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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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이어도 보통이 아니어도 충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

"어쩌면 나는 여전히 보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페인트>라는 작품으로 청소년문학의 자리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굵게 새긴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18세 애늙이 아들, 34세 철없는 엄마' 라는 힌트에서 미혼모 모자자의 어떤 신파적 스토리를 예상한다면 그 예상은 전혀, 전혀 맞는 부분이 없을 것이다.^^

최지혜 씨는 디자인을 먼저 봤다. 나는 가격표를 흘낏거렸다. '미친거 아니야?' 이 한마디를 어금니 사이로 짓씹었다. (p. 7)

"됐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마음에 들어. 그냥 그거 해. 이제 곧 추워질 거야. 제대로 된 점퍼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그래요. 누나가 사 주는 건데. 좋겠다. 누나가 동생 옷도 사 주고"

짝짝 박수를 치는 종업원을 향해 최지혜 씨가 은근한 미소를 보냈다.

"누나 아닌데요"

그런가 보다, 할 것을 우리의 최지혜 씨는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들이에요, 제가 낳은 아들" (p. 8)

"결혼 일찍 하는 것도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아빠가 크신가 보다."

"나 결혼 안 했는데. 그리고 우리 아들은 아빠 없어요"

싱긋이 웃는 엄마와 달리 점원은 아예 울어 버릴 기세다. (p. 9)

최노을. 고2의 훤칠한 남학생이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노을이에겐 가족이라곤 엄마 한명, 친구라고는 성하 한명 뿐이었다. 그 한명 뿐인 친구가 생기기 전의 엄마와 단둘만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서로 한팀으로 믿고 의지하며 당차게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고2 아들은 애늙은이가 34세 엄마는 철없는 엄마로 보여지게 됐을 뿐이다.

엄마는 부러 나이 들게 꾸민다거나 노숙한 옷차림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언제나 자유로운 모습으로 생활했고 나도 그런 엄마를 한 번도 창피해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남들에게 굳이 우리 모자의 'Too Much Information'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은 늘 한결같다. (p. 11)

열 여섯 살 차이나는 모자. 고1때 아들을 낳은 엄마를 아들은 창피해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세상에 처신하는 방법을 엄마보다 어쩌면 아들이 먼저 터득한 것도 같은 상황이 됐다. 자신을 낳기 위해 가족과도 의절하고 어린 나이에 홀로 세상과 맞서기 시작한 엄마를 보며 큰 아들은 조숙하다면 조숙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어린 나이였다. 그 미숙함이 '청소년 소설' 특유의 성장하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소용없었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없다니. 왜 자신들의 생각을 멋대로 진실이라 믿는 걸까? 성하가 학원에서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했을때? 나는 신을 향해 당당히 맹세할 수 있었다. 양파 표피 세포 하나만큼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p. 24)

고2아들과 젊은 엄마의 설정도 사실 '보통'이라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 인데, 하나뿐인 친구 성하는 여자다. 그러니까, '여자 사람 친구' 하지만 정말정말정말 두 사람은 '친구' 다. 제일 친한 절친이자 어려서부터 유일하다시피한 친구가 여자라는 것도 어쩌면 '보통' 이 아닌 셈이다. 소설을 읽을 수록 노을이에겐 '보통'이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 늘어만 간다. 노을이 가장 원하는 것은 '보통의 삶'인데 말이다.

벌써 5년이다. 어리게만 보이던 남자가 오직 한 여자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봐 온 시간이. 정말 미련하다 못해 답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p. 35)

최근 엄마에게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노을은 늘 원해왔다. 엄마가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자신에게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남자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남자가 노을의 머리를 복잡하다 못해 터질 지경의 고민에 빠뜨리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며 모두들 독하다고 말하는데, 10대라고 무조건 게임에 열광하리란 건 명백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독한 게 아니라 그저 나랑 만지 않을 뿐이다. '대한민국10대=게임'은 너무 단순한 공식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집안일 하는 게 몇 배 더 마음 편한 열여덟도 세상에는 엄연히 존재한다. (p. 40)

보통이 아닌 상황들이 늘어나지만 작품 속에서 화자인 노을의 말투는 항상 생기발랄하다. 가볍지 않음을 가볍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청소년문학의 매력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대한민국10대=게임' 이 일반화의 오류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다...;;; ㅠㅠ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아빠가 아닌 지극히 생물학적인 관계로서의 아버지 말이다. 내 입에서는 단 한번도 '아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묻고 싶지 않았다. (p. 52)

내가 세상에 빛을 본 순간부터 오늘까지 엄마는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아왔으니까. 최지혜씨에게는 어쩌면 외로움조차 사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바란다. 엄마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가슴 따뜻한 사랑이라는 것을 해 봤으면, 하고 말이다. (p. 56)

게임도 안하고 집안일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본인의 연애엔 관심없고 엄마의 연애에 온통 신경쓰는 열여덞 아들이라니~! 잘 컸네, 잘 컸어!!!

나는 정확한 시급 외에 모든 돈을 다시 금고에 넣어 두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일한 만큼만 받고 싶었다. 남에게 괜한 호의를 받는 게 싫었다.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도 입히기 싫어다. 그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사람들은 내게 다른 시선을 던지니까. 그 누구도 나를 보며 혹은 엄마를 향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가급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중략)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다름과 틀림을 똑같이 여기곤 한다. (p. 59)

노을인 주말이면 성하네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성하의 아버지는 노을이 엄마의 공방이 있는 건물에서 중국집을 하신다. 그런데 이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이또한 보통이 아니라면 보통이 아닌 사항이 노을에게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 여자애 나 소개해 달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구를 누구에게 소개해 달라고?

"그 성하라는 애, 너랑은 그냥 친구 사이라면서. 왜, 안 돼?"

노을이에게 고민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 만한 녀석인 동우가 어느날 우연히 성화와 노을이 함께 다니는 걸 보고는 성하를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 성하가 갑자기 여자로 보이게 된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를 소개시켜 줘 본 적은 없다. 동우가 친구인건 맞다. 하지만 동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서로의 사생활을 굳이 캐려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묶어준 친구 사이였다. 그런 둘을 소개시켜줘도 될까?

"엄마가 좀 평범한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 것 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 누군데? 아니, 평범함이 대체 뭔데?" (p. 106)

평범한 사랑이란 뭘까? 사랑에 관해 과연 평범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은 오히려 특별함 아니야?" (p. 121)

"괜찮다고 한마디 해 줘. 누구보다 당사자가 제일 힘들 테니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에 나쁜 사랑은 없어."

녀석이 말을 멈추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 사랑은 있겠지만" (p. 125)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동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상대가 엄마라면 그렇게 쉽게 괜찮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알았냐?' (p. 127)

엄마는 아니 최지혜씨는 노을에게 굳이 설명하려 하지도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니, 노을이가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동우에게 '평범한 사람'이 뭘까 물었을때 들은 동우의 답변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답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때의 동우의 대답은 노을이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한 거이었다. 노을이에게 보통이 아닌 상황이 본인도 모르게 또 추가된 것이라고나 할까.

"전에도 네가 한번 말했지? 평범한 삶, 보통의 인생"

귓가에 성하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 봤는데, 그냥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지 않을까?" (p. 143)

세상은 점점 더 평범함과 보통을 잃어 갔다. 평균으로 삼아야 할 것도, 기준으로 내세워야 할 법칙도 시나브로 무너져 내렸다. 덕분에 다행일 때도, 때문에 불행일 때도 있었따. 더 이상 학벌로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과거엔 평범한 삶이라 말했던 삶 역시 쉽게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의 삶 따위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아" (p. 144)

처음엔 '보통'의 삶, '평균'적인 삶이 분명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노을이의 고민이 십분 이해되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원하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보통의 삶' 이 뭐냐고. 그런 '평균적인 삶' 이 있긴 하냐고. 모두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그러한 '삶'이 과연 모두가 원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런 '보통'은 없기에, 그런 '평균'은 없기에, 모두가 다 있을 거라며 믿으며 찾아 헤매는 것 아닐까,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노을이 꿈꾸는 '보통'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그 본격적인 경험은 책을 읽으며 하는 걸로~!^^

ps. 역시 청소년문학이 재미있다. 서사 흥미진진하고 메시지 정확하고 결말 깔끔하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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