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그리스·로마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여러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 현장에서 정말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역사 책 속의 사건들이 아니라 어쩌면 사소한 호기심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라고 하면 신화나 제국에 대한 것들을 배우지만 그런 내용들 속에 당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제대로 담겨지지 않기 마련이다. 그들은 정말 속옷을 입지 않았는지, 신화를 정말 믿었는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조각상들은 왜 하나같이 나체인지 등등 세속적이지만 유쾌하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36가지로 추려 답하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당대의 삶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적나라한 조각상 뚱뚱한 검투사 전쟁 코끼리> 라는 다소 엉뚱한 원제는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가 되었다. 대부분의 역사책들이 권력층을 중심으로 한 소위 윗세계를 다뤘다면 그 아래 피지배층의 삶을 다룬 이 책은 아랫세계로부터 역사를 들여다보는 책이라는 의미이리라.
그리스·로마인들은 왜 바지를 입지 않았을까? 게다가 어떤 의복에도 호주머니가 없었다고 한다. 너무 불편하지 않았을까? 첫질문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답변또한 아주 신선하다고는 볼 수 없다. '지중해 기후에 적합했고 사회적 상황이나 날씨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었다. (p. 14)' 라는 모범적 답변으로 끝났다면 정말 너무 식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어쩌다 바지를 입게 됐고 왜 입게 됐는지 살피면서 '경건한 기독교인 몇몇은 손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속옷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p. 18)' 라는 식의 유머를 곁들임으로써 역사를 읽고 있으나 역사를 읽고 있지 않는 것같은 편안함과 재미를 선사한다.
저자는 흥미로운 질문들을 통해 쉽고 발랄하게 시작하면서도, 턱수염과 면도의 유행변천사를 살펴보기도 하고, 남성 유방 축소와 원시 형태의 지방 흡입술 까지 있었으며, 화려한 연회에 등장하는 음식들에 놀라기도 하지만 '칠성장어의 이리(정액 덩어리), 강꼬치고기의 간, 꿩과 공작의 뇌, 홍학의 혀 등이 수북이 쌓인 거대한 접시가 등장했다. 이 음식의 요리로서의 가치는 의심스럽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음식은 권력이었다. (p. 58)' 같은 확실한 마무리를 통해 역사서로서의 빛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 상식들도 다수 배울 수 있었다. 서력기원제도는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보편화되었다거나 요일의 명칭이 게르만 민족이 고안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현재까지도 다른 방식으로 요일을 표시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 로마 귀족들은 상업에 대한 직접 투자는 금기였기에 노예들을 훈련시켜 상업, 수공업, 필경사, 대출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것, 키케로가 아내보다 훨씬 젊은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30년간 함께 산 아내를 떠났고 다소 빨리 이혼했다는 것, 델포이의 여사제가 바위에서 새어 나오는 증기로 인해 환각상태에서 예언을 했으리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향락용 증기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고 흡입한 종족은 스키타이인들이었다는 것, 경기장에 집어 넣을 동물들을 잡아들이느라 터키의 표범, 이란의 호랑이, 이집트의 하마, 북아프리카의 코끼리가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 등등 알쓸신잡용 상식들이 수두룩 ㅎㅎㅎ
또한 잘못 알고 있던 역사적 상식들을 수정하게 될 수 있기도 했다. 로마인이 납으로 된 수로관 때문에 납 중독으로 죽었다고들 하지만 사실 로마인들은 납에 독성이 있음을 알고 있어서 수로관 대부분을 토관으로 만들었다는 것,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고 해서 노예 수가 크게 줄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스·로마의 누드 조각품은 사실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것, 검투사들이 상대편 검투사를 죽이는 것은 경제적 여유때문에라도 많이 꺼려졌다는 것 오히려 자비를 베풀기를 권장했기에 악랄하기로 유명했던 콤모두스도 검투사와 싸울땐 목검으로 싸웠고 상대를 한번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 게르마니아 나 아일랜드는 정복을 못한 것이 아니라 정복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없었기에 굳이 정복하지 않았다는 것(그러나 경계지역에서의 교유로 인해 로마제국이 적을 성장시키는 경우가 됐다는 것) 등등등
새로 알게된 당대의 일상을 통해 역사적 생각거리들이 있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는데 예를 들어, '신들은 숭배자들의 마음을 읽거나 영혼을 살펴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자신이 하사한 선물의 대가로 경의를 표할 것을 요구했다.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가장 효과적은 방법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었다. (p. 163)' 라는 내용을 보며 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원하는 것을 빌었던 고대인들은 빈부 격차에 따라 제물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 한 명의 희생으로 모든 희생제물이 사라졌으니 예수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 수 있었겠구나 그래서 당대에 기독교가 빠르게 확산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었겠구나 싶기도 했고, 게다가 '주교에 의한 관리는 규모에 상관없이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일종의 결속감을 주었다. 이는 전통적인 이교 신앙에서는 유례없는 것이었다. (p. 223)' 라는 걸 보면 개인으로서 점점 살기 힘들어지던 사회상이 어떻게 종교와 맞물릴 수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서양에서는 논란?!거리인 '그리스·로마인의 진정한 후손은 누구일까?' 라는 마지막 질문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