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모습을 '가마우지 경제'라고 합니다. (p. 220) 생산은 한국기업이 하는데, 생산에 필요한 첨단기술, 소재, 부품, 장비는 모두 외국 기업의 것이니 한국 기업이 열심히 만들어도 결국 이익은 외국 기업의 몫이라는 것이죠. (중략) 한국 산업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역량, 즉 '개념설계'라고 부르는 혁신역량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p. 221)
한국이 1960년대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모든 자원을 기업에 몰아줄 때, 한국인은 기업의 성공이 곧 국가의 성장이고, 국가의 성공이 곧 국민의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내고 국민의 피와 눈물로 민주화를 이루었을 때도 그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나서 뒤돌아보니 산업화와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p. 222) 민주화로 권위주의 정권이 사라지마 재벌 대기업을 통제할 힘은 한국 사회 어디에도 없었어요. 서구 복지국가에서는 노동조합이 기업을 견제할 힘이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오랜 권위주의의 탄압을 겪으면서 제대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못했어요. (p. 223)
한국 기업이 최첨단 설비에 프로그래밍 할 수 없는 축적된 숙력을 갖춰야만 혁신이 가능하고 다른 국가들과 격차도 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노동자의 숙련을 자동화 설비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면서 그런 기회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성공의 이면에는 한국이 선진국을 열심히 따라가도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제논의 역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p. 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