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야옹 고양이 대백과 - 특별 개정판
린정이.천첸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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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행복하게! 최대한 건강하게!

고양이를 가장 현실적으로 잘 키우는 방법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것일까?!

나는 내가 살면서 동물을 키우게 될거라고는 1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달팽이도 키워보고 물고기도 키워보고 고슴도치도 키웠던 경험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0-

동물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서워하는 쪽에 가까운 내가 그나마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키울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건,

개의 경우 갑자기 달려들고 침묻히며 핥고 크게 짖고 매일 산책시켜주고 씻겨 줘야 하며 끊임없는 애정을 주어야 하는 (게다가 배변 훈련을 제대로 못 시키면 평생 아무데나 볼일을 볼 수 있다는;;;) 등 나의 성향과는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요건들을 갖고 있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양이는 알아서 배변을 가리고 주인에게 매달리지 않는 독립성에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반려동물이 없었을 때에도 이런저런 후원을 통해 주지하고 있던 생각,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길냥이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갑작스레 입양해오면서 동물육아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무지한 분야에 대해 평소 하던 습관대로 관련서적을 찾아본 것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이었다.

그리 많은 책을 찾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찾던 의도에 딱 맞는 고양이 육아 책은 없었다.

너무 에세이 적이라 실질적으로 얻을 정보가 없는 책도 너무 전문적이라 읽어도 기억하지 못할 정보가 많은 책도 나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한 책들도 대부분 너무 고양이 질병 설명 위주였다.

물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건 건강을 책임지는 일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이 평소와 다르거나 아픈 것 같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굳이 내가 그 질병과 증상과 치료법을 알 필요는 없다. 알아봤자 직접 진단을 내리거나 약을 처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병원에서 수의사 쌤이 하라는 데로 할건데 내가 왜 굳이 그 질병들을 그토록 자세히 알아둬야 하겠는가?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키우고 케어해야 하는지 '일상적 육아법'이 더 필요했다. 연령별 먹이양 이라던가 발톱깎는 방법과 주기 라던가 고양이 몸짓의미 라던가 종류별 털관리법 이라던가 등등등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유용했다.

대부분의 고양이 관련 책들은 사람 위주로 쓰여져 있는 것 같았다. 예를들어 내게 맞는 고양이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여 고양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풀어내고 고양이 질병들을 설명하곤 한다. 사람먼저 고양이가 다음이랄까.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는 고양이 중심적이다. 고양이의 신체구조적 특징부터 고양이를 어떻게 데려오는지와 그에 따른 체크사항부터 시작하여 고양이 종류와 연령별로 맞춤 정보를 제공한다. 즉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먼저 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적 케어 관련 팁과 풍부한 사진을 첨부함으로써 쉽게 읽히고 보자마자 이해가 된다. 그런다음 질병등의 건강관리 까지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고양이 대백과라 할만 하다.

대만에서 고양이전문병원을 세운 수의사가 쓴 책이라 약간의 현실상황적 차이가 조금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고양이 정보 책으로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에서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고양이에 대한 A부터 Z까지 기초 정보를 알뜰하게 제공해주고 있는 이 책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내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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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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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은 테러와 전쟁, 전염병으로 한계에 이르렀다.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바로 고양이 문명.

쥐 떼에게 포위당한 고양이와 인간은 살아남아서

지구상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는 정말 유명한 작가다. 특히나 한국에서 그의 인지도는 외국 작가들 중 절대적일 것이다. 그동안 써낸 작품들의 양도 어마어마 하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꾸준하게 작품을 써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의 작품을 그동안 한 번도 읽지 않은 나도 참 희한하다. 읽어야지 하고 작품을 콕 집어 놓았다가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면 새작품 먼저 읽어야지 또다시 콕 집어놓았다가 밀리기를 수차례... 이번 신작으로 드디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에 입문 하였다.

글을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바랄 게 없을 거야. 종이에 촘촘히 박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는 해바라기 씨만 한 글자들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줄줄이 이어지는 글자들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살맛이 나겠지.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머릿속에 얼굴이 나타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한 인간들이 있대. 상상만 해도 온몸이 짜릿짜릿하지 않아? (p. 13)

소설의 첫 문장은 '글자의 신비' 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책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 강할 것이다.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도 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평이한 단어들의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었음에도 첫장부터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우리는 누구나 머릿속에 모르는 얼굴이 나타나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심지어는 목소리와 음악이 들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자, 지금부터 귀를 바짝 세우고 수염을 팽팽히 펼쳐. 감각을 활짝 여는 순간 너희 역시 <세상에 눈뜬> 소수의 고양이에 속하게 될 거야. 지금부터 듣게 될 이야기는 꼭 너희 새끼들과 친구들한테 전해 줘야 해. 내 이야기가 세상에서 잊히지 않게 하는 책임과 의무가 너희에게 있다는 걸 명심해. 너희는 그렇게 나를 이어 <고양이 이야기꾼>이 될 거야. 먼 훗날 너희 중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가 책으로 써서 후대에 남기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 날이 오길 우리 학수고대하면서 이 말을 가슴에 새기자. 이야기 되지 않는 모든 것은 잊힌다. (p. 14)

우리는 이 소설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순식간에 고양이가 된다. 고양이의 눈으로 보고 고양이의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 이야기꾼' 이 되어 고양이 '문명' 전달자가 된다. 이 책의 원제는 프랑스어로 '고양이의 여왕' 이고 그 여왕의 이름은 '바스테트' 이다. 이집트 여신이었던 바로 그 바스테트.


지금까지 일어난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상세히 이야기하기 전에 나 바스테트가 누구인지부터 알려 줄게. 겉모습부터 말하자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세 살짜리 암고양이야. 하얀 털과 검은 털이 적당히 섞인 일명 젖소 무의 고양이. 콧잔등에는 하트 모양을 뒤집어 놓은 앙증맞은 점이 찍혀 있고 눈동자는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초록색이야. 외모는 짧게만 이야기하고 성격으로 넘어갈게. 어차피 그게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니까. 내가 누구인지 정의 하려면 단점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어. 내 입에서 단점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놀랐겠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완전 무결한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아. (p. 18)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난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리더십까지 갖췄어. 더 이상 평범한 집고양이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꿈꾸게 됐다는 말이야. 난 고양이라는 종의 한계, 그리고 암컷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었어. 참, 또 한 가지 나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빠트렸네. 나는 오래전부터 아주 원대한 계획을 하나 가지고 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p. 22)

바스테트가 남긴 이야기가 구전되고 구전되어 그 후대가 기록한 책을 내가 읽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동물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종종 그렇듯이 이 소설도 일종의 '우화' 에 가깝다. 고양이와 문명에 대한 그리고 이야기와 오만에 대한 커다란 우화.

때는 바야흐로 '대멸종'의 시기라고 부를만 하다. 폭력이 난무하던 인간들의 사회에 알수 없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파멸로 치닫는 인간들의 숫자와 달리 힘을 불려 가는 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쥐' 였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수를 불려가던 쥐들은 급기야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생명체들도 제압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이 피타고라스라고 소개한 그에게는 다른 고양이들한테 없는 신체적 특징이 하나 있었어. 바로 이마 위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는 건데, 하도 신기해서 내가 자꾸만 쳐다보니까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제3의눈>이라면서 자세히 설명해 줬어. 인간들이 그의 뇌를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USB 단자라는 건데, 그게 있으면 인간들의 정보를 한데 모아 놓은 인터넷이라는 곳에 접속할 수 있다고 했어. (p. 31)

대혼란의 시기 바스테트의 집사인 나탈리의 이웃으로 이사온 집에는 피타고라스 라는 샴고양이가 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일종의 실험동물이었는데 그를 아끼게 된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게 됐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인터넷에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주 검색하며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는데,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 백과사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다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으로는 이 책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했다.

기원후 391년,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확립한 테오도시우스1세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로마 시민들에게 고양이 소유 금지령을 내린다. 야행성에다 왕성하게 교미하는 고양이를 타락과 주술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기독교 축일에 고양이를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성 요한 축일에 고양이를 잡아 마을 중앙 광장에 설치된 대형 장작더미에 올려 불태워 죽였다. 1347년부터 1352년까지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 (고양이 소유가 금지되지 않았던 유일한 집단이) 유대인 공동체들은 상대적으로 병에 걸린 사람이 적었다. (p. 53)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쫓아주는 고양이 덕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페스트의 감염 경로를 몰랐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던 광신주의자들의 표적이 되어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8세는 고양이가 변장을 하고 지상에 내려온 악마라고 간주해 대대적인 몰살을 지시하는 칙령을 내린다. (p. 54)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잡학다식적 자료모음집 같은 책이다. 어릴때부터 이런 다양한 상식들을 메모해왔기에 지금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소설 자체 이야기보다도 소설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 역사상식들이 더 재미있었고 작가가 더 대단해 보였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당장 이 섬을 나가야 해." (p. 47)

"설마 쥐가 세상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p. 64)

파리의 아파트에서 시뉴섬으로 시뉴섬에서 다시 시테섬으로 쥐군단을 피해 소수의 인간과 고양이가 모인 공동체는 피신을 하고 생존을 위해 싸워나간다. 피타고라스에게 있는 제3의눈에 장치를 연결해서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바스테트는 고양이와 인간 모두를 리드하려 한다. 그러다 쥐군단의 대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데, 쥐군단을 이끄는 작은 흰쥐는 엄청난 지략가였고 스스로를 티무르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 흰쥐에게도 제3의눈이 있었다.

강의를 경청하던 피타고라스가 한니발의 무슬을 <캣권도>라고 부르면 어떠냐고 말한다. 고양이들의 무술. (p. 97)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고양이들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바스테트의 이야기를 읽던 도중 '캣권도' 라는 단어가 나와서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열광하고 작가 또한 그 성원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표현해 주니 이 얼마나 반가운가 ㅎㅎ

"난 투표가 꼭 최선의 선택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투표를 거치면 어정쩡한 합의에 도달할 뿐이죠. 난 투표보다는 계몽된 독재를 선호해요. 물론 계몽은 내가 해요. 여러분은 내 말을 경청하고, 그 말에 따르기만 하면 돼요. 실패해도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요. 반대로 성공한다면, 내가 옳았고 반대자들은 틀렸다는 걸 한번 더 힙증해 보이는 셈이죠" 다들 어이없어 하면서도 확신에 찬 내게 차마 반기를 들지는 못한다. (p. 135)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난무하는 이 소설 속에서 동물들의 대부분의 행동은 역사속에서 인간들이 보여왔던 행태와 굉장히 흡사하다. 그래서 더 웃프기도 하고 그래서 더 고양이화 되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소설이니만큼 가볍고 발랄하게 읽히는 장점이 큰 작품이다.

"네 집사가 <너희 고양이들>이 인간 문명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대"

"첫째, 사랑. 둘째, 유머, 셋째, 예술" (p. 151)

"네가 진정으로 인간 문명을 계승할 고양이 문명을 확립하고 싶다면 예술의 위력을 깨달아 그것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한대. 어떤 종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은 그 종이 가진 힘이나 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뛰어넘으면서 미를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이 점을 강조해 달래" (p. 153)

<제3의눈>이 피타고라스에게만 있었을 때 바스테트는 더 크고 너 넓게 고양이 문명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어찌보면 점점 문명화되어 간 후에) 바스테트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여하튼, 소설을 읽는 동안 <피티아가 점지한> 이라는 뜻의 이름이 피타고라스 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듯이 '문명' 의 개념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되는 바가 많다.

다시 스토리속으로 돌아가 보면, 쥐들과 대적하기 위해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거친 끝에 바스테트는 과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가 금고를 열더니 내 혓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USB 메모리를 꺼내 보여 준다. 짙은 파란색 바탕에 하얀 별이 그려져 있다.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이게 인간 지식 전부라고?" (p. 308)

영화 <루시>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속 우주의 지식를 모두 담은 USB 와 소설 속 인간의 지식을 모두 담은 USB 는 결국 누구에게도 지혜가 되지 못한것 같아서 씁쓸해지기도 하고...

과학자들을 통해 다른 실험동물들의 존재를 알게 된 바스테트는 자신도 <제3의 눈> 을 갖기로 결심한다. 여기까지가 1권이다.


나는 그동안 아들 안젤로에게 <진실은 관점의 문제일 뿐>이라고, 내 철학적 좌표나 다름없는 이 말을 수없이 해줬다.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고정불변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그래야 정신에 숨통이 트인다고. (p. 74)

고양이 vs 쥐 의 대결구도였던 1권에서 더 나아가 2권에서는 인간 VS 동물 로 범위가 확장된다. 동물들의 성토를 들으며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 인간들은 무력하지만 '쥐'라는 절대악은 결국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나가게 한다. 그러는 동안 바스테트는 자신을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준비하는 고양이 폐하'로 여기게 되고 유머와 예술과 그리고 사랑을 깨달아가게 된다.

변태들이 도덕을 운운하고, 겁쟁이들이 비겁함을 지적하며, 거짓말쟁이들이 진정성을 추앙하지. 우리는 그야말로 역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쥐 선생, 당신 약점을 알려줘서 고마워. 그건 바로 오만함이지. (p. 207)

휘브리스, 오만함! 바스테트가 써나가는 <묘류의 신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대의 진리. 이와는 또다른 고대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 계기는 바스테트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집트 여신 바스테트를 만나고 나서였다.

"네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았으면 하찮은 고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네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렴. 너를, 그리고 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작품을 쓰기 시작하거라. 그래야 고양이 문명이 존재할 수 있어. 모름지기 세상 모든 문명의 중심에는 책이 하나씩 있지. <오디세이> <성경> <바가바드기타> <포폴 부> <자본론> 과 <마오쩌둥 어록> 이런 책은 수많은 인간에게 영향력을 끼쳤지! 이제 네가 우리 고양이들의 가치를 이야기에 새길 차례야. 책 제목은 <내일은 고양이> 가 어떨까" (주석-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의 원제가 <내일은 고양이> 이다.) (p. 238)

이런 위트라니! ㅍㅎㅎㅎ

아무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 도 읽어봐야 겠다. 어쩌면 <문명> 이 작품은 <고양이>의 속편 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소설 <문명> 이 책으로 쓰여진 데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책을 쓰라고 했지? 아무리 내 과거 환생의 명령이라도 호락호락 시키는 대로 할 필요는 없지. <내일은 고양이>? 좋아, 다 좋지만 당장 <오늘은 쥐> 해결이 급선무야. 쥐들에게 잡혀 죽으면 글이고 책이고 여왕이고 아무 소용 없으니까. (p. 244)

이런저런 책략에도 쥐군단은 끄떡없이 세를 불려가고 바스테트의 공동체는 쪼그라들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남게 될 것인가?

누구의 문명이 남게 될지는 책<문명>으로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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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삼킨 소년 - 제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4
부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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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한 열다섯 태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다

"나는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다!"

범인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그를 잡아야 한다!

나는 청소년문학을 좋아한다. 술술 읽히는 스토리 적절한 감동 그리고 깔끔한 메세지까지, 내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학 장르로서 아주 애정하는 분야다.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청소년문학은 믿고보는 작품들이다. 애초에 내가 자음과모음 출판사를 알게 된 것도 청소년문학을 통해서였다. 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을 수상한 이 작품에 당연히 손길이 닿았다.

바보.

벙어리.

모자란 놈.

모두 나를 부르는 말들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벙어리도 아니고 모자란 놈도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를 뿐이다. (p. 7)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별생각없이 첫문장을 읽고 나서 작품을 다 읽은 후 다시 첫문장을 읽을 때면 늘 새로운 감탄을 하게 되곤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태의 라는 중2 소년이다. 경증의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고 어릴 적 트라우마로 말을 하지 못하는 함묵증까지 가지고 있다. 여섯 살 때 경험한 강렬한 사건 이후 태의는 아빠와 할머니와 나름 평범하게 살고 있다. 말을 하진 못하지만 (아니 말을 하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안하고 있을뿐이라고 여기지만) 그 누구보다 핸드폰 자판을 빨리 치기때문에 큰 불편은 못느끼고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빠의 걱정은 기우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를 괴롭힐 만큼 관심을 갖는 아이가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을 괴롭히는 것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게임이라든지 혹은 게임이라든지, 아니면 게임 같은 것들. (p. 9)

특수학급을 보내라는 제안을 받은 아빠는 일반 중학교에 보내겠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초등학교 시절보다 중학교 생활은 할 만 했다. 아무도 태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를테면 게임이라든지 혹은 게임이라든지 아니면 게임 같은 것들' 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런데 이 문장... 개인적으로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이 격한 공감이 또 어찌나 웃프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고는 "괜찮아" "아빠가 여기 있단다" "태의야, 아무것도 무서워할 것 없어" 라고 속삭여 주었다. 처음에는 그런 아빠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귓속에서 삑삑대는 경고음이 울리고 나면 바깥세상의 소리는 완벽하게 차단되는 탓이다. 몇 번이나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나니 차츰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p. 15~!6)

수업중에 벌떡 일어나 뱅글뱅글 맴을 돌기도 하고, 책상에 마구 머리를 박기도 하며, 때로는 거품을 문 채 쓰러지는 태의에게 늘 한달음에 달려온 아빠는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태의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태의의 곁을 지켜주었다. 아빠는 몰랐겠지만 태의 본인도 몰랐겠지만 태의는 조금씩조금씩 그렇게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우연히 공원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은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푸는 방법만 알면 정답을 얻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 많은 날에는 일부러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한다. 반대로 국어는 싫어한다. 국어는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다. 작가의 의도나 주인공의 심리 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게 당연하다. 어떨 때는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p. 37)

오늘은 하루 종일 수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수학 문제를 풀어도 잡념이 사라지지 않았다. 범인이 잡혔는지 궁금해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경찰은 어제 살해당한 여자를 사고사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여자를 죽인 살인범이 있다는 사실은 아예 모를 것이다. 살인범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이제 나를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p. 39)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눈치 채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태의지만 사고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친구 하나 없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외롭다거나 힘들다기 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충실히 생각하고 일상을 나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살인 사건 목격자가 되다니! 태의는 고민에 빠졌다. 아무 증거 없이 신고했다가 묵살당하는 것도 싫고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어제 어쩐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살인범이 나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잡아서 경찰에 신고하면 되잖아! (p. 43)

태의에게는 하교길에 늘 마주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늘 공원 같은 벤치에 앉아 계셨고 태의가 우유급식때 받아온 우유를 먹기 싫어한다는 걸 눈치 채고 우유를 마셔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몇달째 마주치다 보니 (고민에 빠져 있던 태의는) 우연히 할아버지의 질문에 대꾸하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조력을 얻게 된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면요?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단다. 지금은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나중에는 그게 분명 도움이 될 게다. 분명 그럴 게야. 저기 보거라, 낙엽이 떨어지는 게 보이느냐? (중략) 아무 쓸모 없는 것 같은 낙엽이지만 제대로 썩어 거름이 되면 새싹을 돋게 하는 양분이 된단다. 그러니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하나도 없지" (p. 65)

일단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교실 바닥에 정말로 머리를 박은 태의였지만 이러튼저러튼 태의는 조금씩 살인범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처음으로 반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하고 처음으로 아빠의 마음을 확인 하기도 하며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묵직한 상황대비 시종일관 발랄하게 읽힌다.

어떤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중략) 나는 오히려 시끄러운 게 싫다. 침묵은 그냥 거기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침묵을 좋아한 건 아니다. 내게도 세상의 온갖 소리를 조잘거리던 소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p. 97)

나는 '백색소음' 의 유익함을 즐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음은 소음일 뿐 소음 속에 집중이라니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나도 태의 처럼 시끄러운 것보다는 침묵을 좋아한다. 조용할 때 더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다. 물론 하루종일 일년내내 침묵을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생각해야 할때는 침묵이 낫다는 거지. 여하튼, 소리를 삼켰으나 살인사건에 결코 침묵하지 않은 소년 태의의 모험담은 청소년 문학의 진가를 다시한번 찐하게 깨닫게 한다. 빠져드는 스토리와 가슴 찡한 감동 그리고 뿌듯하게 이루어낸 성장! 쿨~한 매력의 이 소년에게 한번 풍덩 빠져 보기를!! 소란스런 세상에서 고요한 온기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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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 인생의 끝을 준비하는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아날로그 아르고스 4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제임스 롬 엮음, 김현주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인생의 끝을 준비하는 현대인을 위한 고대인의 지혜

세네카는 고대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이다. 얼마전 읽었던 세네카의 에세이집 글들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세네카의 글을 모은 책이다. 삶과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는 늘 지혜를 필요로 하는 질문들이다. 그 지혜를 오랜 세월 전해져온 고대인의 글에서 배워볼 수 있기를...

그는 삶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일 뿐이며 인간은 태어나는 날부터 매일 죽어가기에 살아가면서 죽음을 연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세네카의 사상이 담긴 여덟 권의 저작에서 가려 엮은 것으로, 이 글을 통해 세네카는 자신의 편지 수신인과 인류에게 죽음, 즉 사람의 생이 끝나는 지점을 받아들일 필요성에 대해 당시나 지금이나 유례없을 만큼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p. 10)

이 책은 세네카의 에세이 전문을 실은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내용을 옮겨와 엮은 것이다. 그 엮은 주제는 하나 '죽음' 이다.

철학자인 동시에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AD30년대 말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미쳐가며 잔인하게 굴던 시대에 젊은 원로원 의원을 지냈다. 40년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시대에는 정치적 여론 조작용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되어 코르시카 섬으로 추방당했다. 이후 로마로 환송 명령을 받고 어린 네로의 스승이 된 세네카는 50년대부터 60년대 초까지 황실에서 지냈다. 그는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 심지어 가족들까지 죽이려는 네로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결국 미수에 그쳤던 황제 암살 음모에 공모했다는 혐의로(아마도 잘못된 혐의였을 것이다) 네로의 분노를 사서 AD65년, 60대의 나이에 자살하라는 형을 선고받았다. (p. 12)

세네카가 살았던 시대는 그야말로 광적인 황제들의 시대였다. (한마디로 멀쩡한 정신의 황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고나 할까) 죽음이 난무했고 고문과 사형이 아닌 자살형은 차라리 축복이었다. 고전을 전공하고 그리스문학과 역사를 가르치는 저자는 세네카가 '그리스의 선대 철학자들과 로마의 교사들로부터 스토아철학의 체계를 물려받았지만 죽음의 방법, 특히 자살에 관한 원칙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했다. (p. 14)' 고 말한다. 하지만 세네카가 말하는 자살과 현대적 의미의 자살은 구분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네카는 '자신의 글에 쓴 것과 같은 자살을 실제로도 자주 목격했다. 칼리굴라와 네로를 포함하여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모든 황제들이 정적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자주 명령했고 명을 어기면 사형에 처하거나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위협했다. 세네카는 그런 강요된 자살을 많이 목격해다. 그래서 다른 동료 스토아 학자들보다 훨씬 자주, 더 열정적으로 고통이나 정치적 압력에서 탈출할지 말지의 여부와그 시기에 관한 주제로 다시 돌아갔다. (p. 15)' 과거의 모든 기록은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스토아철학자로서 정치계에 있었던 세네카의 현실은 그의 철학적 주제를 그가 경험하고 목격하는 현실속에서 찾게 만들었다.

세네카의 글은 죽음에도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잘 죽는 것'의 의미가 본인의 죽음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든 떠나는 시간과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든 아니면 무자비한 원수가 육체에 가하는 폭력을 용기 있게 참아내는 것이든, 그에게는 잘 죽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다. (p. 17)

세네카의 현실은 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졸이며 위기의식 속에 살았다기 보다는 스토아철학자로서 '잘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저자는 '세네카가 약25년에 걸쳐 쓴 산문 중 죽음을 가장 중요하게 다룬 여덟 편의 산문에서 발췌하여 모은 이 책의 구절들은 죽음에 관한 교훈을 속성으로 가르치려는 그의 노력이다. (p. 18)' 라고 말했다. 그가 처했던 현실을 상상해보고 그가 남긴 말들을 읽어보며 그가 선택한 죽음에 대해 그는 과연 죽음을 잘 맞이했는지 판단해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의미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같다.

친밀한 편지글 형식을 띠고 있지만 [도덕적 서간집]은 애초에 출판을 위해 쓰인 글이며 수신인인 '너'는 루킬리우스 일 때도 있지만 로마 시민이나 모든 인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p. 23)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연습하라'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전달하자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딱 한 번만 사용하는 기술을 배우는 일이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죽음을 연습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알기는 해도 경험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항상 연구해야 한다. '죽음을 연습하라' 이렇게 충고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자유를 연습하라고 명령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노예가 되는지를 잊는다. (p. 24) [도덕적 서간집]

죽음에는 연습이 있을 수 없다. 죽음에 기술이 필요하다면 그야말로 단 한번의 기회에 사용되는 단 한번의 기술일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유일하게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니 연습해야 한다고 세네카는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연습하는 것이 곧 무엇에도 노예로서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될 것이라 말한다. 죽음을 연습하는 것은 곧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세네카는 폐결핵을 포함하는 호흡기 질환과 천식으로 평생 고통받았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그 불편함 때문에 청년기에 자살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는 일평생 아래에 묘사되는 발작을 경험했을 테지만 특별히 의사들이 그 발작들에 붙여준 이름이 (세네카에 따르면) 메디타티오 모티스, 즉 '죽음을 위한 연습'인 점을 고려하면 세월이 지나면서 질병에 의미가 더해진 셈이다. (p. 30)

세네카의 정치적 상황속에서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세네카는 평생 폐질환으로 고통 받았고 그 병을 '죽음을 위한 연습' 이라고 불렀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질병을 평생 앓으면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도 언제 어느때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삶이라니 당연히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다. 이렇게보면 철학자로서 '잘 죽는 법'에 대해 고뇌하고 고뇌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나는 준비되어 있다. 앞으로 남은 모든 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것이 즐겁더라도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따라 하지 말라. 내쫓기듯 떠나는 것에 무슨 덕이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도 덕이 있으니, 나는 내쫓길 테지만 그럼에도 나의 떠남을 받아들인다. 내쫓긴다는 것은 떠나는 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추방당하는 것이기에 현자는 절대 내쫓기지 않는다. 현자는 모든 일을 본의 아니게 하지 않는다. 그는 필연에서 벗어난다. 왜냐하면 그는 필연이 강요하는 죽음을 염원하기 때문이다. (p. 33)[도덕적 서간집 54]

이 책에 자주 인용되는 [도덕적 서간집]은 세네카가 죽기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에세이라고 한다.(p. 141 참고) 네로에게 퇴출당하고 칩거하는 동안 당연히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어차피 죽을 거 편안하게 최선을 다해 잘 맞이하고 싶지 않았을까.

죽음은 관습적으로 경멸당하는 것 이상으로 경멸당해야 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많은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수많은 재주꾼은 죽음에 관한 나쁜 평판을 퍼뜨리려고 노력하며 지하감옥, 영원한 밤으로 뒤덮인 왕국 등으로 죽음을 묘사한다. (p. 55)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우화에 불과하며 사후세계에는 죽은 자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해도 또 다른 공포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지하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중략) 죽음이 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은 덕을 얻지 못하겠지만 죽음을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여긴다면 가능할 것이다. (p. 56) [도덕적 서간집 82]

세네카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사후세계에 대한 묘사들은 다 우화이고 거짓이라고 한다.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죽는 것은 사후세계를 위한 준비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죽음은 악한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니다. 세네카는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기 위해 무수히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젊었을 때는 잘 사는 것에 관심을 두었고 늙어서는 잘 죽는 것에 신경쓰고 있다. 잘 죽는 것이란 기꺼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상황이 무엇을 요구하든 그것을 기대하며, 무엇보다 슬픔을 배제하고 죽음을 응시하기로 마음을 가다듬자. 우리는 삶을 준비하기 이전에 죽음에 대비해야 한다. 삶이 이미 잘 갖추어져 있는데도 우리는 더 채워 넣으려고 욕심낸다. 항상 무언가 부족해 보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 보일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살았음을 결정하는 것은 햇수도 아니고 날수도 아니고 정신이다. 소중한 루킬리우스,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았다. 나는 마음 가득 죽음을 기다린다. (p. 67) [도덕적 서간집 61]

세네카는 내내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머릿속에선 자신의 삶이 스쳐지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사는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래 살게 돕는 것은 운명이지만 충분히 살게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삶은 충만하다면 길 것이며, 정신이 자신의 선을 스스로 되찾고 통제할 때 삶은 충만해진다. 느리게 지나가는 80년 세월이 어찌 특권이겠는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티는 것이다. 늦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오래 죽어가는 것이다. (p. 78) 얼마나 살아야 완전하겠느냐고 네가 물었다. 지혜를 얻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그 목표에 도달한 사람은 가장 먼 지점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지점에서 인생을 끝맺는다. (p. 80) [도덕적 서간집 93]

세네카는 수명에 연연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짧게 살다간 이의 죽음을 슬퍼할 것도 없고 장수하는 이의 삶을 부러워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세네카는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며 자신의 삶에 대해 이러한 만족감으로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결국은 죽음이 두려웠기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용기를 가지려 했던 것이 아닐까. 고찰하고 또 고찰하며 용기와 지혜를 갖춘 현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소크라테스는 독을 마시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금욕함으로써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30일 동안 죽음을 기다렸다. 모든 가능성을 열려 있다는 - 그렇게 긴 기간이라면 온갖 종류의 희망의 방이 마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믿음에서가 아니라 법에 복종하며 친구들이 자신의 최후의 날에 기쁨을 얻게 하기 위해 서였다. 죽음을 경멸하면서도 독배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일은 없으리라. (p. 114) [도덕적 서간집 70]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경멸하지도 않았고 독배를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앞서서 '죽음은 관습적으로 경멸당하는 것 이상으로 경멸당해야 한다. (p.55)' 라는 문장을 보면 세네카는 죽음을 경멸했던 것도 같다. 경멸하는 것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 죽음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려 했던 것일까. 죽음을 기다린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더 살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던 것인지도...

도둑과 적군 모두 네 목에 칼을 꽂을 수 있음을 기억하라. 권력자는 물론이거니와 노예에게도 네 삶과 죽음의 권한이 있을 수 있다. 공공연한 공격이든 비밀 모의를 통해서는 집안에서 배신당해 몰락한 자들의 일화를 생각해보라. 왕보다 노예의 증오에 의해 무너졌던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 144) [도덕적 서간집 4]

왕뿐만 아니라 노예에 의해서도 죽임을 당하던 시대였다. 세네카는 네로황제에 의해서도 죽음을 당할수 있고 집안에서 부리던 노예에 의해서도 죽음을 당할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세네카는 노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가졌던 철학자였다. '노예상태는 정신의 상태가 아닌 육체의 상태이며, 노예는 영혼의 자유를 통해 육체의 예속을 초월할 수 있다' 고 말했던 세네카가 두려워 했던 존재는 결국 자신을 내친 네로황제 뿐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잔인한 처형이 아니라 자살형이 내려졌을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견줄만한 모습으로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네카는 플라톤이 [파이돈]에서 각색한 장면 중 죽음을 차분하게 마주했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매우 동경했다. (중략) 타키투스의 역사서 [연대기]에 실린 아래의 본문에 세네카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내려온다. 세네카의 자살은 복잡다단했고, 타키투스의 기록은 플라톤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이야기만큼 긍정적이지는 않다. 세네카가 성인이 되고 나서 내내 생각하고 준비했던 그 죽음을 실제로 이루어냈는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p. 154~155))

타키투스의 [연대기]에서 세네카의 죽음 장면만 찾아 읽어봤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한것처럼 세네카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같은 감동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세네카가 알려주는 고대의 지혜는 결국 인간은 누구나 다 거기서거기라는 것 아닐까? 평생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현인이 되고자 했던 세네카와 죽음을 생각지 않고 삶에 치중하는 현대인은 다를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니 우리가 세네카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메멘토 모리' 가 아닐런지.

우리는 어느 순간 부득이하게 삶을 떠나야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어야 하기에, 조금 더 거창한 이유로 죽는 것은 일종의 기쁨이다. 우리는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죽는다. (p. 152) [자연 연구 6]

그저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세네카는 '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티는 것이다. 늦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오래 죽어가는 것이다.' 라고 했다. 산다는 것이 오래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얼만큼 살든 충만하게 사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세네카의 문장에서 지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죽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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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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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너머 다른 시공간에서 반짝이고 있을,

지난 시절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보내는 시그널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가 흥미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도록 한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4권이다. 따라서 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고 앞선 시리즈가 그러했듯이 책은 작고 얇아서 단숨에 읽히는 단편소설집이다. 그리고 임국영 이라는 새로운 젊은 작가를 알게 해준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알 수 없었던 아이들로서는 어수선한 시대상은 관심사 밖이었다. IMF보다는 세일러 문으로 기억되는 바야흐로 대만화영화의 시대였다. 공중파3사에서 황금 시간대 직전인 대략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경쟁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p. 11) 아이들은 열광하며 미디어의 시혜를 기꺼이 만끽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어제저녁에 본 만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오프닝 송을 합창했다. (p. 12) 만경과 수진은 함께 TV를 시청했다. 불만은 없었다. 컴퓨터는 만경과 수진에게 허락된 몫이 아니었다. 만경과 수진도 동갑이었고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p. 13)

투니버스 채널이 생겼을 무렵 나는 이미 티비만화채널을 졸업한 나이였던지라 작가가 말하는 만화들과 내가 아는 만화들은 너무나 달랐다. 이렇게 소설에서 격세지감을 강하게 느낀 것도 처음이지 싶다. 여하튼, 만경에게는 형이 있었고 수진에게는 오빠가 있었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지라 그 동생들도 한 집에서 놀게 될 때가 많았다. 아니 놀았다라기 보다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다. 티비 만화채널을 보면서.

만경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친구 하나 없는 왜소한 소년이었고 수진은 훤칠한 체구에 활발했고 거친 소녀였다. '만경에게 수진은 '주인공'이었다. 만화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다른 인물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프레임과 작화로 생동하는 캐릭터처럼 보였다. (p. 16)' 그러다 만경이 만화책을 빌려주게 되고 대화의 물꼬가 트이며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둘 사이엔 지수라는 친구도 늘 함께였다. 세 사람은 언제나 붙어다녔고 만화동아리도 함께 했으며 수시로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날 만경은 봐서는 안될 장면을 보고 말았다.

네가? 어떻게 내게? (p. 37)

"용서 안 할 거야. 절대 못해" (p. 39)

자신이 수진을 좋아했던가, 아니다. 수진은? 그럴리 없다. 왜 사람들은 나와 수진이 붙어다니면 사귀는 거냐고 물었을까. 수진이란 아니는 도대체 누구였고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만경은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들에 관해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만하면 됐어. 사랑과 정의는 이제 지긋지긋해. (p. 43)

수진은 여전히 만화를 즐겨 봤다. (p. 44) 눈동자가 크고 만지면 깨질 것처럼 여리던,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아이였다. 수진의 과거와 추억은 대체로 만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략) 수진은 어린 시절 늘 붙어 다니던 그 이상한 친구가 앞으로도 떠오를 것 같다고 예감했다. (p. 46)

만경에게 수진은 만화속 '주인공' 같은 아이였고, 수진에게 만경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아이' 였다. 둘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 함께 본 만화가 그들을 키운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당장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 같았던 그 이상한 시대에 왜들 그렇게 만화를 많이 보여줬을까.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p. 45)'

<코인 노래방에서>

코인노래방을 나서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학창 시절에 즐겨 듣던 음악에 관해 기억을 되짚었다. 연인의 음악 취향은 대중적인 편이었다. 그 시절 그 나이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불렀을 법한 뮤지션과 노래를 주로 입에 올렸다. (중략) 노래를 얘기하다 진즉 흥미를 잃은 내 얼굴을 포착했다. "그러니까 록발라드가 좋단 거지? 야다나 플라워 아니면 더 크로스?" 연인의 장난기가 다시 발동할 기세였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꺼냈다. "나는 문화사대주의자였어" "무슨 소리야?" "팝을 좋아했거든" "아, 허세남" (p. 53)

평범한 하루였다. 연인과 말장난을 치고 투닥거리며 서로의 취향을 우스워하고 코인노래방에서 실컷 춤추며 노래불렀던 그냥 여느날과 비슷했던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발설 자체가 목적인 말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사람이 아니면 평생 털어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내보인 적 없던 비밀 하나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근데 내가 걜 좋아했어" (p. 55)

동성애가 문학에서도 금지된 소재였던 시절이 있었다. 봇물터지듯 터진 동성애 작품들이 유행처럼 넘쳐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어느새 지금은 굳이 동성애 소설이라고 구분짓지 않고 구분할수도 없는 사랑이야기가 소설 들에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 그시절 동성 친구를 사랑한 이야기는 어떤 코드로 읽어야 할까...

' 그날 이후로 그 믿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이 이상 나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번외의 카테고리에 속한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내 꿈은 '정상인'이 되는 것이었다. 남들과 비슷한 자세로 걷고 적당한 템포로 말하고 똑바르게 발음하고 무리 없이 타인과 눈을 맞춘 채 소통하는 그런 인간 말이다. 나는 이미 심리적인 소수자였고 약자였다. 그 이상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p. 67)'

<추억은 보글보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락실은 간판도 없었고 허름했지만 단층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만큼 공간이 넓었다. 까만색 필름이 붙은 유리문 앞에 서면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복잡한 소음이 들렸다. 그 문을 당겨 열고 문턱을 넘는 순간 내가 살던 공간과 전혀 다른 세계에 진입한 듯한 감각이 훅 끼쳤다. 비좁고 어두운 그 공간에는 퀴퀴한 먼지 냄새와 담배 향이 감돌았다. 빈틈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빼곡한 전자기기와 사람이 내는 열기가 몸을 둘러싸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p. 86)

작가와 내가 세대차이가 많이 나는 줄 알았는데 오락실 분위기를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락실은 정말 딱 저랬다. 까만색 필름이 붙은 유리문 텁텁하고 퀴퀴한 공기 빼곡한 전자기기의 소음... 그런 분위기 때문에 오락실은 내게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었고 그래서 혼자 가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도진과 원경은 오락실에서 만난 절친 이었다. 그 둘은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유년 시절 친구였다. (p. 83)' 특히 도진에게 그냥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은 원경 뿐이었다.

게임기는 어째서 두 플레이어가 나란히 앉아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맞수와 어깨를 붙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은 두 사람의 복서가 링 위에 올라서 서로를 마주하는 이유와 같았다. 나는 지는 걸 참지 못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누가 날 게임으로 무시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랬기 때문에 도진의 존재가 믿기지 않았다. (p. 123)

도진은 원경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나이를 먹고 환경과 여건이 바뀌면 가깝게 교류하는 인물과 집단이 대체되기 마련이라고 여긴 원경과 달리 도진에겐 오직 원경 뿐이었다. 원경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나기만 하면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도진에게 원경은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어떤 기억은 내가 받은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준 모욕으로 이루어져 평생 따라다닌다. 삶의 변곡점에서, 누군가에게 비난받고 처지가 비루해지는 모든 순간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인생이 그때부터 망가진 것은 아닐까 하는 비약이 자꾸 돋아났다. 그래서 원경이 앞에 있으면 옛날 얘길 꺼냈다. (p. 119)'

트리플 시리즈는 책의 말미에 작가의 후기 처럼 읽히는 작가의 에세이 한 편을 실어놓았다.

이 소설집은 나의 첫 책이다. 이곳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오롯이 단 하나의 책을 위해 쓰인, 말하자면 당신에게 보내는 열렬한 신호다. 감사함을 담아 별을 향해 노래를 쏘아 보내는 심정으로 내가 정한 사람에게, 바라는 때와 방식으로 내보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적어보았다. 그뿐이다. 정말이지 그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주 너머 다른 시공간에서 반짝이고 있을 당신에게 미약한 나의 시그널이 닿았다면 반갑게 맞아주길 부탁드린다. (p. 137~138)

티비가 세상에 등장하고 만화라는 것이 방영되기 시작한 이후로 유년시절에 강한 애착을 품었던 애니메이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의 만화속 세상을 꿈꾸었고 만화속에서 자라났으나 어른이 되고 나면 그 세상은 우주 저 멀고 먼 별보다 더 아득히 멀어져 있곤 한다. 그 시절의 시그널을 다시 보내준 작가에게 박수를, 그리고 그 신호를 감지한 사람들은 이 '투니버스'에 탑승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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