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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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둘러봐도 아득한 지평선뿐인 모래사막

그 한가운데 던져진 여인의 시간

<오즈의 의류수거함> 작가의 신작이라기에 처음 호기심이 갔고 심상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표지그림에 두번 호기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좋아해서 종종 읽는 편인데, 자음과모음 에서 나오는 청소년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만족감을 주었기에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 중의 하나로 그 시리즈중에서 <오즈의 의류수거함> 도 읽은 적이 있다. 여고생이 주인공이었던만큼 그리고 청소년문학이었던만큼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가득한 소설이었는데 <화성의 시간>은 청소년문학이 아니라서인지 문체가 달라진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화자의 연령대에 맞춰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표지 그림 속의 여자

표지날개를 보니 작품 제목이 Sundy Head of a young woman 였다. sundy 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 번역하면 젊은 여자의 햇빛 받은 머리 정도가 될 터인데 그림속 여자의 어느 부분은 분명 빛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외로운 분위기라서 그 언밸런스함과 sundy 라는 생경한 단어때문에 표지를 한참이나 쳐다봤더랬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며 그림의 제목과 닿아있는 문장들을 만날때마다 아~! 감탄했다. 이렇게 내용에 적절한 그림을 표지그림으로 쓰다니 역쉬 자음과모음 이랄까. ㅎ

"만에 하나, 여동생이 돈 때문에 매부에게 살해라도 당했다면 피붙이로서 그 한은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p. 17)

형사를 그만두고 사설탐정을 하고 있는 성환에게 특이한 의뢰가 한건 들어온다. 6년전 실종됐다는 여동생을 찾아달라는 오빠의 요청이었는데,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일찍 헤어져 서로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경찰의 방문으로 동생의 실종을 알게 됐다는 오빠는 여동생이 실종만기로 사망선고가 내려지면 매부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게 되는 것을 알게 됐다며 뭔가 이상하다고 사건을 의뢰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혐의없음 이었다.

대하가 없어진 것은 아이 죽음 이후부터다. 성환은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집 안에서 아이만 사라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웃음, 농담, 기대, 계획, 소망 같은 것들도 더불어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을. 어쩌면 아이가 그 모든 것을 거느리고 있었을까. 아니, 아이 자체가 그 모든 것의 총합이었을까. 자식이란 원래 그런 존재일까. (p. 22)

성환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로 잃었다. 성환 부부의 일상은 무너졌고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형사도 그만두었다. 그나마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설탐정 같은 것이었기에 민간조사원 사무실을 차려놓고 도망간 외국인아내를 찾아달라는 것 같은 간단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그만그만 지내고 있던 터였다. 성환은 이번 의뢰는 지금까지의 사건들과 전혀 다를 것임을 직감한다.

"저 디오라마는 언제쯤 완성되나요? 그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군요"

"완성되면 알려드리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p. 44)

사라진 문미옥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만난 이는 남편 오두진이었다. 작은 홍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오두진의 사무실에는 거대한 디오라마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의 취미라는데 그는 전쟁의 폐허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6년간 조금씩 무언가 인내하고 기다리듯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한 100명쯤 되려나?"

"9만5천 명입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수가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가출이나 일시적인 잠적을 뺀, 순수하게 실종된 사람이 9만5천 명잊. 쉽게 말해, 하루에 260명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p. 68, 69)

실종자가 저렇게 많았나? 놀라운 숫자였다. 문미옥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보니 '실종'에 대한 언급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사건들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학교폭력, 가출, 성추행, 탈영, 노숙자, 해외입양 그리고 보험사기

"보험하기의 진짜 문제는 그로 인한 보험금 누수 때문에 일반 보험가입자의 부담이 증가하는 점에 있습니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이 6천억 원 정도인데, 걸리지 않은 액수를 포함하면 4조원에 육박합니다." (p. 100)

문미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성환은 점점 더 문미옥이라는 인물에 대해 끌림을 느낀다.

오두진과 문미옥은 쇼윈도 부부였다. 문미옥에겐 동거남이 있었고 딸도 있었다. 그런데 왜??

성환은 보험수령날짜가 다가오면서 보험사조사원도 뒷조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문미옥의 실체는 무엇인가... 오두진의 그 소름돋게 하는 웃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다 성환은 깨닫게 된다.

그 여자가 살아 있다. 어딘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 (p. 133)

처음 사건을 의뢰받았을 땐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묘한 실종 이었다. 사건은 살인이 아니라 실종이 맞았다. 아니 어쩌면 살인이 될지도 모를 긴박한 실종이라고 해야 하려나...

제가 지금 화성에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지구로부터 약1억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그 행성 말이에요. 이곳은 소피가 살았던 시베리아처럼 몹시 춥고 황량해요. 그리고 저 외엔 아무도 없어요. 벌써 이곳에서 지낸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도무지 외로움과 적막감이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때때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합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아무런 버팀목이 없는 건 아니에요. (p. 169)

문미옥은 화성같은 곳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귀환을 꿈꾸며.

거리에 면한 통유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머리칼이 반짝이며 빛났다. (p. 416)

이 문장 전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오긴 하지만 표지그림에 딱 어울리는 문장은 이 문장이 아닐까 싶었다.

초췌한 얼굴일지언정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머리칼을 볼 수 있듯이 그녀의 피폐한 삶에도 한줄기 햇살이 내리쪼일 수 있을까.

사건을 조사하는 민간조사원 성환은 50대의 수사관으로 짐작되는데 성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은 그래서인지 그나이대의 아저씨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노련하지만 예상되고 느리지만 차근차근 정확히 진행하면서 묵묵하면서도 묵직한 중년남자의 그런 심상함...

그닥 새로운 전개는 아니었지만 한줄한줄 빼놓지 않고 천천히 읽게 되는, 작가가 무척 공들여 쓴 작품임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자기만의 폐허를 목격하기도 하고 화성에 뚝 떨어진듯 고독에 헤매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하늘의 별도 보고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도 볼수 있는 지구에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곤 한다. 그 시간들을 헤쳐나올 수 있게 해준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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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역사학 공부 EBS 30일 인문학 2
김서형 지음 / EBS BOOK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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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에 대한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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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역사학 공부 EBS 30일 인문학 2
김서형 지음 / EBS BOOK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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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키워드로 30일 만에 역사학 훑어보기

저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는 빅히스토리 과목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빅히스토리 전문가이다. 빅히스토리 라는 단어에 히스토리가 들어가긴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넘어 지구의 역사 우주의 역사까지 넓히는 학문이므로 사실 빅히스토리는 과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에, 역사학을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그것도 하루 하나의 키워드로 짧고 굵게 입문시켜준다는데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30명의 역사가들이 역사학을 어떻게 정의하며 역사학의 역할을 무엇으로 보았는지를 설명한다. 이들은 시대와 정치 상황, 문화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사의 본질을 규명했고, 이를 토대로 학문으로서 역사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자칫 딱딱하고 건조할 수 있는 역사학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함께 담아냈다. 역사학을 처음 접하거나 역사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을 통해 역사학의 세계를 가벼운 마음으로 조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p. 9)

저자의 바람처럼 나또한 그러한 기대를 품고 첫장을 펼쳤다. 그런데...

영화<300>으로 시작한 저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중요시했던 것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그리스인의 위대한 업적과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p. 22)' 라고 그 의의를 설명하면서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과거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에 앞서 영화 <300>이 그 '의의'를 현재까지도 편향되게 유지하며 얼마나 역사고증을 왜곡시켰는지 언급했어야 했다. 역사를 왜곡된 프레임으로 보여주는 영화로 역사학을 시작한다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는가... 첫번째 챕터부터 보이는 아쉬움들은 뒤로 가면서 점점 더해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투키디데스의 역사서술이 '근거 있는 사실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요(p. 29)' 하고 '직접 보거나 충분한 근거가 있는 사실만 역사 사실로 취급한다는 그의 원칙으로 인해 역사가의 시각과 관점이 지나치게 편협해졌다는 점(p. 30)' 을 설명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는 온갖 연설문은 사실 그대로 옮겼다기엔 무리가 있다. 그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의 내밀한 대화며 긴 연설들을 투키디데스가 어떻게 곧이곧대로 옮길 수 있었겠는가? 근거 있는 사실만을 다루려 노력한 것은 맞지만 그 원칙으로 역사가의 시각과 관점이 편협해졌다가 보다는 근거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갔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책 자체 보다도 책에 실려 있을 로마사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에 대해선 '로마인들이 되돌아갈 이상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p. 43)' 라고 설명했지만 내가 읽었을땐 그저 게르만족 풍습서에 가까웠을 뿐 그러한 교훈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폴리비오스의 <역사>의 의미는 알겠으나 본 내용에 대해선 소개가 부족했고 사마천의 <사기>가 중국 역사 서술의 전범 이라고 하면서 다른 중국 역사서들의 연계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책들은 <역사>책이이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부터는 역사서라고 하기 애매한 책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인하르트의 <샤를마뉴의 생애> 에서는 본문에서 내내 카룰루스와 신성로마제국 이라는 용어를 쓰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샤를마뉴와 프랑크 왕국으로 바꿔 사용해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베다 베네라빌리스의 <영국민의 교회사> 를 언급하기 위한 단테의 <신곡>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이러한 도입부는 이후로도 계속되어 뱅상 드 보베의 <역사보감>은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잠깐 언급될 뿐이었다.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피렌체 사람들의 역사>가 로마제정 대신 로마공화정을 역사 서술의 중심으로 삼았다거나 플라비오 비온도의 <이틸리아 조망>이 인류 역사를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라는 세 시대로 구분한 것 그리고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가 삼권분립의 기원을 제시했다는 의의 등을 알아채기엔 본문보다 사족이 너무 많았다.

종교서와 역사서를 혼합했듯이 철학서와 역사서를 혼합하기도 하고 다른 분야의 책들과도 혼합되곤 하는데,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대중에게 철학을 알리기 위해 집필한 저서로 (p. 119)' 라고 설명하면서도 역사학서로 끼워넣고, 게오르크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 챕터의 주 내용은 미네르바 부엉이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볼테르의 <루이14세의 시대사>에서 '볼테르는 역사학의 대상을 더는 영웅이나 천재와 같은 특별한 개인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인 인간의 정신 속에서 역사의 분석 대상을 찾는다. (p. 132)' 또한 역사보단 철학에, 드니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제목 그대로 사전에 가까웠는데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할말을 잃었다.

레오폴드 폰 랑케의 <라틴 및 게르만 여러 민족의 역사>챕터에서는 영화 '라쇼몽"과 랑케의 역사학에 대해 설명할뿐 정작 제목으로 삼은 그 책은 무슨 책인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 랑케의 경우 중요한 것은 그의 역사학이 역사라기 보다는 문헌학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었어야 했다. 랑케필법은 유명한 역사기술법이긴 하지만 비판의 요소가 많은 기술법이다.

빌헬름 딜타이의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 에선 그의 생철학이라는 것도 책도 뭔지 잘 모르겠고, 로빈 콜랑우드의 <역사의 인식>에선 미학의 등장을 눈치챌 수 있을 뿐이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영향을 끼쳤다면서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한 순서도 아쉬웠고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펠리페2세시대의 지중해 세계>에선 본 책보다 프로델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을 주로 언급할 거면 <자본론>뒤에 설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가 아닌 정교와 철학 미학을 혼합하면서 주제의 순서까지도 정리되지 않는듯 하더니 에이든 화이트의 <메타 역사>로 '역사가 실제로 픽션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한 역사가가 있다. (p. 201)' 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시대구분에 있어서 역사학계의 큰 변혁을 설명하는가 싶더니,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로 과학사를 등장시키고 이어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의 지리적 역사를 건너 <빅히스토리> 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역사학의 흐름은 저자의 주전공인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융햡시킨 '빅히스토리'를 향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역사학의 계보를 배워보겠다는 나의 기대는 '역사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상호 학제 간 소통과 협력을 토대로 삼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추구하는 융합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역사학인 것이다. (p. 237)' 라고 포장하는 저자의 빅히스토리적 마무리에 여실히 무너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에피소드를 함께 담아냈다고 했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주요 내용이 되고 정작 알아야 할 역사서들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쉽고 또 아쉬웠다. 물론 시대흐름상 알아두면 좋을 역사가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책을 알게 되는 것은 좋았지만 '한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역사학의 역사'라는 홍보문구에 홀딱 빠졌던 나로서는 산만하고 뒤죽박죽인 내용들이 너무 정신없었다. 개인적으로 EBS북을 참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책은 여러모로 좀 아쉽다.

하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학의 핵심적 변화와 발전과정을 핵심키워드에서 뽑아낸 것으로만 간단간단하게 기억한다면 나름 역사학을 가볍게 훑어보며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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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모나 숄레 지음, 유정애 옮김 / 마음서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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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를 위해 싸워야 했지만 결코 꺽을 수 없었던 시대의 저항자들

"마녀들은 지금도 세상 어디에나 있다"

마녀. 원제도 '마녀들' 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내건 이 책은 현재의 페미니스트로서 과거의 마녀 이미지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져왔는지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면서 '그래 그렇다면 나는 마녀다' 라고 냅다 내지르는 책이다.

마녀라는 단어 주변에선 에너지가 들끓는 듯하다. 이 단어는 밑바닥에 있는 어떤 지식, 생명의 힘, 공인된 학문이 무시하고 억압하는 축적된 어떤 경험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녀의 기술은 오직 열정 하나로 자신의 전부를 바치고,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지키며, 평생 쉼 없이 연마해서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개념 또한 맘에 든다. 마녀는 모든 지배와 계약에 얽매임이 없는 여성을 구현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나아가야 할 이상과 길을 보여주는 존재다. (p. 16)

저자가 마녀에 이토록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사실 마녀가 그동안 아니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왜곡되고 핍박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은 일종의 희생제의였고 그 역사를 지금도 똑바로 보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열정적으로 마녀 이미지를 들이대며 '우리가 마녀사냥을 직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바로 그 역사가 우리 세계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이다. (p. 21)' 라며 현재 시점에서 마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마녀 신화는 인쇄술이 탄생한 1453년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했다. 인쇄술은 마녀 신화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p. 22)

마녀는 신화적이거나 맹목적 종교가 가능했던 비이성적 역사시대에나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마녀신화가 널리 퍼지고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는 인쇄술이 탄생하고 르네상스가 유행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지식이 인쇄물로 공유되고 남성들의 전유물화 되어갈 때 '광범하게 남보다 튀는 여성의 등장은 마녀사냥이라는 소명을 불러일으켰다. 이웃 남성에게 말대꾸하거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거나, 성격이 강하거나, 다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성격이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을 불러오기에도 충분했다. (p. 26)' 남성보다 지혜롭고 조금이라도 권력화될 요소를 지닌 여성은 마녀화 되었고 그 기준은 '보이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보이는 인쇄물'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마녀사냥을 한때 있었던 작은 사건처럼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보인 증오는 아무리 적의를 품었다지만 정당하게 가할 수 있는 비판의 수위를 한참 넘었다. 그들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자는 '악'과 연결되었고 그러므로 마녀와 톡톡히 비교되었다. 다시말해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으로서 공격받았지 정치적 지도자로서 비판받은 게 아니었다. (중략) 힐러리 클린턴의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도 이러한 지시기능을 써먹었다. 그의 사이트에서 어느 지지자는 자금 모금을 알리는 글에 이런 제목을 달았다. "Bern the Witch" Bern은 Burn 대신 버니 샌더스의 이름 Bernie에서 따온 것으로 '마녀를 불태우라'는 뜻인 Burn the Witch의 말장난이다. (p. 43)' 등의 일례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까?! 저자는 '우리는 지금 온갖 양상으로 지배가 강화되는 사실을 목도한다. 아무 거리낌없이 인종차별주의와 여성혐오를 발언하는 한 억만장자를 세계 최강 국가의 수장으로 뽑은 선거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p. 49)' 며 새로운 마녀들의 등장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임을 주장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마녀가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마녀가 되어주리라 뭐 이런 식의 결의라고나 할까.

나의 관심사는 여기서 대강의 줄기만 말했던 역사를 기반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의 후예를 탐색하는 데 있다.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일부 여성이 겪었던 치욕을 드러냈고 또한 이를 증폭시켰다. 마녀사냥은 일부 여성의 행동과 존재방식을 억압했으며, 우리는 수세기에 걸쳐 계승되고 벼리어진 그 표현들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여성에 대한 이 부정적 이미지들은 최선의 경우 검열이나 자기검열, 장애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최악의 경우 혐오감을 일으키고 나아가 폭력을 야기한다. (p. 54)

저자는 크게 네가지 측면에 집중해서 마녀이미지를 분석한다. 독신녀와 미망인같은 여성의 독립적 삶, 낙태와 피임, 늙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그리고 여성의 노예화 이다. 마녀로 축약되는 이 모든 부정적 이미지들의 편견과 왜곡을 뒤집어보임으로써 저자는 '축적된 이미지와 담론의 층에서 우리가 불변의 진리로 여기던 것을 몰아내고,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가두는 표현들에서 임의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면을 명백히 밝히고, 이 표현들을 우리를 충만하게 살도록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동의를 보내는 표현들로 바꾸는 것, 바로 여기에 인생 마지막날까지 내가 행복하게 실행할 마법의 형식이 존재한다. (p. 67)' 라며 이 책의 포부를 밝힌다.

여성이 진정으로 주권을 가진 개인이자 단순한 부속품이나 짐수레의 말을 기다리는 연결 부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사람들 머릿속에 파고들게 하기는 쉽지 않다. 보수 정치가들만 그런 게 아니다. 1971년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 월간지 <미즈>를 공동 창립한다. 독신을 가리키는 Miss도 아니고, 기혼 여성을 가리키는 Mrs도 아닌, mizz로 발음하는 Ms.는 정확히 Mr.와 등가를 이루는 여성형으로, 지시하는 대상의 결혼여부를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p. 78)

조선시대적 유교관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치인 한국 여성들이 보기에 서양 여성들은 좀더 자유분방하고 존중받는 것으로 보여져 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알면알수록 서구 문명에서 여성의 위치는 우리보다 상황이 더 안좋아 보인다.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문명 언어들은 여성형과 남성형이 존재하고 결혼하면 본인의 성씨를 잃어버리고 남편의 성씨를 따른다. 하다못해 기혼유무를 알리는 수식어는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Ms는 지금도 잘 사용되지 않는다. 하물며 여성형 단어와 남성형 단어에 대해서는 건드리지조차 못하고 있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문화는 사람의 인식을 유지하게 한다. 서구문명의 언어가 변하지 않는한 그들의 페미니즘은 어쩌면 우리보다 더 요원하지 않을까.

나는 프랑스 미디어만큼 여성에게 순종과 포기를 노골적으로 명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프랑스 방송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부모가 나와서 자신들의 일상과 여가생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장 선호하는 장소의 주소를 알려주고, 이상적인 집의 인테리어 이미지, 멋지고 우아한 외관을 보여주는 인터뷰를 동원해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선전한다. (p. 103)

프랑스인 저자가 알려주는 프랑스 여성의 실제는 혁명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출산율 1위 국가라고 한다. 여성을 곧 출산으로 연결시키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곳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여성은 곧 마녀가 될수밖에 없다. 여하튼 출산과 관련된 여성은 곧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했다. '르네상스의 악마 연구자들은 여성의 완전한 독립을 상상도 하지못했다. 그러니 그들 눈에는 자신들이 마녀라고 고발한 여성들의 자유는 또 다른 종속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들은 당연히 악마에게 종속되는, 말하자면 여전히 남성의 권위에 순종하는 여성들이었다. (p. 116)' 출산과 관련없어보이는 마녀조차도 말이다.

마녀는 막대기나 의자의 다리 하나를 무릎 사이에 끼어 자신에게는 없는 음경으로 대용한다. 이로써 상상으로나마 자신의 성기를 버리고 여성 젠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러고는 사회적 차원에서 남성의 전유물인 이 이동의 용이성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녀가 이 독립성을 스스로 취한 것, 말하자면 그녀를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는 자한테서 벗어난 것은 그녀가 그에게서 힘을 일부 가로챘음을 말한다. 즉 이 비행은 일종의 절도라 할 수 있다. (p. 117)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서양마녀의 이미지가 이런 의미였다니

마녀사냥꾼들은 임신한 여성 용의자들을 고문하고, 어린 아이들을 처형하거나 강제로 부모의 처형식에 참관하도록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오늘날 낙태 반대 투사들이 괴상하게 붙이고 있는 이 '낙태반대'배지보다 더 기만적인 것도 세상에 없을 듯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 대부분은 사형에 긍정적이고, 2017년에만 1만5000명 이상 사망한 미국 내 총기 유통에 긍정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만큼 열정을 가지고 반전운동을 하거나 환경오염에 반대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중략) 그들은 여성의 삶을 악화시키는 것과 관련될 때만 이 '생명'문제에 열중한다. 산아 증대 정책은 권력과 관련이 있지 인류애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p. 154)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모성이 한결같이 경이로운 경험이라면 왜 여성들이 출산에 등을 돌리는 걸까? (p. 145)'라고 질문을 던진다. '무자녀로 살겠다는 선택이 소수 상류층에만 국한된게 아님을 보여(p. 155)' 주기도 한다. '출산거부는 인간의 모험은 방향을 바꾸면 훨씬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으며,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서 하고 있는 일에 반대하는 저항의 일환이다. (p. 158)' 그러니까 출산에 대한 거부는 '생명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이를 마음껏 누리도록 허용받는다는 것이 나의 논리다. (p. 159)' 출산거부를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를 분석해보라, 그들이 불편해하는 지점이 과연 무엇인지를 따져보면 출산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떠넘기고 있는지도 조금은 보일 것이다. '세계 인구가 75억명이란 점을 고려할 때 종족 절멸의 위험 자체는 사라진 듯 하다. 적어도 출산 부족으로 인해 인류가 소멸할 위험은 없을 것이다. (p. 166)'

남성은 열여덟부터 생이 끝날 때까지 '무슈'라는 호칭을 듣는다. 그러나 여성은 어느 날 문득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악의는 없을지라도 이제 그녀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치단결한 것 같은 순간을 어김없이 맞이한다. 나도 '마담'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 당황하고 모욕감마저 느꼈떤 기억이 난다. (p. 221)

마드무아젤 과 마담 이라는 두 호칭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은 아가씨와 아줌마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하지만 프랑스에서 남성은 여성과 달리 무슈 라는 하나의 호칭이 붙는 것에 비해 우리는 청년과 아저씨로 나뉘는 것을 보면 역시 그네와 우리네는 많이 다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거기나여기나 여성의 나이듦은 남성의 나이듦과 분명 다른 대우를 받는다.

어머니 나이만을 문제삼는 것은 결국 돌봄과 교육이라는 힘겨운 일을 오로지 여성에게 의존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p. 230)

남성은 결코 나이로 인해 연애와 성적 차원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며 노화의 표시들이 나타날 때도 여성과 똑같은 동정의 시선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이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 여든일곱 살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잘생긴 구릿빛 얼굴을 황홀해하며 바라본다. (p. 231)

수전 손택은 파블로 피카소에 관한 기사를 썼는데 파블로 피카소는 죽기 몇 달 전쯤 작업실에서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 또는 자신보다 마흔다섯 살 연하인 마지막 아내 자클린 로크 옆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장난치는 모습을 사진 찍혔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평했다. "구십 먹은 여성이라면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자기 소유지의 한데에서 그처럼 샌들에 팬티만 입고 사진을 찍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p. 233)

그렇다. 할아버지는 약간 멋스러움을 토대로 하고 있다면 할머니는 대부분 할망구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고보니 할방구는 없지 않나? 이런!!!

클린트 이스트 우드나 피카소 같은 유명인의 예시는 확실히 다른 반응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2014년 할리우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희극 배우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포엘러는 조지 클루니와 산드라 블록이 우주비행사로 분한 <그래비티>의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자신과 나이가 같은 여성과 한 우주선에 갇혀 단 1분이라도 시간을 더 보내기보단 차라리 우주를 표류하다가 죽는 쪽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보여준다" (p. 236)' ㅍㅎㅎㅎ 개인적으로 산드라 블록을 좋아하지 않지만(젊었을때도) 이 평을 보고 나니 <그래비티>가 몹시 보고 싶어진다. 우주에서의 그 몸부림을 꼭 보겠어~! ㅋㅋㅋ

항상 나이의 불균형이 큰 커플만 있는 게 아니며 다행스럽게도 언제나 고의적으로 이를 추구하지 않는다 해도 나이 차는 남성이 사회, 직업, 재정, 지식 차원에서 적어도 어느 하나라도 더 나은 조건에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뜻한다. 그런데 나이 차가 있는 관계에서 일부 남성이 바라는 것은 젊은 여성의 육체가 아니고 그 육체가 나타내는 것, 즉 열등한 지위, 경험 부족일지도 모른다. 마흔다섯 살이 넘은 남성의 신체가 성적으로 매력이 있는 것으로 통용된다는 사실에서 볼 때 오로지 젊은 육체에만 집중하려는 에로티즘은 잘못된 확신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p. 257)

새로운 시선 이었다.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성을 탐하는 것에 대해 그동안 에로티즘적 성적 측면에서만 바라봤었는데 다르게 보면 권력과 지배의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거였다. '마녀 사냥이 누구보다도 늙은 여성을 대상으로 삼았던 이유는 그녀들이 보이는 자신감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 262)' 그래놓고 남성은 마녀사냥 이후 대놓고 나이든 여성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늙은 마녀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일 대립시켰다. 마녀가 나오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바로 아~! 하게 될 것이다.

서구문화는 아주 초창기부터 육체는 혐오스러운 것이며, 육체는 곧 여성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여성은 육체이며,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보았다.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여성들에게 육체의 끔찍함을 투영하고 자신들은 육체가 없는 양 굴었다. (p. 272)

서구문화에는 '효' 문화가 없었나? 문득 의문이 든다. 그들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였을까... 신에게 눈을 뜨고 나면 어머니에게 눈을 감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또 어떻게 되는 건가... 흠... 여하튼 다음 수전 손택의 기사는 큰 울림을 남긴다.

수전 손택은 1972년 자신이 쓴 기사를 이렇게 마무리 했다. (중략) "나이에 대한 사회의 '이중 잣대, 이중 저울'에서 생겨난 규범들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그에 불복종하면서,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소녀로 있다가 굴욕을 느끼는 중년 여성이 되고, 이어 혐오스런 늙은 여성이 되는 소녀에 머무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빨리 여성이 되고, 활동적 성인으로서 되도록이면 더 오랫동안 연애를 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얼굴이 살아온 삶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p. 296)

그러나 여성이 자신들의 얼굴에 살아온 삶을 표현한다고 해도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비가 아니라 자연과의 전쟁으로 확대시키는, 더 커다란 범주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논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이 젖을 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라는 인식이 끝나면서 그것은 순화시켜야 할 무질서한 야성의 힘이 된다. (중략) 여성은 남성보다 자연에 더 가깝고, 성적으로 그들보다 더 열정적이다. 오늘날 여성의 성욕이 남성의 성욕보다 덜하다고 여기는 걸 보면 여성을 억압하려고 했던 의도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자연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마녀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게 하고, 질병을 초래하고, 수확물을 해치고, 출산을 방해하고, 어린아이들을 죽였다. 무질서한 자연처럼 혼란을 야기하는 여성은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일단 순화되고 진정되면 여성과 자연은 둘 다 관상용으로 축소되어 "지친 사업가 남편을 위한 기분 전환용 정신적 자원'이 될 수 있다. (p. 322, 323)

자연이 정복이 되던 시대에 여성도 정복의 대상이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논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생산'이라는 자연적 능력을 남성은 없고 여성이 갖게 된 순간 여성은 지배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자연과 여성이 동일시되는 논리가 기이하다 싶으면서도 퍽 잘 들어맞는 것을 보면 그동안 시스템에서 교육되어온 논리가 얼마나 강했단 말인가...

오늘날 의학은 신기하게도 마녀사냥 시대에 탄생한 과학의 제반 양상들을 모두 다 보여준다. 말하자면 여성혐오와 공격적 정복 정신,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및 과학 만능에 대한 믿음, 신체와 정신의 분리에 대한 믿음, 감정을 일체 배제한 냉정한 이성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이 총집결한 곳이다. (p. 332)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의학에서 여성의 신체는 존중받지 못해 왔다. 여성만의 경험인 '출산'의 분야에서도 그랬다. '산과'에서 당하는 모멸감이 공론화 된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세계는 다시 전복되어야 한다"

(중략) 세상을 뒤집는 일,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한한 즐거움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고와 상상력을 마녀들의 속삭임이 이끄는 대로 내맡길 때도 대담함, 당돌함, 사활이 걸린 주장, 권위에의 도전 같은 즐거움이 있다. 크나큰 희생의 대가로 얻는 자연의 정복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인류의 평안을 보장하는 세계, 말하자면 우리 몸과 정신의 자유로운 환희를 더는 끔찍한 마녀집회와 동일시하지 않는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밝히려는 시도도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p. 383)

저자의 문장은 때론 선동적이고 때론 발칙해서 논리정연한 글이라기 보다는 팜플렛 처럼 읽힌다. 따라서 정리가 되지 않는 독해의 난해함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여하튼 읽다보면 '마녀'라는 주제에 고개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남들보다 튀는 여자들의 목을 쳐라' 라는 부제를 다시 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튀는 여성들의 목이 날아간 것인가? 그런데 지금도 목이 날아가지 않기 위해 튀는 것을 조심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기꺼이 목을 내놓겠노라고, 마녀들이여 세계를 전복하자고, 그것도 즐겁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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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궁궐 이야기 - 아이에게 알려주는 궁궐 안내판과 조선 역사
구완회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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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궁궐에 간다면 꼭 읽어야할 X 부모용 역사참고서

엄마·아빠가 먼저 읽고 가면, 아이도 쉽게 이해하는 궁궐 이야기

나는 궁궐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 특유의 옛스럽고 고급진 분위기가 좋달까, 도심속에서 유유자적 산책하는 기분이 좋달까, 여하튼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고궁투어는 늘 멋스러워서 5대궁 각각을 여러번 다녔음에도 시간이 되면 또 가고 싶어지곤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고궁을 다녀올때마다 느낌이 달랐던 이유 중 하나는 갈때마다 내가 알고 가는 내용이 늘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도 하고 기사나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은 고궁을 관람할때마다 눈길이 가는 곳을 넓혀 주었고 그렇게 갈때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재미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고궁에 갈때마다 은근히 안내판은 소홀히 지나쳤던 것 같다. 깨알같은 글씨와 한자어적 표현이 읽어도 사실 바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이름 정도만 읽고 말고는 했다. 그런데 사실 핵심적 정보는 다 그 안내문 안에 들어있다. 그러니 그 안내문만 제대로 이해해도 고궁투어는 훨씬 유익해질 수 있다. 그런점에서 안내문을 해설해주는 이 책은 5대궁의 핵심정보를 알기쉽게 풀어준 안내문의 안내서라고 할수 있다.

5대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을 일컫는다. 궁궐이라는 유적 자체가 역사적인 곳이므로 궁궐의 이야기는 곧 역사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역사를 5대궁에 얼키고설킨 이야기로 접하면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재미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부모에게도 유용하겠지만 가족용이 아니어도 충분히 유용하다. 고궁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섭렵하고 간다면 훨씬 다채로운 역사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고 궁궐은 그저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만 생각하던 이들에게 이 책을 강추한다. 스윽 지나쳤던 안내문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아름다운 옛건물로만이 아니라 조선의 애환이 담긴 역사가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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