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아무아 -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
아비 로브 지음, 강세중 옮김, 우종학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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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천문학자이자 하버드대 천문학부 학장이 밝혀낸

외계 지성체가 보내온 첫 번째 신호 '오무아무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그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를 보고 우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 새롭게 눈을 떴었다. 우주여행 이라던가 외계인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은 다 너무나 상업적이고 너무나 왜곡된 것이었음을 생각하게 됐었다. 하지만 50여년 전의 과학책인 <코스모스> 이후 또다시 그런 순수한 열망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그러다 <오무아무아> 를 만났고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큰 질문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우리 뿐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엔 좀더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들을 토대로 새로운 답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심오한 질문들 가운데 분명 가장 중요한 질문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외톨이인가? 시대에 따라 이 질문의 표현은 달라져 왔다. 이 지구 생명체가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일까? 이 광대한 시공간에서 오직 인간만이 유일한 지성체인가? 이 질문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팽창하는 공간 전부와 우주의 생애 주기 전체를 통틀어 현재 또는 이전에 우리와 같은 지성적 문명이 별들을 탐험하고 그 노력의 증거를 남겨 놓았을까?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예'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2017년에 우리 태양계를 통과했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 증거를 살펴보고, 그 가설을 시험한다. (p. 18) -들어가면서 中-

과학 특히 천문학 정보에 관심을 가져왔던 이라면 2017년의 기사를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천문학적 논리를 흔드는 변칙적 운동을 보여준 무언가가 태양계과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 무언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저자는 가장 센세이셔널한 가설을 세우고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과학계의 태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면서 이 책이 단순히 이 무언가의 존재를 밝히는 의도로만 쓰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실수는 그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p. 28)' 라는 저자의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울림을 준다.

우리가 그 존재를 알기 오래전부터, 그 물체는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겨우 25광년 떨어진 항성인 베가 방향으로부터 온 그 물체는 2017년 9월6일 우리 태양계 안의 모든 행성이 태양 둘레를 도는 궤도면과 마주쳤다. 그러나 극단적인 쌍곡선 궤적 덕분에 그 물체는 태양계에 머물지 않고 그저 지나치기만 할 것이 확실했다. (p. 30) 그 물체가 성간 우주로 빠르게 되돌아갈 때까지 인류는 그 물체의 방문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물체가 도착한 것을 의식하지 못했고 이름도 붙이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가 무언가가 알았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 물체가 무엇이었는지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중략) 그리고 이제 우리 과학계와 대중에게는 그냥 오무아무아 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 물체를 포착한 망원경의 지리적 위치가 반영된 하와이식 이름이다. (p. 31) 하와이어 오무아무아 를 번역하면 대략 '탐색자' 라는 뜻이다. 국제 천문 연맹은 이 천체의 공식 명칭을 발표하면서 오무아무아를 '먼 곳에서 온 첫 번째 전령사' 라고 약간 다르게 정의했다. 어느 쪽이든 그 이름은 그 천체가 다른 것들보다 먼저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암시한다. (p. 34)

어느새 왔다간줄도 몰랐던 이 천체는 쉬지않고 관측하고 기록하는 망원경의 데이터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알려졌다. 남겨진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천체임이 분명했다. 이 천체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종교적 색이 뚜렷한 이스라엘에서 성장하면서 실존주의 철학에 빠졌던 저자가 천문학을 연구하게 된 것은 이 '오무아무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자의 그동안의 연구 업적은 오무아무아를 증명해내는 논리적 가설을 세우는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때로는 거의 사고처럼 유난히 희귀하고 특별한 무언가와 마주칠 수 있다. 인생은 자기 앞에 놓인 것을 얼마나 똑똑히 보느냐에 달려 있다. (p. 65)' 저자는 다른 그 어떤 과학자보다 더 똑똑히 희귀한 천체를 바라보았다.

천체 물리학자의 탐정 소설을 움직이는 것은 실험이나 관측 데이터에서 발견한 변칙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 변칙이란 기대한 것과 다르고 우리의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거를 말한다. 변칙을 발견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대안적 설명을 제안한 다음, 정확한 해석이 나올 때까지 새로운 증거에 기초하여 하나씩 배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p. 69) 어느 한쪽이 자명한 증거를 제시할 때까지 이러한 거르기 과정에서 배타적 설명들과 그 옹호자들이 서로 다행하며 학계 전체가 분열되거나 충돌할 수 있다. 오무아무아에 대한 논쟁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중략) 아마도 가장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선택은 오무아무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더 볼 것도 없고 계속 볼 시간도 없고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을 모두 알았으니, 그냥 과거의 선입견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불행히도 이 글을 쓰는 현재, 많은 과학자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p. 70)

하지만 저자는 이 천체의 설명되어지지 않는 변칙에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과학 기득권자들과 대립하는 가설을 세웠다. 이 책의 표지와 77p의 그림을 보면 이 모양이 기존 대다수 과학자들의 논리를 적용시킨 천체 모양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데이터가 허용하는 모든 밝기 모형을 평가한 결과 오무아무아가 시가 모양일 가능성은 적으며, 원반 모양일 가능성은 약 91% (p. 98)' 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시가 모양이라기 보다는 팬케이크 모양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러한 저자의 논리는 오마우무아를 알기 전 진행했던 '스타샷 이니셔티브' 활동과도 연결되어 있었기에 빠르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이 활동에는 사망전 짧은 시기이긴 했지만 스티븐 호킹도 참여했었다.

증거들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오무아무아의 확인된 변칙 중 처음 세 개, 다시 말해 꼬리 없는 특이한 궤도, 극단적인 모양, 인류가 목록화한 모든 다른 물체들과 통계적으로 크게 다른 광도를 확신하고 선언할 수 있다. (중략)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오무아무아의 미스터리는 궤도, 모양, 반사율 이 세가지 특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특성만으로도 우리의 첫 번째 성간 방문자가 지금까지 우리가 태양계를 통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암석 소행성과 얼음 혜성을 닮았을 것이라는, 이해는 가지만 순진한 기대를 분명히 거부한다. (p. 121)

저자는 '빛의 돛 가설'을 세웠고 증명한다. 이 가설은 대다수 과학자들이 설명하려고 하는 기존의 논리들이 꿰어맞추지 못한 부분들을 논리적으로 메꿀 수 있었다.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이건만 기존의 관행적 논리를 고수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참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 과학계가 합의한 오무아무아 모양은 시가형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무아무아가 시가 모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맞닥뜨린 데이터에 따르면 오무아무아는 LSR에서 반짝거리던 얇은 원반이었다. 그리고 태양의 인력과 마주쳤을 때 눈에 보이는 가스 분출이나 붕괴 없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 형성된 궤도에서 벗어나는 편차를 보였다. 이 데이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오무아무아는 통계적으로 엄청난 아웃라이어였다. (p. 157)' 간단히 말하자면 오무아무아는 자연적 암석이나 가스가 아니라 인공적 추진체 라는 말이다.


외계 지성체를 찾는 과정에서 이 좁은 틈새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발 디딜 곳을 찾고 있으며, 그들을 지지해야 할 더 넓은 과학계는 제 할일을 하지 않고 있다. 세티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제한된 다른 경계들에서도 인문 과학은 아직 더 성숙해야 한다. (p. 169) 지난 수십 년 동안 외계 생명체 탐색이 적잖은 격려를 받았다. 그런데도 이론도 자금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시도도 하지 않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과학자들과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계속해서 충격을 받아 왔다. (p. 171)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얘기하면서도 책속에 단 한번도 칼 세이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좀 의아했었다. 무한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지구인 뿐이라면 너무 공간낭비 아니냐는 명언을 내게 알려준 칼세이건 이었기에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주장하는 저자라면 당연히 칼 세이건을 등장시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티의 활동에 대한 저자의 문장들을 읽으며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 수 있었다. 저자는 외계인에 대한 희박한 연구가 세티를 중심으로 한 것이 거의 전부 라며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초기 세티 연구자들이 스스로 무덤을 판 측면도 없지 않았다. 거의 배타적으로 전파와 광신호를 찾는 데만 초점을 맞춘 덕분에 학계와 대중은 그러한 탐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프로젝트가 자금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편협한 생각에 갇히게 되었다. (p. 169)' 라며 세티에서의 연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세티는 칼 세이건이 주도적으로 세운 연구소다.

오무아무아가 외계에서 설계된 존재인지를 공정하게 고려하는 데 있어 걸림돌은 증거나 그 증거의 수집 방법 또는 가설의 이면에 있는 추론이 아니다. 가장 먼저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증거와 그에 따르는 추론을 꺼리고 간과하는 태도다. 전달하는 내용이나 전달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문제가 있든 듣기를 꺼리는 수신자와 부딪치면 증거와 추론으로도 넘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p. 174)

저자는 천문학의 연구들이 대부분 ' '인기 있지만 증명되지 않은' 이론의 옹호자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p. 175)'다고 '연구원들은 그 직업의 안정성을 활용하는 대신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로 구성된 메아리 방을 만들어 과학적 영향력과 명성을 증폭사는 데 쓰(p. 180)'고 있다고 개탄한다. '각각의 사례에서 한 단계 도약을 가로막는 것은 이용 가능한 기술의 부족이나 상상력의 부재 또는 시험 가능한 데이터의 부족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게이트 키퍼들의 오만이었다. (p. 188)' 흔한 말로 골기퍼 있다고 골 못 넣냐 라는 말이 있지만 과학계에서는 잘 안통하나 보다. 기존 논리의 문지기 과학자들에 의해 저자의 새로운 논리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하지만 저자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가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 자손들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이다. 오무아무아의 이색적인 특징에 직면했을 때 자연에서 발생했다는 가설만 고집해서 통계적인 희박함을 감수한다면, 즉 셜록 홈즈가 말한 것처럼 수집된 데이터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단순히 문명의 다음 도약을 지연시키는 것보다 더 해로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은 문명처럼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에 부표를 띄운다는 정도의 명함을 내밀 만큼 발전하지도 못한 채 스러지는 문명이 될 수도 있다. (p. 225)

저자는 '우주 고고학 (p. 229)' 이라는 분야가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우주를 연구한다는 것은 미래를 연구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것도 같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한 빛이기에 우주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러한 과거의 흔적을 찾는 것이지 않나?! 저자가 바라는 우주 고고학 이라는 분야가 꼭 생기길 응원해본다.

자의식이 있는 생명의 공통적인 상황, 즉 왜 그러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태어나고 죽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카뮈는 믿었다. 나는 우리처럼 지적 한계에 얽매여 있는 다른 자의식이 있는 존재들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생명은 부조리하다. 부조리에 직면해서 거만하게 굴기는 어렵다. 겸손이 더 적절한 자세다. 인류가 겨잉로운 것에 직면했을 때 겸손을 기른다는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할수록 외계 문명으로부터 같은 태도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더 많아지게 된다. (p. 269)

'과학계의 압도적 다수는 오무아무아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체이며 특이하다 못해 이색적인 혜성이지만, 모든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단지 성간 암석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오무아무아는 편차를 보였다. (p. 296) 오무아무아에서 관찰한 모든 특성을 가진 물체를 그에 대한 설명까지 하나로 잇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선은 그것이 제조되었다는 가설이다. 대부분의 과학계가 이 가설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오무아무아를 만든 것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문명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발견 중 하나, 즉 우주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지능이 아니라는 발견이 우리 태양계를 통과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강요한다. 오무아무아에 대한 내 가설을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도 겸손이 필요하다. (p. 297)' 저자는 기존의 과학계가 고립된 상아탑에 있는 엘리트 행세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과학자의 연구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면에서도 과학의 정보는 대중에게 알려지고 이해되어져야 할 것을 주장한다. 무엇보다 외계 생명체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가설은 과학적 지식이 빈약한 내가 읽기에도 무척 타당해 보였고 과학계의 태도는 갈릴레이 시대를 연상케하는 아집이 보였다. 하지만 읽는 이에 따라 저자의 가설은 찬반 논란을 불어일으킬 것이다. 과학자가 아니어도 많은 대중이 이 책을 통해 오무아무아 에 대해 생각해보고 저자의 논리를 따져보길 권한다. 그리고 오무아무아의 상상도 두 개 중 어느것을 선택할지 골라보길 바란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발견할 우주의 지평선은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p.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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