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는 역사학 공부 EBS 30일 인문학 2
김서형 지음 / EBS BOOK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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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키워드로 30일 만에 역사학 훑어보기

저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는 빅히스토리 과목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빅히스토리 전문가이다. 빅히스토리 라는 단어에 히스토리가 들어가긴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넘어 지구의 역사 우주의 역사까지 넓히는 학문이므로 사실 빅히스토리는 과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에, 역사학을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그것도 하루 하나의 키워드로 짧고 굵게 입문시켜준다는데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30명의 역사가들이 역사학을 어떻게 정의하며 역사학의 역할을 무엇으로 보았는지를 설명한다. 이들은 시대와 정치 상황, 문화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사의 본질을 규명했고, 이를 토대로 학문으로서 역사학을 정립하고자 했다. 자칫 딱딱하고 건조할 수 있는 역사학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함께 담아냈다. 역사학을 처음 접하거나 역사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이 책을 통해 역사학의 세계를 가벼운 마음으로 조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p. 9)

저자의 바람처럼 나또한 그러한 기대를 품고 첫장을 펼쳤다. 그런데...

영화<300>으로 시작한 저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중요시했던 것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그리스인의 위대한 업적과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p. 22)' 라고 그 의의를 설명하면서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과거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에 앞서 영화 <300>이 그 '의의'를 현재까지도 편향되게 유지하며 얼마나 역사고증을 왜곡시켰는지 언급했어야 했다. 역사를 왜곡된 프레임으로 보여주는 영화로 역사학을 시작한다는 것은 좀 아니지 않는가... 첫번째 챕터부터 보이는 아쉬움들은 뒤로 가면서 점점 더해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투키디데스의 역사서술이 '근거 있는 사실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요(p. 29)' 하고 '직접 보거나 충분한 근거가 있는 사실만 역사 사실로 취급한다는 그의 원칙으로 인해 역사가의 시각과 관점이 지나치게 편협해졌다는 점(p. 30)' 을 설명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는 온갖 연설문은 사실 그대로 옮겼다기엔 무리가 있다. 그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의 내밀한 대화며 긴 연설들을 투키디데스가 어떻게 곧이곧대로 옮길 수 있었겠는가? 근거 있는 사실만을 다루려 노력한 것은 맞지만 그 원칙으로 역사가의 시각과 관점이 편협해졌다가 보다는 근거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갔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책 자체 보다도 책에 실려 있을 로마사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에 대해선 '로마인들이 되돌아갈 이상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p. 43)' 라고 설명했지만 내가 읽었을땐 그저 게르만족 풍습서에 가까웠을 뿐 그러한 교훈을 체감하긴 어려웠다. 폴리비오스의 <역사>의 의미는 알겠으나 본 내용에 대해선 소개가 부족했고 사마천의 <사기>가 중국 역사 서술의 전범 이라고 하면서 다른 중국 역사서들의 연계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책들은 <역사>책이이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부터는 역사서라고 하기 애매한 책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인하르트의 <샤를마뉴의 생애> 에서는 본문에서 내내 카룰루스와 신성로마제국 이라는 용어를 쓰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샤를마뉴와 프랑크 왕국으로 바꿔 사용해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베다 베네라빌리스의 <영국민의 교회사> 를 언급하기 위한 단테의 <신곡>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데, 이러한 도입부는 이후로도 계속되어 뱅상 드 보베의 <역사보감>은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잠깐 언급될 뿐이었다.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피렌체 사람들의 역사>가 로마제정 대신 로마공화정을 역사 서술의 중심으로 삼았다거나 플라비오 비온도의 <이틸리아 조망>이 인류 역사를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라는 세 시대로 구분한 것 그리고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가 삼권분립의 기원을 제시했다는 의의 등을 알아채기엔 본문보다 사족이 너무 많았다.

종교서와 역사서를 혼합했듯이 철학서와 역사서를 혼합하기도 하고 다른 분야의 책들과도 혼합되곤 하는데,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대중에게 철학을 알리기 위해 집필한 저서로 (p. 119)' 라고 설명하면서도 역사학서로 끼워넣고, 게오르크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 챕터의 주 내용은 미네르바 부엉이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볼테르의 <루이14세의 시대사>에서 '볼테르는 역사학의 대상을 더는 영웅이나 천재와 같은 특별한 개인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는 일반적인 인간의 정신 속에서 역사의 분석 대상을 찾는다. (p. 132)' 또한 역사보단 철학에, 드니 디드로의 <백과전서>는 제목 그대로 사전에 가까웠는데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할말을 잃었다.

레오폴드 폰 랑케의 <라틴 및 게르만 여러 민족의 역사>챕터에서는 영화 '라쇼몽"과 랑케의 역사학에 대해 설명할뿐 정작 제목으로 삼은 그 책은 무슨 책인지 알수 없었다. 하지만 랑케의 경우 중요한 것은 그의 역사학이 역사라기 보다는 문헌학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었어야 했다. 랑케필법은 유명한 역사기술법이긴 하지만 비판의 요소가 많은 기술법이다.

빌헬름 딜타이의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 에선 그의 생철학이라는 것도 책도 뭔지 잘 모르겠고, 로빈 콜랑우드의 <역사의 인식>에선 미학의 등장을 눈치챌 수 있을 뿐이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영향을 끼쳤다면서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한 순서도 아쉬웠고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펠리페2세시대의 지중해 세계>에선 본 책보다 프로델의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을 주로 언급할 거면 <자본론>뒤에 설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가 아닌 정교와 철학 미학을 혼합하면서 주제의 순서까지도 정리되지 않는듯 하더니 에이든 화이트의 <메타 역사>로 '역사가 실제로 픽션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한 역사가가 있다. (p. 201)' 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시대구분에 있어서 역사학계의 큰 변혁을 설명하는가 싶더니, 토머스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로 과학사를 등장시키고 이어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의 지리적 역사를 건너 <빅히스토리> 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역사학의 흐름은 저자의 주전공인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융햡시킨 '빅히스토리'를 향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역사학의 계보를 배워보겠다는 나의 기대는 '역사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상호 학제 간 소통과 협력을 토대로 삼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추구하는 융합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역사학인 것이다. (p. 237)' 라고 포장하는 저자의 빅히스토리적 마무리에 여실히 무너지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에피소드를 함께 담아냈다고 했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주요 내용이 되고 정작 알아야 할 역사서들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것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쉽고 또 아쉬웠다. 물론 시대흐름상 알아두면 좋을 역사가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책을 알게 되는 것은 좋았지만 '한권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역사학의 역사'라는 홍보문구에 홀딱 빠졌던 나로서는 산만하고 뒤죽박죽인 내용들이 너무 정신없었다. 개인적으로 EBS북을 참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책은 여러모로 좀 아쉽다.

하지만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학의 핵심적 변화와 발전과정을 핵심키워드에서 뽑아낸 것으로만 간단간단하게 기억한다면 나름 역사학을 가볍게 훑어보며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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