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끝나고 난 뒤 두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한편은 작가의 것이고 한편은 작가의 제안을 받아 화답한 박정연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의 후기나 작품해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는 것은 또다른 새로움 이었다.
청소년 소설은 아니지만 청소년 소설처럼 읽히는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라떼 꼰대가 가진 입장에 대해서 였다.
많은 어른들이 후대에게 말할때 '나때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너희는 안힘들다' 라는 명제로 시작하다 보니 소통이 안되는 것인데, 사실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안 힘들게 사는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나때는 이래서 힘들었는데 너희는 무엇이 힘드니?' 라고 묻거나 아니면 차라리 '나때는 이런게 힘들었다' 하고 자신의 경험만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떨까.
예를 들면, 나때는 국민학교때 교실에서 난로 때느라 매일 아침 당번이 석탄을 가져와야 했다 너희는 온풍기가 있으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 라고 말하기 보단 너네 석탄 날로 본적 없지? 그 난로 옆에 앉은 애는 너무 따듯해서 졸고 문가에 앉은 애는 너무 추워서 졸고 그랬단다 하면 우리도 온풍기 바로 아래 앉은 애는 코막히고 머리에 뎁혀지는데 문가에 앉은 애는 발이 시렵대요 정도로 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락없이 왠 꼰대 이야기기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나면 늘 우리는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나 싶어 안타깝곤 했다. 게다가 최근 읽은 소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작가가 나이들면서 변하는 게 느껴졌다. 좋게 말하면 젊었을 때의 예리함이 나이들면서 너그러워진다 이겠으나 특유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주일> 이 책에서만큼은 그 넓어진 마음이 그 너그러움이 따듯하게 남아서 좋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화르륵 한때의 불꽃보다 미지근하지만 여유로운 온기를 지닐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불꽃들이 한순간에 확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뒷말이 너무 길었는데... 여하튼, 좋은 책이었다 뭐 그런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