. 덕분에 다행일 때도, 때문에 불행일 때도 있었따. 더 이상 학벌로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과거엔 평범한 삶이라 말했던 삶 역시 쉽게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의 삶 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아" (p. 144)

처음엔 '보통'의 삶, '평균'적인 삶이 분명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노을이의 고민이 십분 이해되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원하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보통의 삶' 이 뭐냐고. 그런 '평균적인 삶' 이 있긴 하냐고.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그러한 '삶'이 과연 모두가 원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런 '보통'은 없기에, 그런 '평균'은 없기에, 모두가 다 있을 거라며 믿으며 찾아 헤매는 것 아닐까,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노을이 꿈꾸는 '보통'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그 본격적인 경험은 책을 읽으며 하는 걸로~!^^

ps. 역시 청소년문학이 재미있다. 서사 흥미진진하고 메시지 정확하고 결말 깔끔하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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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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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은 한국 단편소설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여러 흥미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으며 독자는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매력적인 세계를 가진 많은 작가들이 소개되어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를 알리는 이 안내글 속에 내가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이미 들어가 있다.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통해 그 작가와 그 작품과 그 모두를 포함한 사회를 읽어나가는 과정은 늘 신선한 기대를 품게 한다. 이 작가는 어떤 작가일까?...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첫 문장은 남겨두자. 바뀌지 않는 것도 있어야지. 이건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니까.

첫 장면까지도 그대로 쓸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숙취를 처음 겪고 쓴 일기를 가져와 만든 문단들이다. 남겨두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연민적이고 고쳐쓰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혐오. 어느 쪽도 공정하지는 않다. (p. 9)

이 소설의 첫 문단에서 이 소설은 다시 쓰였음을 확인하게 되는 이 내용은 뒤에 덧붙인 작가의 에세이를 통해 어떻게 다시 쓰게 된 작품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썼던 소설을 다시 고쳐쓰는 것은 작품속에서 과거에 대한 회상기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작가가 고쳐 쓴 과정이기도 하다. '남겨두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연민적이고 고쳐쓰고 싶어하는 마음은 자기혐오' 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는다. 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중 사람들은 무엇을 더 많이 선택하며 살고 있을까...

각각의 이유로 우리 둘은 그해 봄의 커다란 우리들, 에서 빠져나와 각자 남았다. (p. 16)

단편집이라 그런지 내용의 서사적 전개 자체보다도 문장의 표현들이 좋았다. 이 작품은 9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의 상봉 일수도 있고 애인과의 해후일수도 있는 몇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예라는 글자는 예의 이름 끝에 들어갔다. 내 이름 앞 글자인 서 자와 같은 자였다. 미리 예 豫, 펼칠 서 豫, 똑같은 글자가 내 이름에서는 서로, 그애의 이름에서는 예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신기하게 여겼다. (p. 21)

그런 한자들이 있다. 여러 뜻을 지녔거나 한가지 음이 아닌 한자들이. 내 이름에도 그런 한자가 들어간다. 새로 알게된 이 한자가 반가워서 찾아보았으나 펼칠 서 라는 한자로는 검색되지 않았다. 지금은 미리 예 로만 쓰이나 보다. 여하튼, 이 책속에서는 이름이 온전히 등장하는 적이 없었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들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 지금 서율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서울은 나한테 도시가 아니고 상태인 것 같아. 겨울이 와도 나는 서울. 겨울이 가도 나는 서울. 여름도 가을도 봄도 없이 나는 서울이야. 그러다 예는 문득 나를 보며 물었다. 너도 서울이야? (p. 34)

명사를 형용사로 쓴다는 것은 분명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명사중에서도 도시의 이름으로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은 신선한 표현이었다. 여기서 '서울'이라는 상태는 예와 서 라는 두 여자만이 공감하는 그런 '상태'다. 하지만 둘 다 동시에 '서울'인 상태였는지는...

< 호르몬이 그랬어 >

그 무렵부터의 내 생활은 철저하게 화학적인 것이었다. 몸이 더 이상 잠을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자고, 의식이 명료해질 때까지 꼼짝 않고 누워 있는다. 위산이 많이 분비되어 속이 쓰리기시작하면 밥을 먹고, 식사 후에는 뇌에 공급되어야 할 혈액이 소화기로 가면서 자연스레 오는 식곤증에 순응해 잠을 잔다. 깨어 있는 동안은 그날 호르몬의 균형에 따라 날카롭거나 무디거나 즐겁거나 침울하다. 자고 나면 그 잠 너머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도 일종의 화학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이 기억을 혐오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p. 45)

대학을 졸업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본격적인 취업준비라는 미명아래 백수인 '나'는 얼마전 남자친구에게서 문자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처구니없지만, 어쨌든, 진짜로 헤어진 것이 맞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아졌다' (p. 46)

'알아졌다' 라... 그렇다. 닥친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도 못한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자의적이지 않기에 내게서 능동성이 떨어질 경우 더욱 더디게 수동적으로 나에게 체득된다. 이름 중의 한글자로도 표현되지 않는 이 애인은 작품 속에서 그냥 '누군가' 이다. 그 누군가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잘 지내지?

나는 누군가의 물음이 잘 지내니? 가 아닌 잘 지내지? 인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정말로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스러움이 아니라, 당연히 잘 지내고 있지 않겠느냐는 투의 단정이 질문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p. 52)

작품 속 여성의 입장에선 저 감정이 공감가다가도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하다. '잘 지내지?' 라는 안부는 사실 무책임을 깔고 있는 질문이다. 이 문장의 앞에 '내가 없었어도'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잘 지내니?' 라는 안부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내맘도 모를거면서 다 안다는 듯이 선수를 치는 걱정이 때론 더 불편하기 마련이므로.

엄마의 애인이 사준 비싼 패딩이 날씨에 맞지 않아 땀을 흘리면서도 보풀이 일어난 셔츠소매를 보이고 싶지 않아 계속 입고 있는 채로 마주앉은 '누군가'의 시선은 '나'가 처한 현실을 더 말할 수 없이 '알아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야, 호르몬이 그랬어'

< 총 塚 > (*능 은 왕 또는 비 의 무덤을, 묘 는 그 외 모든 무덤을 가리킨다. 총 은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이다.)

제목에 붙은 설명에서 새삼스레 '총'의 의미를 알았다. 천마총이 주인 없는 무덤인 거였구나 싶고... ㅎ

너는 내가 화를 내는 것을 싫어했다. 너는 왜 슬프면 화를 내? 라고 했던가, 너한테는 슬퍼하는 법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던 거지 라고 했던가. 모두 네가 했던 말일 수도 있다. 사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항상 화가 나 있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항상 화가 나 있는 나를 싫어한 것은 네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 (p. 87)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젊다고 해야 하나 젊다고 하기엔 아직 어리다고 해야 하나 싶은 이십대 초반의 커플의 삶은... 너무... 가난하다. 너무... 가난해서 웨딩드레스는 커녕 전세방 한번 경험해보지 못한 애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때 남자는 납골당의 관리비마저 버거운 상황이었다. 남자는 납골당에 가서 몰래 단지를 꺼내오려 마음먹는다.

기차는 거대한 너의 무덤을 천천히 빠져 나갔다. (p. 107)

주인 없는 무덤 '총'은 어디라고 해야 할까... 단지를 꺼낸 납골당의 작은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단지 있으나 어디 있을지 모를 도시라고 해야 할까 단지를 두고 싶었으나 두지 못한채 향하는 도시라고 해야 하나...

< 에세이 - …… 라고 썼다 >

이 책은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그 뒤에 붙은 이 '에세이'는 작가후기이자 에세이이자 해설이기도 하다. 작가가 털어놓는 솔직한 삶은 작가가 쓴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 본인에 대한 이해를 하게 함과 동시에 작가-작품-독자 사이의 상상력을 더 부풀려 놓기도 한다. 작가의 에세이는 그래서 하나의 '작품' 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십대 초반에 쓰고 삼심대 초반-근래…에 고쳐 쓴 작품들로, 당시의 제가 삼십대 초반인 저처럼 작품을 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저 또한 이십대 초반의 저처럼은 쓸 수 없습니다. 때문에 최근 몇 년간 해온 단편 작업들 사이에 이 세 편을 자연스럽게 섞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의미에서든 그렇지 못한 의미에서든 이 작품들은 돌출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십대 초반의 나는 어떤 작가였는지를…… 해명하기를…… 더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전에 왜 이 해명을 필사적으로 피해왔는지도 먼저 해명해야 할 것이다. (p. 112~113)

작가가 털어놓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는 문체의 개성 때문인지 소설처럼 읽히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소설의 분위기는 황정은 이나 김애란 을 생각나게 했다. 단편이 가진 특성상의 어두움 때문인지 작가의 삶이 투영된 작품 특성으로서의 어두움 때문인지 여하튼 밝지는 않았다는 점에서라도...

가난이라는 것. 총알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피가 안 나는 척하는 기분으로 늘 살았다. (p. 119)

아직 젊은 나이던데 이 작가의 나이에도 이런 성장을 하고 있구나 하는 나와는 다른 세대와의 동시대성은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여하튼,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좋아지는 책이다. 작품 < 에세이 < 해설 이랄까. 윤경희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이 책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내가 '어두움'으로 느낀 것을 '겨울'로 표현한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게.

< 해설 - 겨울의 습작 >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작품의 이름으로 출판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쓰는 자 본인은 늘 주지하지만 책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거의 인식되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 아래 묶인 단행본은 최종과 완성에 도달한, 또는 적어도 현시점에서 더 이상 나아갈 바가 없다고 간주된, 글쓰기를 담는 물적 형식이자 독자가 가장 손쉽게 접근하고 소장할 수 있는 상품이다. 세련된 마감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출판 경향은 책은 원재료인 글쓰기에 최상의 외적 형태로서 주어지고, 매끈하게 편집되고 장정된 책은 그것이 독자적 사물로 생산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동, 시행착오, 실패와 침묵, 포기와 망각, 거듭된 퇴고와 수정의 끈질긴 시간이 들었다는 사실을 자칫 가리기도 한다. (p. 125)

그런데 주의 깊은 독자가 완결된 작품을 넘어 책에서 더 읽어내고 싶은 것은, 작가와 편집자의 눈에는 언제고 생생할, 바로 이러한 유령적 기미들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따금 감지되는데, 주로, 곁텍스트paratext라 명명된, 텍스트 본체의 앞뒤에 부가된 작가 소개문, 작가의 말, 주석, 수록작의 본래 발표 시기와 지면 정보, 표 등에서이다. 곁텍스트는 책에 수록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결코 아니다. 한 권의 책 안에서, 작품은 온전한 내적 독자성을 보유한다는 만성적 착오를, 곁텍스트라는 복수적 이질의 존재는 파열시킨다. 곁텍스트는 작품에서 억압되거나 누락된 것과 넘쳐 새오 나온 잉여를 받아 담는 장소다. (p. 126)

나는 이 '곁텍스트'를 중요시 여기는 편이다.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읽기전 표지와 날개에 적힌 정보들을 꼼꼼이 살피고 때론 검색을 해서라도 작품 이외의 정보를 작품과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에세이' 가 그런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해설'에서 작품 자체에 대해 문장 하나 분석하는 것이 아닌 책과 작가와 독자를 연결시키는 서술이 기존 해설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고 이 책에서는 '곁텍스트'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오늘의 미제와 결핌에서 내일의 작가적 생이 연장된다. 습작의 문학과 함께 동시대인들에게도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색과 연습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p. 135)

내가 어려워하는 단편 특유의 모호함이 너무나 강한 작품들이었기에 '에세이' 와 '해설'이 없었다면 이 책에 대한 인상을 내가 뭐라고 남겼을지 모르겠다. 박서련 작가를 처음 알게 한 책이고 서사와 상관없이 매력적인 문장들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내가 작가의 다음 책을 궁금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소설 같은 '에세이' 와 '결핍'을 통한 연장으로 기대감을 품게 하는 '해설'로 인해 아마도 나난 박서련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아직은 더 궁금하고 어쨌든 작가는 계속 다시 시작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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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륜선 타고 온 포크, 대동여지도 들고 조선을 기록하다 -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의 실존 인물 '조지 포크'의 조선 탐사 일기
조지 클레이튼 포크 지음, 사무엘 홀리 엮음, 조법종 외 옮김 / 알파미디어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인 최초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가했던 외교관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전하는 1880년대 조선인의 생생한 삶과 역사를 전한다.

900마일(1448km)을 가마 타고 44일간 기록한 조선의 생생한 기록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다 보니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인기드라마도 안 봤지만 그 드라마에 '유진 초이'라는 캐릭터가 있었다는 건 안다. 드라마 설정에서는 한국계 미국인이었지만 그 실제 모델로는 실존인물 미국장교 '조지 포크'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말의 역사에 대해 당시 조선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의 이런저런 기록들이 있다. 복잡다단했던 시대였던만큼 그 기록들에서도 빛보다는 어둠이 더 많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좀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절이기도 하기에 미국장교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이 책은 조선말 미국장교 포크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사무엘 홀리'라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캐나다인 교수가 펴낸 책을 한국인 역사학자가 번역 및 편집한 책이다. 따라서 저자는 '포크' 이고 편집은 '사무엘 홀리'이며 번역자는 '조법종, 조현미' 라는 3중 저자를 보유한?! 책이다.

포크가 남긴 자료와 일기장처럼 기록한 두권의 수첩 내용은 이 책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그 본 내용을 읽기에 앞서 100페이지는 포크의 기록에 대한 설명이다. 역자의 서문이 먼저있고 편자의 서문이 뒤를 잇는다. 이 서문들이 있었기에 뒤의 본문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본문보다 사실 더 중요한 내용은 이 두 편의 서문에 다 있다고 볼수도 있다.

전체 내용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포크의 계획과는 별개로 기록된 내용에 의거해 관련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여과되지 않은 생생한 현장의 기록

2) 시간대별 조사 기록

3) 지방 최초의 온도와 기압 기록

4) 현존하는 최고 여행비자

5) <대동여지도>, <여지도>를 이용한 외국인 최초의 조선 여행 기록

6) 주막과 역원을 활용한 여행 기록

7) 한국어를 영어로 표현하는 사례집 제작

8) 거북선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한 외국인 (p. 23~27 발췌)

책의 제목에서 '화륜선'은 '불바퀴로 가는 배'를 의미한다. 당시 '양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조선인에게 '화륜선을 타고 온 사람'이었고 서양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수도인 서울과 외국인들의 배가 수시로 오가는 부산을 제외하고는 '양인'들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조선반도의 남쪽을 포크는 '탐사' 한다. 이 기록은 '관광'이 아니라 '탐사'였고 그 '탐사'를 전후한 배경을 알려주는 '서문'의 내용들은 매우 유익했다.

서울에서 서양식 증기선 제조를 어떻게 시도했었고, 미국전함 가운데 최신식 화륜선인 트랜튼호를 타고 어떻게 포크가 오게된건지, 포크가 누구와 밀접했는지 등의 사전 정보는 포크의 탐사기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필수적 정보들이었다. 무엇보다 포크가 남긴 다른 기록들에 대한 안내도 의미있는 자료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역자는 조선 주재 미국공사관무관으로 처음 부임한 포크의 1884년 조선 남부 지역 조사 기록을 번역, 정리하는 과정에서 포크가 서구 세계에 거북선을 철갑함으로 소개하였고, 이 보고서 내용이 서구 언론에 소개되면서 '거북선=세계 최초의 철갑함'으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하였다. (p. 45)

1890년대는 제국주의의 전성기로 세계가 제국주의적 확장을 추진하며 해군력을 증가시켰다. 거북선에 대한 포크의 보고서 내용이 미국 신문에 보도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해군력을 앞세운 식민지 쟁탈과 군함외교가 맹위를 떨친 1890년대였기 때문에, 각광을 받고 있던 철갑함의 원조가 조선이라는 포크의 보고서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많은 신문들이 다투어 거북선을 보고하고 후속 보도까지 한 것으로 보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p. 60)

본문인 탐사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포크가 미국으로 보낸 보고서와 편지들을 바탕으로 당대 조선에 대한 많은 정보를 역으로 알수 있었다. 특히나 역자가 정리한 '거북선'의 미국언론기사들에 대한 정리 및 분석은 이 책에서 단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조선말까지도 조선을 지켜내고 있는 셈이었다. 거북선이 없었다면 미국사회에 조선이 알려질 일이 뭐가 있었을까...

여기까지의 '역자 서문'은 포크의 탐사기를 정리하고 포크가 가진 자료들 중 '거북선' 관련 자료분석에 집중했다면 뒤이은 '편자 서문'은 또다른 분석방향을 보여준다.

1884년 11월1일 미국 해군 소속 조지 포크 소위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하여 조선의 남쪽 지역을 관통하는 900마일(약1448km)의 고된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는 길 위에서 보낸 44일 동안 경험하고 관찰한 내용을 두 권의 노트에 380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이 여행기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반크로프트 도서관에 조지 클레이튼 포크 관련 수집품 중 일부로 소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여행기가 지닌 엄청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자들의 주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p. 61) 무엇보다 이 여행기는 포크가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그 어떤 서양인도 경함한 적이 없었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는 할 수 없는 유일한 기록이다. 그는 조선 왕조의 고위 관리나 정부관리가 하는 방식대로 가마를 타고 기나긴 여정을 소화해 냈다. (중략) 또한 이 여행기는 서양인의 눈에 비쳐진 1880년대의 조선을 깊은 통찰력으로 묘사한 독특한 기록물이다. (p. 62)

이 책의 가장 앞쪽에는 포크의 여행 경로가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서울-수원-천안-공주-전주-나주-진주-부산-대구-상주-충주-이천-광주-서울로 연결된 여정은 한반도의 남쪽을 삼각형 형태로 넓게 둘러보고 오게 되어 있었고, 포크는 그가 본 환경들을 꼼꼼이 기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대동여지도>가 정말 정확했다는 점이고, 지방의 관리들은 조선의 지리를 정말 잘 몰랐다는 점이다.

1883년 서구를 향한 첫 번째 조선사절단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든 통역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미국 정부 내에서 포크가 유일했다. (p. 64) 민영익은 포크가 조선의 사절단과 동행하여 귀국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중략) 포크는 해군 무관의 임무를 맡기 위해 서울로 출발했다. 그는 국무부와 해군으로부터 조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한 한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포크는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임무에 착수했다. 날마다 조선인과 대화하면서 언어 능력을 키웠고 중요 관리와 유대 관계를 맺었다. (p. 65) 조선에 관한 보다 나은 정보를 모으기 위해, 포크는 조선을 여행할 일련의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 그는 세번의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첫번째는 경기도 중심부, 두번째는 조선의 남부를 가로지르는 계획, 마지막 세번째는 북부 지방을 가로지르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번째는 떠나지 못했다. (p. 66)

포크가 미국에서 통역을 맡았다고 해서 한국어를 할 수 있었다는 건 아니다. 포크는 일본어를 할줄 알았고 조선사람들은 일본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에서도 한국어가 익숙해지기 전엔 조선인통역관과 일본어로 소통했다. 이것은 여행말기에 '갑신정변'으로 인한 위험에 처해지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조선에서 밀려났을때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포크 이전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조선을 경험한 사람은 포크가 유일했다.

포크는 지금 우리가 문화충격이라고 정의하는 증상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는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 우울해 했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p. 86) 그는 그 당시 설립된 세관과 관련된 서양인들을 '세관 깡패들'이라고 썼으며, 게다가 수다스럽고, 막돼먹고, 불경하며, '내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중략) 포크가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동료인 서양인들에게까지 통렬한 표현을 쓴 것을 보면 비판의 기준이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그가 지닌 내면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해군에서 경력을 쌓으며 구축한 원기왕성하고 쾌할한 겉모습 아래에 (중략) 마음속으로 수줍어하고 쉽게 기분이 상하는 여린 심성이 숨어 있었다. (p. 88) 그의 여행일기를 읽어보면 특히 그의 사생활을 조선인이 침해할 때의 반응은, 이런 그의 여린 성격을 가슴에 잘 새겨야만 이해할 수 있다. (p. 89) 포크는 자신이 보낸 편지와 사진을 조심해서 보존해 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 그 자료들이 '조선에 관한 책이나 보고서를 쓸 때 매우 소중하게 쓰일 것'이라고 전했다. (중략) 그러나 불행히도 포크는 그 책을 쓰지 못했다. (p. 96)

28세의 혈기왕성한 미국인 청년이 부푼 꿈을 안고 낯선 동양땅에 왔다. 해군으로서의 의무와 개인적은 탐구욕으로 인해 조선여행에 나선 그가 맞닦드린 현실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언어도 완벽히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추워지는 날씨에 당시 양반남성들이 타고 다니던 열린 가마(의자만 있는 형태의 가마)를 타고 여기저기 갈때마다 몰려드는 구경꾼들로 인해 힘들어했다. 당시의 관리들의 접대문화나 관리들이 백성들을 대하는 폭압적인 태도도 버거웠지만 가장 힘든 것은 화장실 볼일을 볼때조차 구경꾼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어딜가든 그는 동물안 원숭이보다 더한 따가운 눈총을 버텨야 했고 그런 날들이 쌓여감에 따라 신경도 점점 예민해져갔는데 심지어 귀환길에 '갑신정변'소식을 들어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기록에서 이런 전후사정을 알고 읽는 것은 오해의 소지를 불식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여행 일기'라고 하지만 그 여행이 '관광'이 아니라 '탐사'였기에 포크의 수첩을 번역한 본문의 주된 내용은 지형 파악에 대한 것들이었다. 포크는 가능한 하루에 먼 거리를 이동하려 했고 그렇게 스쳐지나가며 지도와 지형지물을 비교하고 측량하고 기록했다. 그가 한 주된 경험은 관리들의 접대였고 그의 시선은 늘 지리와 작물과 주택분포 와 인구수 같은 외적 파악이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그가 만난 백성들의 모습은 대개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남겼다.

나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소년이 넘어져 감을 떨어뜨렸고 순식간에 등을 밟히며 진흙탕에 머리를 처박혔다.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2피트(60cm)밖을 내다볼 수 없었다. 내게 적개심을 보인다거나 쏘아보는 기색은 없었지만 무례한 호기심은 놀라웠다. (p. 116)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군중들이 너무 많고 이들이 무례한 탓에 전혀 시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일꾼들이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사람들에게 몽둥이질을 하는 것을 막느라 힘들었다. (p. 117)

이러한 상황은 어딜 가든 반복되고 점점더 악화되었다. 깨끗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숙소를 만나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때면 이런 '호기심'스트레스는 말할수 없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선의 정세를 파악하는 눈치는 빠른 편이었다.

만약 서울에서 반란이 일어나더라도 나라 전체적으로는 크게 동요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그 누구도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거나 알고 있지 않았다. 혹은 오랜 세월 서울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조선의 중심부 지역 국민의 생활이 취약하다는 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국가는 종족이라는 존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부분이다. 이 정부의 통치 행위를 통해 판단해 보면, 무력으로 백성을 장악하고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p. 145)

포크가 만난 관리들도 천차만별이었다. 예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위풍당당하기도 하고 무지렁이같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공통적으로 관리들은 정세판단에 미숙해 보였다.

대화는 익숙한 동양적 안부 인사와 예절을 갖춘 답변으로 시작됐다. (중략) 대화는 당연하게도 서양 문명에 관한 질문으로 바로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감사는 곧바로 조선은 수백년 동안 쌀을 자족해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 생각을 바꿔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무역의 장점에 관해 설명하자 감사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지금까지 조선은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 몰랐고 아주 서서히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p. 183)

그는 곧 중국과 프랑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내게 그 전쟁의 모든 내력을 물었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p. 193)

감영은 그래서 그 자체로 하나의 왕국이었다. (p. 201)

포크는 민영익이 구해준 지도와 발급해준 통행권 덕에 어딜 가든 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통제력은 지방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지역의 감영관리가 곧 그 작은 왕국의 통치자였다. 그들은 중앙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 백성들은 더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너무나 혼란스런 시국이었다.

'통영의 영웅'은 나라를 위해 수많은 일본인을 죽인 후 (백성들의 영웅), 결국 자신의 힘을 보여 준 행위로 목숨을 잃을 것을 알고, 일본 함댇가 빤히 볼 수 있는 자신의 뱃머리에 서서 일본인의 총을 맞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범죄자처럼 처형당하는 것을 피했다. (p. 287)

아마도 믿기 힘든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거칠어지려고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p. 291)

5명의 길나장이가 앞서 가다가 지나가는 남자 두 명을 논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두 명의 나이 든 여자들을 폭력적으로 밀어제쳤다. 아! 여행하는 방법이 이렇다니. (p. 314) 두들겨 패고 발로 차고 욕설을 내뱉고 마구 밀어제치고! 정말 대단한 나라였다! 합천에서 피신하는 내 모습은 정말 웃음거리였다. 비록 내 여행이 국가 기밀이긴 했지만, 전체 장터에 내가 읍내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당연히 알려졌을 것이다. (p. 315)

내가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미 해군의 장교로서, 바로 이곳 조선 관료의 집 안에서 무례한 사람들의 눈길에 노출되고 전시되는 것은 굴욕이었다. 아마도 정신을 놓는다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p. 328)

나는 묵을 보내 목사에게 동래로 바로 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는 내게는 결정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통영은 아마도 조선에서 내가 처음으로 흥미를 느꼈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수리 모자를 쓰고 있는 동안(미군 장교 복장을 한 나로서는) 그 장소에 간다면 내가 다시 겪어야만 할 굴욕과 불명예를 감내할 수는 없었다. (p. 331)

포크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가 머문 각 지방의 현지 목소리로 들을 수 있곤 했다.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다. 해군으로서 '거북선'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통영에 꼭 가보고 싶었으나 이즈음 포크는 '무례한 호기심'에 너무 지친 나머지 통영을 지나치기로 결정한다. 포크는 당대 고위급 관리들의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었고 짐도 거느리는 수행원도 많았다. 그 수행원들이 하는 행동또한 관리들을 모시는 방식이었기에 '양인'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을 대하는 태도는 폭력적이었다. 그것이 여행 내내 포크를 괴롭게 했다. 그런 길잡이들의 길을 트는 폭력도 힘들었지만 어딜가든 안팎 구분없이 따라다니는 눈길이 그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어갔다. 어쩌다 장날이 된 읍내를 통과할라치면 그 인산인해 속에서 그는 더욱 더 고통에 빠졌다.

일본인들이 내 정체를 알아내려고 안달복달했다. 부산에서 나는 끊임없이 감시를 당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세관 무리와 일본인들에게 끔찍한 염탐의 대상이었다. (p. 364)

나는 전반적으로 조선인들에게 쓰라린 감정을 느꼈다. 그들의 무례와 나를 일종의 진기한 수집품처럼 대하는 반 야만적인 행동응로 인해 그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배려가 무색해졌다. (p. 382)

포크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다. 그는 사진기와 탐사도구를 가지고 출발했고 산과 계곡과 길과 논밭과 집들의 분포와 새로운 풍속을 나타내는 조형물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빠르게 관찰하고 지나치려는 그의 여행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상주길에서 '갑신정변' 소식을 듣고 공포에 빠진다.

외국인을 싫어하는 악마 같은 인간-선비-들이 나의 갈 길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조선인들이 싫어하는 일본인들보다도 더 낯선 존재이다. 나는 혼자이며 이 땅은 무정부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p. 408)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그들이 나와 함께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략) 그들은 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들의 친절과 도움은 언제나 칭송을 받을만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조국이 그들에게 보답을 하기를 바랐다. (p. 420)

'조선인들이 싫어하는 일본인들보다도 더 낯선 존재' 임을 스스로 알고 있던 포크는 여행 내내 수행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그 수행원들은 모두 포크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다행히도 서울에서 왕이 보낸 군대에 의해 포크 일행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두번째 조선 내륙 여행은 끝이 났다. 다양하고 멋진 경험으로 가득한, 또 걱정과 불안으로 보낸 900마일의 여정이었다. 그동안 나는 세부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부를 조선인으로서 살았다. (기독교인의 마음으로). 그토록 많이, 그토록 구석구석, 내가 보았던 조선은 과거에도 이렇게 조명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이 장면들이 되풀이되지는 못할 것이다. (p. 444)

'과거에도 이렇게 조명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이 장면들이 되풀이되지는 못할 것이다' 라는 문장은 맞았다. 포크의 이 여행이후 정세가 격변했고 포크는 조선을 떠나야 했다. 조선에 대한 기록들은 서양인의 우월한 시선아래로 쓰여진 것들이 많다. 이 책에서도 다른 서양인들의 기록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역시나 그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기록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비교적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이들도 있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이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선교사였던 저자가 서울에 살면서 경험한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였기에 <화륜선을 타고 온 포크> 와는 관점이 다르고 내용도 전혀 다른 방향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조선에 우호적인 마음을 가진 서양인들이 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 느꼈던 '당혹감'은 분명 당시의 조선과 서양의 간극을 보여준다. 그러니 그 넓은 간극을 이해하려면 한쪽 방향의 시선만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이 읽고 깊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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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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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도시의 역사로 살펴보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상당한 두께의 벽돌책이지만 세계사를 신선한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서 추천하고 싶은 역사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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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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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로마, 암스테르담, 바그다드, 런던, 파리 뉴욕…

6,000년간 인류 문명을 꽃피운 26개 도시로 떠나는 세계사 대항해

문명의 창조, 발전, 교류에 관한 황홀하고 위대한 서사!

표지에 보이는 도시들이 한두곳이 아니다. 따로따로 봐도 멋질 도시들이 여러곳 섞여있음에도 여전히 멋있는 것을 보면 역사를 품은 도시는 어떻게 봐도 다 멋지기 마련인가보다. 세계사를 훑어볼 수 있는 프레임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유구한 도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으로 몇천년 간의 인류 문명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신기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도시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사 그 자체였음을.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인류의 과거와 미래는 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 (p. 9) 지난 30년 동안 지구를 엄습한 주요 변화 중 하나는 세계의 주요 대도시들이 해당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몇몇 도시와 도시권에 치우쳐 있다. (p. 10) 오늘날의 여러 현대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분열은, 세대나 인종, 계급 도농 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와 나머지 지역 즉 세계화된 지식경제에서 뒤처진 촌락, 교외, 소도시들 간에 일어난다. (p. 11) <메트로폴리스>는 웅장한 건물이나 도시계획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의 주제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이 도시 생활의 압력에 대처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발견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p. 18) 도시의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야 한다. 역사는 우리의 시야를 열어 도시를 폭넓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통로를 만들어줄 것이다. (p. 26) -머리말 中-

이 책은 세계사 책이다. 시대별로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도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세계사를 놀랍도록 잘 풀어내고 있다. 시대순이긴 하지만 각 도시별 내용에서 다른 도시나 시대를 넘나드는 연결을 함께 서술함으로써 개별적 통합적 서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세계사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장마다 대표적 도시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본 내용은 그 도시 뿐만 아니라 동시대 혹은 그 전후 시대의 다른 도시들의 역사와 함께 서술됨으로써 그 도시가 가진 특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그 특성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이를 살펴볼 수 있게도 한다. 각 도시별 특징만 살펴봐도 세계사의 흐름이 대충 느껴지는 것을 보면 저자가 참 대단하다 싶다.

기원전 4000~1900년 의 도시는 '도시의 여명-우르크' 다. 이어서 기원전 2000~539년의 도시는 '에덴동산과 죄악의 도시-하라파와 바빌론', 기원전 507~30년의 도시는 '국제도시-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기원전 30~537년의 도시는 '목욕탕 속의 쾌락-로마', 537~1258년의 도시는 '다채로운 식도락의 향연-바그다드', 1226~1491년의 도시는 '전쟁으로 일군 자유-뤼벡', 1492~1666년의 도시는 '상업과 교역의 심장-리스본, 믈리카, 테노치티틀란, 암스테르담', 1666~1820년의 도시는 '카페인 공동체와 사교-런던', 1830~1914년의 도시는 '지상에 자리 잡은 지옥-맨체스터와 시카고', 1830~1914년의 또다른 도시로 '파리증후군-파리', 1899~1939년의 도시는 '마천루가 드리운 그림자-뉴욕', 1939~1945의 도시는 '섬멸-바르샤바', 1945~1999년의 도시는 '교외로 범람하는 욕망-로스앤젤레스', 1999~2020년의 도시는 '역동성으로 꿈틀대는 미래도시-라고스' 순서 이다.

역사순서로 파악하자면 수메르문명에서 현대까지인데 우르크에서 런던까지가 세계사에서 주로 접해왔던 오래전 역사라면 맨체스터 부터 라고스까지는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한 도시도 있지만 잘 몰랐던 도시도 있고 자연스런 주제어로 연결된 도시가 있는가 하면 뜻밖의 주제어로 묶인 도시도 있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흠잡없을 데 없는 서술이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이 긴 역사가 이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근현대사 부분이 나머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최근의 도시변화에 대해 그런 변화를 끌어낸 역사에 대해 더 알려주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래전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우르크부터 런던까지의 역사를 좀더 인상적으로 읽게 되었다. 모르던 역사가 아니었음에도 새롭게 알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좋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우루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대변했다. (p. 36) '우루크'는 '도시'의 대명사다. 우루크는 세계 최초의 도시였고, 1,000년 넘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심으로 군림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대한 공동체를 이루자 상황이 급변했다. (p. 38) 괴베클리 테페 신전이 발견되면서 기존의 견해가 뒤집혔다. 그 언덕을 만들고 신을 숭배한 사람들에게는 놀랄 만큼 많은 양의 사냥감과 초목이 있었다. (p. 39) 신전이 농장보다 먼저 생겼다. 신을 섬기는데 전념하고자 정착한 사람들을 부양하려면 농장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p. 40)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도시가 되지 못했다. (중략) 어쩌면 예리코와 차탈회위크는 너무 살기 좋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공동체는 필요한 모든 것을 땅에서 얻었고, 설령 부족한 것이 있어도 교역을 통해 해결했을 것이다. (중략) 이렇듯 도시는 온화하고 풍요로운 환경의 산물이 아닌 최대한 협력하고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비교적 혹독한 지대의 산물이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들은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결과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탄생했다. (p. 41) 대체로 도시화의 역사는 변화하는 환경에 인간이 적응하는 과정이자 인간이 욕구를 채우고자 환경을 적응시키는 과정이다. (p. 49)

첫 도시 '우루크' 의 역사부터 나의 무지를 깨닫게 했다. 신석기 혁명을 재고하게 만든 괴베클리 테페 가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기에 처음부터 확 빠져들어 읽게 됐는데, 도시의 발달은 잉여같은 풍요가 아닌 혹독함이 근거였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도시가 습지대에서 시작했고 우루크가 천년이나 번성했으며 자연의 변화가 얼마나 인간의 생활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는지 그 사이 인간은 삶의 형태뿐만 아니라 인식의 변화도 얼마나 끊임없이 이루어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도 다시한번 배울 수 있었다. 이미 기원전의 도시문명사를 통해 인류문명사는 모든 것을 다 살아낸 것만 같았다. 그 반복이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우루크에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은 전쟁과 환경적 재난과 경제적 붕괴를 견디며 4,000여 년동안 지속되었다. 숱한 제국과 왕국의 흥망을 지켜봤고, 그 막강한 피조물들보다 훨씬 더 오래 버텼다. 도시 문명은 건물의 복원력보다 이념의 확고함에서 더 의존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고역이고, 무척 부자연스럽다. 길가메시의 전설은 도시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도시의 위력과 세력을 되새기고자 나눈 이야기 중 하나였다. 도시에서의 삶, 대부분의 인간은 누릴 수 없는 생활바익은 저주가 아니라 신성한 특권이었다. (p. 57) 국가와 제국과 왕이 있기 오래전 이미 도시가 존재했다. (p. 68) 우루크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들은 우리에게 소리 높여 말한다. 한때 막강했으나 기후변화와 경제난으로 황페화된 그 도시들은 오늘날 모든 도시들의 궁극적인 숙명을 끈질기게 일깨우고 있다. 그 도시들의 유구한 역사는 눈부신 발견, 인간의 업적, 권력욕, 복잡한 사회의 복원력 등에 관한 역사다. 그 도시들은 다가올 모든 것의 서막이었다. (p. 73)

도시에서의 삶은 사실 굉장히 인위적인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다고 볼수도 있고 그렇기에 인간다운 선택이라 볼수도 있다. 여하튼 도시라는 공동체가 생겨난 이래 사람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기를 원해 왔다. 도시에서의 삶은 팍팍하고 고됨과 동시에 가치있고 숭상하게 되는 뭔가가 있었다. 도시로도시로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역사 그 도시들의 역사가 문명사가 됨은 당연한 결과였다. 도시들의 흥망성쇠는 늘 비슷한 패턴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를 바꿔가며 비슷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들의 문명사인 것일까.

문학 작품과 영화에는 음울한 도시의 악몽 같은 미래상이 가득하지만, 기술이나 건축술에 힘입어 모든 혼란 상태가 정리된 도시 또한 완벽한 이상향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이중성은 인류 역사 속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특징이다. (p. 79)

성경에서 이상향으로 삼은 예루살렘과 비교되는 도시로 하라파와 바빌론이 설명되지만 하라파와 바빌론은 그렇게 타락하기만 한 도시들이 아니었다. 고대도시들의 발전사도 놀라웠지만 미래도시의 예로 삼은 것이 한국의 '송도'라는 점이 신기했다.

이 도시는 스마트한 도시라기보다 지각이 있는 도시다. 마치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상향적(혹은 취향에 따라서는 음울한) 도시는 이미 존재한다. 관련 홍보물과 지지자들에 의하면 존재한다. 이 도시는 똑같은 주택용 고층건물이 늘어선 삭막한 도시들과 고속 경제성장으로 유명한 어느 나라에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송도로, 황해를 매립해 마련한 땅 위에 350억 달러를 들여 새로 만든 이상향적 도시다. 21세기 '첨단 기술의 이상향'으로 불리는 송도는 초만원인 아시아의 대도시들에 시급한 해답을 제시하는, 살아 움직이는 도시로 선전되고 있다. (p. 89)

메소포타미아에서 현대의 송도로 왔다가 다시 성경속 시대로 들어가는 시간차가 엄청나지만 그 간극에 비해 서술은 굉장히 매끄럽게 연결되는 편이다. 여하튼, 고대의 찬란한 도시에 타락이라는 오명은 억울하다.

우루크나 우르 같은 초기의 대도시들이 단 하나의 신이 머무는 곳이었다면 바빌론은 온갖 신들이 관계망을 형성한 채 머무는 곳이었다. 으리으리한 궁전과 거대한 신전, 인상적인 성문과 초대형 지구라트 그리고 장엄한 의식용 대로를 갖춘 바빌론은 궁극적인 신통력과 세속 권력의 화신으로 설계된 도시였다. 바빌론은 우주의 중심에 있었다. (p. 104) 그러나 신화가 실상을 가리고 말았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동양적 요소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들은 최대한 전제적이고 사치스럽고 퇴폐한 곳으로 보이도록 하는 데 열중했고 그리스 도시 문명의 찬란함을 과장했다. 자신들이 동쪽의 이웃들에게 진 빚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의 선전 활동은 서양의 예술과 전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p. 107)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따라서 남겨진 사료를 통해 역사를 읽는 우리는 그 전후 맥락을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어느 시대에 무시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전시대에 찬란한 업적을 남긴 것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현재는 늘 과거를 뛰어넘고자 하고 그런 현재를 통해 미래는 현재와 다른 모습이리라 상상한다. 모든 시간이 다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기에 남은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늘 이런 세심함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봐야하는데 그렇기에 이 책과 같은 새로운 시도는 늘 박수받아 마땅하다.

도시의 역동성은 주로 관념과 상품, 사람의 지속적 유입에 따른 결과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도시가 번영을 누리려면 언제나 그곳의 관문을 두드리는 대규모의 이주자들이 있어야 했다. 외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새로운 관념과 일 처리 방식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고국에서 맺은 인맥도 있다. 그래서 항구도시에는 진취적 분위기가 흐른다. (p. 121)

역사에 길이길이 족적을 남긴 도시들은 다 다양한 이주민들이 오고가는 것이 자유로운 세계도시들이었다. 따라서 도시의 역사는 곧 이주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로움이 유입되지 않으면 아무리 거대한 도시도 흥성이 이울고 망쇠로 기울어감을 우리는 도시의 역사를 통해 보고또보고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대도시들은 어떠해야 할까?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인간이 극적인 정치적 사건의 요체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타고난 '도시 동물'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서로 뭉쳐서 더 큰 덩어리를 이루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사실 도시는 자연계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이었다. 왜냐면 편안한 삶과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곳은 도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p. 128)

'폴리스' 라는 말을 우리는 '도시'로 번역하지만 사실 그리스인들의 폴리스는 단순한 도시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냥 폴리스 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좁은 해석이다. 차라리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도시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도시는 인간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최상을 모습을 추구하는 그런 곳이곤 했다. 책속에서 도시들의 역사를 볼때마다 지금의 모습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도시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불과 몇천 명의 선구자들이 거주한 우루크에서부터 무려 2,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라고스에 이르기까지 도시 생활의 기본원칙들은 그다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우루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도시적 이상향을 꿈꿨다. (중략) 인류라는 생물종의 생존 여부는 우리의 기나긴 도시 방랑기의 다음 장에 달려 있다. 이야기는 번쩍거리는 세계적 도시들에서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이야기는 개발도상국들의 거대도시들과 급성장중인 대도시들에 거주하는 수십억 명의 직접 체험을 통해 쓰일 것이다. 지난 5,000년에 걸쳐 수많은 도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중략) 에너지가 고갈되고 기온이 더 올라가면서 도시의 환경이 더 혹독해질 때, 인류는 즉석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만약 역사가 일종의 안내자라면 역사는 그들이 성공을 거두리라고 말할 것이다. (p. 652)

저자는 무척 희망적으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가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도시 '라고스'를 마지막으로 살펴보면서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안 도시방랑기는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뜻밖의 도시가 새롭게 부흥하며 그렇게 인류문명사가 계속 쓰여져 갈 것이라 말한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한 역사는 계속 쓰여질 것이다. 시간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인간은 늘 이동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시가 급부상하는 역사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가 저절로 쓰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도시들의 역사에서 그도시의 발전 보다는 쇠퇴를 좀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좀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노오력을 해나갈때 삶은 좀더 나아질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성공이라면 성공이지 않을까.

ps. 뜻밖의 곳에서 한국의 도시와 한국의 역사를 만날때 무척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송도부터 시작해서 조선을 건너 청계천까지 한국의 역사가 세계적 도시의 역사에 연결되고 그렇게 함께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 것이 참 흡족한 마음이 들곤 했다. 방대한 역사와 곳곳의 도시들을 폭넓고도 긍정적으로 연구하고 재미있게 풀어써준 저자에게 참 감사하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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