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장이란 단어보다 생존이란 단어에 익숙해진

지금 십대들의 '일주일'의 표정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가 8권이 나오기까지 어쩌다보니 이 책으로 4권을 읽은 그러니까 이 시리즈의 반을 읽은 셈인데 이 4권 중에서 <일주일>이 가장 좋았다.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이 시리즈의 취지에 (내 생각에는) 가장 부합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제야 언니에게> 라는 작품으로 최진영 작가를 알게 되었다. 아픈 현실을 아프고 쓰지만 차갑지 않게 쓰는 작가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러한 매력이 빛을 발했다.

일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라는 제목의 3편의 단편은 각각의 단편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주제로 하나로 묶이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모두 고등학생 이라거나, 특성화고/ 특목고/ 일반고 의 이야기 한편씩 이라고 구분한다거나, 해당 사건을 겪는 주인공들에게 의미있는 요일이라거나 등등...

<일요일>

나는 겁에 질려 있다. 왜냐하면. 이유 따위 붙일 필요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이유에 집착하고 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p. 9)

일요일은 주말이고 쉬는 날이고 휴일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럴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어릴때부터 친구인 세 명은 일요일이면 성당에서 만났다. 종교는 큰 의미 없었다. 그들이 약속하지 않아도 일요일이면 늘상 만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일요일은 그들이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휴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각자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우는 외국의 대학교에서 공부한 다음에 외국 대학교의 교수가 될 거라고 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그 모든 걸 다 해낼 거라고 했다.

그러면 이긴 것 같을 거야.

도우는 이기고 싶어했다. 도우의 라이벌은 동급생이 아니라 이미 성공한 부모님이었다. 성공한 자리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기를 내려다보는 부모님과 자존심을 걸고 싸우던 도우. 도우에게 공부는 노동이었다. (p. 19)

어서 돈을 벌고 싶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고 싶었다. 내 돈으로 내가 살고 싶었다. 돈을 모아서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 서른 살 되기 전에 그 모든 걸 다 해내고 싶었다. 나 역시 노력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p. 21)

그러나 일요일에는 서로의 평화를 빌 수 있었다. 장난스럽게 목례하면서도 나는 도우와 민주의 평화를 진심으로 빌었다. 도우와 민주도 그랬을 것이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p. 22)

어릴 땐 이런저런 장난을 치며 놀면 그만이었는데 그들은 어느새 고3이 되었다. 외고에 간 도우와 일반고에 간 민주 그리고 특성화고에 간 '나'는 삶의 방식이 이미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그때 미성년자 실습생승의 사고사 뉴스가 나왔다.

세상은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누구는 웅덩이에 있고 누구는 언덕에 있다. 각자 다른 세상에서 어쨌든 노력하며 아무튼 불공평하게 살고 있다. 그러니 제발 세상이 좋아졌다느니 젊은 애들이 문제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 26)

<수요일>

지형의 보호자가 조심스럽게 펼쳐서 보여준 종이에는 지형의 비밀문자가 적혀 있었다. 보호자가 물었다. 너는 이게 대체 뭔지 알고 있니.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p. 53)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인 특목고에서도 등급은 나뉘기 마련이다. 1등이 있으면 꼴등이 있고 적응하는 이가 있으면 부적응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공부도 잘했고 적응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지형이가 사라졌다.

지형의 보호자가 종이를 접으며 말했다. 애 아빠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어. 이걸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건 장난이 아니야. 우리 지형이는 부모를 상대로 이런 장난을 치는 애가 아니야. '서영광'이라는 사람에 대해 지형은 가끔 이야기 했다. (p. 54)

지형은 장난을 좋아했다. (p. 55) 어쨌든 장난의 끝에서는 웃기 위해 지형은 (치밀하게) 장난을 치는 편이었다. 숨거나 숨기거나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아픈 척하는 건 가벼운 장난. 진실인지 거짓인지 오직 지형만이 알고 있기에 섣불리 화를 내거나 안심할 수 없어서 오직 지형의 말을 믿고 지형이 웃으면 따라 웃을 수밖에 없는 건 (몽유병과 악몽, 상처와 흉터,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기사가 증거로 제시되는 사건들에 대한 증언 등) 지독한 장난. (p. 56)

'멀지 않은 도시의 공장에서 미성년자 실습생이 사고로 죽었다는 짧은 기사를 보여주면서, 지형은 그 아이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죽은 아이가 자기 친구라고 했다. 학교 근처의 아파트에서 또래 아이가 학대를 당하다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지형은 말했다. 그건 뜬소문이 아니라고, 자살한 아이는 자기의 옛 친구이며 또 다른 친구를 통해 소문이 진짜라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했다. (p. 56)' 지형은 자신만의 문자를 만들어 기록할 정도로 독특한 아이였지만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첫사랑 경험도 있는 어떻게 보면 꿈많고 노력파인 고등학생이었다. 자신을 억압하는 아버지를 그저 서영광 이라고 저장하고 자신과 소통이 되지 않는 어머니를 그저 보호자 라고 저장해 놓았지만 친구들에게만큼은 자신을 보여주는 진심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지형이가 사라졌고 보호자가 '나'를 찾아왔다. 부모가 절대 암호를 풀수 없었던 핸드폰을 초기화해서 버젓이 책상위에 놓고 사라졌다. 그 핸드폰엔 '나'에게 보낸 문자 하나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형의 문자를 알지 못한다. 지형의 '장난'일까 아닐까.

하루에 청소년 스물 세명이 자살한대요. 우리나라에서. 아줌마는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얘,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 넘어. 어림잡아서 하루에 천 명 가까이 죽고 태어난다고 치자. 그중 스물 세명이면 1프로도 안 되는 거야. (p. 78)

지형을 구렁텅이에서 어서 꺼내주려고 나는 말했다. 네 탓 아니야. 우리중에 성적 스트레스 없은 애가 어디 있어. 근데 걔는 그걸 네 탓으로 돌리고 싶었떤 거야. 그래서 너한테 들러붙은 거야. 솔직히 네가 틀린 말 한 거 아니잖아. 그런 애들 걸리적거리잖아. 영주처럼 나약한 애는 언제 죽어도 죽었을 거야.

아줌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영주는 죽고 지형이는 사라졌어요.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아줌마는 어떻게 확신해요? 지형이는 절대 스물 세명에 포함될리 없다고? 지형이가 그렇게 특별해요? 왜 지형이만 특별해요? (p. 84)

'나'는 지형이의 베스트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형에겐 늘 '나'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다. 지형이만의 문자를 보여준 것도 '나'에게는 두번째 였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제 정말 중요한건 이런게 아니다. 지형이가 사라졌고 지형이만의 문자를 '나'는 해독하지 못하지만 지형이는 아마 돌아올 것이었다. 다만 '나'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1프로에 속하고 싶었다. 1프로도 안 되는 존재에 속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이 거짓일까 봐 두려웠다. (p.86)'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1프로의 존재와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저 위 아득한 곳의 1프로, 세상이 그렇게 양 끝 1프로씩 2프로만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그 끝 2프로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너무나 다르게 너무나 다르게. 우리는 그 사이 98퍼센트의 세상에 대해 좀더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2프로가 98프로의 세상을 잠식하지 못하게 98프로의 세상이 2프로의 세상을 감싸 안을 수 있게 이야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금요일>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가방을 싸 들고 교실을 나오기 직전에, 아니, 가방을 싸기 직전에 나를 떠민 생각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 였다. 이젠 진짜 이곳을 견딜 수가 없다는 생각. 당장 벗어나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p.89)

특성화고, 특목고 의 이야기가 너무 딴세상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고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닥 나을 것은 없었다. 일반고에 다니는 아이들 중 과연 얼마나 학교에 정말 가고싶어서 갈까? '나'는 학교를 더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다. 고2가 될때까지 다닌 10년 도 너무 길었다.

여름방학 끝날 무렵 엄마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엄마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학교가 너무 싫어, 라고 대답했다. 그건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많이 했던 말이다. 방학이 끝날 때마다, 운동회나 소풍 같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월요일마다 금요일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아침이 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자 잠이 확 깼다. 아침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울어버렸다. (p. 104)

자퇴하겠다고 하면 혹은 자퇴했다고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 아이인가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속에서도 '나'는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고 계획도 차근차근 세워놨다고. 학교를 다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나'는 어떤 분야에 특출나거나 어떤 분야에서 모자라는 학생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론 어떻게보면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하지만 평범해보이는 많은 학생들이 모두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후회할 수도 있는 거고 후회는 잘못이 아니야. 후회될 때는 나한테 말해야 된다. 같이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알았지? (p. 127)

다행인 것은 책속에 나오는 어른이 모두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세번째 작품인 <금요일> 에서 '나'의 엄마는 딸의 자퇴를 계속 만류해왔으나 딸과 솔직하게 대화하고 함께 계획서를 검토한 후 결국은 허락해준다. 그리고 당부한다. 앞으로의 여정도 '함께' 하자고.

<일주일>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일주일의 각 요일별로 에피소드를 엮었다면 또다른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작가-작품-독자' 라는 트리플의 삼박자로도 충분한 책이었다. 얇고 작은 책이었지만 굵고 큰 메시지를 남기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어두운 현실을 어둡다고만 하지 않고 힘든 상황을 힘들다고만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후회의 선택'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어서 안심이 됐다. 이 아이들이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인물들의 행복을 생각하고 싶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바람은 터무니없거나 비윤리적이지 않다. 일찌감치 자립하는 것,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기 인생을 자기 속도로 사는 것, 청소년이어서 불완전한 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다 불완전하다. 그래서 행복할 수도 있다. 죽음이 비극인 이유도 잊지 않고 싶다. 나는 지난날의 나에게 배우는 점이 아주 많다.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주는 것이 없다. 주는 것 없이 그저 거기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거기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때도 많은데... 이런 생각 또한 자만이고 오만이겠지. (p. 135)

소설이 끝나고 난 뒤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한편은 작가의 것이고 한편은 작가의 제안을 받아 화답한 박정연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의 후기나 작품해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는 것은 또다른 새로움 이었다.

청소년 소설은 아니지만 청소년 소설처럼 읽히는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라떼 꼰대가 가진 입장에 대해서 였다.

많은 어른들이 후대에게 말할때 '나때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너희는 안힘들다' 라는 명제로 시작하다 보니 소통이 안되는 것인데, 사실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안 힘들게 사는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나때는 이래서 힘들었는데 너희는 무엇이 힘드니?' 라고 묻거나 아니면 차라리 '나때는 이런게 힘들었다' 하고 자신의 경험만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떨까.

예를 들면, 나때는 국민학교때 교실에서 난로 때느라 매일 아침 당번이 석탄을 가져와야 했다 너희는 온풍기가 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라고 말하기 보단 너네 석탄 날로 본적 없지? 그 난로 옆에 앉은 애는 너무 따듯해서 졸고 문가에 앉은 애는 너무 추워서 졸고 그랬단다 하면 우리도 온풍기 바로 아래 앉은 애는 코막히고 머리에 뎁혀지는데 문가에 앉은 애는 발이 시렵대요 정도로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락없이 왠 꼰대 이야기기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나면 늘 우리는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나 싶어 안타깝곤 했다. 게다가 최근 읽은 소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작가가 나이들면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좋게 말하면 젊었을 때의 예리함이 나이들면서 너그러워진다 이겠으나 특유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 이 책에서만큼은 그 넓어진 마음이 그 너그러움이 따듯하게 남아서 좋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화르륵 한때의 불꽃보다 미지근하지만 여유로운 온기를 지닐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불꽃들이 한순간에 확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뒷말이 너무 길었는데... 여하튼, 좋은 책이었다 뭐 그런 말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면 똑똑해지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 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EBS 알똑비 시리즈 1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 EBS BOOKS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으로 몰아보는 ''역사' 속 비하인드 스토리

역사적 사건 뒤에 감춰진 이야기가 짧은 시간 안에 진실을 드러낸다.

인물의 역사, 직업과 경제의 역사, 전쟁과 정치의 역사, 의식주의 역사, 이슈의 역사... 50가지 진실과 거짓을 단숨에 파헤쳐보자.

'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ㅎㅎ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하는 농담보다 뒤에서 하는 뒷담화를 더 흥미로워 한다. 역사도 다르지 않다. 널리 알려진 사건들보다 숨어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훨씬 재밌게 읽혀질 때가 많다. 하긴 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라는 게 결국 다 사람사는 이야기인 것이니 ㅎㅎㅎ

<알면 똑똑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EBS 오디오 콘텐츠팀이 새롭게 선보이는 스낵형 지식 콘텐츠로, 평범한 상식 뒤에 숨이 있는 놀라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인류사에서 탄생의 비밀과 최초의 발견 그리고 그 비화만큼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빠져들게 하는 것은 없다. 역사, 과학, 경제(근가),생활문화(근간) 각 권에서 펼쳐지는 뒷이야기는 어떤 드라마보다 흥미롭고 한 편의 진실 게임처럼 지적 쾌감을 안겨준다. ( 표지 앞날개 中 )

TV 를 안 본지 꽤 오래되서 그중에서도 EBS 채널은 안본지 정말 오래되서 아직 있는지 모르겠는데 '지식채널e'시리즈를 참 좋아했더랬다. 짧은 영상 속에서 어찌나 다양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지 뭔가 하다가도 지식채널e가 나오면 다 멈추고 집중해서 보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 EBS 에서 나온 대중서들을 몇 권 읽어 봤는데 쉬우면서도 유익해서 딱 EBS 답다 싶었다. 무엇보다 믿음이 가서 이제는 방송이 아니라 즐겨보는 출판사가 되었다. 이 책도 EBS북이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다.

책은 5분야로 나눠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마다 10개의 에피소드씩 합해서 총 50가지 이야기가 등장한다. 순서도 상관없고 배경지식도 상관없다. 그저 아는 내용이면 아는척 하고 모르는 내용이면 '아 그래?!' 하며 아는 척 하면 된다. ㅎㅎㅎ

아무래도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의 역사' 가 제일 흥미로운 분야일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것이 원래 사람에 대한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법, 다른 책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들을 모은 것이다 보니 모르는 등장인물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아서 읽어보니 시대를 넘나들며 재밌게 읽게 된다.

드라큘라 백작부인은 조작되었나? 클레오파트라는 백인인가? 아이작 뉴턴이 위조화폐 잡는 탐정이었나? yes yes yes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스러웠나? 여자 교황이 존재했나?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가 몰래 그리고 처음 가져온 목화씨인가? no no no

yes or no 로 구분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었다. 벨은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전화기에 대한 특허를 제일 먼저 받은 사람 이라거나 에디슨은 천재 발명가라기보다는 뛰어난 사업 감각으로 성공한 CEO에 가깝다거나 표류하다가 3개국어를 마스터한 조선시대 홍어 장수 문순득(1777~1847) 이야기 같은 것들.

그중 나폴레옹의 키에 대해서는 본문에 대해 좀 의구심이 드는 내용이 있다. '나폴레옹 사후에 부검을 했는데, 그 부검 기록서에 기재된 나폴레옹의 키는 프랑스식 야드파운드법으로 5피에 2푸스였다. 이것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5피트 2인치가 된 것이다.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것은 나라 간의 단위 차이로 생겨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중략) 프랑스의 5피에 2푸스를 미터로 계산하면 나폴레옹의 키는 약 169센티미터이지만, 영국의 5피트 2인치를 미터로 계산하면 약 158센티미터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키가 150센티미터대라는 소문이 난 것이다. 실제 그의 키는 169센티미터였고, 당시 프랑스 남자의 평균 신장이 164센티미터 정도였으니 오히려 큰 키에 속했다. (p. 52)' 하지만 이 내용에 문제가 좀 있는 것이 당시 나폴레옹 사망한 곳은 영국령이었고 따라서 영국의사가 부검의 였다. 그러니 영국 단위로 기록한 것이 맞는 길이였을 것이다. 게다가 본문 자체만으로도 상충되는 것이 '누군가 나폴레옹에게 키가 작다고 조롱하자, 그는 '비록 땅에서는 재는 키는 작지만, 하늘에서 재는 키는 당신보다 훨씬 크다' 고 답했다고 한다. (p. 53)' 라는 내용은 당시 프랑스 남자의 평균신장보다 나폴레옹이 컸다는 문장과 상충된다. 평균보다 키가 큰 사람에게 누가 키작다고 조롱하느냔 말이다. 여하튼, 이 책은 깊이 보다는 넒게 상식을 전해주는 책이므로 이런 소소한?! 딴지걸기는 안 하는 걸로 ^^;;;

인물 이야기 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좀더 역사적 비하인드 스토리로 읽혀지는데 다양한 역사 상식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원전 500년에 발견되었다는 피타고라스 정리가 500년이나 먼저 중국에서 구고현의 정리로 사용되어져 왔다던가, 고려시대 내시는 귀족 자제들로 왕의 수행비서 역할을 했었는데 조선시대로 오면서 변한 것 이라던가, 고려시대에 백정은 그저 일반 백성을 가리켰는데 조선시대 눈파란 백정이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이지, 루이14세의 치질과 영국 국가의 관계, 칭기즈칸이 서쪽으로 영토를 넓히게 된 계기가 된 호라즘 제국, 미국의 라이트 형제보다 300년 이나 앞서 조선시대에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던 정평구, 화약의 원료인 초석을 물에 넣으면 얼음이 만들어진다는 것, 조선시대 귀한 배달음식 '효종갱, 이성계를 미워한 개성사람들이 만들어 먹었떤 '성계탕', 조선시대에 남자들이 간소하게 만들고 차렸던 제사상이 지금처럼 화려하고 여자들의 몫이 된 이유, 단군신화속 웅녀가 먹은 것이 마늘이 아니라는 것(마늘이 한반도에 유래된 것은 통일신라 이후임), 전세제도는 조선시대부터 있어왔다는 것, 홍길동전의 작가가 허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서울 이라는 도시명이 한양 이라는 도시명보다 더 널리 통용되게 된 배경, 일본 교토의 한 신사에 장보고를 재물신으로 모시고 있는 이유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책장 마다 술술 읽혔다.

이 책 처럼 짧고 간단하게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로 역사를 읽으면 역사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재미난 이야기들로 역사를 접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연대기적 역사와 깊이있는 지식으로 확장해간다면 참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 - 동과 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는 건축 교양 강의
전봉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건축 문명 속에서 바라본

한국 건축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통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건축의 진화와 미래

역사책을 읽다보면 지도를 만나게 되고 예술을 만나게 되고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유명한 관광지 속의 예술적 건축물 들이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오래된 건축물 들 모두 남의 나라 얘기 같다.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어디서든 건축물을 찾아볼 수 있을 터인데 왜 나에겐 한국을 생각하면 건축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차라리 건설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에 건축의 역사가 없을리 만무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 건축에 대한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해주고 상식을 채워준 알찬 책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서가명강 시리즈 였다.

교양서를 읽는 것은 저자와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는 것은 사실 이미 스스로 생각하던 것일 때가 대부분이다. 내 생각을 확인받았다는 점에서 우선 반갑고, 내가 먼저 쓰지 않은 것이 아쉽고, 그다음은 어떻게 끌고 나갈지가 궁금해진다. 또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을 만나면 '이건 아닌데' 하고 반발하고, '진짜 그럴까' 의심하고, 자료를 찾아 확인해본다. 이렇게 독자의 호기심을 일깨우고 나아가 탐색을 유도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따라서 밑줄을 그어가며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고 지식을 쌓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단 전체적인 흐름과 주장에 대한 의견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p. 6)

강연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 쓴 책이려나 싶었는데 본문에 들어가니 예상보다 굉장히 전문적인 책이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균형을 잘 잡은 것 같다. 책은 총4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 건축 문명에 대해 세계사속 한국 건축 문명을 깨닫고 2부에서 한옥 한채 지으면서 역사속 한국 건축을 이해한 다음 3부에서 온돌 깔면서 진화되어온 한국 건축을 본 후 4부에서 세계와 만난 한국 건축에 대해 살펴본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연대기적 서술인 셈이라 흐름을 이해하기에 좋았다.

동행한 선배는, 우리는 물을 찾아 아래로 향하고 그들은 빛을 좇아 위를 향한다고 한마디로 정리해줬지만, 궁극적으로 산업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다. 농업과 목축의 차이이기도 하고 논농사와 밭농사, 과수원 농사의 차이기도 하다. (중략) 논과 밭이 양식을 생산하는 곳, 주거지가 생활하는 곳이라면, 먹고사는 것 이외의 활동은 결국 대개 산에서 일어난다. 조상의 산소를 두고, 서원이나 향교를 세워 후손을 교육하고, 절과 성황당, 산신각이 들어서는 신앙의 공간이면서, 산적과 도깨비가 사는 신비한 곳이 산이다. (p. 26) 이탈리아 중부 지역은 목축이나 포도, 올리브 재배가 주산업이다. 생산지는 비탈이라도 상관없으며, 도시는 잦은 전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 망루같이 성벽을 쌓아 자리한다. 말하자면 산성 마을인 것이다. (중략) 목축과 밭농사를 주로 하는 유럽의 농촌은 우리처럼 저지대 개발 강박이 크지 않기 때문에 도시 주변의 먼 경치 좋은 강가에 숲을 조성해 비생산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유럽의 요정들이 숲에 사는 이유다. (p. 27)

지도상으로 봤을때 한반도와 이탈리아반도는 흡사한 자연환경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토스카나 지방과 한국의 어느 농촌을 비교해본 내용을 읽으며 산업의 차이이기도 했을 테지만 역사적 상황때문이기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는가 하는 가치관의 차이가 삶의 형태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조선 후기는 단지 가장 가까운 과거일 뿐인데,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과장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p. 28)' 점에 크게 동의한다. 우리의 전통이 곧 조선사회가 남긴 것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큰데 그 이전의 역사가 훨씬 길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돌은 누르는 힘에 매우 강해 기둥 재료로는 적합하지만, 당기는 힘과 휘어지는 힘에는 매우 약해 보로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그리스 신전에서도 바깥 둘레는 기둥과 보를 모두 돌로 만들었지만 내부에는 기둥만 돌로 하고 보와 지붕틀은 나무로 했다. 그리스 신전 유적 대부분에서 지붕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모두 나무였기 때문이다. 돌을 둥그렇게 쌓아 공간을 덮는 아치 구조도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p. 35)

건축 문명의 동과 서, 그 경계가 현재의 유럽과 아시아의 구분선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건축 문명을 기준으로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즉 나무 건축과 돌 건축의 경계를 찾으려면 고대 문명권의 발달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p. 52) 결국 건축 문명을 기준으로 보면 동서 경계는 중국 문명권과 그 외 지역으로 나뉜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매우 특수한 건축 전통 속에서 성장해왔다. (p. 55)

역사적 건축물 하면 서양의 신전이나 성, 성당등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게 돌로 된 건축물이 나무로 된 건축물보다 더 위대하다는 식의 편견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한 고대 그리스 신전도 나무 지붕이었고 돌로 만든 건축물은 유럽 뿐만 아니라 인도, 동남아시아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축문명이었다. 오히려 중국 건축의 영향을 받은 한중일만 좀 다르다고 볼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중국 건축문명권이 나무 건축문명인것은 아니었다. 나무와 돌은 세계적으로 사용된 건축 재료일뿐 그 소재로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무와 돌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역사의 우월성과는 관계없는 당시의 시대적 필요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무 건축 돌 건축 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극소수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적중심일뿐 주류를 형성했던 일반 시민들의 건축과는 상관없는 구분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앞서 근대 이전 건축을 돌의 건축과 나무의 건축으로 나누고 지역을 구분한 것은 기념비적 건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돌 조적조 건축 지역인 유럽이나 인도에서도 일반 시민의 주택은 대부분 나무로 짓는다. (중략) 나아가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유럽에도 북유럽의 스타브식 교회처럼 기념비적 건축조차 나무를 사용하는 지역도 있다. (p. 59) 다시 말하지만, 건축 문명권을 나무 가구식과 돌 조적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최고급 기념비적 건축물을 어떤 구조로 지었는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p. 60)

중국 건축 문화권에서 특별한 점은 궁전과 사찰도 모두 나무로 지었다는 점이다. 경복궁 근정전이거나 시골 초가집이 사실상 같은 건축 시스템을 사용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p. 61) 중국계 목조 건축에는 장점이 많다. (p. 63) 그렇다면 돌을 못 쓴 것이 아니라 안 쓴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몰라서 못 쓴 것하고 알고도 안 쓴 것은 엄연히 다르다. (p. 70) 고대의 위대한 건축물로 피라미드를 들었는데, 고대 이집트인이 피라미드를 만들 때 중국에서는 갑골문을 남겼고, 그리스인이 신전과 조각상을 만들 때 중국인은 금석문을 만들었다. 다른 문명권과 떨어져 발전한 중국 문명은 생산력 수준에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p. 70)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할 때, 중국은 조상의 신주를 만들어 제사했다. 신주에는 조상의 이름이 적혀 있을 뿐이다. (중략) 이 차이는 영원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비롯한다. 유형한 것은 유한하다고 여기고, 영원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 보았다. (p. 71)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나 유럽의 거대한 신전 등은 돌로 만들어 오래도록 남아 우리에게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그 거대 건축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큰 권력과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던 것일까? 왕권이 아무리 강해도 그렇게 큰 건축물을 그렇게 힘든 돌!건축물을 만들지 않은 것을 보면 한반도의 역사는 고대부터 (유럽에 비해) 민주적?이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 태동한 민주주의를 한반도의 역사에서 느낀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돌을 알고도 안 쓴' 것을 생각해 봤을때 그럴수도 있지 않나 하는 의미다. 왕권을 뒤엎은 혁명이 유럽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긋고 있는 것에 비해 그런 혁명이 우리 역사에서는 민주화 혁명 이전엔 없었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절대왕권이지 않았고 그만큼 일반인들의 삶이 동시대 유럽일반인들의 삶보다 참을만 했다는 건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여하튼, 살아있는 사람을 신격화한 유럽보다 비석이나 기념비 정도로만 기리는 문화가 더 낫다 더 높다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나무 건축 기술은 현실 삶에서 굉장히 실용적이었다.

건축물의 규모는 기술 문제이고 경제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욕망의 문제다. 특히 기념비적 건축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안 짓지는 않는다. (p. 80) 높이를 대신해서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유행하는 개념은 '깊이'다. 깊이는 높이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p. 82) 서양 건축이 계속해서 높이에 대한 경쟁을 벌인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는 깊이 경쟁, 즉 몇 겹이냐의 경쟁이 계속됐다. 양파 껍질 까듯 계속 문을 열고 들어가도록 겹겹이 에워싸는 건물이 탄생한 이유다. (p. 83) 그러고 보면 유서 깊은 절도 모두 깊은 산 속에 있다.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이다. 산을 깊다고 표현하는 곳이 또 있을까. (p. 85)

아! 깊이!! 그랬구나!!!

깊은 산 속 옹달샘 노랫말이 떠오른다. 산을 깊다고 표현하는 곳은 구중궁궐 문화를 가진 곳 뿐이었구나~!

'유독 건축에서 동과 서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는 것은 이것이 시각적이고 관념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p. 89)' 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겠다. 차이는 차이일뿐 차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전통은 무작정 아름답지도 않고 무작정 고립된 것도 아니며, 고유한 것만도 아니다. 개별성 보다는 개연성, 고정성 보다는 유동성, 고유성 보다는 다채로움에 근거해 전통을 인식해야 한다. (p. 91)' 는 문장이었다. 전통은 한 시대만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적 전통은 조선시대에서 유래한 것만이 다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고유한 생활 관습이라는 일상적인 기거 양식조차도 더디지만 변화한다는 점이고, 우리가 전통이라고 기억하는 것들은 대개가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 후기의 것이라는 점이다. 전통에 대해서는 언제나 유연한 태도로 볼 필요가 있다. (p. 152)

오히려 견고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협함을 저자는 끊임없이 깨뜨려 주었다. 전통을 생각할때 개연성, 유동성, 다채로움 등을 고려한 유연한 태도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깨달음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했다. 물론 이 깨달음 말고도 배울 것들은 엄청 많았다.

석조 건축이라면 한 몸을 이루는 건물 각 부분의 비례 관계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겠지만, 건물 여러 개로 이뤄진 집합체에서는 단일 건물의 비례보다는 건물을 모아 배열하는 질서가 더 중요해진다. (p. 156) 분명한 것은 이 역시 못한 것이라기 보다는 안 한 것이며,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서 차이, 가치관 차이다. (p. 162)

우리 전통은 우리에게 일반적인 것 중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세계 다른 지역과는 다른 것이면 고유한 전통이 된다. 우리 전통 건축을 일러 자연 친화적이라고 한다. 사실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 말고도 흔히 보이는 성질이다. 세상의 모든 토속 건축은 자연 친화적이다. 또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세계적으로 특수하다고 해 모두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건축에 대한 공부가 가치를 갖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때다. (p. 169)

서양의 궁전과 우리의 궁궐은 많이 다르다. 우리의 궁궐도 경복궁과 창덕국은 축의 개념이 다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 시대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치관의 차이일뿐 기술적 차이나 우월함의 차이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기념비적 것에서만 전통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자각도 중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문화 속에서 찾아야지 일부 특수계층이 누린 것을 우리 전통이라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이 알려주는 한옥과 온돌의 상세한 설명은 무척 새롭고 뜻깊었다. 우리네 문화속 건축은 굉장히 평등한 편이었다. '앞서 온돌은 한옥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했다. 한옥을 한국 전통 주택의 전형이라고 할 때, 온돌은 한국 주택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온돌은 한국에만 있고, 또 한국 주택에는 모두 온돌이 있다. (p. 218)'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방법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서양과 다른 우리네 전통이라는 게 나는 솔직히 반갑고 좋았다.

건축은 대규모 장치 예술이고, 그러면서 실용 예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적 환경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단시 섬세한 사고나 혹은 한두 사람의 의욕과 후원만으로는 성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시기별 산업 발전 단계에 따른 생산 양식을 반영해야 하고, 사회 구성원 일반의 합의를 얻어야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간단히 왜 불국사 3층 석탑을 만든 사람들이 다시 그렇게 만들지 못했느냐는 비난은, 왜 이 시기에 다시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느냐고 탓하는 것만큼 시대착오적이다. 모든 예술적 성과는 다 시대적 산물이고 그 시대 안에서 정당한 것이다. (p. 291)

건축물을 이해하는데도 역사가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건축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시대적 가치라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그 어떤 분야에도 빠지지 않고 필요한 것이 역사 가 아닐까 싶다. 역시 역사책은 꾸준히 읽어야 한다.

그러고보면 8세기의 성취와 14세기의 성취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p. 301)

8세기에는 개방적 당나라의 문화가 한반도에도 널리 퍼져있고 교류가 활발했던 때였고 14세기는 비록 반강제적 지배였기는 했으나 세계적 교류가 활발한 원나라의 문화가 한반도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던 때였다. '세계화'적 개방성은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기술개발을 촉진시켰다. 그런점에서 우리가 전통이라고 여겨온 조선사회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문제는 전통의 많은 부분이 기대는 조선 추기가 우리 역사 전체로 볼 때 가장 폐쇄적인 시대였다는 점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과거라서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그 때문에 과잉 대표되었다. (p. 310)' 저자는 한국 건축의 미래를 위해 세계적이고 개방적인 관점을 지녀야 할 것을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원에 집착해 우리만의 고유함을 찾는 소극적이고 내향적 태도가 아니다. 크게 열린 마음으로 세계 문명을 폭넓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문명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우리 안에서만 보이는 특수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잘 보이지만 인류 사회 일반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우리 것에 집중하는 것은 가까워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예쁘게 포장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p. 359)

한국의 건축에 대한 전문가적 설명을 읽을 땐 좀 어렵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저자의 역사관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비록 건축이라는 단어가 생긴지 100년 정도 밖에 안되긴 하지만 역사 속에서 한국 고유의 것을 이해하고 현재에서 변화된 가치를 발견하여 미래에 건축분야에서도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길 응원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새겨봐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망령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고 했다.

이에 빗대 말하자면 '세계의 것만 알고 우리 것을 모르면 망령되고, 우리 것만 알고 세계의 것을 모르면 위험하다.' (p. 3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성공 - 한국은 왜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을까?
윤홍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와 복지를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한국의 대표적 학자 윤홍식 교수,

한국 복지국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세울 방법을 논하다.

올해 7월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더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으로 격상되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사결과들은 한국을 자살율이 높고 불평등이 심하며 많은 국민들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상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이 성공 패러다임속에 무시되어온 복지국가에 대한 혁신적 프레임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한국이 온 길이 특이할 정도로 이상했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면 된다고 희망을 제시한다.

<2021년 한국 사회의 울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6명이 만성적 울분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p. 8)

OECD에서 부정기적으로 '삶의 질' 순위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OECD 35개국 중 최하위였습니다. (p. 28)

독재정권이 부와 소득을 불공형하게 분배해 불평등과 빈곤이 심각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독재만 무너뜨리면 더 평등한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지요. (p. 34)

민주화 시대가 열렸어도 평등한 사회는 되지 않았고 '삶의 질' 조사에서는 매번 하위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과반수를 넘는 국민들이 '만성적 울분 상태'에 있다니, 1인당 GDP가 높아지고 한류를 통해 세계적 문화영향력까지 가졌다는 나라가 이룩한 그동안의 성공은 과연 어떤 성공이었던 것일까? 먼저 지금까지의 '성공'에 대해 면밀히 숙고해봐야 할 것이다.

86세대라고 불리는 1960년대생 중에 출세한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마치 1960년대에 태어난 50대가 모두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높은 지위에 있고 높은 소득과 부를 독점했다고 묘사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계급 불평등을 세대 불평등으로 감추려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p. 40)

현재 청년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세대 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자극적이고 선동적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은 '꼰대들이 문제'라고 하니 그 적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대 담론은 부와 특권이 세습되는 계급사회의 현실을 감추는 위험한 장막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 청년들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가 대를 이어 세습되는 불평등에 있기 때문입니다. (p. 45)

일제치하에서는 일제라는 적이 분명했고 독재에서는 군부라는 적이 분명했기에 지금 현실에서도 꼰대라는 기성세대를 표적으로 삼으면 사실 이해와 설명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쉬운만큼 함정일 수도 있다. 표면적인 적을 내세워 공격의 화살을 받게 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이들은 누구일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불평등의 사슬을 끊는 것은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대다수 기성세대를 적으로 돌리는 세대 간의 반목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특권 없는 사람들의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대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부가 세습되는 새로운 신분사회니까요. (p. 45)' 각자도생인 사회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그러한 삶의 방향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되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상생은 복지국가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너무나 기초적 마인드이다. '우리는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를 기성세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넘어 왜 그런 일들이 만들어지고 고착화되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왜 한국 사회는 더 정의롭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는지 질문하고 답해야 할 것 같아요. (p. 63)'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어려운 사회경제 문제에 직면한 것은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어려움은 세계 모든 국가가 찬양해 마지않는 성공의 결과입니다. (중략) 성공의 덫에 빠진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 사회는 자신이 직면한 실패, 위기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p. 63)

성공의 덫에 빠졌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그동안의 성공의 발자취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놀라운 성공이 향기로운 술처럼 우리를 취하게 만들어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보지 못하게끔 가리는 역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게끔 하는 용기의 근원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p. 71)' 라고 희망을 드러낸다. 최근 읽었던 한국사회 혹은 공정이나 공평 에 대한 책들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부담없고 쉽게 술술 읽혔던 이유는 근래에 보기드문 이런 긍정적 태도와 구체적 대안제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이클샌델의 능력주의 공격이나 국내 학자의 불공정함을 내세운 정권 공격보다 훨씬 현실적이었고 훨씬 논리적이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한 것 말입니다. 그는 역사를 어떤 인물의 영웅적 서사로 해석하는 것을 '좋은 여왕 베스'학설과 다름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쉽게 말해 좋은 여왕 베스 학설이란 '역사위인설'으로 불리는 것으로 한 사람의 영웅 때문에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다는 역사관이죠. 그러면서 카는 그 '좋은 여왕 베스'학설을 '최근에 들어와서는 유행에 뒤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따금씩 그 흉물스러운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라고 결론짓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가 1961년에 출간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죠. 그리고 덧붙입니다. 역사를 개인의 업적에 맞추는 것은 시대라는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저도 카와 같은 생각입니다. 역사를 영웅들의 모헙담으로 그리는 것은 우리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역사의 기본적인 역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p. 120~121)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참 여기저기 다양하게 인용되곤 한다. 그럴때마다 어서 저 책을 읽어야하지 하면서 몇년째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두꺼운 벽돌책을 노려보곤 하지만 시작이 영 어렵다;;; 여하튼, 60년 전에 이미 유행이 지났다는 그 학설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유효하지 않나 싶다. 영웅이 되었건 악당이 되었건 한 인물에 집중해서 역사를 바라보면 그 주변인물과 그리고 대다수의 일반사람들이 무시되는 역사관이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역사에 관련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분석함에 있어서 '나'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신교 신자가 되어야 전쟁구호물자를 받기 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개신교 신자가 되었씁니다. 1950년대 초만 해도 개신교 신자는 10만 명에 불과했지만, 1950년대 말이 되면 무려 10배 이상 증가한 백만 명으로 폭증하지요. (p. 127)

한국전쟁이 남긴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 한국전쟁으로 군대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진화된 국가기구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p. 130)

1950년대에 이루어진 농지개혁으로 지주계급은 이렇게 몰락합니다. (중략) 재미있는 사실은 농지개혁이후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는 점입니다. 학교법인에 귀속된 토지는 농지개혁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지요. (p. 135)

지주는 사라지고 자본가와 농민은 정권의 충성스러운 지지자가 되었어요. 산업화와 함께 성장하면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만들어갈 노동자 조직은 큰 타격을 입어 정권을 지지하는 어용단체가 되었습니다.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계급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좀 과장하면 정권이 원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p. 137)

미국의 요구는 곧 법이었기 때문에 이승만정부도 여러 차례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했던 것입니다. 4.19혁명 이후에 집권한 장면정권이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한 것도, 박정희 정권이 장면 정권이 수립한 계획을 가져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발표한 것도 모두 미국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개발계획을 박정희 정권만의 독창적인 일로 보는 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합니다. (p. 140)

지금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이후부터 급격히 변화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이 역사책은 아니지만 과거의 사회흐름을 설명하는 것을 읽다보니 몰랐던 세세한 역사들을 새롭게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현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사회로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대도 국민의 관심사는 복지확대가 아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이 생계의 터전과 직장을 잃었을 때도,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소수의 전문가와 참여연대와 같은 일부 시민단체를 제외하면, 국가가 공적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은 높지 않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과 실직자들을 위한 실업급여를 확대하라고 요구한 것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라고 압박했던 IMF이었습니다. (p. 190) 어쩌면 한국사회는 놀라운 성장을 하는 동안 개인과 가족의 안전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시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선성장 후분배'에서의 분배도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며 지켜주는 공적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통해서 시장에서 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내가 번 돈이지, 국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제공하는 복지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p. 191)

코로나이후의 사회의 어두운 면들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는 설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설문조사를 해보면 자영업자, 비정규직, 청년, 중소기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일인당 얼마간의 돈을 주는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우리사회는 지금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연대보다 공적 복지 보다 개인에 대한 일시적 기본 소득에 더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수십 년의 권위주의 정권은 한국인이 국가를 신로할 수 없게 만들었씁니다. 독재정권도 국민이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세금을 걷어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권위주의 정권은 가뜩이나 취약한 정권의 정당성을 세금을 많이 걷어 더 취약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낮은 세금은 권위주의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을 보완하는 중요한 정책이었습니다. (p. 194) 국가가 나를 지켜준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인은 세금을 모든 악의 근원같이 생각했던 것이죠. (p. 197)

국민이 민간 생명보험사에 낸 돈은 1997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합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민간 생명보험 사랑은 여전합니다. (중략) 국민이 국가보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생명보험사를 더 믿는다는 것이고, 사회적 연대보다는 내가 낸 것 내가 돌려받는 '각자도생'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지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p. 199)

국가가 수립된 이후로 오랜 세월 국가를 믿지 못하며 살아온 국민은 세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가적 복지제도는 세금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복지제도가 발전하지 못한 역사적 배경을 읽으며 이해가 되면서도 씁쓸하다. 저자의 계산을 읽다보면 알수있는데, 적게내는 세금으로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음에도 사회적 불신은 많이 내고 적게 돌려받는 민간 보험사를 선택하게 하고 해왔다. 이 연장선에서 부동산 투기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믿을건 보험과 부동산 뿐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권위주의 정권도 건드리지 않았던 보유세 강화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정책도 시행했고, 박근혜 정부는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할 수 있는 '개발이익환수제도'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부동산 규제를 강하게 하는 정부가 들어서면 5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나 합리적이었던 것입니다. 부동산은 영원한데, 정권은 딱 5년만 참으면 되니까요. (p. 204)

1997년 IMF를 겪으면서 성장 신화가 처음으로 무너졌는데도 성장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고, 2020년 코로나19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었는데도 국민은 여전히 성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20~30대 청년들에게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주식 투자와 암호화폐의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내가 축적한 자산 말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판이 없는데 집은 너무 비싸 살 수 없으니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해서라도 자산을 불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손잡고 연대해 함께 풀어가는 보편적 '복지 국가'가 들어설 틈은 없습니다. (p. 205)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수십 년 동안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빈곤과 불평등을 감소시킨 한국의 성공적인 산업화는 인류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대단히, 대단히,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p. 206)' 한국의 이례적인 성장은 분명 성공이었다. 이 성공경험을 한 국민들은 지금의 위기도 지금까지처럼 '이례적인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꿈꾼다. 하지만 '기적'은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한번도 힘들었을 '한강의 기적'은 두번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마냥 '성장'의 꿈을 꾸며 '각자도생'으로만 살길을 찾을 것인가?

한국 경제의 모습을 '가마우지 경제'라고 합니다. (p. 220) 생산은 한국기업이 하는데, 생산에 필요한 첨단기술, 소재, 부품, 장비는 모두 외국 기업의 것이니 한국 기업이 열심히 만들어도 결국 이익은 외국 기업의 몫이라는 것이죠. (중략) 한국 산업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역량, 즉 '개념설계'라고 부르는 혁신역량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p. 221)

한국이 1960년대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모든 자원을 기업에 몰아줄 때, 한국인은 기업의 성공이 곧 국가의 성장이고, 국가의 성공이 곧 국민의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내고 국민의 피와 눈물로 민주화를 이루었을 때도 그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나서 뒤돌아보니 산업화와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p. 222) 민주화로 권위주의 정권이 사라지마 재벌 대기업을 통제할 힘은 한국 사회 어디에도 없었어요.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노동조합이 기업을 견제할 힘이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오랜 권위주의의 탄압을 겪으면서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못했어요. (p. 223)

한국 기업이 최첨단 설비에 프로그래밍 할 수 없는 축적된 숙력을 갖춰야만 혁신이 가능하고 다른 국가들과 격차도 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노동자의 숙련을 자동화 설비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면서 그런 기회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성공의 이면에는 한국이 선진국을 열심히 따라가도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제논의 역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p. 229)

선진국이 됐다는 것은 어찌보면 성장률이 둔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속한 성장은 그 무엇도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그저 지나쳐 달려오기만 한 셈이다. 기껏 힘들게 만들어서 외국기업 배만 불려주고 기껏 힘들게 일해서 대기업 배만 불려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성장을 한 것은 정말 '한강의 기적' 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빨리 뛰어가는 토끼도 몇걸음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은 한국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제 문제는 국가탓만 해서도 기업탓만 해서도 내탓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혁신도 사회적 합의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복지에 대한 개념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선별주의는 자산과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선별해 지원하는 복지를 의미해요. 그런데 한국의 복지제도는 거꾸로 소득이 높고 고용이 안정적인 사람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p. 232) 신화화된 개발국가 복지체제는 한국 사회를 성장제일주의, 낮은 세금, 공적 복지와 사적 자산 축적에서 나타나는 계층간 불평등으로 대표되는 '역진적 선별성'이 강한 복지 체제를 고착화시켰어요. 그러자 한국 사회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4개의 신분으로 구분되는 '신(新)신분사회'로 분열되었습니다. (p. 239)

'결국 나와 내 가족의 안위는 내가 축적한 재산에 달려 있다는 개발국가 복지체제가 만든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상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p. 241)' 이 이상한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아마도 공무원에 대한 이율배반적 태도일 것이다. '청년을 자녀로 둔 많은 부모는 자녀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 다수는 국가가 공무원을 늘리는 일에 반대합니다. (p. 245)' 여기서 나오는 헛웃음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노랫소리,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앞으로의 미래를 저해할 더 큰 근심거리는 한국적 특수한 상황에 있었다.

반공개발국가의 엄청난 성공이 한국 사회에서 공정하게 이익을 배분하자는 주장조차 사회주의의 발상이라며 발을 붙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p. 255)

1987년 한국의 민주화는 이렇게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 야당의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면서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학생, 재야, 노동자, 농민이 배제됩니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헌법, 권력구조, 선거제도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어렵게 만들었던 이유입니다. 다수 득표자가 승리하는 소선거구제, 결선투표없이 다수 득표자가 승리하는 대통령 선거는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 야당의 기득권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으로부터 지켜내는 핵심적인 제도였습니다. (p. 258)

사회경제적 이해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권위주의 세력과 부수야당이 민주화운동 세력을 배제하고 진행한 민주화가 분배 문제를 제대로 다룰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p. 259) 복지는 항상 성장 다음이었습니다.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 야당 간에 타협으로 이루어진 민주화는 민주주의가 저절로 시민의 삶을 개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준 것이었습니다. (p. 261)

그런가 그런것이었나... 반공으로 인한 몰지각한 폄하와 왜곡은 그렇다치자 그런데 80년대 이루어낸 민주화의 속뜻은 이런 것이었다니...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성공한 사회라고 하나 성장은 멈추었고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민주주의도 지켜지지 않은 사회... 암담하기만 할 이런 상황에 저자는 희망찬 목소리로 '이제 그 성공의 덫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p. 273)' 라고 말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길' 을 가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복지국가에 대한 제대로된 정의부터 앞으로 바꿔가야 할 것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정치의 문제입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가 더 나빠지도록 방조하는 사람입니다. 정치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복지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사회 비전인 것입니다. 좋은 복지국가란 좋은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좋은 정치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p. 365)

독립적 개인,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 증세, 평화와 공존, 선거제도, 기후위기에 대한 방안 등등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개선방안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정치'였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모두 '정치'로 풀어야 했다. '정치제도가 만들어져도 그 속을 채울 정치집단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유권자와의 공약을 지키는 경우는 공약을 지키지 않았을 대 자신을 응징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할 때입니다. (p. 335) 나를 대표하는 조직이 없고, 정치제도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건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선태지는 조금 덜 보수적인 정당과 더 보수적인 정당,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뿐이었죠. 선거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선거 동원 모델'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된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p. 337)' 풀뿌리 시민운동은 옛날에나 통용되던 말인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말이었다. 저자는 '촛불항쟁'에서 연대의 희망을 보았다. 촛불항쟁 또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이례적'인 경우가 참 많았다. 그러니 외국의 좋다하는 이론들이 적용될리 만무할 것도 같다. 이상한 성공이 만들어낸 이상한 사회에 살면서 이상한 실패를 겪으리라 미리 좌절하지 말자. 차라리 앞으로 갈 길도 과거에 없던 '이례적' 길이 될거라 생각하자. 그렇게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상한 복지국가를 꿈꿔보고 싶다. 그 출발은 객관적 정치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이 되는 것부터 일 것이다. 정치라면 절레절레 도리질 하는 시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갖는 '이상한' 시민이 되어보자.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두툼한 소설을 이렇게 순식간에 이렇게 빵빵 웃으며 읽게 될줄 정말 상상도 못했네요 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