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삼킨 소년 - 제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4
부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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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소통을 포기한 열다섯 태의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다

"나는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다!"

범인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그를 잡아야 한다!

나는 청소년문학을 좋아한다. 술술 읽히는 스토리 적절한 감동 그리고 깔끔한 메세지까지, 내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학 장르로서 아주 애정하는 분야다.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청소년문학은 믿고보는 작품들이다. 애초에 내가 자음과모음 출판사를 알게 된 것도 청소년문학을 통해서였다. 10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을 수상한 이 작품에 당연히 손길이 닿았다.

바보.

벙어리.

모자란 놈.

모두 나를 부르는 말들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벙어리도 아니고 모자란 놈도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를 뿐이다. (p. 7)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별생각없이 첫문장을 읽고 나서 작품을 다 읽은 후 다시 첫문장을 읽을 때면 늘 새로운 감탄을 하게 되곤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태의 라는 중2 소년이다. 경증의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고 어릴 적 트라우마로 말을 하지 못하는 함묵증까지 가지고 있다. 여섯 살 때 경험한 강렬한 사건 이후 태의는 아빠와 할머니와 나름 평범하게 살고 있다. 말을 하진 못하지만 (아니 말을 하려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안하고 있을뿐이라고 여기지만) 그 누구보다 핸드폰 자판을 빨리 치기때문에 큰 불편은 못느끼고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빠의 걱정은 기우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를 괴롭힐 만큼 관심을 갖는 아이가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남을 괴롭히는 것 말고도 재미있는 일이 잔뜩 있었다. 이를테면 게임이라든지 혹은 게임이라든지, 아니면 게임 같은 것들. (p. 9)

특수학급을 보내라는 제안을 받은 아빠는 일반 중학교에 보내겠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초등학교 시절보다 중학교 생활은 할 만 했다. 아무도 태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를테면 게임이라든지 혹은 게임이라든지 아니면 게임 같은 것들' 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런데 이 문장... 개인적으로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이 격한 공감이 또 어찌나 웃프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고는 "괜찮아" "아빠가 여기 있단다" "태의야, 아무것도 무서워할 것 없어" 라고 속삭여 주었다. 처음에는 그런 아빠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귓속에서 삑삑대는 경고음이 울리고 나면 바깥세상의 소리는 완벽하게 차단되는 탓이다. 몇 번이나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나니 차츰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빠는 모르겠지만. (p. 15~!6)

수업중에 벌떡 일어나 뱅글뱅글 맴을 돌기도 하고, 책상에 마구 머리를 박기도 하며, 때로는 거품을 문 채 쓰러지는 태의에게 늘 한달음에 달려온 아빠는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태의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태의의 곁을 지켜주었다. 아빠는 몰랐겠지만 태의 본인도 몰랐겠지만 태의는 조금씩조금씩 그렇게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우연히 공원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은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푸는 방법만 알면 정답을 얻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 많은 날에는 일부러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한다. 반대로 국어는 싫어한다. 국어는 내가 모르는 것투성이다. 작가의 의도나 주인공의 심리 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내가 그들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게 당연하다. 어떨 때는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p. 37)

오늘은 하루 종일 수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수학 문제를 풀어도 잡념이 사라지지 않았다. 범인이 잡혔는지 궁금해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경찰은 어제 살해당한 여자를 사고사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여자를 죽인 살인범이 있다는 사실은 아예 모를 것이다. 살인범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이제 나를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p. 39)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눈치 채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태의지만 사고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친구 하나 없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외롭다거나 힘들다기 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충실히 생각하고 일상을 나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살인 사건 목격자가 되다니! 태의는 고민에 빠졌다. 아무 증거 없이 신고했다가 묵살당하는 것도 싫고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어제 어쩐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살인범이 나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잡아서 경찰에 신고하면 되잖아! (p. 43)

태의에게는 하교길에 늘 마주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늘 공원 같은 벤치에 앉아 계셨고 태의가 우유급식때 받아온 우유를 먹기 싫어한다는 걸 눈치 채고 우유를 마셔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몇달째 마주치다 보니 (고민에 빠져 있던 태의는) 우연히 할아버지의 질문에 대꾸하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조력을 얻게 된다.

뭘 해야 하는지 모르면요?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단다. 지금은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나중에는 그게 분명 도움이 될 게다. 분명 그럴 게야. 저기 보거라, 낙엽이 떨어지는 게 보이느냐? (중략) 아무 쓸모 없는 것 같은 낙엽이지만 제대로 썩어 거름이 되면 새싹을 돋게 하는 양분이 된단다. 그러니 이 세상에 쓸모없는 일은 하나도 없지" (p. 65)

일단 맨땅에 헤딩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교실 바닥에 정말로 머리를 박은 태의였지만 이러튼저러튼 태의는 조금씩 살인범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처음으로 반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하고 처음으로 아빠의 마음을 확인 하기도 하며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묵직한 상황대비 시종일관 발랄하게 읽힌다.

어떤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중략) 나는 오히려 시끄러운 게 싫다. 침묵은 그냥 거기에 가만히 있을 뿐이다.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침묵을 좋아한 건 아니다. 내게도 세상의 온갖 소리를 조잘거리던 소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p. 97)

나는 '백색소음' 의 유익함을 즐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소음은 소음일 뿐 소음 속에 집중이라니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나도 태의 처럼 시끄러운 것보다는 침묵을 좋아한다. 조용할 때 더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다. 물론 하루종일 일년내내 침묵을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생각해야 할때는 침묵이 낫다는 거지. 여하튼, 소리를 삼켰으나 살인사건에 결코 침묵하지 않은 소년 태의의 모험담은 청소년 문학의 진가를 다시한번 찐하게 깨닫게 한다. 빠져드는 스토리와 가슴 찡한 감동 그리고 뿌듯하게 이루어낸 성장! 쿨~한 매력의 이 소년에게 한번 풍덩 빠져 보기를!! 소란스런 세상에서 고요한 온기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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