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오디세이 - 돈과 인간 그리고 은행의 역사, 개정판
차현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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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탄생부터 금융의 미래까지

중앙은행 베테랑 뱅커가 들려주는 금융 이야기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다양한 종류의 역사책을 찾아 읽는 편이다. 학문적으로 탐구한 책도 있고 대중적으로 쉽게 풀이한 책도 있고... 세상엔 어찌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은지 ㅎㅎ 여하튼, 그런 다양한 역사서들을 읽다보니 어떤 주제에 따라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비전문적 역사글쟁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대다수가 외국저자들이란 것이 못내 아쉬웠었는데 금융 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국내 저자의 흥미로운 역사서가 새로 나왔기에 궁금했다. 이력을 보니 저자는 한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국내 금융계의 산증인 같았다.

초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대한 도전이다. 교과서에는 중앙은행과 은행과 돈을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한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묘사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폐는 은행과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부터 존재했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 교과서들은 허구다. 우연과 필연이 뒤섞여 발전해 온 금융경제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고정관념이나 도그마들을 배제한 채 돈, 은행, 중아은행의 원형질을 하나하나 벗겨야 한다. 그러려면 금융을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되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임은 물론이다. 특히 역사 지식의 중요성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하는 데 필요한 해부학적 지식의 중요성에 맞먹는다. (p. 5) -들어가는 말 中-

모든 학문의 기초는 역사적 이해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돈의 역사가 곧 인간의 역사'라면서 역사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의 기본 마인드에 공감했다. 10년만의 개정증보판이라며 본문내용을 전면 재검토 및 수정보완했다는 점에서도 기대감을 품게 했다. 돈/ 은행 / 사람 이라는 3부작의 흐름은 때론 역사적으로 때론 사건적으로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 많았다.

'서양에서 돈은 '경제적 가치를 표현하는 물건'이라고 본다. 반면 동양에서는 '다른 물건의 가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또는 최고권력자)들이 정한 약속'이라고 본다. (p. 41)' 처럼 돈이라는 개념의 시작부터 동서양을 넘나들며 역사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도 좋았고 '전 세계적으로 주화의 앞면을 '헤드'라고 부르는 이유는 거기에 보통 군주의 얼굴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건물과 달리 돈에서는 '앞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p. 64)' 라던가 '달러는 아메리카 대륙 여러 곳에서 공통으로 쓰는, 국적없는 계산단위가 되어버렸다. 프랑Franc, 마르크Mark 드오가 달리 이탈리아의 리라lira나 달러dollar를 소문자로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70)' 또는 '존 로에 대한 증오감이 얼마나 컸던지, 그가 썼던 '은행'이라는 말도 프랑스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오늘날 프랑스계 은행들이 은행이라는 말보다 금고, 신용, 협회, 계산소와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존 로의 후유증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금융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p. 181)' 등의 상식을 넓혀주는 이야기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폐의 도안에 아주 관심이 많다. 등장인물과 글자의 모양에 관해서는 수많은 의견이 따라붙는다. 반면 역사의식과 국가관은 없다. (p. 74)' 라던가 '금융의 역사나 생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나라 공무원은 모른다. 부끄러운 일이다. (p. 252)' 혹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과연 은행업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공무원보다 은행업을 잘 안다고 하기 어렵다. (p. 256)' 등의 표현은 좀 위험한 시각이 아닐까 싶었는데, '하지만 재무부와 조선은행 직원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큰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중략) 외환보유액이 세계8위 수준에 이른 이 즈음에 여전히 양기관이 사소한 다툼을 계속한다면, 최빈국 대통력 이승만이 지하에서 울지 않을까? (p. 380)' 에서 할말을 잃었다.

게다가 '결코 신성하지 않았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소단원에서는 역사적 상식에 좀 어긋나는 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교황 레오3세는 크리스마스 미사에 참석한 카롤루스를 일으켜 세운 뒤 그를 '로마제국의 황제'라고 불렀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카롤루스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사전 밀약의 결과였다. 카롤루스가 일개 왕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와 동격이 되는 것이 그 자신과 교황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교유착의 결과로 서기 800년 즉흥적으로 출현한 것이 신성로마제국이었다. 별로 신성하지 않았으며, 로마와 관계없는 프랑크족의 왕국이었다. (p. 100~101)' 는 내용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대부분의 역사서나 검색내용에서 서기800년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이는 샤를마뉴대제이고(라틴어식으로 읽으면 카롤루스, 독일식으로 읽으면 카를, 프랑스식으로 읽으면 샤를 인데 다 같은 이름의 동일인이다) 그가 세운 나라는 프랑크왕국으로 (지금의 프랑스영역)칭해진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은 962년 오토대제 등극이후 지금의 독일영역을 가리킨다. 물론, 일부 역사학자들은 샤를마뉴 때부터를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검색으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대부분 샤를마뉴대제-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오토대제 다. 역사적 이해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역사적 지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금융의 역사에 대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길 바랬지만 초반에 역사를 두루 살펴보던 방향은 점점 더 미국은행의 역사로 집중되고 있었다. 더구나 책의 마지막 장을 전범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고는 하나 히틀러의 은행가로서 나치에 부역했던 샤흐트의 천재적 능력에 감복하며 '샤흐트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리고 경제관료서 그 모범을 보였다. (중략)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능수능란한 사람, 어디 없을까? (p. 411)' 로 마무리하는 것을 보며 이 책이 갖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이때 금융에 대한 관심은 그 어떤 때보다 높아졌지 않을까 싶다. 많은 이들이 책보다는 영상으로 관련 정보들을 얻고 있는 시기에 한 경제유투브에서 추천된 이 책이 다시 회자되고 증보판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책의 활성화 측면에서는 선순환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쉽고 편하게 읽히는 책속에 깃든 편향적 프레임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로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가치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읽어나간다면 그동안 잘 몰랐던 경제적 상식들을 역사적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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