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명작 단편선 2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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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격변기 러시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작가 체홉.

체홉이 남긴 단편 명작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냉철한 시각과 따뜻한 감성을 동시에 느껴본다.

안톤 체호프 라고 이름은 익히 들어봤던 작가였다. 유명세 대비 작품으로는 나에게 그닥 인지도가 없던 작가였다. 얼마전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생애에서 안톤 체호프와의 인연에 눈길이 갔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하고 톨스토이의 명성이 자자하던 때 작가가 되고 톨스토이를 존경했으나 그와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하다가 톨스토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작가 안톤 체홉. 짧은 생애 대비 굉장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던데, 일단 가볍게 단편선으로 접해보기로 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무려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안톤 체홉은 시종일관 발랄하고 발칙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선구적인 페미니즘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뚱뚱이와 홀쭉이 (1883)』 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두 친구의 상황이 역전되는 대화가 웃픈데 아무 대사 없이 남편의 대화에 아내가 등장한다.

『카멜레온 (1884)』 에선 개에게 손가락을 물린 사람의 하소연에 대해 개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서장의 모습또한 당대의 남성들을 비웃는듯 하는데

『아뉴따 (1886)』 에서 젊은 남자들에게 빌붙어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 아뉴따의 비참한 삶은

『약사의 아내 (1886)』 에서 남편이 잠든 사이 자신의 미모를 알아봐준 손님들에게 잠시 들떴다가 무심한 남편에게 또다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불행 (1886)』 에서 남부러울것 없는 젊은 귀부인이 자신을 사모하는 다른 남성에게 잠시 흔들렸다가 남편에게 고백했음에도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을 추잡하다고 자책하는 상황이 과연 어느쪽이 더 불행할지 헛웃음짓게 하고

『목 위의 안나 (1895)』 에서 나이많은 부자남편과 결혼한 어린 신부의 변화를 통해 여성이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 당시 어떠했는지 보여주기도 하면서

『약혼녀 (1903)』 에서 행복한 약혼 생활 도중 지인의 말한마디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서 자신을 찾게 되는 극적 반전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면, 남편에 의해 설명되는 아내로서의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는데

대사 한마디 없고 아예 등장조차 없는 무존재감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대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모를 통한 인정 뿐이었지만 여성도 배울수 있고 배우기 위해 떠난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해준다고나 할까.

이 여성들의 서사 속에 남성들은 시종일관 여성을 무시하지만 여성에게 휘둘리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며 비겁하고 무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이 등장하던간에 남성들의 삶도 결코 돋보이진 않는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이나 변화가 대비되면서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고나 할까.

깨달아야 해요. 예를 들어, 당신과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무 일도 안 한다면 그건 곧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들을 대신해 일ㅇ르 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즉, 당신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먹어 삼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런 걸 깨끗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더럽지 않나요?" (p. 140)

[ 약혼녀 ] 中

정숙과 순종이라는 도덕적 가치에만 묶여서 이것을 어기는 그 어떤 작은 행동조차도 더럽다고 추잡하다고 비난받고 자책하던 여성들에게 정말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메세지는 나의 감상 후기일뿐 이 작고 얇은 책은 굉장히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이다. 그냥 그렇게 쉽고 가볍게 넘겨질 수도 있는 책이다.

가족 모두의 생계를 위해 그해 말부터 모스크바와 빼쩨르부르그의 여러 잡지에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면서 짧은 유머 단편과 촌평등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체홉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2~3일에 1편씩 '마치 찍어내듯이 쓴' 이러한 단편 소품들은 그가 희곡과 중편 소설에도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1887년 이전까지 300여 편에 달했다. 그러나 이렇듯 단시간에 완성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 중 상당수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이 존재했으며, 중편과 장편들이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포착한 소재들의 다양함과 기발함이라는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p. 177)

그러니까 안톤 체홉의 작품들은 초창기에 일종의 유머로 읽힐수 있었던 것 같다. 웃으며 읽었지만 읽고 나면 왠지 뜨끔한.

그런 작품들중 몇 가지가 이 책속의 [뚱뚱이와 홀쭉이] [카멜레온] 등이다. 하지만 안톤 체홉의 능력을 높이 샀던 지인들의 충고에 의해 체홉은 '단편 기고수를 점차 줄여나갔으며, 단편을 쓰더라도 길이가 늘어나고 내용 또한 진지해지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한편으로는 중편 길이의 작품과 희곡 창작으로도 영역을 넓혀 갔다. (p. 180)' 고 한다. 그래서인지 안톤 체홉의 대표작은 희곡작품들이다.

'그의 단편에 사상이나 이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비판적 태도를 보인 일련의 비평가들의 견해 (p. 180)' '사회에 지도적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진지한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당시 문단의 분위기도 체홉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p. 180' 미쳐서 인지 체홉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톨스토이의 문학적 태도와 자신의 작품 경향을 비교하며 일정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p. 181)' 고 한다. 하지만 체홉은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았다. '체홉이 톨스토이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그것이 곧 톨스토이 문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후일 체홉은 톨스토이에 대해 '내가 제일 존경한 유일한 작가'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p. 182) 결국 최종적으로는 톨스토이의 창작 경향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언제나 겸허한 태도로 충고와 비판을 경청했다. (p. 183)' 톨스토이는 이러한 안톤 체홉의 작품에 대해 평가절하한 적도 있었지만 병문안을 자주 갈정도로 안톤 체홉을 아끼기도 했다.

'그의 꾸준한 관심대상이던 당대 러시아 여성들의 삶의 애환과 자아실현의 문제는 이 시기의 작품인 『목 위의 안나(1895)』 와 『약혼녀 (1903』 에서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표현됐다. (중략) [목위의 안나] 는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p. 186) 체홉의 마지막 단편 소설인 [약혼녀]에서는 (중략) 창작 후기로 가면서 자신의 사회의식을 더욱 과감하게 표현하려 했던 체홉의 태도가 여성 해방이라는 주제의 측면에서 극대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p. 187)' 라는 것을 보면 당시의 밑바닥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생에 대환 관심이 점점점 여성들의 삶으로 옮겨갔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톤 체홉은 의사였으나 글을 많이 쓰게 되면서 의사생활을 접었는데 틈틈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의료봉사도 열심히 했다는 걸 보면 타고난 성정이 따뜻한 인류애를 품은 사람이었기에 위와같은 인식의 흐름이 가능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강요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뿐이었다. (중략) 이로 인해 초기부터 체홉의 작품들에 대해 부정적은 시각을 견지해오던 일단의 비평가들은 체홉이 인간 삶의 미래를 제시하지 않은 채 끝까지 비극적인 전망만을 그린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그의 작품 세계에 따라붙은 '황혼의 시인' '절망의 시인' 허무의 작가' '주의나 주장이 없는 작가' 등등의 비판적 표현은 희곡작품들이 발표되면서 더욱 강한 색채를 띠었다. (p. 189)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 알게된 체홉은 따뜻한 시선과 비참한 현실속에서도 유머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체홉이 남긴 작품이 많다하니 많이 읽어보면 달라질수도 있겠지만, 당대 러시아를 휩쓸었던 교훈적 메시지의 대작들에 비교되어 이런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체홉이 했다는 말이 다시한번 웃음짓게 했다.

"비평가들이 그러던데, 내가 음울한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이오? 내가 차가운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건 또 무슨 말이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염세주의자입니까? 염세주의자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혐오스럽소" (p. 190)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안톤 체홉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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