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 - 동과 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는 건축 교양 강의
전봉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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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건축 문명 속에서 바라본

한국 건축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통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건축의 진화와 미래

역사책을 읽다보면 지도를 만나게 되고 예술을 만나게 되고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유명한 관광지 속의 예술적 건축물 들이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는 오래된 건축물 들 모두 남의 나라 얘기 같다.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어디서든 건축물을 찾아볼 수 있을 터인데 왜 나에겐 한국을 생각하면 건축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차라리 건설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에 건축의 역사가 없을리 만무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 건축에 대한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해주고 상식을 채워준 알찬 책이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서가명강 시리즈 였다.

교양서를 읽는 것은 저자와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는 것은 사실 이미 스스로 생각하던 것일 때가 대부분이다. 내 생각을 확인받았다는 점에서 우선 반갑고, 내가 먼저 쓰지 않은 것이 아쉽고, 그다음은 어떻게 끌고 나갈지가 궁금해진다. 또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을 만나면 '이건 아닌데' 하고 반발하고, '진짜 그럴까' 의심하고, 자료를 찾아 확인해본다. 이렇게 독자의 호기심을 일깨우고 나아가 탐색을 유도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따라서 밑줄을 그어가며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고 지식을 쌓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보단 전체적인 흐름과 주장에 대한 의견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p. 6)

강연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 쓴 책이려나 싶었는데 본문에 들어가니 예상보다 굉장히 전문적인 책이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균형을 잘 잡은 것 같다. 책은 총4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 건축 문명에 대해 세계사속 한국 건축 문명을 깨닫고 2부에서 한옥 한채 지으면서 역사속 한국 건축을 이해한 다음 3부에서 온돌 깔면서 진화되어온 한국 건축을 본 후 4부에서 세계와 만난 한국 건축에 대해 살펴본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연대기적 서술인 셈이라 흐름을 이해하기에 좋았다.

동행한 선배는, 우리는 물을 찾아 아래로 향하고 그들은 빛을 좇아 위를 향한다고 한마디로 정리해줬지만, 궁극적으로 산업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다. 농업과 목축의 차이이기도 하고 논농사와 밭농사, 과수원 농사의 차이기도 하다. (중략) 논과 밭이 양식을 생산하는 곳, 주거지가 생활하는 곳이라면, 먹고사는 것 이외의 활동은 결국 대개 산에서 일어난다. 조상의 산소를 두고, 서원이나 향교를 세워 후손을 교육하고, 절과 성황당, 산신각이 들어서는 신앙의 공간이면서, 산적과 도깨비가 사는 신비한 곳이 산이다. (p. 26) 이탈리아 중부 지역은 목축이나 포도, 올리브 재배가 주산업이다. 생산지는 비탈이라도 상관없으며, 도시는 잦은 전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산봉우리에 망루같이 성벽을 쌓아 자리한다. 말하자면 산성 마을인 것이다. (중략) 목축과 밭농사를 주로 하는 유럽의 농촌은 우리처럼 저지대 개발 강박이 크지 않기 때문에 도시 주변의 먼 경치 좋은 강가에 숲을 조성해 비생산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유럽의 요정들이 숲에 사는 이유다. (p. 27)

지도상으로 봤을때 한반도와 이탈리아반도는 흡사한 자연환경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토스카나 지방과 한국의 어느 농촌을 비교해본 내용을 읽으며 산업의 차이이기도 했을 테지만 역사적 상황때문이기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는가 하는 가치관의 차이가 삶의 형태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조선 후기는 단지 가장 가까운 과거일 뿐인데,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과장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p. 28)' 점에 크게 동의한다. 우리의 전통이 곧 조선사회가 남긴 것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큰데 그 이전의 역사가 훨씬 길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돌은 누르는 힘에 매우 강해 기둥 재료로는 적합하지만, 당기는 힘과 휘어지는 힘에는 매우 약해 보로는 부적합하다. 그래서 그리스 신전에서도 바깥 둘레는 기둥과 보를 모두 돌로 만들었지만 내부에는 기둥만 돌로 하고 보와 지붕틀은 나무로 했다. 그리스 신전 유적 대부분에서 지붕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모두 나무였기 때문이다. 돌을 둥그렇게 쌓아 공간을 덮는 아치 구조도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p. 35)

건축 문명의 동과 서, 그 경계가 현재의 유럽과 아시아의 구분선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건축 문명을 기준으로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즉 나무 건축과 돌 건축의 경계를 찾으려면 고대 문명권의 발달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p. 52) 결국 건축 문명을 기준으로 보면 동서 경계는 중국 문명권과 그 외 지역으로 나뉜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매우 특수한 건축 전통 속에서 성장해왔다. (p. 55)

역사적 건축물 하면 서양의 신전이나 성, 성당등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게 돌로 된 건축물이 나무로 된 건축물보다 더 위대하다는 식의 편견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한 고대 그리스 신전도 나무 지붕이었고 돌로 만든 건축물은 유럽 뿐만 아니라 인도, 동남아시아등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건축문명이었다. 오히려 중국 건축의 영향을 받은 한중일만 좀 다르다고 볼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중국 건축문명권이 나무 건축문명인것은 아니었다. 나무와 돌은 세계적으로 사용된 건축 재료일뿐 그 소재로 건축물의 역사적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무와 돌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역사의 우월성과는 관계없는 당시의 시대적 필요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무 건축 돌 건축 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극소수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유적중심일뿐 주류를 형성했던 일반 시민들의 건축과는 상관없는 구분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앞서 근대 이전 건축을 돌의 건축과 나무의 건축으로 나누고 지역을 구분한 것은 기념비적 건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돌 조적조 건축 지역인 유럽이나 인도에서도 일반 시민의 주택은 대부분 나무로 짓는다. (중략) 나아가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유럽에도 북유럽의 스타브식 교회처럼 기념비적 건축조차 나무를 사용하는 지역도 있다. (p. 59) 다시 말하지만, 건축 문명권을 나무 가구식과 돌 조적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최고급 기념비적 건축물을 어떤 구조로 지었는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p. 60)

중국 건축 문화권에서 특별한 점은 궁전과 사찰도 모두 나무로 지었다는 점이다. 경복궁 근정전이거나 시골 초가집이 사실상 같은 건축 시스템을 사용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p. 61) 중국계 목조 건축에는 장점이 많다. (p. 63) 그렇다면 돌을 못 쓴 것이 아니라 안 쓴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몰라서 못 쓴 것하고 알고도 안 쓴 것은 엄연히 다르다. (p. 70) 고대의 위대한 건축물로 피라미드를 들었는데, 고대 이집트인이 피라미드를 만들 때 중국에서는 갑골문을 남겼고, 그리스인이 신전과 조각상을 만들 때 중국인은 금석문을 만들었다. 다른 문명권과 떨어져 발전한 중국 문명은 생산력 수준에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다. (p. 70)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할 때, 중국은 조상의 신주를 만들어 제사했다. 신주에는 조상의 이름이 적혀 있을 뿐이다. (중략) 이 차이는 영원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비롯한다. 유형한 것은 유한하다고 여기고, 영원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 보았다. (p. 71)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나 유럽의 거대한 신전 등은 돌로 만들어 오래도록 남아 우리에게 감탄사를 내뱉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그 거대 건축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큰 권력과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던 것일까? 왕권이 아무리 강해도 그렇게 큰 건축물을 그렇게 힘든 돌!건축물을 만들지 않은 것을 보면 한반도의 역사는 고대부터 (유럽에 비해) 민주적?이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서 태동한 민주주의를 한반도의 역사에서 느낀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돌을 알고도 안 쓴' 것을 생각해 봤을때 그럴수도 있지 않나 하는 의미다. 왕권을 뒤엎은 혁명이 유럽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긋고 있는 것에 비해 그런 혁명이 우리 역사에서는 민주화 혁명 이전엔 없었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절대왕권이지 않았고 그만큼 일반인들의 삶이 동시대 유럽일반인들의 삶보다 참을만 했다는 건 아닐까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여하튼, 살아있는 사람을 신격화한 유럽보다 비석이나 기념비 정도로만 기리는 문화가 더 낫다 더 높다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나무 건축 기술은 현실 삶에서 굉장히 실용적이었다.

건축물의 규모는 기술 문제이고 경제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욕망의 문제다. 특히 기념비적 건축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안 짓지는 않는다. (p. 80) 높이를 대신해서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유행하는 개념은 '깊이'다. 깊이는 높이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p. 82) 서양 건축이 계속해서 높이에 대한 경쟁을 벌인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는 깊이 경쟁, 즉 몇 겹이냐의 경쟁이 계속됐다. 양파 껍질 까듯 계속 문을 열고 들어가도록 겹겹이 에워싸는 건물이 탄생한 이유다. (p. 83) 그러고 보면 유서 깊은 절도 모두 깊은 산 속에 있다.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이다. 산을 깊다고 표현하는 곳이 또 있을까. (p. 85)

아! 깊이!! 그랬구나!!!

깊은 산 속 옹달샘 노랫말이 떠오른다. 산을 깊다고 표현하는 곳은 구중궁궐 문화를 가진 곳 뿐이었구나~!

'유독 건축에서 동과 서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는 것은 이것이 시각적이고 관념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p. 89)' 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겠다. 차이는 차이일뿐 차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전통은 무작정 아름답지도 않고 무작정 고립된 것도 아니며, 고유한 것만도 아니다. 개별성 보다는 개연성, 고정성 보다는 유동성, 고유성 보다는 다채로움에 근거해 전통을 인식해야 한다. (p. 91)' 는 문장이었다. 전통은 한 시대만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적 전통은 조선시대에서 유래한 것만이 다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고유한 생활 관습이라는 일상적인 기거 양식조차도 더디지만 변화한다는 점이고, 우리가 전통이라고 기억하는 것들은 대개가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 후기의 것이라는 점이다. 전통에 대해서는 언제나 유연한 태도로 볼 필요가 있다. (p. 152)

오히려 견고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협함을 저자는 끊임없이 깨뜨려 주었다. 전통을 생각할때 개연성, 유동성, 다채로움 등을 고려한 유연한 태도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 깨달음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했다. 물론 이 깨달음 말고도 배울 것들은 엄청 많았다.

석조 건축이라면 한 몸을 이루는 건물 각 부분의 비례 관계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겠지만, 건물 여러 개로 이뤄진 집합체에서는 단일 건물의 비례보다는 건물을 모아 배열하는 질서가 더 중요해진다. (p. 156) 분명한 것은 이 역시 못한 것이라기 보다는 안 한 것이며,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나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서 차이, 가치관 차이다. (p. 162)

우리 전통은 우리에게 일반적인 것 중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세계 다른 지역과는 다른 것이면 고유한 전통이 된다. 우리 전통 건축을 일러 자연 친화적이라고 한다. 사실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 말고도 흔히 보이는 성질이다. 세상의 모든 토속 건축은 자연 친화적이다. 또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세계적으로 특수하다고 해 모두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건축에 대한 공부가 가치를 갖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때다. (p. 169)

서양의 궁전과 우리의 궁궐은 많이 다르다. 우리의 궁궐도 경복궁과 창덕국은 축의 개념이 다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 시대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치관의 차이일뿐 기술적 차이나 우월함의 차이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기념비적 것에서만 전통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자각도 중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문화 속에서 찾아야지 일부 특수계층이 누린 것을 우리 전통이라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이 알려주는 한옥과 온돌의 상세한 설명은 무척 새롭고 뜻깊었다. 우리네 문화속 건축은 굉장히 평등한 편이었다. '앞서 온돌은 한옥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했다. 한옥을 한국 전통 주택의 전형이라고 할 때, 온돌은 한국 주택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온돌은 한국에만 있고, 또 한국 주택에는 모두 온돌이 있다. (p. 218)'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방법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서양과 다른 우리네 전통이라는 게 나는 솔직히 반갑고 좋았다.

건축은 대규모 장치 예술이고, 그러면서 실용 예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적 환경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단시 섬세한 사고나 혹은 한두 사람의 의욕과 후원만으로는 성과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시기별 산업 발전 단계에 따른 생산 양식을 반영해야 하고, 사회 구성원 일반의 합의를 얻어야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간단히 왜 불국사 3층 석탑을 만든 사람들이 다시 그렇게 만들지 못했느냐는 비난은, 왜 이 시기에 다시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느냐고 탓하는 것만큼 시대착오적이다. 모든 예술적 성과는 다 시대적 산물이고 그 시대 안에서 정당한 것이다. (p. 291)

건축물을 이해하는데도 역사가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건축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시대적 가치라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그 어떤 분야에도 빠지지 않고 필요한 것이 역사 가 아닐까 싶다. 역시 역사책은 꾸준히 읽어야 한다.

그러고보면 8세기의 성취와 14세기의 성취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p. 301)

8세기에는 개방적 당나라의 문화가 한반도에도 널리 퍼져있고 교류가 활발했던 때였고 14세기는 비록 반강제적 지배였기는 했으나 세계적 교류가 활발한 원나라의 문화가 한반도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던 때였다. '세계화'적 개방성은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기술개발을 촉진시켰다. 그런점에서 우리가 전통이라고 여겨온 조선사회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문제는 전통의 많은 부분이 기대는 조선 추기가 우리 역사 전체로 볼 때 가장 폐쇄적인 시대였다는 점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과거라서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그 때문에 과잉 대표되었다. (p. 310)' 저자는 한국 건축의 미래를 위해 세계적이고 개방적인 관점을 지녀야 할 것을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원에 집착해 우리만의 고유함을 찾는 소극적이고 내향적 태도가 아니다. 크게 열린 마음으로 세계 문명을 폭넓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문명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우리 안에서만 보이는 특수함을 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잘 보이지만 인류 사회 일반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우리 것에 집중하는 것은 가까워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지,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예쁘게 포장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p. 359)

한국의 건축에 대한 전문가적 설명을 읽을 땐 좀 어렵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저자의 역사관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었다. 비록 건축이라는 단어가 생긴지 100년 정도 밖에 안되긴 하지만 역사 속에서 한국 고유의 것을 이해하고 현재에서 변화된 가치를 발견하여 미래에 건축분야에서도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길 응원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새겨봐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망령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 고 했다.

이에 빗대 말하자면 '세계의 것만 알고 우리 것을 모르면 망령되고, 우리 것만 알고 세계의 것을 모르면 위험하다.' (p.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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