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라고 이름은 익히 들어봤던 작가였다. 유명세 대비 작품으로는 나에게 그닥 인지도가 없던 작가였다. 얼마전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생애에서 안톤 체호프와의 인연에 눈길이 갔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며 성장하고 톨스토이의 명성이 자자하던 때 작가가 되고 톨스토이를 존경했으나 그와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하다가 톨스토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작가 안톤 체홉. 짧은 생애 대비 굉장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던데, 일단 가볍게 단편선으로 접해보기로 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무려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안톤 체홉은 시종일관 발랄하고 발칙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선구적인 페미니즘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뚱뚱이와 홀쭉이 (1883)』 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두 친구의 상황이 역전되는 대화가 웃픈데 아무 대사 없이 남편의 대화에 아내가 등장한다.
『카멜레온 (1884)』 에선 개에게 손가락을 물린 사람의 하소연에 대해 개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서장의 모습또한 당대의 남성들을 비웃는듯 하는데
『아뉴따 (1886)』 에서 젊은 남자들에게 빌붙어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 아뉴따의 비참한 삶은
『약사의 아내 (1886)』 에서 남편이 잠든 사이 자신의 미모를 알아봐준 손님들에게 잠시 들떴다가 무심한 남편에게 또다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불행 (1886)』 에서 남부러울것 없는 젊은 귀부인이 자신을 사모하는 다른 남성에게 잠시 흔들렸다가 남편에게 고백했음에도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을 추잡하다고 자책하는 상황이 과연 어느쪽이 더 불행할지 헛웃음짓게 하고
『목 위의 안나 (1895)』 에서 나이많은 부자남편과 결혼한 어린 신부의 변화를 통해 여성이 권력을 차지하는 방법이 당시 어떠했는지 보여주기도 하면서
『약혼녀 (1903)』 에서 행복한 약혼 생활 도중 지인의 말한마디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나고서 자신을 찾게 되는 극적 반전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성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면, 남편에 의해 설명되는 아내로서의 여성들이 주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는데
대사 한마디 없고 아예 등장조차 없는 무존재감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당대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모를 통한 인정 뿐이었지만 여성도 배울수 있고 배우기 위해 떠난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해준다고나 할까.
이 여성들의 서사 속에 남성들은 시종일관 여성을 무시하지만 여성에게 휘둘리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며 비겁하고 무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여성이 등장하던간에 남성들의 삶도 결코 돋보이진 않는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이나 변화가 대비되면서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