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이야기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영정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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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 이야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첫 번째 농장에서 현대 도시의 부서진 아스팔트까지

모험을 떠나는 식물학과 역사의 유쾌한 연대기

나는 역사를 좋아하고 동물보다 식물을 좋아한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의 고고학적 생태계에도 관심이 있고 인간의 몸을 살찌워 온 작물로서의 변천사에도 관심이 있다. 그러니 <식물의 세계사>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는 아니었으나 여전히 궁금하고 또 궁금한 분야이기 때문에 또 읽을 수밖에 ㅎㅎ

풀이 우리가 가진 계획이나 세상을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지도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잡초가 된다. 그러한 계획이나 지도가 없다면 풀은 어떤 오명이나 비난도 뒤집어쓰지 않았을 것이다. (p. 13)

그러나 이 책 본문의 첫 줄에서부터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잡.초.

이 책의 원제 WEEDS 는 잡.초. 이다.

'식물의 세계사'도 아니고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 이야기' 도 아니며 '식물학과 역사의 유쾌한 연대기' 도 아니다.

그저 잡.초. 가 왜 잡초로 불리워졌는가 잡초의 특성은 무엇인가 잡초는 정말 잡초일까... 하는 등등의 잡초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잡초 이야기 책' 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방법과 어떤 이유로 식물을 달갑지 않은 존재로 분류하는가? 그것은 자연과 문화, 야생과 길들여짐을 구분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고 관대하게 그 경계에 선을 긋는지가 이 지구의 표면을 덮은 초록색 식물 대부분의 성격을 결정한다. (p. 19)

동물도 그렇지만 식물도 인간이 붙인 이름이 자신들의 이름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다하여 세상에 쓸모가 있다 말하는 것도 너무 인간중심적이다. '모든 정의는 전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잡초는 인간의 계획을 방해하는 식물이다. (p. 28)' 존재는 그저 존재일 뿐이다. 동물도 식물도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분류되고 특히나 쓸모없는 잡초로 분류되어 폄하는되는 것에 대해 억울하지 않을까?! 그러니 '그것들도 식물학적인, 혹은 적어도 생태학적인 정의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p. 28)'

잡초는 딱 봐도 변화가 심한 땅과 훼손된 풍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진화했으며, 우리 생각보다는 덜 유해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p. 32)

사실 지구를 자연을 땅을 가장 크게 훼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다. 잡초가 아니라.

이 책은 잡초를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다루기 힘든 이 식물을 그들의 본모습이 무엇이고, 어떻게 자라며, 우리가 골칫거리로 여기는 이유를 보다 공평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논증된 주장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책은 인간의 이야기다. (p. 42)

대부분의 식물과 역사를 접목시킨 책들에서는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들이 주인공이다.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유용한지가 중요하곤 하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의도에 의해 선별된 식물들 외에 그 밖의 식물들에 대해선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닐까?

한 종으로서 그것들은 쉽게 이동하고, 씨앗을 많이 맺으며, 유전적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사는 곳에 까다롭게 굴지 않고 적응해 버리고, 환경적 스트레스에 빨리 대처하며, 자기 길을 가기 위해 여러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우리가 그들과 가장 많이 닮은 종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농경이 시작되지 동시에 잡초라는 문화적 개념이 생겼고, 그런 다음 그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 창조의 두 가지 명령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었다. (p. 65)

번성과 제거, 유용과 무용, 농경과 채집, 정착과 수렵에 있어 곡물의 발견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인간들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그리고 결국 인류 문명의 전 과정을 변화시켰던 것은 야생 에머밀이라고 불리는 사막의 잡초를 길들인 일이다. (p. 72)' 그러니 잡초에서 출발한 인간의 생존력과 지혜에서 잡초는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 것인지 식물이 문명을 정복한 것인지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색다른 발견을 하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역사는 식물에 대한 끊임없는 선택과 연결되어 있었다. 독초인가 약초인가는 주술과 의학의 경계를 구분지었고 문학에서 식물은 그 존재만으로도 상징성이 뚜렷했으며, 인간보다 빠르게 서식지를 넓혀 세계화를 이룬 것은 어쩌면 잡초였다. 이러한 잡초의 활약에는 물론 인간의 의도가 계획따위는 없었다.

잡초들이 문제를 일으키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옹호론자들은 지구상에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설명하고, 그들의 생태에서 무언가 도덕적 가르침을 찾기 위해 애써왔다. (p. 225)

잡초들에서도 나름의 유용성을 찾아내야 인간은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일까. '야생정원'이라는 서로 너무나 상반된 두 단어를 붙여 보기도 하면서 인간은 가끔 잡초들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잡초를 침략자라고 생각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한 장소의 문화적 전통이나 유산이자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존재이다. 또한 우리의 건물과 어설픈 손질들이 한낱 덧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곳, 그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유전자은행의 일부이기도 하다. (p. 266)

새로운 전염병이 생길때마다 새삼 유전자풀의 중요성이 거론되곤 한다. 멸종동물들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개체의 종말이 아니라 전 지구적 종말의 시작임을 역설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 쉽게 눈을 돌려오곤 했다. 그러니 잡초의 유전자은행에 관심을 가진 시기가 짧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서 마녀 취급을 당하던 잡초이지만, 인간이 훼손하고 무너뜨리고 파괴시킨 땅에 가장 먼저 생명의 꽃을 피워낸 것은 늘 잡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는 여전히 악역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잡초의 이미지는 그들이 차지한 땅을 옮기거나 넓힐 때, 어딘가 새롭게 침입할 때 변하고, 대중적 감성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p. 394)

잡초의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더 성공적인 동시에 잔인하게 공격받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농부나 정원사,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실시하는 잡초 방제와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들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제의 엄청나게 다양한 동기와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식물 세계나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p. 406)

우리는 지구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자연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잡초는 뽑아버리고 약을 뿌리고 만다. 게다가 '잡초, 그리고 그들의 필연성과 화해하는 것은 항상 아찔한 과정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실질적인 통제와 문화적 수용을 결합하는 것이 포함된다. (p. 419)' 그래서 프레임의 전환은 늘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첫머리에서 나는 잡초가 자연계를 야생과 길듦으로 엄격하게 분리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경계 파괴자들, 즉 무국적 소수민족으로서 우리에게 삶이 그렇게 정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들이라면 우리가 다시 자연의 경계선들을 넘어 사는 법을 배우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p. 421)' 라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게 남는다. 우리가 처음으로 잡초의 이야기를 읽어야할 시대가 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문명과 정복과 인간 이라는 단어들을 버리고 오로지 자연 그 자체로서의 잡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생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자. 침입자들은 잡초가 아니라 인간이 아니었을지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ps. 잡초라는 한국어판 제목을 달고 나오면 외면받았을 것 같았는지 책 제목에조차 드러내지 못한 잡초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의미에 공감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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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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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의 역사를 알게 되는데 정말 유익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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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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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영미 문학의 거장이 써내려간, 시대를 품은 시의 향연

소소의 책 출판사에서 나오는 00의 역사 시리즈를 좋아한다. 책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일테지만 은근 디자인이 먹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나에겐 이 시리즈가 그랬다. 하드커버의 묵직함 대비 쉽게 넘어가는 페이지들의 여백과 일관된 표지 디자인이 일단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그렇게 <세계 종교의 역사> <철학의 역사> <고고학의 역사> <언어의 역사>를 모두 읽었으니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가 '시'일지라도 새로 나온 <시의 역사>를 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달까.

시란 무엇일까? 시와 언어의 관계는 음악과 소음에 견줄 수 있다. 기억에 남고 가치를 부여받도록 특별히 지은 언어라는 뜻이다. 언제나 그 목적을 달성하는 건 아니다. 수 세기가 흐르는 사이 까맣게 잊힌 시가 수천수만 편에 달한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잊히지 않은 시들을 다루려 한다. (p. 11)

제목이 시의 역사 이고, 첫줄부터 오래도록 전해져 온 시를 다룬다는 목적을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알아두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시'는 '英詩'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영어의 모국인 영국에서 영국의 평론가가 쓴 책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영시가 주된 '시'이긴 하나 '역사'적 흐름으로 서술되고 있기에 기원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시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p. 11)' 부터 저자의 '시의 역사'는 시작된다.

시의 지혜는 우리에게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시는, 아니 어떤 시들은 죽지 않고 인간 수명의 한계를 훌쩍 넘어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어째서 그러한가는 수수께끼다. 날마다 눈사태처럼 우리를 무서운 속도로 덮치고 흘러가는 망망한 언어 속에서 시인이 몇 개의 단어를 골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것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예술을 창조하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까지 아무도 이 신비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시인은 이 목표를 추구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p. 18) 무엇이 시에 영생을 부여하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시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나의 선호도는 독자 여러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시처럼 보이더라도 우리가 다른 정신과 다른 과거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미학적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의견이 있을 뿐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 책에서 예전에 몰랐던 시들을 발견하고 그 시들을 나날의 생각 속에 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들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길 바란다. (p. 19)

서문없이 바로 길가메서 서사시로 시작한 이 책에서 이 첫 챕터는 서문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내용과 이 시가 후대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시란 무엇인가 로 시작해서 독자의 시상으로 끝나는 이 챕터는 '시'에 대한, 그중에서도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시'에 대해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앞으로 미래에 전해져 남겨질 '시'에 대한 독자(나)의 감상이라는 뚜렷한 목표감을 심어준다. 그러니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시를 읽으며 계속 느껴봐야 할 것이다. 나의 어떠한 주관적 판단이 그 시에 영생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英詩의 역사이므로 서양사의 흐름과 큰 맥을 같이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로 시작했으니 그 다음은 당연히 호메로스 였는데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를 설명하는 중에 나온 문장이 의미있어 보였다. '많은 다른 시와 달리 호메로스의 작품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도 크게 훼손되지 않는데, 그 이유를 하나 들자면 서술 기법의 단순성, 속도감, 직접성이다. (p. 26)' 길가메시 서사시도 호메로스의 시도 영어로 쓰인 시가 아니다. 심지어 그 언어를 해독했을지라도 그 당시의 발음은 재현할 길이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고대시가 갖고 있는 영생성은 언어와는 큰 상관이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로서의 '시'의 탄생은 로마제국의 탄생과 함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유럽을 통합한 제국은 단순히 지역적 통합이 아니었음이 '시'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서양역사나 철학이나 문학작품이나 많은 분야에서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라기 보다는 라틴어에서 찾아지곤 하는 것 같다. 로마제국의 언어였던 그 라틴어 말이다. 그러니 라틴어 고전의 출발을 알린 세 명의 시인(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이 모두 아우구스투스 초대 로마황제 시절을 함께 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로마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브리튼 섬에서 英時가 시작된다. 앵글로색슨 시의 첫 작품은 '기독교 신상 선언이 이교의 영웅도와 병존해 나타난 (p. 36)' [베오울프] 였다.

앵글로색슨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두운이 맞는 동의어를 찾는 시인의 노력 탓에 시가 아주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베오울프]는 3,100여 개에 달하는 구체적 단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 거의 3분의 1이 앵글로색슨 산문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베오울프]나 여타 시에서만 발견된다. 시를 처음 들은 사람들에게는 일상적 용례와 동떨어진 이런 어휘가 영웅 설화의 배경이 되는 다른 세상에 어울리는 경이로운 감정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p. 39)

'시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와 함께 했다. 산문과 달리 시에 사용된 언어들은 시인의 느낌을 좀더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성 있게 혹은 구체적으로 전달되게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의 조합을 시도한 단어들이었다. 그러니 새로 탄생하는 단어들과 지역적 방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상 이미 이 초창기의 시부터 우리는 그 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수 없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시의 '영생성'에 대해 독자는 궁금함을 품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이 이 시를 고전으로 남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을 통틀어 단테 알리기에리 만큼 현대 독자에게 호소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찾기 어렵다. 단테의 시가 속속들이 중세 신학에 젖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낙 그의 믿음이 우리의 반감을 유발하기 일쑤라서 그렇기도 하다. 단테는 인간으로서의 매력도 없었다. 복수심이 강하고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p. 45)

ㅍㅎㅎㅎㅎㅎ

인문학 책을 읽으며 이렇게 빵 터져서 웃게 될 줄이야. ㅋㅋㅋ

단테의 <신곡>을 읽었지만 그 명성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저자의 저 문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래서 내가 영국작가들의 책을 좋아한다.

고전으로 남겨진 시의 흐름에서 단테와 페트라르카가 빠질 수 없다. 저자는 '중세 유럽 대륙의 거장들' 이라는 제목 아래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시를 소개하면서 직접적으로 그 단점들을 적시한다. 고전으로 남은 작품에 대한 단점 분석이라니, 이또한 마음에 든다! ㅋㅎㅎ

중세시대에는 영시의 계보가 아직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은 때였기에 '제프리 초서는 중세의 위대한 영국 시인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유럽인이기도 했다. (p. 54)' 라는 식의 관점은 당분간 유지된다.

초서에 대한 설명중 마지막 문장에 호기심이 남았는데, '어느 다른 초서의 작품을 읽더라도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미 읽었다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한 번 더 읽어보라.(p. 61)' 라는 저자의 권유가 (이 책에 등장하는 시들 중에서) 유일했기에 나중에 꼭 읽어보리라 마음먹어 본다.

초서 이후로도 중세 시인들이 연대기적으로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스펜서의 [요정 여왕]이라는 작품이 상당히 궁금해졌지만 검색해보니 국내 번역된 작품집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가 되어 세익스피어가 등장한다. 세익스피어를 비롯하여 이 시대의 시인들을 저자는 '사랑 시인들' 이라고 명명한다. 이 식민지의 시대에 존 던 이라는 시인은 '시의 코페르니쿠스'라 불렸고 존 밀턴의 시는 '피안의 세계에서 온 시' 라고 정리되었는데, 저자는 '17세기는 영국 시의 역사에서 놀라운 다양성의 시대였다. 초기는 존 던이 장악했고, 후기는 존 밀턴이 지배했다. (p. 111)' 라고 하면서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대는 완전히 뚜렷하게 개인주의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하버트, 본, 트래헌 은 '종교적 개인주의자들' 이었다. 이 뒤로는 '신고전주의 시대'가 이어진다.

저자는 '또 다른 18세기' 라는 챕터에서 굉장히 다양한 시인들을 소개하는데 그중에서도 '신고전주의 문학사를 설명할 대는 여성 작가들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지만, 18세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p. 171)' 라는 부분에서 등장하는 여성시인들과 '민중시'라는 챕터에서 설명되는 시들을 통해 이 책이 정리하는 '시의 역사'가 어느 한 쪽에 편중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이제 근대에 이르렀고 낭만주의자 시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낭만주의 시인들을 안내하며 저자는 잠시 독일의 시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데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독일은 1871년까지 국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 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미쳤다. 낭만주의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라고 대답할 것이다. (p. 236) 독일 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괴테도 하이테도 아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였다. (p. 241)

이 시대에 독일에 괴테와 하이테와 릴케가 있었다. 시의 역사에서 어찌 이 시인들을 빼놓을 수 있었겠는가.

참고처럼 덧붙여진 이 챕터 뒤에는 러시아의 푸시킨이 소개된다.

다음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들이 나오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시인들'을 별도의 챕터로 소개하는 저자의 성의가 반가웠다.

이 뒤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英詩 영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최초의 미국 시인들은 영국 이민자 였다. (p. 285)'

19세기를 매듭짓는 수십 년 동안 유럽 문화는 파편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무참하게 패배하자 유럽의 권력 지도가 불길하게 재편되었다. 19세기 내내 산업과 상업이 도시의 삶을 변모시켰고, 많은 사람의 눈에 예술은 곁가지로 밀려나는 듯 했다. 유럽의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사람들은 군중과 군중의 힘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또 다른 발전은 교육의 확산이었다. 1900년대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초등교육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대중을 창출해냈다. 더불어 대량으로 유통되는 신문과 잡지가 생겨났다. (p. 302)

20세기를 앞두고 모든 것의 근간이 흔들렸다. 시대의 끝에서 새로운 목소리들이 등장했고, '조지 시대의 시인들' 이라고 묶이는 그룹이 있기도 했지만, 세계대전은 모든 것을 뒤엎었다. 그 혼란의 시대에도 '시'는 노래했다. 예이츠 처럼 도피하는 시인들도 있었고 엘리엇 처럼 모더니즘의 선두에 선 시인들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서양과 동양의 만남에 관심을 갖는 시인들이 있기도 했다. 모더니즘의 창시자라 할 미국인 엘리엇은 영국인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미국의 시인들은 엘리엇과 다른 모더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모더니즘에 반하는 새로운 시류가 등장했다. 모더니즘이 극복된 이후 시인들은 이제 하나의 시조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기에 어떤 시풍 보다는 시대별로 정리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는 고백 시인들이 영국에는 무브먼트 시인들이 있기도 했지만 사회상을 밀접하게 반영한 정치적 시인들도 다수 있었는데, '휴즈와 플라스' 라는 커플에 대한 단독 챕터는 그 어디에도 묶여질 수 없는 내용이라서 신선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따로 이 커플 시인을 설명했을까 의아해지기도 했는데 마지막 챕터인 '경계를 넘는 시인들'에서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가 마지막 시로 선택한 작품이 '머레이의 시 [존재의 의미]' 라는 것이 다시 처음의 목적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시의 결말은 신념 체계를 뒤흔들고, 심지어 자신의 확실성마저 포함한 모든 확실성에 의문을 갖는 시의 힘을 보여주는 걸까? (p. 495)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 '시의 역사' 라는 야심만만한 포괄적 제목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책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 교수의 관점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p. 507)- 라고 이 책이 제목과는 다른 불완전성을 가진 책임을 인정한다. 또한, - 모든 문학은 번역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시는 유달리 그렇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단어 하나 대체할 수 없다는 대체 불가능성, 절대적인 유일무이성이 곧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를 타국어로 '옮긴다' 는 행위는 반달리즘이 무색한 파괴의 작업일 수밖에 없고, 언어권 밖의 사람이 시를 이해하려 들 때의 한계는 너무나 참담하게 뚜렷하기 때문이다. (p. 508) - 라며 시에 대한 책을 번역함에 있어 한계가 어쩔 수 없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역사>를 옮긴 이유는, 우리 역시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끝없이, 부단히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더라도, 원래의 형태를 잃고 해체되어 재조립된, 복제된 언어의 직조물이라 해도 언제나 타자를, 타 문화를, 타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p. 508)- 라고 이 책의 의미를 밝힌다. 그리고 저자가 물음표로 끝낸 책의 마지막 문장이 남긴 여운에 대해 역자가 답을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 답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 세기에 걸쳐 까맣게 잊힌 수천수만 편의 시가 있으나, 끝내 잊히지 않은 소수를 다루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권의 시들은 아니나, 수 세기의 시험을 통과한 걸작들은, 경이롭게도, 번역자의 손에 무너져 내렸다. 재조립된 너덜너덜한 언어의 누더기 속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의미의 찬란한 빛을 발하기도 한다. 정말로 빛나는 시성詩性은 시간과 장소는 물론, 언어마저 초월하기도 한다. (p. 509) -옮긴이의 말 中-

찾아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시간과 장소는 물론 언어를 초월한 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서양사에 관심있던 사람이라면 그 시작을 <시의 역사>라는 책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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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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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이 책의 추천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올리버 색스를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집어들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선생님이 추천의 글을 올렸다. 나는 올리버 색스 때문이라기 보다는 하지현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저 추천문장이 이 책을 정말 잘 표현한 문장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는 데 실패한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정상적인 것으로, 다른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또 일부 경험을 병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나는 정상과 비정상 경험을 구분하는 경계선에는 관심이 없지만, 경험을 창출하는 신경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항상 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신경에 입각하여 경험-감각, 인지, 감정-을 설명하는 연구는 어디서 시작하든 결국 언제나 기억으로 이어진다. 기억은 우리가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을 한데 합치고, 현재의 의식적·비의식적 경험을 걸러내는 매체가 된다. (p. 21)

책의 제목이 알려주고 있듯이 이 책은 '기억'에 대한 책이다. 다만 그냥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 여겨지는 때의 기억 혹은 기억이 아니라고 여겨지던 때의 기억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하자면 신경증이라는 병에 걸렸을 때 환상 환청 등의 경험 혹은 진짜가 아니라고 여겨져왔던 환자의 기억도 기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까.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신경 회로, 그것은 인간 경험의 세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질적으로 이 책에서 탐구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p. 23)

저자는 '기억'에 대해 특히나 신경증 혹은 정신병 환자들의 기억에 대해 탐구한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두뇌에 운반된 감각 정보들의 무한히 복잡한 신경적 표상이다. (p. 42)' 라고 말하면서 뇌과학의 발달을 따라 신경증의 진단 및 치료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그 추이를 살펴보는데, 이러한 시스템적 기억은 역으로 그 기억의 소유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즉, 기억이 우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경증 환자들에게는 더욱 큰 변곡점이었다.

1980년대에는 신경학과가 없었고, 1990년대에도 아주 드물었다. 두뇌에 관한 이 모든 지식은 새로운 것이고 전체 역사를 두고 본다면 눈 깜짝할 새에 발전했다.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두뇌에 대해 배웠지만, 이 새로운 지식의 기준점이 되는 내 기초적 기억은 개인적 경험에, 또 내 환자들, 이제야 과학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을 직관했던 위대한 창조적 사상가들, 또 우리가 관련 과정들에 대해 아직 입에 올리지도 못할 때 이미 내적 성찰에 푹 잠겨 기억의 경험에 대한 글을 썼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경험에 뿌리를 둔다. 모두가 그렇듯 나는 지식과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근본적인 기억은 아마 기존의 과학적 지식이나 수정되지 않은 동화의 집단적 지혜 혹은 고도로 창조적인 관찰자들의 천재성을 토대로 할 것이다. 지식과 경험의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층적인 두뇌 기억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p. 311)

'신경학자들은 기억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고, 정신과 의사들은 그것을 경험의 저장고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신경과 의사들은 두뇌의 특정 구역에 병이 생겨 기억 기능의 특정한 결손을 유발한다고 할 수도 있다. (p. 313)' 너무 당연하게 사용해왔던 단어인 '기억'에 대해서 막상 따지고 들면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고 입장에 따라 상반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는 거였다. '살아있는 인간 경험은 발상보다 더 크다. 두뇌와 마찬가지로, 경험은 단순화할 수 없다. (p. 314)' 라고 마무리 하는 저자의 논지는 일면 <뇌가 아니라 몸이다> 라는 책에서 말했던 '몸의 지식력'을 생각나게 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정상적이건 비정상적이건 병적이건 그 모든 기억들은 다 '진짜' 라는 것이다. 몸으로 경험했건 머릿속으로만 경험했건 그 경험이 환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은 기억이고 그 모든 기억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이 우리의 내면을 완성하는 거라고.

'오래된 기억들의 방' 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제인 'The Rag and Bone Shop' 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자는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거의 추억 같은 오래된 기억들이 아니라 신경증 환자들이 병을 앓고 있을 때의 기억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그 병적 상태에서의 감각의 실체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다. 더구나 'The Rag and Bone Shop' 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걸레와 뼈 가게' 라고?;;; 제목에 대해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책의 영국판 원제는 ‘The Rag and Bone Shop’으로, 다소 이해가 쉽지 않은 이 제목은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폐품 가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목은 남겨진 기억들이 마치 누더기처럼 아무렇게나 쌓인 데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A Sense of Self’라는 제목으로 조금 더 자아에 초점을 맞춰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아우르는 동시에,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각자 ‘나’라는 자아를 이루는 마음의 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라고 한다.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를 검색해 보았지만 시 원문을 찾아 읽어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시가 수록된 책을 찾아 읽을 정도까지의 열의는 생기지 않았다. 읽고도 여전히 이해가 되진 않을 것 같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어보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내가 왠만해서는 책을 중간에 접는 경우가 없는데 살면서 그렇게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책이 딱 두권인데 그 하나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였다. 그러니 '이 책은 “글에서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의학적 연민이 희귀한 신경질환을 유려한 필체로 풀어낸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받으며, 아마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출판사의 소개글 中)' 라는 이 책이 쉽게 읽힐 리 만무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중간에 접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을 수는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신경학자의 30년 임상 기록' 이라는 이 책의 문학적 서술을 다 이해하며 읽은 것은 아니었다. 뇌과학적으로 혹은 신경학적으로 혹은 임상기록적으로 읽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고 조언드리고 싶다. 이 책은 문학적으로 그중에서도 시적으로 읽으시라고 꼭 권하고 싶다. 그렇게 읽을 수 없었던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능력자시라면 굉장한 책으로 '기억'하게 되실수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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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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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사라진, 사라져가는, 사라질 장소들로의 여행

이 책은 지도책이다. 학창시절 교과서 중의 하나였던 사회과부도라는 커다란 사이즈의 책을 생각나게 하는 크기의 책이지만 사회과부도 안의 지도들처럼 세세한 지도라기 보다는 유아들이 보는 그림책 속의 지도들처럼 그림지도들의 책이다. 그러고보니 크기도 그렇고 지도보다 사진이 많으니 그림책으로 봐도 무방할 책일 것 같다. 부담없이 술술 넘어간다는 면에서도.

이 책이 추구하는 이상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변덕스러움을 일깨우는 한편,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긴급히 보존해야 하는지 경고하는 것이다. (p. 6) -서문 中-

이 책의 첫장은 세계지도로 시작한다. 세계지도 곳곳에 빨간점들로 표시된 곳들이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장소들이다. 그 빨간점들은 그야말로 전세계 곳곳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장소들은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거나 사라질 곳들이다.

장소들은 크게 4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고대도시, 잊힌 땅, 사그라지는 곳, 위협받는 세계

'고대도시'들은 그야말로 사라진 곳들이다. 모헨조다로, 하투샤, 렙티스마그나, 상도, 사우다드페르디다, 마하발리푸람, 팔렝케, 헬리케, 페트라, 팀가드, 알렉산드리아 등의 도시들은 발굴되어 고대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지만 알려고 할수록 알수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들이기도 하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개인적으로 고대도시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책의 장소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아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잊힌 땅'은 지역적 색채가 강해서 잘 모르는 곳들이었다. 산업이 쇠퇴했거나 댐으로 인해 수몰됐다거나 자연풍화로 사라졌다거나... 있었을 때도 잘 몰랐던 곳들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사그라지는 곳'은 자연의 소멸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렇게 '위협받는 세계'에 이르면 지금까지의 장소들이 어떻게 하나로 엮이는지 어렴풋이 깨달아졌다. 인간이 환경을 마음대로 바꾸고 훼손하고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위협받는' 장소들을 보다보면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는걸까 자연스레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이 책은 지도책에 가깝고 각각의 장소들을 지도와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그리 길지 않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기에 차례대로 볼 필요도 없고 어떤 곳은 나름 관광하듯이 감상하며 읽게도 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왠지 이 모든 장소들이 조만간 다 사라질 장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사라진 곳도 지금 사라져가는 곳도 앞으로 사라질 것 같은 곳도 모두 다 사라질 것이다. 보존하고 아끼고 지키지 않으면 모두 다 사라질 것이다. 이 모든 곳들이 다 사라지고 난 후의 세계가 과연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일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에서 '사라진 장소들의 지도'가 아니라 '사라질 뻔한 장소들의 지도'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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