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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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동시대적인 윤리를 서성이며 구축하는 질문들

이름이 낯선 신예작가의 소설집이었다.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책이다. 두번째 작품을 다 읽기전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취재로 표현했다기엔 너무나 전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글을 쓴 이가 의사가 아닐까 싶었다. 역시나 의사였다. 의사가 쓴 글은 종종 읽어보았다. 하지만 본업이 의사인 작가가 쓴 소설은 처음이었다.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의 약력은 소설가로서의 약력만 간단히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소설가로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의사와 소설가...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소설은 저로부터 멀어지고 타인으로 이입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장르인데, 저는 아직까지 지근거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계속 멀어지는 작업을 하고 싶다' 라고 말했는데, 나는 꼭 멀어져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의사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 따로 있지 않을까? 그러니 첫작품부터 인정받고 바로 등단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작가가 앞으로도 '자신의 지근거리'를 벗어나지 않았으면 싶다. 의사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으면 좋겠다. 책전반에 퍼져있는 의사로서의 윤리의식에 대한 번민이 느껴질수록 더더 의사로서 쓰는 소설을 기대하고 싶어졌다.

'삼십대 초반의 일개 봉직의임에도 의사 중에는 희귀한 등단작가 (p. 10)'인 '나'는 최근 쓰고 있는 소설이 한 장면에서 막혀서 쓰고지우고쓰고지우고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 소설에 영감을 준 환자는 이시진 씨라는 남성으로 그의 딸 유나씨는 최근 아버지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날카로운 절단면이 모두 마모된 해변의 유리알처럼, 둥글게 빛났으나 더는 깨지지 않기로 작정한 듯 단단한 느낌(p. 13)'의 스물여섯살 유나씨와 종종 산책을 하던 '나'는 유나씨로부터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일년전의 사건에 대해 자신의 실수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아빠는 어떻게 살았을까.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웠을까, 아니면 반대였을까. 아저씨와의 삶은 정말 행복했을까 (p. 21)' 말하다가도 '사랑, 그거 안 하면 안되나? 그냥 안 하면 되잖아! 나는, 나는 안 사랑해?(p. 23)' 라며 소리치는 유나씨에게 '나'는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에 대해 고백한다. 두 노인의 이야기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산부인과 전공의 4년차인 '나'는 같은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온 동생인 소아청소년과 해수 와 대학생활 내내 따랐던 산부인과 전문의 의자 시민단체 활동가인 선배 희진언니 사이에서 '낙태법'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대해 번민에 빠진다. 낙태법은 위헌이고 사라져야 할 법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희진언니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p. 57)' 라 말하며 '나'의 의견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동의하나 상황적으로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해수는 갑작스런 임신을 하게 되고...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p. 70)' 이라는 크리스마스고백을 '그 다른 세계'에서의 생명은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다면... 『다른 세계에서도』

'라이파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내 눈으로 봤어!(p. 75)' 라고 말하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간 영우는 '루이소체 치매'라는 생소한 병명을 진단받는다. 환시를 보고 환영에 정신을 뺏긴다는 그 병의 초기증세에서 아버지는 왜 하필 자신이 열한살이던 1961년에 봤던 만화책 속 영웅을 떠올리게 됐을까... 만화속 배경이었던 초원을 보고싶어 하는 아버지와 함께 간 몽골여행에서 일행이었던 장사장의 폭행을 보고 아버지는 라이파이가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 '단 한 번의 돌려차기' 를 한다. 열한살때 창문 너머로 봤던 무고한 죽음에 대해 그 시절 난무했던 폭행에 대해 숨었던 마음이 '단 한 번'쯤은 되어보고 싶었던 것이려나... 한번만이라도 나타나줬으면 싶었던 존재... 『라이파이』

'진단은 귀납적 추론이다. 개별 증상을 통해 가능성 낮은 질병부터 소거하여 단시간에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이 과정은 편견을 수반하며, 축적된 임상 경험으로 구분과 배제에 능할수록 유능한 의사가 된다. 나는 여전히 부태복을 신뢰할 만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유능한 내과 의사였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p. 105)' 진단이 귀납적 추론이었나? 서구의 논리들이 연역적인 경우가 많아서 나는 은연중에 서양에서 온 대부분의 논리는 연역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진단이 귀납적 추론, 하나하나 소거하다가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여하튼 중요한건 '부태복' 이라는 인물이다. 부태복은 귀순자 였다. '그는 기계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불신했다. 낙후된 병원에서 맨손으로 환자를 돌본 기억을 훈장처럼 말하는 그에게 최소한의 검사는 신념이자 자랑이었다.(p. 112)' 기울어가는 지방의료원이었기에 부태복이 채용될 수 있었다. 이런저런 부침이 있긴 했어도 실력있는 의사였다. 하지만 바이러스성 폐렴 소견의 아이가 입원하면서 부태복과 진단에 대한 의견마찰이 일어난다. '나만 살았슴다...나머진 다 뒈졋소.(p. 126)' 라는 그의 말을 '나'는 무시했다. 하지만... 그의 두려움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가 옳았다. 『부태복』

'1959년, 동독의 젊은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p. 160) 당대의 평자들은 리히터의 흐릿한 사진 회화에 주목했다. 훗날 '리히터스 블러'라 불리게 될 그 기법은 반사투영기로 실제 사진을 캔버스에 비춰 본을 뜬 다음 아직 마르지 않은 캔버스를 스펀지나 찰필로 눌러 뭉개버리는 것으로, 홀로코스트 이후 예술의 가능성을 회의하던 평자들에게 직관적인 통찰을 제공했다고 알려져 있다.(p. 161)' 지재권을 중심으로 모인 변호사들의 스터디에서 만난 한서와 '나'는 리히터의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가까워졌다. '컨프론테이젼. 한서가 아이패드로 보여주었던 구드룬 엔슬린의 초상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 있었다. (p. 163) 브로슈어에는 그 단어가 심리학에서 '직면'으로 번역된다고 적혀 있었으나 내게는 '대질'이 더 익숙한 번역이었다. (p. 164)' 한서와 연인이 되었으나 지금까지의 연애가 그랬듯 이번 연애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서로가 그 끝을 느꼈을 즈음, '너 좀 이상해! 알아? (p. 176)' 라는 한서의 말에 '나'는 '한서라고 달랐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p. 177)'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직면'하는 순간 사랑은 끝나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사랑이라는 떠난 감정과 '대질'하게 되는 것을까... 리히터의 그림처럼 흐릿하게... 『컨프론테이션』

작은 소도시의 전문대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로 한 희곤은 바닷가가 보이는 집을 원했다. ''자연'외에는 덧붙일 말이 없는 풍경 속에서 단 한 가지 이질적인 광경이 있다면 오른쪽 능선 너머로 나란히 솟아오른 일곱 개의 굴뚝이었다.(p. 185)' 한때 그 굴뚝 아래에서 일했던 우재의 집으로 이사하게 된 희곤은 우재의 숨죽인 일상에 대해 처음엔 그닥 신경쓰지 않았었다. 젊은 직원들이 북적였다던 발전소는 이제 하나둘 연기나는 굴뚝이 줄어들고 있었고 몇달을 지내는 동안 우재의 과거에 대해서 알게 된다. '잔이 닳도록 그것을 매만지는 동안 화장실에서 우재가 목을 놓아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한참 전부터 벽을 넘어 식탁위를 뒤덮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그의 울음을 듣고만 있던 준모가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로, 저 친구 눈빛이 없었어. 제정신이 아니었지. 어디 저 친구뿐이었겠나' (p. 212)' 컨베이어벨트... 신입... 하지못한 신고... 사고처리반... 그날 그사건 이후.... 『눈빛이 없어』

'너희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부담되면 오지 마라. 간호 과장님의 전언이라며 병원에서 비상 연락망을 돌린 것은 출근 30분 전인 20일 오후 2시반경이었다. (중략) 곤봉으로 모자라 이젠 대검까지 쓰는 거지. (p. 220)'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책임감 때문도 아니었고 어떤 숭고함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중략) 그 순간 그곳에서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다. (p. 234)' '시민 동지 여러분, 병원에 피가 부족합닏. 가능하신 분은 병원으로 가서 헌혈에 동참해주십시오.(p. 250)' '구 본관 건물의 측면을 지나, 주차장 가운데 줄지어 심긴 주목나무를 따라 행렬은 이어졌다. 더디게,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는 줄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굳은 얼굴로 나란히 선 노부부가, 손 그늘을 하고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p. 251)' '왜 안 돼요, 왜? 아까 그 아이들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이 보조 침대에 리넨을 덮은 임시 채혈대 앞에서 울먹였다. 제 피라도 써주세요, 제발요, 그래주시면 안 되요? 아이의 키에 맞춰 허리를 굽힌 간호원이 열여섯 살 밑으로는 헌혈이 안 된다며 아이를 달랬다. (p. 252)'

그 날은 그랬다.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졌다. 정혜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그 날은 그랬다. '1980년 5월 22일의 오후(p. 254)' 『너를 따라가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의학자문을 촉탁받은 진영은 교도소에서 있었던 누군가의 사망에 대한 진정서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된다.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그럼에도 그는 한편에 남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입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나.(p. 268)' 이런 진영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최교수는 진영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 진영도 그런 최교수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해 못하겠나? 증명이 중요한 게 아니야. 최교수님께서도 늘 말씀하셨지만, 이런 종류의 연구에선 과학이니 중립이니 따지는 게 아니라고. 그건 오히려 연구자가 가져야 할 책임을 방기하는 거란 말이지' 증명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진영이 이해한 건 그 연구가 종료될 무렵이나 되어서였다. (p. 276)' 김선배가 떠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차례로 오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조사가 더욱 신경을 쓰였다.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받고 싶었다. 하지만 교도소 의무 과장은 진영의 마음을 눈치채며 노련하게 말했다. '순간 진영은 의무 과장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중략) 그것은 숱한 짐승을 도륙해왔다는 당당한 고백이었다. (p. 283)' 철창과 철창 사이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진영은 어느 쪽으로 문이 열릴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p. 284)' 교도소의 문은 한번에 양쪽이 열리지 않는다. 그 철창과 철창 사이의 공간... ·참站』

다양한 현실문제들을 건드리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문체는 그 거리감이 갖고 있는 고민에 저절로 이입되게 만들었다. 직접적인 내문제로 여겨진다면 감정이 앞서서 고민하기가 더 어렵다. 한걸음 떨어져서야 문제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거리감이 때론 냉정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그 거리감이 있기에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했다. 동성애, 낙태, 폭력, 섣부른 진단, 산업재해, 5.18, 교도소 의료사고 등 하나같이 쉽지 않은 주제들이었다. <컨프론테이션>이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연애소설로만 읽어도 무방할 '컨프론테이션' 조차 연애보다 리히터의 작품주제가 더 중요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이 품고 있는 질문들은 질문자체로서의 의미가 깊은 것들이었다. 리얼리즘이긴 하되 불편하게 읽히지 않는 리얼리즘, 작가가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독자도 (비교적) 부담없이 거리를 두고 읽게되는 이 책의 작품들은 앞으로 작가가 던질 또다른 묵직한 질문들을 기대하게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또 '다른 세계'를 '의사이면서 소설가'로서 꾸준히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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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건너뛰기 트리플 2
은모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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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은 한국 단편소설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여러 흥미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으며 독자는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매력적인 세계를 가진 많은 작가들이 소개되어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트리플 시리즈 소개말이다. 시리즈의 첫번째 책 <호르몬이 그랬어> 에 이어 두번째 책 <오프닝 건너뛰기>를 읽게 됐다. 박서련 작가에 이어 은모든 작가 도 이 시리즈를 통해 처음 알게된 작가들이었다. 젊은 작가들의 매력이 돋보이는 시리즈다. 소개말처럼 이 작고 얇은 책속엔 세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이 세편을 어떻게 이어붙일 지는 독자의 몫이다.

『 오프닝 건너뛰기 』

경호와 수미는 신혼 부부다. 하지만 신혼부부의 풋풋함을 기대하기엔 코로나 현실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급급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이들은 아직 '오프닝' 중이다.

경호가 품고 있는 따스함과 단순함. 그 두가지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것은 연애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도려내듯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였다. 누군가와 한집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일의 본질이 거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p. 26)

생판 남이었던 사람 둘이 만나 한집에서 먹고자고산다는 것은 시대가 변해갈수록 점점 더 어려운 문제처럼 보인다. 백세시대라는 장수시대에 오래오래 보고 살아야할 사람이니 나에게 맞춤옷같은 사람이라면 참 좋겠지만 껍질 빼고 씨앗빼고 알맹이만 담아놓은 통조림 같은 사람이라도 아마 원하는 부분만 취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이고 한집에서 산다는 건 그런 단순한 맞춤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경호가 영상을 재생시켰다. 타이틀 시퀀스가 나왔으므로 수미는 어떤 내용이냐고 되물으며 화면 한구석에 있는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클릭했다. "자기 전에 이 드라마 본 적 있어?" " 아니" 수미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본 건데도 오프닝을 안 본다고?" "건너뛰는 게 습관이 돼서" "와, 나는 이런 기능은 누가 쓰나 했어. 알고 봤더니 우리 집에 있을 줄이야" 경호가 신기해했다. "자기야, 타이틀 시퀀스는 작품이랑 세트야. 레스토랑 가서 식전빵 안 먹을 거야? 그러는 거랑 똑같다고" (p. 43)

그런가? 나도 영화나 드라마 볼때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곤 하는데... 그렇지만 식전빵은 꼭 챙겨먹곤 하는데;;; 오프닝을 건너뛴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사람이 사람이 서로에게 적응시간이 필요하듯이 '오프닝'도 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상에서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듯이 '관계'에서도 자꾸 건너뛰어 온 것은 아닐지...

수미는 경호에게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부부란 서로가 만나기 전에 겪은 아픔마저 끝없이 달래주어야 하는 사이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새삼 자신이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는 법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p. 45)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통해 내모습을 보게 되곤 한다. 그 어떤 사이보다 '부부'란 더더욱 내밀하고 세심하게 자주 서로에게 그런 거울이 되곤 한다. 오프닝부터 차근차근 보다보면 좀 덜 싸우게 될지도 ㅎㅎ

『 쾌적한 한 잔 』

은우는 특성화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혼자사는데 익숙해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껏 어머니는 한 번도 선을 보라고 종용한 적이 없었지만 자기 선에서 거절했다는 얘기는 꼬박꼬박 전했다. 은우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나는 말도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은우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부담 대신 모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이라고는 하지만 존재감은 미미한 크기의 감정이었다. 거실장 위에 으레 하나쯤 올려두고 방치하는 장식품처럼. 한 번씩 눈에 띄면 치워야겠다고, 하다못해 먼지라도 떨어내야겠다고 인식한 후에 대체로 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다. (p. 64~65)

직업도 안정적이고 나이도 꽤 들어가는 아들에게 부모로서는 중매라도 보라고 은근이 압박을 가하는게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는 부모의 희망이 아들에게는 고문이 될 수도 있었을 터... 그래서 죄책감은 미미한 크기의 존재감으로 쉽게 잊혀질 수 있었다.

소희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너는 겁 안나?" 하고 되물었다. 그러더니 요새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서 말했다. 연애에는 통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도, 일밖에는 모르는 것 같던 선배도, 심지 굳은 비혼주의라던 친구도 하나씩 짝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에는 자기만 혼자 남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졌다는 것이었다. (중략) 그래서 정작 만나면 별달리 즐거울 것도 없는 동창 모임도 소중하다고 했다. (p. 75)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갈수록 '소속감' 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가족이라는 일차적 소속감이라면 좋겠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가족이 아니어도 어딘가에 누군가와 '함께'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정말 점점 그런것도 같다. 그 이유가 성정체성이 되었건 일중독이나 비혼주의가 되었건 여하튼 '혼자' 이고 싶으면서도 너무 '혼자'인 것은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온도와 머물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가늠해보면서 은우는 기다란 유리잔 표면에 맺힌 물방울에 손끝을 가져다 댔다. (p. 84)

'쾌적한 맛 (중략) 요란하고 뜨거운 충돌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한 맛이었다. 크고 단단한 얼음이 뿜어내는 냉기에 중심을 내주어야만 성립하는 맛이기도 했다.(p. 84)' 나도 이런 맛 칵테일을 파는 바가 집근처에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분위기 있게 '쾌적한 한잔'을 즐기고 싶은데... 이런 맛이라면 은우처럼 '혼자' 즐길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ㅎㅎ

『 앙코르 』

세영은 추석연휴에 늘 가던 가족모임에 가지 않고 혼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언니의 입에서 여지없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p. 88) 수화기 저편에서 씩씩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세영이 떠올린 것은 언니네가 괌에서 자리 잡기까지 이어졌던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이었다. 언니에게 돌아간 몫의 절반을 자신이 칼같이 요구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언니네 가족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활수준도 지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터였다. (p. 89)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며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러다 자신을 위해 한번쯤 한 선택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면서 신경쓰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캄보디아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해 있는 낯선 가람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둘이 함께 하게 된 여행...

이토록 분명한 것을 어째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p. 133)

10여년 전에 그녀가 세영에게 해준 말은 오늘 가람이 한 말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그런 말 언니한테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는데? 날 그렇게 봐주는 사람은 세상에 언니밖에 없어" (p. 134)

아무도 몰라주던 매력을 알아봐준 단 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과 나는 어떤 인연일까? 어떤 의미일까...

세편의 단편 뒤에는 [공명을 위한 온도와 속도] 라는 저자의 에세이 한편이 작가후기 처럼 덧붙여져 있다. '나의 길, 나혜석' 이라는 전시를 수원에서 본 이야기를 하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었다. 나혜석 작품 전시회를 본 기억이 나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저마다 감상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만일 이 책에 담긴 세 편의 소설을 즐기는 동안 살면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되뇌어보실 수 있다면, 자신을 지키고 삶의 쾌적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떠한 형태의 관계를 맺을지 조율해보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p. 146)' 라는 작가의 말을 보며 작품내내 흐르는 '온기'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선 동성애가 자주 보인다.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만 해도 피투성이였던 사랑은 이제 가볍고 산뜻한 분위기로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무거웠던 가족이라는 가까움이 내삶에서 거리를 두고 멀어져간 사이 다른 관계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관계'도 변했을 것이다. 그렇게 변화된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장 '쾌적한 온도'를 찾아내는 과정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들이 쉽게 읽혀서 더욱 좋았던 책이었다.

ps. 세 편의 작품 제목들로 뭔가 연결되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유치하지만) 한번 생각해 봤다.

'오프닝을 건너뛰지 않고 차근차근 보다보면 늘 마시던 미지근한 술도 어느날 쾌적한 한잔으로 느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 아마 외치게 되지 않을까, 한잔 더! 앙코르! 하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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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 인생의 판을 바꾸는 무의식의 힘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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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

나, 너, 우리의 무의식을 읽어낼 때 인생이 달라진다!

심리학이나 뇌과학 정신분석학 등등 정신의학자들의 책을 종종 읽다보니 정신의학의들의 책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았다. 프로이트 와 융. 그리고 대부분이 융의 후학들이었기에 [프로이트의 의자] 라는 책을 통해 프로이트의 뒤를 잇는 국내 정신분석의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프로이트를 무척 존경한다.

책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여덟가지 행복 관리의 기술' 이라며 인생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조언을 여덟가지 판으로 구분해 놓았다.

첫번째 판 - 헤어져야 하는 것과 헤어지려면 : 상실감 다루기

두번째 판 - 꿈이 현실이 되려면 : 환상 다루기

세번째 판 -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 : 자기애 다루기

네번째 판 - 내가 숨긴 나를 찾으려면 : 정체성 다루기

다섯번째 판 - 확신의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 초자아 다루기

여섯번째 판 - 망설이지 말고 움직이려면 : 열등감 다루기

일곱번째 판 - 다른 사람과의 경계선 지키기 : 공격성 다루기

여덟번째 판 - 끝없는 외로움에 잘 대처하는 법 : 고독감 다루기

그러나, 이러한 구분들이 뚜렷하지는 않다. 차례에서 이렇게 나눠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러한 주제들로 나뉠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할만큼 글은 대부분 평이한 조언들이다. 프로이트적 해석도 딱히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오랜 세월 경험과 연구로 내공이 다져진 정신분석의의 에세이로 읽혀지는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은 단단한 힐링 에세이 라고나 할까.

첫 만남에서 분석가가 희망, 낙관을 이야기한다면 분석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심을 해도 됩니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신선한 해석'을 던진다면 풋과일을 맛보라는 것과 같은, 미숙한 해석입니다. 분석의 견고한 기반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알아보려는 태도입니다. 첫 만남부터 섣부른 해석을 하기보다는 초면의 사람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말로 옮겨 표현하도록 합니다. (p. 42) 자기 과시가 아닌, 이해하려는 태도를 분석가가 보여야 피분석자의 마음에 희망과 변화를 불러올수 있습니다. (p. 43)

역전이를 피할 수 있는 분석가는 없습니다. 알아채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모르고 분석을 진행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p. 69)

프로이트 사후에 정신분석가는 모름지기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널리 퍼졌습니다. 잘못된 견해입니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은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p. 205)

상투적인 질문, 뻔한 해석으로 마음을 헤집으면 분석이 아니고 분열입니다. 분석은 마음을 조각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조각난 것들을 연결해서 봉합하는 작업니다. (p. 207)

책을 읽으면서 정신분석가나 정신분석작업?!에 대해서 저자가 알려주는 내용들이 오해와 편견을 깨는데 도움을 줄 수있을 것 같다. 정신분석을 하고 싶은데 어떤 정신분석의를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면 저자의 조언들을 새겨두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명철하고 쓴 소리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 보인다. 어떤 태도의 정신분석의가 좋은 의사인지 생각해보게 된 것도 좋았지만, 분열 과 분석을 명확하게 구분해준 것이 크게 와 닿는 깨우침이었다.

[꿈의 해석]은 읽기 어렵습니다. 꾹 참고 읽으면 꿈과 무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 고리를 깨닫게 됩니다. (p. 71)

세상을 돌아다니는 인생 대본은 두 종류입니다. '내적 성찰'을 기반으로 작성된 것, 그리고 '투사'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성찰의 정의는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입니다. 투사의 정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등을 남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입니다. (p. 89)

정신분석 중에서도 자아심리학이 보는 마음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장치가 늘 작동합니다. 이드(본능과 욕망), 초자아(양심, 도덕, 이상), 자아(나)입니다. 초자아와 자아는 각각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속합니다. 이드는 무의식에만 속합니다. 자아는 현실(상황,조건0, 이드, 초자아 사이에서 조정을 해서 합의를 보는 역할을 합니다. (p. 100)

프로이트의 업적의 핵심은 자이 성찰과 자기 부정의 반복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내놓은 이론도 허점이 보이면 과감하게 새 이론으로 바꿨습니다. 낡은 이론도 버리지 않고 좋게 만들려고 애를 태웠습니다. 이름이 난 후에도 권위를 지키려고 기본 이론을 고집하지는 않았습니다. (p. 178) 그는 노력형 천재였습니다. (p. 179)

프로이트가 초기에 주장한 대표적인 에너지는 '리비도(libido)'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리비도를 '성욕'으로 매도했지만 본래 의미는 '삶의 에너지'입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 개념으로 심리발달, 일상행동, 정신병리 같은 마음의 구석구석을 연구했습니다. (p. 276)

[꿈의 해석]을 읽으려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는데 전문가도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하니 새삼 걱정이 된다. 하지만 '성욕에 대한 세편의 에세이'라는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프로이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배운게 많아서 꼭 읽어볼 것을 다시한번 다짐해 보기도 한다. 여하튼, 책속에서 프로이트의 학문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나올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프로이트의 논리에 대해 성욕으로만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왜곡과 오해를 저자가 바로잡아 주는 점은 더더욱 반가웠다. 비록 한권이긴 하지만 프로이트 저작 중 한권을 원전 번역본으로 읽고나니 나또한 그러한 편견으로 좁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었다. 프로이트의 논리는 성욕으로'만'이 아니라 '근원적 에너지'로서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나의 중심적 뿌리를 세우고자 했다는 점이 융과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융은 개별적인 논리를 세우고자 했고 프로이트는 통합적이면서 근원적인 논리를 세우고자 했다. 어쨌든 창시자는 프로이트이기도 하고 논리적 맥락이 매력적이라서 프로이트에 대한 관심은 쭈욱 갖고 가게 될 것 같다.

마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장 이정표'를 따라 움직이는데, 영어 단어 '이정표(milestone)'에 '돌(stone)'이 들어 있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두 종류의 돌을 만납니다. 디딤돌과 걸림돌. 디딤돌은 딛고 일어나서도록 삶을 돕습니다. 걸림돌은 걸려서 넘어지거나 삶에 상처를 줍니다. 살아보니 디딤돌도 사람이고 걸림돌도 사람입니다. (p. 234)

외로움을 고치는 방법은 고독감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남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고 고독감은 나와 내가 관계를 맺은 상태입니다. (p. 299) 성격이나 성향을 단숨에 고칠수는 없지만 바라보는 안목은 바꿀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부정적 혼돈이고, 고독감은 긍정적 몰입입니다. (p. 300)

정신분석에 대한 설명도 프로이트학문에 대한 설명도 개인적으로 좋긴 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주요내용은 살면서 느꼈을법한 마음들에 대한 심리적 '조언'들이다. 그리고 그 조언들속에 주옥같은 명문장들이 등장해서 메모해두고 싶게 만든다. 내가 가장 좋았던 문장은 위에 인용한 저 두 가지 이다. 디딤돌과 걸림돌 그리고 외로움과 고독감. 다시 읽어봐도 두고두고 새겨둘만한 좋은 말이다.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이라는 제목은 아마도 '무의식'에 대한 의미였을 것이다. 무의식은 말그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것, 나도 모르게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한 숨어있는 것들을 생각해보고 되짚어보며 무의식을 잘 캐치해낸다면 저자의 말처럼 내 인생의 판을 바꾸는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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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명작 단편선 2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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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격변기 러시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작가 체홉.

체홉이 남긴 단편 명작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냉철한 시각과 따뜻한 감성을 동시에 느껴본다.

안톤 체호프 라고 이름은 익히 들어봤던 작가였다. 유명세 대비 작품으로는 나에게 그닥 인지도가 없던 작가였다. 얼마전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생애에서 안톤 체호프와의 인연에 눈길이 갔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하고 톨스토이의 명성이 자자하던 때 작가가 되고 톨스토이를 존경했으나 그와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하다가 톨스토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작가 안톤 체홉. 짧은 생애 대비 굉장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던데, 일단 가볍게 단편선으로 접해보기로 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무려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안톤 체홉은 시종일관 발랄하고 발칙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선구적인 페미니즘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뚱뚱이와 홀쭉이 (1883)』 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두 친구의 상황이 역전되는 대화가 웃픈데 아무 대사 없이 남편의 대화에 아내가 등장한다.

『카멜레온 (1884)』 에선 개에게 손가락을 물린 사람의 하소연에 대해 개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서장의 모습또한 당대의 남성들을 비웃는듯 하는데

『아뉴따 (1886)』 에서 젊은 남자들에게 빌붙어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 아뉴따의 비참한 삶은

『약사의 아내 (1886)』 에서 남편이 잠든 사이 자신의 미모를 알아봐준 손님들에게 잠시 들떴다가 무심한 남편에게 또다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불행 (1886)』 에서 남부러울것 없는 젊은 귀부인이 자신을 사모하는 다른 남성에게 잠시 흔들렸다가 남편에게 고백했음에도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을 추잡하다고 자책하는 상황이 과연 어느쪽이 더 불행할지 헛웃음짓게 하고

『목 위의 안나 (1895)』 에서 나이많은 부자남편과 결혼한 어린 신부의 변화를 통해 여성이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 당시 어떠했는지 보여주기도 하면서

『약혼녀 (1903)』 에서 행복한 약혼 생활 도중 지인의 말한마디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서 자신을 찾게 되는 극적 반전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면, 남편에 의해 설명되는 아내로서의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는데

대사 한마디 없고 아예 등장조차 없는 무존재감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대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모를 통한 인정 뿐이었지만 여성도 배울수 있고 배우기 위해 떠난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해준다고나 할까.

이 여성들의 서사 속에 남성들은 시종일관 여성을 무시하지만 여성에게 휘둘리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며 비겁하고 무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이 등장하던간에 남성들의 삶도 결코 돋보이진 않는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이나 변화가 대비되면서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고나 할까.

깨달아야 해요. 예를 들어, 당신과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무 일도 안 한다면 그건 곧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들을 대신해 일ㅇ르 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즉, 당신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먹어 삼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런 걸 깨끗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럽지 않나요?" (p. 140)

[ 약혼녀 ] 中

정숙과 순종이라는 도덕적 가치에만 묶여서 이것을 어기는 그 어떤 작은 행동조차도 더럽다고 추잡하다고 비난받고 자책하던 여성들에게 정말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메세지는 나의 감상 후기일뿐 이 작고 얇은 책은 굉장히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이다. 그냥 그렇게 쉽고 가볍게 넘겨질 수도 있는 책이다.

가족 모두의 생계를 위해 그해 말부터 모스크바와 빼쩨르부르그의 여러 잡지에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면서 짧은 유머 단편과 촌평등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체홉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2~3일에 1편씩 '마치 찍어내듯이 쓴' 이러한 단편 소품들은 그가 희곡과 중편 소설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1887년 이전까지 300여 편에 달했다. 그러나 이렇듯 단시간에 완성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 중 상당수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이 존재했으며, 중편과 장편들이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포착한 소재들의 다양함과 기발함이라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p. 177)

그러니까 안톤 체홉의 작품들은 초창기에 일종의 유머로 읽힐수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며 읽었지만 읽고 나면 왠지 뜨끔한.

그런 작품들중 몇 가지가 이 책속의 [뚱뚱이와 홀쭉이] [카멜레온] 등이다. 하지만 안톤 체홉의 능력을 높이 샀던 지인들의 충고에 의해 체홉은 '단편 기고수를 점차 줄여나갔으며, 단편을 쓰더라도 길이가 늘어나고 내용 또한 진지해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중편 길이의 작품과 희곡 창작으로도 영역을 넓혀 갔다. (p. 180)' 고 한다. 그래서인지 안톤 체홉의 대표작은 희곡작품들이다.

'그의 단편에 사상이나 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적 태도를 보인 일련의 비평가들의 견해 (p. 180)' '사회에 지도적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진지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당시 문단의 분위기도 체홉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p. 180' 미쳐서 인지 체홉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톨스토이의 문학적 태도와 자신의 작품 경향을 비교하며 일정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p. 181)' 고 한다. 하지만 체홉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았다. '체홉이 톨스토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그것이 곧 톨스토이 문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후일 체홉은 톨스토이에 대해 '내가 제일 존경한 유일한 작가'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p. 182) 결국 최종적으로는 톨스토이의 창작 경향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언제나 겸허한 태도로 충고와 비판을 경청했다. (p. 183)' 톨스토이는 이러한 안톤 체홉의 작품에 대해 평가절하한 적도 있었지만 병문안을 자주 갈정도로 안톤 체홉을 아끼기도 했다.

'그의 꾸준한 관심대상이던 당대 러시아 여성들의 삶의 애환과 자아실현의 문제는 이 시기의 작품인 『목 위의 안나(1895)』 와 『약혼녀 (1903』 에서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표현됐다. (중략) [목위의 안나] 는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p. 186) 체홉의 마지막 단편 소설인 [약혼녀]에서는 (중략) 창작 후기로 가면서 자신의 사회의식을 더욱 과감하게 표현하려 했던 체홉의 태도가 여성 해방이라는 주제의 측면에서 극대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 187)' 라는 것을 보면 당시의 밑바닥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에 대환 관심이 점점점 여성들의 삶으로 옮겨갔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톤 체홉은 의사였으나 글을 많이 쓰게 되면서 의사생활을 접었는데 틈틈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의료봉사도 열심히 했다는 걸 보면 타고난 성정이 따뜻한 인류애를 품은 사람이었기에 위와같은 인식의 흐름이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강요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뿐이었다. (중략) 이로 인해 초기부터 체홉의 작품들에 대해 부정적은 시각을 견지해오던 일단의 비평가들은 체홉이 인간 삶의 미래를 제시하지 않은 채 끝까지 비극적인 전망만을 그린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그의 작품 세계에 따라붙은 '황혼의 시인' '절망의 시인' 허무의 작가' '주의나 주장이 없는 작가' 등등의 비판적 표현은 희곡작품들이 발표되면서 더욱 강한 색채를 띠었다. (p. 189)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 알게된 체홉은 따뜻한 시선과 비참한 현실속에서도 유머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체홉이 남긴 작품이 많다하니 많이 읽어보면 달라질수도 있겠지만, 당대 러시아를 휩쓸었던 교훈적 메시지의 대작들에 비교되어 이런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체홉이 했다는 말이 다시한번 웃음짓게 했다.

"비평가들이 그러던데, 내가 음울한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내가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건 또 무슨 말이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염세주의자입니까? 염세주의자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혐오스럽소" (p. 190)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안톤 체홉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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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 아렌트, 뢰비트, 요나스, 마르쿠제가 바라본 하이데거
리처드 월린 지음, 서영화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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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뢰비트, 요나스, 마르쿠제가 바라본 하이데거

'20세기 위대한 사상가이자 한때 나치에 참여한 하이데거 철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표지색이 마음에 든다. 무거운 주제에 어울리는 톤이다. 표지 한쪽에 사진이 있다. 한 남자가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사진크기가 작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눈빛이 강렬하다. 처음엔 히틀러 사진인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사진속 인물이 하이데거 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이데거가 히틀러와 이토록 닮았던가?!

한나 아렌트 외에는 잘 모르는 이름의 사상가들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이 네 명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모두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Heidegger's Children 이다.

2001년 [하이데거, 제자들 그리고 나치( Heidegger's Children ) 초판이 출간된 이래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동화된 유대인 사상가'들과 마지막까지 자신의 심오한 사유길이 갖는 독일적 본성을 고집했던 철학자 사이의 우려스러운 친밀성에 관한 것이었다. (p. 8)

이 책의 원서는 2001년에 나왔다. 이 책의 시작은 1판과 2판의 머리말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머리말은 이 첫 페이지의 이 문장까지만 읽고 패스할 것을 추천한다. 머리말이 너무... 길고... 본문보다도 더... 어려웠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동화된 유대인 사상가들' 과 '자신의 심오한 사유길이 갖는 독일적 본성을 고집했던 철학자' 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 이들 사이의 '우려스러운 친밀성' 이라고 여겨진다.

'1933년 하이데거는 히틀러라는 디오니시우스(시라쿠스의 폭군) 앞에서 플라톤을 극적으로 연기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총통을 지도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보란 듯이 나치 운동에 가담했다. (p. 45)' 그리고 플라톤이 디오니시우스를 철학자왕으로 만들겠다는 허상을 실패했듯이 하이데거도 히틀러를 지도하겠다는 망상에서 내쳐졌다. '국가사회주의의 끔찍한 악행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하이데거의 불온한 노력, 그것도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인 독일인들을 역사적 책임에서 면제시켜 주려는 노력은 그의 제거주의적 반유대주의 고백과 결합되어 그를 더 이상 '훌륭한 사상가'로서 볼 수 없게 만든다. (p. 49)' 그러나 하이데거는 여전히 철학사에서 나름 탄탄한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검은 노트]가 드러낸 바와 같이, 그의 철학은 국가사회주의의 교리와 실천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내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은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법을 제시하기는 커녕, 문제의 일부라는 것이다. (p. 51)' 그런데도 왜 여전히 하이데거의 철학는 논의되고 소환되는가? ''존재'와 '포에시스'의 이름으로, '이성'과 '근대성'에 대해 하이데거가 보여준 철학적 공격은 당시 소외된 젊은 세대 연구자들의 성향과 놀랍도록 잘 들어맞았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과 근원적인 것으로 부터 사유의 단초를 얻은 하이데거의 강력한 비판은 '이성과 근대 시대에 작별'을 고하기를 원했던 새롭게 부흥한 포스트모던 시대정신과, 그것도 근대에서 따라 나온 참상 및 파국과 매끄럽게 맞물렸다. 그렇게 하이데거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 이상한 정략결혼이 체결되었다.(p. 53)' 다시 말해서, 하이데거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정략결혼이 이혼되지 않는 한 하이데거 철학의 생명력은 앞으로도 꽤 건강히 유지될지도 모르겠다. 근대성 이후 포스트모니즘과 니힐리즘은 아직 현대성으로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고, 일례로 하이데거의 극우적 엘리트주의는 트럼프를 미국대통령으로 만든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는 철학이 하이데거 철학인 것인지도...

한나 아렌트, 한스 요나스, 카를 뢰비트, 그리고 허버트 마르쿠제 이들은 스스로를 '유대 출신 독일인'이라 생각한 유대 문화에 기반을 두지 않은 유대인이었다. 철학적으로 훈련된 지식인으로서, 그들은 유대 문화 전통이 나닌, 신성한 게르만적 정신과 교양의 이념에서 구원과 의미를 찾고자 했다. 네 명 모두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비록 자신의 기념비적 작품인 [존재와 시간]을 1927년에 출간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출판물이 없었음에도, 강연자이자 교수자로서의 재능은 이미 하이데거에게 상당한 명성을 안겨주었다. (p. 68)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제도화된 정치적 반유대주의가 낳은 트라우마의 한가운데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깨달은 비유대주의적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독일계 유대인의 경험을 설명할 때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제는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대인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던 바로 그 국가에서 어떻게 유럽 유대인의 몰살이 고안되고 실행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p. 94)

하이데거는 굉장히 카리스마 있고 강연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하이데거에게 빠진 제자들의 모습은 역으로 하이데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하이데거에게는 유대인 제자가 많았다. 그러나 이 유대인 제자들의 대부분은 본인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독일인이라 여기며 성장하고 교육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외부로부터의 구분으로 인해 자신들이 유대인으로 분류되고 신봉했던 스승은 유대인이라고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동화된 유대인'으로서 어느날 (갑자기) 독일인에서 독일인이 아니게된 상황은 그들의 철학적 질문이 되었고 뛰어난 성찰은 역으로 그렇게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낸 스승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하이데거의 무엇이 젊은이들을 그토록 현혹시켰던 것일까... 시대상황 때문이었을까... 독일은 당시 유럽중에서도 유대인들이 가장 많고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독일에서 반유대주의가 태동되었다. 이것이 과연 아이러니 일까 아니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일까...

근대는 '절대 죄악'의 시대였다. 이와 같이 모든 수단은 그 절대 죄악을 심연으로 몰아넣기 위해 정당화되었다. 하이데거와 그의 제자들은 모두 '전선 세대'에 속해 있었다. '전선 세대'들이 잠깐이라도 허무주의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떠한 영구적인 가치가 구축되려면 그 전에 대규모의 파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p. 73)

하이데거는 정권이 쓰라린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나치당에 당비를 낸 당원이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히틀러 만세!'라는 이른바 '독일식 인사'로 강의를 시작했다. (p. 77)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그 프라이부르크 현자와 운명을 같이함으로써, 미래 철학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하이데거의 새로운 '실존' 철학은 신칸트주의, 헤겔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와 같은 당대의 지배적인 독일 강단 철학의 진부한 아카데미즘을 좌절시켰다고 느겼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나치즘으로의 전향은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그의 초기 실존철학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주의 기피게 재구성한다면, 그의 정치적 전환은 전면적인 단절로 보이지 않는다. (p. 79~80)

통일된 정치 세력으로서 반유대주의가 갖는 잠재력은 과소평가될 수 없었다. 베를린에 충성하는 것보다 고백적·문화적·지역적 분할이 종종 보다 더 중대한 문제가 되는 독일 정치의 독특한 성격을 감안할 때 말이다.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을 대량학살하는 것만이 '병-폐'로서의 근대성이 갖는 독성을 올바로 치료할 수 있었다. (p. 100)

1930년 히틀러가 권력을 손에 쥐고 나치가 반유대주의적 조치를 확대함에 따라, 의미 있는 유대인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은 독일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긴급한 문화적 의무가 되었다. (p. 107)

하이데거와 제자들은 이른바 '전선 세대'였다. 시민혁명은 실패했고 전쟁에도 참패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허무주의가 팽배해 있던 상황이었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은 제자들에게 허무가 아닌 '의미'를 강렬하게 시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나치즘 전향은 이미 그의 철학속에 초기부터 잠재해 있었다고 한다. 하이데거와 제자들은 당시의 아카데믹적 철학계에서 이방인에 가까웠다. 하이데거는 본인의 철학이 주류가 되리라 자신했다. 그가 매일 외쳤을 '히틀러 만세'는 사실 본인에게는 '하이데거 만세'를 의미했던 것같다. 독일은 통일국가가 되기 전 아주 자잘한 조각들로 나뉘어졌던 나라였다. 수많은 공국, 대국, 백작령, 남작령 들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있는 정치세력, 게르만족이라 통칭되지만 수많은 갈래의 민족의 통칭인 게르만족은 하나의 민족이라 부르기 어려웠으나 하나로 뭉치게 만들수 있던 상대적 유일종족, 반유대주의의 배경에는 '종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또한 독일은 유럽대륙에서 가장 형이상학적 철학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당대의 그 어떤 철학보다 자신의 철학이 완전하다 여겼고 강렬한 카리스와 논리로 젊은이들에게 설파했다. 제자들은 죽을때까지 그의 철학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것만도 급급해야 했다. 하이데거의 유대인 제자들은 '반유대주의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유대인성을 발견 (p. 122)' 해야 했다. '아무리 그들이 노력한다 할지라도 민족 혹은 인종으로서의 유대인은 결코 독일인이 될 수 없었다.(p. 124)'

한나 아렌트와 마르틴 하이데거 둘 다 독일의 참사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나치즘을 전형적으로 독일적인 것이라기보다 유럽적인 현상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했다. (p. 111)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관계는 다정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하게 착취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나이, 사회적 지위, 그리고 배경에 차이가 있음을 감안할 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를 시작한 것은 하이데거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열여덟살의 아렌트는 자신보다 거의 두배나 나이가 많은 남자가 체현하고 있는 가공할 만한 정신을 경이로워했다. (p. 119) 당시 하이데거는 독일 대학에서 생활하는 것을 금지당한 채였다. 그의 명성은 나치의 협력자로서 가졌던 지위로 인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으며, 그는 믿을만한 홍보업자와 친선대사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렌트는 이 목적에 딱 들어맞았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유대인 지식인이자 전체주의에 대한 주요 비평가로서 그녀의 지지는 하이데거의 나치즘과 관련된 집요한 비판을 막아내는데 도움을줄 수 있었다. (p. 141)

저자는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문제점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네 명의 유대인 제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네 명의 제자들에게 공평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네 명의 제자 중 유일한 여성이자 유일하게 스승을 용서한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의 제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마지막까지 아렌트는 하이데거에게 속박되어 있었다. 죽기 1년전인 1974년에, 그녀는 가까스로 절제해서 예의를 갖추어 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아무도 당신이 했던 방식으로 강의할 수 없고, 당신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었다" (p. 121)' 한나 아렌트에 대한 폄하적 표현들에 대해 부분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의 모순적인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긴 하다. 일종의 그루밍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렌트에게 있어서, 아우슈비츠는 독일 역사 혹은 독일민족의 특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략) '부르주아지'의 최후의 결과인 폭력적 군중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오직 독일의 폭력적 군중만이 그런 끔찍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p. 156)' 는 한나 아렌트의 (어쩌면) 무감한 태도에 나는 일부 공감한다. 유대인학살이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것은 맞다. 독일이 잔인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왜 일본은 해석하지 않는가? 유럽사상가들은 유대인학살 에만 너무 관심을 집중하고 따라서 독일의 파국적 행태에만 분노한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도 독일 못지않게 잔혹했다. 유럽사상가들이 유대인학살 피해만 논의하는 한 그들의 사상이 세계적 사상이 되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세계사엔 유럽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하늘은 가치와 의미의 시금석이 되기를 그만두었고, 그 대신 척도로 자리한 것은 '인간'이었다.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느낌이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뢰비트가 주목한 바와 같이 '19세기 중반 이래로, 유럽 역사가들은 더는 진보의 패턴을 따르지 않고, 쇠퇴의 패턴을 따랐다.' (p. 177) 뢰비트에게 니체는 유럽의 도덕적·지적 허무주의에 대한 첫번째 예언자였다. (p. 181) 뢰비트에 따르면, 니체의 영원회귀설은 '힘에의 의지'의 이념 속에서 구체화된 니체 자신의 의지주의자로서의 상상을 포함하며, 유럽 니힐리즘 담론을 교정하는 데 필요한 교설에 해당한다. (p. 182) 뢰비트의 스토아주의는 '동양의 지혜'와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갖는다. 그는 나치가 지배한 유럽을 피해 피난처를 삼은 일본에서의 5년의 체류기간(1936~1941)동안 동양적 지혜와 너무나 뜻이 잘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 183)

근대 니힐리즘에 대해 스토아적 답변을 했다는 뢰비트는 심지어 일본에 5년간 살았다. 그런데 대체 일본 어디서 살면서 어떤 모습만 보았길래 일본제국주의의 잔혹성은 못보았는가? 당대의 내로라하는 사상가였다면서 유대인으로서의 피해망상 해결하는데만 그쳤던 것인가? '하이데거가 그렇게 많은 재능 있는 유대인 학생들을 지도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들 학생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여기지 않았으며, 하이데거 역시 그들을 그렇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전적으로 동화된 독일인으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나치의 생물학적 반유대주의 견해를 결코 공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전통적인 문화 질서, 즉 대체로, 문화적으로 동화되거나 세례받은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했다. (p. 194)' 뢰비트는 뮌헨에서 동화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로 개종한 예술가였다. '뢰비트는 자신이 근대 정치적 극단주의가 갖는 파우스트적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스토아적 거리두기의 태도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의식을 전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하나의 극단적 발상이다. 이는 역사를 의미 없는 우연성의 영역으로서 포기하는 태도를 받아들인다. (p. 219)' 뢰비트는 일본제국주의 사회에서 '역사를 우연성의 영역'으로 깨달은 것일까? 시대를 제대로 읽으려 하지 않은 도피적 거리두기가 아니었을까? '뢰비트는 기원전 3세기 신조에 만족한 채로 있었다. 기원전 3세기 신조를 근대에 와서 주창한 학자로는 괴테, 헤겔, 부르크하르트가 있다. (p. 220)' 뢰비트는 끝내 독일인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이데거의 경우는 다수의 우파 지식인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당시 우파 지식인들 상당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본질에서 비독일적이며, 만일 독일이 바이마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본래 독일 전통인 '위대한 정치(니체)'를 열망한다면 '국가의 권위주의적인' 해법이 필요할 거라고 확신했다. 더욱이 하이데거는 항상 자신을 독일의 관료들 사이에서의 일반적 관행을 급진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의 변변찮은 배경을 감안할 때, 그는 상류층 교수들 사이에서 불편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실증주의, 신칸트주의, 혹은 지식가회학 같이 당시의 지배적인 지적 경향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 하이데거는 '반지성적 지식인'이라는 페르소나를 선택했다. 하이데거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이해했다는 사실은 그가 어째서 철학적·정치적 급진주의에 끌렸는지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p. 197) 하이데거와 국가사회주의는 실존론적 급진주의를 공유했다. 역사적 위대함이라는 목적에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전통과 가치를 '무화시키는'방식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철학적으로 하이데거는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적인 범주들을 '해체'시키려 했다. (p. 201)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정신적 분위기는 실존론적 니힐리즘이었다. 단호한 결단의 파토스가 의무적인 관점으로 보이는 기분 말이다. (p. 208)

하이데거 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될 수록 놀라웠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하이데거식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하이데거가 여전히 논의되는 이유이려나... 해체 이후의 건설에 대한 논의는? 일단 뒤로 밀린다. 하이데거 라면 자신이 지도하는 일인(히틀러)의 독재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현실적 건설을 했다고 치자 지금의 하이데거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1920년대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의 지지자로 변절한 이후, 신앙을 잃은 가톨릭 신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던 하이데거는 확실히 원래의 신앙으로 복귀했다. 도처에 신학자들이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p. 225) '기초존재론'의 고질적인 윤리적 결함에 대한 요나스의 날카로운 비판은 이후 하이데거 연구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p. 226) 이주로 맺어진 조국의 지배적인 지적 경향에 타협하지 않았던 요나스는 벤야민이 두려워했던 운명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 내에서 지배적인 철학 학파인 논리 실증주의, 언어 분석, 그리고 실용주의는 바꿀 수 없는 그의 주된 접근법이었던 유럽 형이상학적인 성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p. 232)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으로부터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미국 사회는 그가 도망쳤던 사회보다 확실히 더 나았다. 그러나 때로 요나스는 영혼의 상태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한때 미국 사회를 보편적인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들었던 정치적인 덕목들, 즉 경건함, 자립, 투철한 공공심, 시민참여, 뿌리 깊은 공동체는 소유를 미덕으로 삼는 무자비한 개인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p. 273)

저자는 한스 요나스를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추구한 생철학자' 라고 표현했다. 요나스는 철학이라기 보다는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그러한 윤리적 성향이 강한 요나스의 철학은 생애 말기에 이르러서야 인정받았다. 1987년 84세의 요나스는 독일 서점가협회의 명망 있는 평화상을 받았고 독일 연방공화국의 수훈 십자훈장을 받았다. 1993년 89세의 나이로 뉴욕의 집에서 사망하기전의 10여년이라는 기간이 그의 지적 유산이 대가를 받은 기간이라고 한다. 도덕적 통찰이 필요했던 시대가 어제오늘이야기었겠는가마는 자본주의사회가 강력해진 때에서야 '생철학'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 일까... 요나스의 철학은 신학에 대한 성찰 과 '궁극적 질문'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데,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가장 무시되는 분야가 그런 윤리가 아니었을지... 어찌보면 요나스 사상 또한 하이데거의 독재를 벗어나기 위한 무기력한 선택은 아니었을지...

1927년, 겉으로 보기에는 뜬금없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강단철학의 진부한 아가데미즘과 의식적으로 결별함으로써, 철학적 탐구를 위한 전례 없는 풍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신칸트주의, 논리 실증주의 등, 철학계의 지배적인 양상은 역사적 시대가 직면한 방향감각의 상실을 체계적으로 무시했다. 반면 하이데거 철학은 위기의 분위기를 존재론적 탐구를 위한 '존재적' 출발점으로 끌어안았다. (p. 277) 마르쿠제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는 실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담기에는 여전히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다. 궁극적으로 역사성에 대한 기초존재론의 주장은 가짜-구체철학임을 보여주었다. (p. 289) 그와 동시에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주의자와 하이데거주의자가 역사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유사성을 갖는다는 점에 강하게 사로잡혔따. 이들 두 학파 사이의 화해 가능성은 이 유사성에 달려 있었다. (중략) 말하자면, 본래적 실존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일반적으로 가능한가? (p. 290) 그러나 마르크스와 달리,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명백하게 비민주적인 '귀족적 급진주의' 관점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극복(니체)'이나 '본래성'의 목표를 선택된 소수, 즉 정신적으로 선택된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p. 295~296)

허버트 마르쿠제는 실존론적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좌파하이데거주의로 사상의 흐름을 보인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철학도 사상도 잘 모르는 나로서도 하이데거의 극단적 엘리트주의와 마르크스의 극단적 서민주의는 전혀 연결될 수 없어 보였다. 가능하지 않을 연결을 가능하도록 시도해본것이 마르쿠제가 선택한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반박법이었을까? '하이데거는 수치스러운 줄을 모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연합군에 의해 자행된 잔혹행위들이 나치가 저지른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p. 325)' 하지만 하이데거의 제자들은 스승의 철학에서 느낀 유의미성을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그리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본래성은 정신적 엘리트에게 제한되는 가능성이다. 마르쿠제에게 있어서, 물화를 초워라는 능력은 이론적으로 재능있는 사람들, 즉 지적 엘리트들의 영역이다. (p. 332)' 라는 점에서 더욱 포기가 어려웠으리라 생각되긴 한다. 하이데거와 네 명의 제자들은 모두 엘리트주의 라는 공통프레임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에 대한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이데거는 1934년 5월에 대학 총장직을 사임했다. 그의 짧지만 결연한 정치 진출은 적지 않은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하이데거는 철학적으로 교만했으며 정치 경험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무능했다. (p. 336) 하이데거는 인간의 지적 능력보다 더욱 근원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 이전의 성향과 기질들(기분, 도구, 언어, 실천적 참여와 상황, 타자-와의-공동 존재 등)임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보편 개념에 대한 치명적인 불신을 드러냈다. 보편 개념은 그가 파괴하기를 희망했던 서구 형이상학 전통의 상징에 해당한다. '진리' '도덕성' 그리고 '선'과 같은 개념들은 플라톤적 지적 곡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존재'에 대한 '표상'의 독재를 상징한다. 형이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에 따르면, 플라톤은 진리의 장소를 사물 그 자체의 '비은폐성'으로부터 '생각' 혹은 '표상'으로서의 진리 개념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서구 철학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p. 337)

하이데거의 오만함에는 점점 더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존재와 시간]이 보수 혁명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론이 사실상 존재의 내용, 즉 양 대전 기간의 시대정신에서 유래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내용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p. 343)' 하이데거의 철학은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이루어졌다. 역사도 그렇지만 철학도 그 시대를 연결짓지 않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이데거 철학을 양 대전 기간의 시대정신과 연결지어서만 생각해본다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현재와 연결지으려 하는가... '하이데거는 결코 골수 나치가 아니었다. 그는 독일의 '국가 혁명'을 생물학적 발판이 아닌 존재론적 발판 위에 세울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서구 역사에 대한 독일의 비범한 세계사적인 공헌을 위해) 독일의 배타주의를 노골적으로 찬성했는데, 이러한 배타주의가 인종적·생물학적 용어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그러한 정당화는 19세기 과학주의나 생물학주의 논리로 후퇴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 실존에 대한 모든 물음은 궁극적으로 '존재물음'과 함께 성립하거나 몰락했으며, 그런 이유로 결코 과학적으로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만 답할 수 있었다. (p. 345)' 하이데거의 배타주의가 늘 시시때때로 현실속에서 재현되기 때문인 것일까...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가장 풍부한 '역사성'을 소유한 민족은 독일인이다. (p. 350)' 그리고 지금 세계 곳곳엔 자신들이 가장 풍부한 역사성을 소유한 민족이라 생각하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알게모르게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확실히 [존재와 시간]의 시야에 만연해 있는 실존론적 허탈감은 독일 특유의 유산이다. 그가 사용하는 많은 염세적 비유들은 종교적 구원의 전망을 벗어던지고, 철저하게 현실에 입각한 실존론적 존재론의 요소를 새긴 독일 낭만주의의 자산이자 업니다. 하이데거적 불안은 이전 시대의 희망과 위로가 시대착오적이면서 비양심적인 감상에 그치는 것으로 보이는 시대에 염세적인 낭만적 감수성을 표현한다. (p. 413) 실존론적 사상이 갖는 '명백한' 특징이 있다면, 민주적 정치 문화의 중심적 에토스인 '공공의 이성'의 가치에 대한 헌신이 부족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중략) 하이데거와 그의 철학적 후계자들이 보이는 공공 이성에 대한 신뢰의 결핍은 확실히 부분적으로 양 세계대전 사이의 방향감각 상실에 의해 과잉 결정된 세대적 현상이다. 만약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깨뜨림으로써 명예를 부여받은 시대가 있다면, 바로 그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실존론적 패러다임'이 갖는 시대적 관련성을 알아내고자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결점은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p. 428)

'공공의 이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저자로서는 하이데거와 네 명의 제자들 중에서 유독 한나 아렌트에 대한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같다. 나도 '공공의 이성' 이 '염세적인 낭만주의'에 밀리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하이데거 철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글항아리, 2016)에서의 지젝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진지한 철학적 분석에서 외재적 비평은 내재적 비평에 근거해야 한다' 지젝은 월린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비평가들이 자칫 하이데거가 근대성의 기본 교의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근대성의 핵심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인간중심주의' '민주주의' '진보' 와 같은 가치는 생명공학적 발견과 전 지구적 자본주의 사회가 던지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에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은 낡은 기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젝에 의하면 하이데거의 사상을 독일 민족주의적 보수 이데올로기로 직접적으로 환원시켜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이데거의 철학체계는 이들 원천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탈맥락화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태 하이데거주의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그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p. 436)' 라는 옮긴이의 설명과 비슷한 내용을 읽으면 하이데거 철학의 위험성이 더 느껴진다. 솔직히 나는 그냥 하이데거 철학이 무시되었으면 좋겠다. 회자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하이데거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이데거를 철학사에서 성급하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지 않을까. (p. 437)' 라는 옮긴이와 같은 의견이 많기에 여전히 이렇게 하이데거 관련 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피할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지적 토양이 하이데거 철학을 즐길만큼 그렇게 탄탄한 것인지에 대해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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