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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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둘러봐도 아득한 지평선뿐인 모래사막

그 한가운데 던져진 여인의 시간

<오즈의 의류수거함> 작가의 신작이라기에 처음 호기심이 갔고 심상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표지그림에 두번 호기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좋아해서 종종 읽는 편인데, 자음과모음 에서 나오는 청소년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만족감을 주었기에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 중의 하나로 그 시리즈중에서 <오즈의 의류수거함> 도 읽은 적이 있다. 여고생이 주인공이었던만큼 그리고 청소년문학이었던만큼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가득한 소설이었는데 <화성의 시간>은 청소년문학이 아니라서인지 문체가 달라진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화자의 연령대에 맞춰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표지 그림 속의 여자

표지날개를 보니 작품 제목이 Sundy Head of a young woman 였다. sundy 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 번역하면 젊은 여자의 햇빛 받은 머리 정도가 될 터인데 그림속 여자의 어느 부분은 분명 빛나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외로운 분위기라서 그 언밸런스함과 sundy 라는 생경한 단어때문에 표지를 한참이나 쳐다봤더랬다. 그리고 작품을 읽으며 그림의 제목과 닿아있는 문장들을 만날때마다 아~! 감탄했다. 이렇게 내용에 적절한 그림을 표지그림으로 쓰다니 역쉬 자음과모음 이랄까. ㅎ

"만에 하나, 여동생이 돈 때문에 매부에게 살해라도 당했다면 피붙이로서 그 한은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p. 17)

형사를 그만두고 사설탐정을 하고 있는 성환에게 특이한 의뢰가 한건 들어온다. 6년전 실종됐다는 여동생을 찾아달라는 오빠의 요청이었는데,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일찍 헤어져 서로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경찰의 방문으로 동생의 실종을 알게 됐다는 오빠는 여동생이 실종만기로 사망선고가 내려지면 매부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게 되는 것을 알게 됐다며 뭔가 이상하다고 사건을 의뢰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는 혐의없음 이었다.

대하가 없어진 것은 아이 죽음 이후부터다. 성환은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집 안에서 아이만 사라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웃음, 농담, 기대, 계획, 소망 같은 것들도 더불어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을. 어쩌면 아이가 그 모든 것을 거느리고 있었을까. 아니, 아이 자체가 그 모든 것의 총합이었을까. 자식이란 원래 그런 존재일까. (p. 22)

성환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로 잃었다. 성환 부부의 일상은 무너졌고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형사도 그만두었다. 그나마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설탐정 같은 것이었기에 민간조사원 사무실을 차려놓고 도망간 외국인아내를 찾아달라는 것 같은 간단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그만그만 지내고 있던 터였다. 성환은 이번 의뢰는 지금까지의 사건들과 전혀 다를 것임을 직감한다.

"저 디오라마는 언제쯤 완성되나요? 그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군요"

"완성되면 알려드리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p. 44)

사라진 문미옥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만난 이는 남편 오두진이었다. 작은 홍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오두진의 사무실에는 거대한 디오라마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의 취미라는데 그는 전쟁의 폐허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6년간 조금씩 무언가 인내하고 기다리듯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한 100명쯤 되려나?"

"9만5천 명입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수가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가출이나 일시적인 잠적을 뺀, 순수하게 실종된 사람이 9만5천 명잊. 쉽게 말해, 하루에 260명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p. 68, 69)

실종자가 저렇게 많았나? 놀라운 숫자였다. 문미옥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보니 '실종'에 대한 언급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사건들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학교폭력, 가출, 성추행, 탈영, 노숙자, 해외입양 그리고 보험사기

"보험하기의 진짜 문제는 그로 인한 보험금 누수 때문에 일반 보험가입자의 부담이 증가하는 점에 있습니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이 6천억 원 정도인데, 걸리지 않은 액수를 포함하면 4조원에 육박합니다." (p. 100)

문미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성환은 점점 더 문미옥이라는 인물에 대해 끌림을 느낀다.

오두진과 문미옥은 쇼윈도 부부였다. 문미옥에겐 동거남이 있었고 딸도 있었다. 그런데 왜??

성환은 보험수령날짜가 다가오면서 보험사조사원도 뒷조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문미옥의 실체는 무엇인가... 오두진의 그 소름돋게 하는 웃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다 성환은 깨닫게 된다.

그 여자가 살아 있다. 어딘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 (p. 133)

처음 사건을 의뢰받았을 땐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묘한 실종 이었다. 사건은 살인이 아니라 실종이 맞았다. 아니 어쩌면 살인이 될지도 모를 긴박한 실종이라고 해야 하려나...

제가 지금 화성에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지구로부터 약1억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그 행성 말이에요. 이곳은 소피가 살았던 시베리아처럼 몹시 춥고 황량해요. 그리고 저 외엔 아무도 없어요. 벌써 이곳에서 지낸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도무지 외로움과 적막감이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때때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합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아무런 버팀목이 없는 건 아니에요. (p. 169)

문미옥은 화성같은 곳에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귀환을 꿈꾸며.

거리에 면한 통유리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머리칼이 반짝이며 빛났다. (p. 416)

이 문장 전에도 이와 비슷한 문장이 나오긴 하지만 표지그림에 딱 어울리는 문장은 이 문장이 아닐까 싶었다.

초췌한 얼굴일지언정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는 머리칼을 볼 수 있듯이 그녀의 피폐한 삶에도 한줄기 햇살이 내리쪼일 수 있을까.

사건을 조사하는 민간조사원 성환은 50대의 수사관으로 짐작되는데 성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은 그래서인지 그나이대의 아저씨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노련하지만 예상되고 느리지만 차근차근 정확히 진행하면서 묵묵하면서도 묵직한 중년남자의 그런 심상함...

그닥 새로운 전개는 아니었지만 한줄한줄 빼놓지 않고 천천히 읽게 되는, 작가가 무척 공들여 쓴 작품임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자기만의 폐허를 목격하기도 하고 화성에 뚝 떨어진듯 고독에 헤매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하늘의 별도 보고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도 볼수 있는 지구에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곤 한다. 그 시간들을 헤쳐나올 수 있게 해준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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