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테마로 읽는 역사 6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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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천재 과학자들의 바보 같은 실수들이 빚어낸 유쾌한 과학의 역사

사전에서 [실수] 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

2. 말이나 행동이 예의에 벗어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인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라는 풀이가 나온다. 실수는 의도치 않은 것일 경우가 많고 당연히 실패와도 다르다. 하나의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여 연구하고 실험하고 검증할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후학이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많을터, 이 책을 통해 좀더 재미있는 과학자들의 실수담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과학 거장들의 실수' 라는 중국어 원제의 제목이 한국어판 제목 '과학자의 흑역사'로 제목에 큰 변형을 하지 않은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느끼게 된건 애초에 원제 자체가 본문과 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달까;;;

책의 구성은 천문학자의 흑역사 / 생물학자의 흑역사 / 수학자의 흑역사 / 화학자의 흑역사 / 물리학자의 흑역사 로 과학의 각 분야로 크게 나누어 학자들을 등장시킨다. 각 학문내에서 학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야별로 구분지어 놓은 것은 적절하다 싶다. 각 부분적으로는 과학사적으로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과학사 보다는 그냥 학자별 에피소드의 열거로 읽히는 책이다. 천재적인 학자들이 과연 어떤 실수를 했을까?? 를 궁금해하며 읽었지만 과학자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편견이나 아집 혹은 고집의 모음이었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 오해한 나머지 스타인하트 라는 학자의 명예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사실을 알고서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에서 오류를 증명한 프리드만을 강하게 비판하다가 수용한 후에도 거칠게 동의했으며,

르베리에의 가설만 철썩같이 믿은 많은 천문학자들은 그의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있지도 않은 행성 '벌컨'을 찾아 헤맸다.

에딩턴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젊은 학자 찬드라세카르의 이론이 설 자리를 없애버렸기에 블랙홀 연구는 30여년 뒤처지게 되었고,

퀴비에는 놀라울 정도로 성실했기에 비교해부학의 권위자가 되었으면서도 용기내지 못하여 진화론을 부정하고 현재에 안주했으며,

델브뤼크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추구하다가 편견에 빠져 중요한 연구방향을 무시했다.

모노는 철학 범주에 속하는 개념어와 과학적 연구의 세부사항을 구분하지 못하여 DNA연구자들을 비난했고,

노벨상을 받은 콘버그는 개인적 이익 묹로 불명예를 자초했으며,

베이트슨은 실증주의 철학 입장에서 과학연구를 하려다가 유전학 발전의 장애물이 되었다.

어떠한 위대한 과학자도 모든 과학 문제를 풀어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 당시에 가장 곤란한 문제 앞에 멈출 때가 온다. 그리고 나중에는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지는 이론과 생각을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론들이 미래의 과학자들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게 받쳐주는 디딤돌이 된다. 이것이 역사의 한계성이 갖는 필연이다. (p. 168)

당대 명성이 높던 가우스도 자신이 어렵게 손에 넣은 것들을 잃을지 모르는 모험은 하지 않기 위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수학을 개조했으니 물리학도 개조할 수 있다며 뛰어든 수학자 힐베르트는 호되게 쓴맛을 보아야 했으며,

푸엥카레와 아인슈타인은 서로의 심리적 경쟁때문에 생전 서로에 대한 언급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을 만큼 고집스런 태도를 보였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해놓고서도 플로지스톤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자신의 연구가치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고,

돌턴은 자신의 원자론을 수정하지 않기 위해 실험으로 입증된 법칙에 대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햇으며,

멘델레예프는 자신의 주기율표를 지키기 위해 몇몇 원소의 원자량을 수정하여 자신의 주기율에 맞추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누가 먼저냐 라는 우선권 문제에서는 과학자들 끼리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했고,

애국심 강했던 독일과학자 하버의 독가스는 사상 최악의 희생을 가능케 했으나 하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으며

오토 한은 자신의 연구가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갈릴레이가 파도바에서의 안정적인 연구생활을 버리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간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었고,

뉴턴은 한정된 실험 사실에서 보편적인 추론을 도출했기에 색수차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베크렐은 실험과 관찰만 중시하고 가설을 세우는 것을 무시했기에 방사선 연구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사기극이 아닐까 싶던 N선 연구에 프랑스 과학자들이 진심으로 몰입했던 것은 과학과는 관계없는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감정때문이었고

마이컬슨은 죽을때까지 상대성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했으며,

패리티 보존법칙을 고수하던 물리학자들은 그 법칙에 예외가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되었을때도 곧바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저자의 표현으로는) 실수담들은 거의다 과학자들의 보수적 태도와 권위적 사고방식과 자신의 이론만 옳다는 똥고집 의 향연들이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 고집스런 태도들을 답답하게 읽으면서 천재적 과학자의 흑역사에 킥킥대보려던 나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과학 거장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천재들의 똥고집 혹은 과학자들의 보수성'이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았을지...

물론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완강히 거부해도 새로운 발견들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갈 때마다 과학자들의 옹고집은 과거에 묻힐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좀더 개방적이고 소통하는 자세로 협업을 했더라면 위대한 과학의 역사에서 불필요하게 소모된 시간들은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 책속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일화들이 그들에게 모두 '흑역사'가 맞긴 하다. 여하튼, 이 책이 전해주는 메세지를 책속에 인용된 문장 하나로 요약한다면, '권위로 논증하는 예는 셀 수 없이 많고, 권위가 저지른 잘못도 흔하다. -칼 에드워드 세이건 (1934~1996)' (p. 60) 이 가장 적절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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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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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을 찾으러 왔습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런저런 서평단 활동을 해봤지만 대본집 형태로 가제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대본형태이지만 소설책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대본집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페인트] [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 소설Y 시리즈로 나올 책이라는데,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를 잇는다는 이 영어덜트 소설의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어느 날 버스 사고 후 영혼이 빠져나오게 된 열여덟 살 한수리와 열일곱 살 은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영혼 사냥꾼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하낟. 창창한 미래를 향한 계획이 가득한 수리는 육체로 돌아갈 생각뿐이고, 어딘지 비어 있는 듯한 류는 육체에 관심이 없다. 선령의 말에 따르면 영혼이 빠져나오고 육체에 결계까 쳐진 것은 스스로가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주일 뒤 크리스마스 전까지 수리와 류는 육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늘 시작되는 패턴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 일상의 시작이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리, 그런데 이런 수리를 보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수리의 영혼!

"선령이야. 사냥할 선에 영혼 령, 한마디로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이들이지. 사령을 데려오는 저승사자들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p. 9)

갑작스런 버스 사고로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런 영혼에게 선령이 나타나 알려준다.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한은 단 일주일 이라고.

다행히 버스사고로 다친 곳은 없었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멀쩡했다. 아니 멀쩡해 보였다. 육체는! 수리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를 보며 다시 돌아갈 궁리를 열심히 해보지만 무엇때문인지 결계가 걷히지 않는다.

내가 유령 상태로 남아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대로 사흘 뒤면 나는 저 선령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고, 한수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장난스럽게 내뱉었던 말이 현실이 되어 진짜 영혼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p. 11)

영혼없는 대답, 영끌로 모아야 할 무엇 등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영혼을 잃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 영혼을 정말로 잃어버리다니!

한수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고2 여고생 이었다.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학교 생활에 맛집 여행 등의 사진으로 인스타에서도 좋아요를 엄청 많이 받는, 한마디로 엄마에게 소개시켜주면 안될 친구로 통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고 있다. 발을 동동거리고 화를 내다가 차츰차츰 되돌아보게 된다. 그 완벽함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던가?

"그냥 사는 거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오르듯이, 그렇게 말이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듯이 살아간다? 그것만큼 마음 편한 삶이 또 있을까. 아무런 근심조차 없다는 뜻이잖아. 그럼 지금껏 영혼이 있을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뜻인가.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인생의 무게 운운하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p. 35)

한 날 한 시에 같은 버스사고로 튕겨진 영혼이 또 하나 있다. 열일곱살 고1 남고생 은류.

하지만 은류의 영혼은 도통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수리가 자신의 육체를 따라다니며 24시간 지켜보는 동안 류의 시선이 따라다닌 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었다.

수리는 몹시 조금해하며, 류는 아주 태연합니다. 이렇게 극과 극의 영혼이 동시에 육체를 이탈한 일은 정말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제 피곤이 가중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남은 사흘 안에 개성이 또렷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두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제가 직접 저승으로 인솔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인간의 십 대는 마치 타들어 가는 폭탄의 심지같습니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매 순간 아주 쫄깃해지실 겁니다. (p. 93)

찢어진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보랏빛이 감도는 기묘한 눈동자로 보고 피처럼 붉은 입술로 말하는 선령은 영혼사냥꾼이다. 오싹한 냉기를 풍기며 수리와 류의 영혼 곁에서 상황을 알려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조언은 일절 하지 않는다. 저승사자로 있다가 강등되어 내려온 선령이라는 자리가 영 탐탁치 않았는데 두 십대 영혼들을 지켜보자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 같다.

왜 저를 영혼 사냥꾼이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호랑이에게 쫓겨 본 사슴은 압니다. 자신이 얼마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가는 다리에서 얼마나 강한 함이 솟구쳐 나오는지를, 때로는 위기가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니까요. (p. 193)

선령, 한수리, 은류 이 3명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 차차 드러나는 그들의 삶과 속내가 드라마틱하게 순식간에 읽혀지는 소설이었다.

서평단 미션으로 가상 캐스팅도 해보고 나니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도 같다. 이 재미난 작품을 쓴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겉표지의 해시태그 힌트로 보건데...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 아니면 [페이지터너]의 박혜련 작가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다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박혜련 작가?! ^^) 10월1일에 공개된다고 하니,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으로 며칠을 기다려보련다. ㅎㅎ


ps. 10월1일 블라인드에 가려졌던 작가가 밝혀졌다!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였다!! w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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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오디세이 - 돈과 인간 그리고 은행의 역사, 개정판
차현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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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탄생부터 금융의 미래까지

중앙은행 베테랑 뱅커가 들려주는 금융 이야기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종류의 역사책을 찾아 읽는 편이다. 학문적으로 탐구한 책도 있고 대중적으로 쉽게 풀이한 책도 있고... 세상엔 어찌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은지 ㅎㅎ 여하튼, 그런 다양한 역사서들을 읽다보니 어떤 주제에 따라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비전문적 역사글쟁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대다수가 외국저자들이란 것이 못내 아쉬웠었는데 금융 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국내 저자의 흥미로운 역사서가 새로 나왔기에 궁금했다. 이력을 보니 저자는 한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 금융계의 산증인 같았다.

초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대한 도전이다. 교과서에는 중앙은행과 은행과 돈을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한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묘사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폐는 은행과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부터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 교과서들은 허구다.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발전해 온 금융경제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정관념이나 도그마들을 배제한 채 돈, 은행, 중아은행의 원형질을 하나하나 벗겨야 한다. 그러려면 금융을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되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임은 물론이다. 특히 역사 지식의 중요성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하는 데 필요한 해부학적 지식의 중요성에 맞먹는다. (p. 5) -들어가는 말 中-

모든 학문의 기초는 역사적 이해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돈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라면서 역사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기본 마인드에 공감했다. 10년만의 개정증보판이라며 본문내용을 전면 재검토 및 수정보완했다는 점에서도 기대감을 품게 했다. 돈/ 은행 / 사람 이라는 3부작의 흐름은 때론 역사적으로 때론 사건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 많았다.

'서양에서 돈은 '경제적 가치를 표현하는 물건'이라고 본다. 반면 동양에서는 '다른 물건의 가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또는 최고권력자)들이 정한 약속'이라고 본다. (p. 41)' 처럼 돈이라는 개념의 시작부터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도 좋았고 '전 세계적으로 주화의 앞면을 '헤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거기에 보통 군주의 얼굴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건물과 달리 돈에서는 '앞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p. 64)' 라던가 '달러는 아메리카 대륙 여러 곳에서 공통으로 쓰는, 국적없는 계산단위가 되어버렸다. 프랑Franc, 마르크Mark 드오가 달리 이탈리아의 리라lira나 달러dollar를 소문자로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70)' 또는 '존 로에 대한 증오감이 얼마나 컸던지, 그가 썼던 '은행'이라는 말도 프랑스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오늘날 프랑스계 은행들이 은행이라는 말보다 금고, 신용, 협회, 계산소와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존 로의 후유증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금융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p. 181)' 등의 상식을 넓혀주는 이야기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폐의 도안에 아주 관심이 많다. 등장인물과 글자의 모양에 관해서는 수많은 의견이 따라붙는다. 반면 역사의식과 국가관은 없다. (p. 74)' 라던가 '금융의 역사나 생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나라 공무원은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다. (p. 252)' 혹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과연 은행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공무원보다 은행업을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 (p. 256)' 등의 표현은 좀 위험한 시각이 아닐까 싶었는데, '하지만 재무부와 조선은행 직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큰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중략) 외환보유액이 세계8위 수준에 이른 이 즈음에 여전히 양기관이 사소한 다툼을 계속한다면, 최빈국 대통력 이승만이 지하에서 울지 않을까? (p. 380)' 에서 할말을 잃었다.

게다가 '결코 신성하지 않았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소단원에서는 역사적 상식에 좀 어긋나는 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황 레오3세는 크리스마스 미사에 참석한 카롤루스를 일으켜 세운 뒤 그를 '로마제국의 황제'라고 불렀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카롤루스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사전 밀약의 결과였다. 카롤루스가 일개 왕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와 동격이 되는 것이 그 자신과 교황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교유착의 결과로 서기 800년 즉흥적으로 출현한 것이 신성로마제국이었다. 별로 신성하지 않았으며, 로마와 관계없는 프랑크족의 왕국이었다. (p. 100~101)' 는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대부분의 역사서나 검색내용에서 서기800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이는 샤를마뉴대제이고(라틴어식으로 읽으면 카롤루스, 독일식으로 읽으면 카를,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샤를 인데 다 같은 이름의 동일인이다) 그가 세운 나라는 프랑크왕국으로 (지금의 프랑스영역)칭해진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은 962년 오토대제 등극이후 지금의 독일영역을 가리킨다. 물론, 일부 역사학자들은 샤를마뉴 때부터를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검색으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대부분 샤를마뉴대제-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오토대제 다. 역사적 이해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역사적 지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금융의 역사에 대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길 바랬지만 초반에 역사를 두루 살펴보던 방향은 점점 더 미국은행의 역사로 집중되고 있었다. 더구나 책의 마지막 장을 전범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는 하나 히틀러의 은행가로서 나치에 부역했던 샤흐트의 천재적 능력에 감복하며 '샤흐트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리고 경제관료서 그 모범을 보였다. (중략)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능수능란한 사람, 어디 없을까? (p. 411)' 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며 이 책이 갖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때 금융에 대한 관심은 그 어떤 때보다 높아졌지 않을까 싶다. 많은 이들이 책보다는 영상으로 관련 정보들을 얻고 있는 시기에 한 경제유투브에서 추천된 이 책이 다시 회자되고 증보판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책의 활성화 측면에서는 선순환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쉽고 편하게 읽히는 책속에 깃든 편향적 프레임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로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가치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읽어나간다면 그동안 잘 몰랐던 경제적 상식들을 역사적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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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아무아 -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
아비 로브 지음, 강세중 옮김, 우종학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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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하버드대 천문학부 학장이 밝혀낸

외계 지성체가 보내온 첫 번째 신호 '오무아무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그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를 보고 우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 새롭게 눈을 떴었다. 우주여행 이라던가 외계인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은 다 너무나 상업적이고 너무나 왜곡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됐었다. 하지만 50여년 전의 과학책인 <코스모스> 이후 또다시 그런 순수한 열망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그러다 <오무아무아> 를 만났고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큰 질문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우리 뿐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엔 좀더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들을 토대로 새로운 답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심오한 질문들 가운데 분명 가장 중요한 질문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외톨이인가? 시대에 따라 이 질문의 표현은 달라져 왔다. 이 지구 생명체가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일까? 이 광대한 시공간에서 오직 인간만이 유일한 지성체인가? 이 질문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팽창하는 공간 전부와 우주의 생애 주기 전체를 통틀어 현재 또는 이전에 우리와 같은 지성적 문명이 별들을 탐험하고 그 노력의 증거를 남겨 놓았을까?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예'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2017년에 우리 태양계를 통과했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 증거를 살펴보고, 그 가설을 시험한다. (p. 18) -들어가면서 中-

과학 특히 천문학 정보에 관심을 가져왔던 이라면 2017년의 기사를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천문학적 논리를 흔드는 변칙적 운동을 보여준 무언가가 태양계과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 무언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저자는 가장 센세이셔널한 가설을 세우고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과학계의 태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면서 이 책이 단순히 이 무언가의 존재를 밝히는 의도로만 쓰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실수는 그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p. 28)' 라는 저자의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울림을 준다.

우리가 그 존재를 알기 오래전부터, 그 물체는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겨우 25광년 떨어진 항성인 베가 방향으로부터 온 그 물체는 2017년 9월6일 우리 태양계 안의 모든 행성이 태양 둘레를 도는 궤도면과 마주쳤다. 그러나 극단적인 쌍곡선 궤적 덕분에 그 물체는 태양계에 머물지 않고 그저 지나치기만 할 것이 확실했다. (p. 30) 그 물체가 성간 우주로 빠르게 되돌아갈 때까지 인류는 그 물체의 방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물체가 도착한 것을 의식하지 못했고 이름도 붙이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가 무언가가 알았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 물체가 무엇이었는지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중략) 그리고 이제 우리 과학계와 대중에게는 그냥 오무아무아 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 물체를 포착한 망원경의 지리적 위치가 반영된 하와이식 이름이다. (p. 31) 하와이어 오무아무아 를 번역하면 대략 '탐색자' 라는 뜻이다. 국제 천문 연맹은 이 천체의 공식 명칭을 발표하면서 오무아무아를 '먼 곳에서 온 첫 번째 전령사' 라고 약간 다르게 정의했다. 어느 쪽이든 그 이름은 그 천체가 다른 것들보다 먼저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암시한다. (p. 34)

어느새 왔다간줄도 몰랐던 이 천체는 쉬지않고 관측하고 기록하는 망원경의 데이터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알려졌다. 남겨진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천체임이 분명했다. 이 천체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종교적 색이 뚜렷한 이스라엘에서 성장하면서 실존주의 철학에 빠졌던 저자가 천문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이 '오무아무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자의 그동안의 연구 업적은 오무아무아를 증명해내는 논리적 가설을 세우는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때로는 거의 사고처럼 유난히 희귀하고 특별한 무언가와 마주칠 수 있다. 인생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을 얼마나 똑똑히 보느냐에 달려 있다. (p. 65)' 저자는 다른 그 어떤 과학자보다 더 똑똑히 희귀한 천체를 바라보았다.

천체 물리학자의 탐정 소설을 움직이는 것은 실험이나 관측 데이터에서 발견한 변칙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 변칙이란 기대한 것과 다르고 우리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거를 말한다. 변칙을 발견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대안적 설명을 제안한 다음, 정확한 해석이 나올 때까지 새로운 증거에 기초하여 하나씩 배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p. 69) 어느 한쪽이 자명한 증거를 제시할 때까지 이러한 거르기 과정에서 배타적 설명들과 그 옹호자들이 서로 다행하며 학계 전체가 분열되거나 충돌할 수 있다. 오무아무아에 대한 논쟁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중략) 아마도 가장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선택은 오무아무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더 볼 것도 없고 계속 볼 시간도 없고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을 모두 알았으니, 그냥 과거의 선입견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불행히도 이 글을 쓰는 현재, 많은 과학자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p. 70)

하지만 저자는 이 천체의 설명되어지지 않는 변칙에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과학 기득권자들과 대립하는 가설을 세웠다. 이 책의 표지와 77p의 그림을 보면 이 모양이 기존 대다수 과학자들의 논리를 적용시킨 천체 모양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데이터가 허용하는 모든 밝기 모형을 평가한 결과 오무아무아가 시가 모양일 가능성은 적으며, 원반 모양일 가능성은 약 91% (p. 98)' 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시가 모양이라기 보다는 팬케이크 모양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는 오마우무아를 알기 전 진행했던 '스타샷 이니셔티브' 활동과도 연결되어 있었기에 빠르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이 활동에는 사망전 짧은 시기이긴 했지만 스티븐 호킹도 참여했었다.

증거들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오무아무아의 확인된 변칙 중 처음 세 개, 다시 말해 꼬리 없는 특이한 궤도, 극단적인 모양, 인류가 목록화한 모든 다른 물체들과 통계적으로 크게 다른 광도를 확신하고 선언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오무아무아의 미스터리는 궤도, 모양, 반사율 이 세가지 특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특성만으로도 우리의 첫 번째 성간 방문자가 지금까지 우리가 태양계를 통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암석 소행성과 얼음 혜성을 닮았을 것이라는, 이해는 가지만 순진한 기대를 분명히 거부한다. (p. 121)

저자는 '빛의 돛 가설'을 세웠고 증명한다. 이 가설은 대다수 과학자들이 설명하려고 하는 기존의 논리들이 꿰어맞추지 못한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메꿀 수 있었다.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이건만 기존의 관행적 논리를 고수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참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 과학계가 합의한 오무아무아 모양은 시가형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무아무아가 시가 모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맞닥뜨린 데이터에 따르면 오무아무아는 LSR에서 반짝거리던 얇은 원반이었다. 그리고 태양의 인력과 마주쳤을 때 눈에 보이는 가스 분출이나 붕괴 없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 형성된 궤도에서 벗어나는 편차를 보였다. 이 데이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오무아무아는 통계적으로 엄청난 아웃라이어였다. (p. 157)' 간단히 말하자면 오무아무아는 자연적 암석이나 가스가 아니라 인공적 추진체 라는 말이다.


외계 지성체를 찾는 과정에서 이 좁은 틈새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발 디딜 곳을 찾고 있으며, 그들을 지지해야 할 더 넓은 과학계는 제 할일을 하지 않고 있다. 세티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제한된 다른 경계들에서도 인문 과학은 아직 더 성숙해야 한다. (p. 169) 지난 수십 년 동안 외계 생명체 탐색이 적잖은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도 이론도 자금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시도도 하지 않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과학자들과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계속해서 충격을 받아 왔다. (p. 171)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얘기하면서도 책속에 단 한번도 칼 세이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좀 의아했었다. 무한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지구인 뿐이라면 너무 공간낭비 아니냐는 명언을 내게 알려준 칼세이건 이었기에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주장하는 저자라면 당연히 칼 세이건을 등장시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티의 활동에 대한 저자의 문장들을 읽으며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 수 있었다. 저자는 외계인에 대한 희박한 연구가 세티를 중심으로 한 것이 거의 전부 라며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초기 세티 연구자들이 스스로 무덤을 판 측면도 없지 않았다. 거의 배타적으로 전파와 광신호를 찾는 데만 초점을 맞춘 덕분에 학계와 대중은 그러한 탐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프로젝트가 자금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편협한 생각에 갇히게 되었다. (p. 169)' 라며 세티에서의 연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세티는 칼 세이건이 주도적으로 세운 연구소다.

오무아무아가 외계에서 설계된 존재인지를 공정하게 고려하는 데 있어 걸림돌은 증거나 그 증거의 수집 방법 또는 가설의 이면에 있는 추론이 아니다. 가장 먼저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증거와 그에 따르는 추론을 꺼리고 간과하는 태도다. 전달하는 내용이나 전달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든 듣기를 꺼리는 수신자와 부딪치면 증거와 추론으로도 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p. 174)

저자는 천문학의 연구들이 대부분 ' '인기 있지만 증명되지 않은' 이론의 옹호자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p. 175)'다고 '연구원들은 그 직업의 안정성을 활용하는 대신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로 구성된 메아리 방을 만들어 과학적 영향력과 명성을 증폭사는 데 쓰(p. 180)'고 있다고 개탄한다. '각각의 사례에서 한 단계 도약을 가로막는 것은 이용 가능한 기술의 부족이나 상상력의 부재 또는 시험 가능한 데이터의 부족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게이트 키퍼들의 오만이었다. (p. 188)' 흔한 말로 골기퍼 있다고 골 못 넣냐 라는 말이 있지만 과학계에서는 잘 안통하나 보다. 기존 논리의 문지기 과학자들에 의해 저자의 새로운 논리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하지만 저자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가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자손들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이다. 오무아무아의 이색적인 특징에 직면했을 때 자연에서 발생했다는 가설만 고집해서 통계적인 희박함을 감수한다면, 즉 셜록 홈즈가 말한 것처럼 수집된 데이터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단순히 문명의 다음 도약을 지연시키는 것보다 더 해로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은 문명처럼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에 부표를 띄운다는 정도의 명함을 내밀 만큼 발전하지도 못한 채 스러지는 문명이 될 수도 있다. (p. 225)

저자는 '우주 고고학 (p. 229)' 이라는 분야가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우주를 연구한다는 것은 미래를 연구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것도 같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한 빛이기에 우주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러한 과거의 흔적을 찾는 것이지 않나?! 저자가 바라는 우주 고고학 이라는 분야가 꼭 생기길 응원해본다.

자의식이 있는 생명의 공통적인 상황, 즉 왜 그러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태어나고 죽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카뮈는 믿었다. 나는 우리처럼 지적 한계에 얽매여 있는 다른 자의식이 있는 존재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생명은 부조리하다. 부조리에 직면해서 거만하게 굴기는 어렵다. 겸손이 더 적절한 자세다. 인류가 겨잉로운 것에 직면했을 때 겸손을 기른다는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할수록 외계 문명으로부터 같은 태도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더 많아지게 된다. (p. 269)

'과학계의 압도적 다수는 오무아무아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체이며 특이하다 못해 이색적인 혜성이지만, 모든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단지 성간 암석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오무아무아는 편차를 보였다. (p. 296) 오무아무아에서 관찰한 모든 특성을 가진 물체를 그에 대한 설명까지 하나로 잇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선은 그것이 제조되었다는 가설이다. 대부분의 과학계가 이 가설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오무아무아를 만든 것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문명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발견 중 하나, 즉 우주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지능이 아니라는 발견이 우리 태양계를 통과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강요한다. 오무아무아에 대한 내 가설을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도 겸손이 필요하다. (p. 297)' 저자는 기존의 과학계가 고립된 상아탑에 있는 엘리트 행세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과학자의 연구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면에서도 과학의 정보는 대중에게 알려지고 이해되어져야 할 것을 주장한다. 무엇보다 외계 생명체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가설은 과학적 지식이 빈약한 내가 읽기에도 무척 타당해 보였고 과학계의 태도는 갈릴레이 시대를 연상케하는 아집이 보였다. 하지만 읽는 이에 따라 저자의 가설은 찬반 논란을 불어일으킬 것이다. 과학자가 아니어도 많은 대중이 이 책을 통해 오무아무아 에 대해 생각해보고 저자의 논리를 따져보길 권한다. 그리고 오무아무아의 상상도 두 개 중 어느것을 선택할지 골라보길 바란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발견할 우주의 지평선은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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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나만 그래? - 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 26 쏠쏠 시리즈 1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지음 / 콜라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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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

잘난년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위하여!

회사생활 접은지가 언제인데 '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26' 이 내게 필요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조직생활이란 것이 회사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내겐 언니들이 아닐것 같긴 하지만 여하튼) 언.니.들이 알려주는 노하우를 여지껏 접해보지 못했었기에 궁금했다. 자기만의 비밀을 꽁꽁 감춰둔 언니들이 아니라 대놓고 까놓고 알려주는 언니들의 노하우를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명에는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이라고 써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분위기가 어떤 것일지 아마 짐작이 갈것 같다. 내 생각엔 슬기로운 00생활 드라마 딱 그느낌 맞다.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도 유쾌하고 따듯하게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

저자들은 직장생활 20년차부터 7년차까지, 다양한 직급의 여성 6인으로 구성된 팟캐스트 팀이라고 한다. 2017년부터 시작한 팟캐스트가 어느덧 4년째 직장인들의 다양한 사연을 받아 상담을 진행해왔다고 하니 그 사연만으로도 이야깃감이 많았겠지만 남들 얘기보다 본인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냈기에 그 솔직함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주변에 열 명이 있다면, 한 명은 나를 좋아하고, 일곱은 무관심하고, 둘은 나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회사에는 너무나 많은 협업부서가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게 다반사다. 일이란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하다보면 필요에 따라서 당연히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내가 신경쓴 것은 열 명의 사람 그 누구에게서도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한소리를 듣는 결과를 낳았다. (p. 29)

책은 직장생활에서 한번쯤 겪었음직한 상황인 26가지의 질문에 대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위 내용에서 느껴지다시피 굳이 직장생활에 적용시키지 않아도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 활용법'이 안내되어 있지만 이 활용법은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유용한 활용법이다. 나같은 경우엔 직장 바깥 사람으로서 하지만 꼭 직장이 아니어도 사람이 모이면 하게되는것이 사회생활이니 그런 사회적 관계에 반영해 가며 읽게 되었다. 저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듯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자들은 이 사회와 조직, 어디에나 있고 모두 연결되어 있다 (p. 9)' 는 모토는 어디에든 적용가능하다.

'N잡러' '다능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시대다. 전자책을 내면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케터나 큐레이터가 될 수도 있다. 클래스101이나 틸잉에서 강의를 열어 강사가 되는 것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창작자가 되는 것도, 북클럽을 통해 커뮤니티 운영자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각종 플랫폼의 범람으로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길이 많아졌다. 회사가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회사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면 된다. (p. 89)

나이들어서 직업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고 있다. 뭐가 될지 모르지만 뭐가 되기나 할런지 모르지만 여하튼 꾸준히 읽고 쓴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그 변화를 다 알지도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눈팅해가며 일단 지금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고 있다. 비교적 정적인 내가 봤을때 이 책 저자들의 열정이 참 대단하다 싶다. 부장, 차장, 과장, 대리, 사원, 프리랜서 로 나이도 직급도 직업도 모두 다른 여성들이 모여 가감없이 직장생활에 대하여 만담 대잔치를 열고 있는 현장이 눈에 그려지면서 그들의 열띤 목소리가 책속에서 들리는 듯 했다. 그들의 모토에 응원의 박수를 살짝 보태며 속으로 함께 외쳐 본다.

잘난년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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