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이야기
리처드 메이비 지음, 김영정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 이야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첫 번째 농장에서 현대 도시의 부서진 아스팔트까지

모험을 떠나는 식물학과 역사의 유쾌한 연대기

나는 역사를 좋아하고 동물보다 식물을 좋아한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의 고고학적 생태계에도 관심이 있고 인간의 몸을 살찌워 온 작물로서의 변천사에도 관심이 있다. 그러니 <식물의 세계사>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는 아니었으나 여전히 궁금하고 또 궁금한 분야이기 때문에 또 읽을 수밖에 ㅎㅎ

풀이 우리가 가진 계획이나 세상을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지도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잡초가 된다. 그러한 계획이나 지도가 없다면 풀은 어떤 오명이나 비난도 뒤집어쓰지 않았을 것이다. (p. 13)

그러나 이 책 본문의 첫 줄에서부터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잡.초.

이 책의 원제 WEEDS 는 잡.초. 이다.

'식물의 세계사'도 아니고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 이야기' 도 아니며 '식물학과 역사의 유쾌한 연대기' 도 아니다.

그저 잡.초. 가 왜 잡초로 불리워졌는가 잡초의 특성은 무엇인가 잡초는 정말 잡초일까... 하는 등등의 잡초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잡초 이야기 책' 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방법과 어떤 이유로 식물을 달갑지 않은 존재로 분류하는가? 그것은 자연과 문화, 야생과 길들여짐을 구분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고 관대하게 그 경계에 선을 긋는지가 이 지구의 표면을 덮은 초록색 식물 대부분의 성격을 결정한다. (p. 19)

동물도 그렇지만 식물도 인간이 붙인 이름이 자신들의 이름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에게 쓸모가 있다하여 세상에 쓸모가 있다 말하는 것도 너무 인간중심적이다. '모든 정의는 전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잡초는 인간의 계획을 방해하는 식물이다. (p. 28)' 존재는 그저 존재일 뿐이다. 동물도 식물도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분류되고 특히나 쓸모없는 잡초로 분류되어 폄하는되는 것에 대해 억울하지 않을까?! 그러니 '그것들도 식물학적인, 혹은 적어도 생태학적인 정의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p. 28)'

잡초는 딱 봐도 변화가 심한 땅과 훼손된 풍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진화했으며, 우리 생각보다는 덜 유해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p. 32)

사실 지구를 자연을 땅을 가장 크게 훼손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다. 잡초가 아니라.

이 책은 잡초를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다루기 힘든 이 식물을 그들의 본모습이 무엇이고, 어떻게 자라며, 우리가 골칫거리로 여기는 이유를 보다 공평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논증된 주장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책은 인간의 이야기다. (p. 42)

대부분의 식물과 역사를 접목시킨 책들에서는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들이 주인공이다.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유용한지가 중요하곤 하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과 인간의 의도에 의해 선별된 식물들 외에 그 밖의 식물들에 대해선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닐까?

한 종으로서 그것들은 쉽게 이동하고, 씨앗을 많이 맺으며, 유전적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사는 곳에 까다롭게 굴지 않고 적응해 버리고, 환경적 스트레스에 빨리 대처하며, 자기 길을 가기 위해 여러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우리가 그들과 가장 많이 닮은 종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농경이 시작되지 동시에 잡초라는 문화적 개념이 생겼고, 그런 다음 그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 창조의 두 가지 명령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었다. (p. 65)

번성과 제거, 유용과 무용, 농경과 채집, 정착과 수렵에 있어 곡물의 발견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인간들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그리고 결국 인류 문명의 전 과정을 변화시켰던 것은 야생 에머밀이라고 불리는 사막의 잡초를 길들인 일이다. (p. 72)' 그러니 잡초에서 출발한 인간의 생존력과 지혜에서 잡초는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 것인지 식물이 문명을 정복한 것인지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색다른 발견을 하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역사는 식물에 대한 끊임없는 선택과 연결되어 있었다. 독초인가 약초인가는 주술과 의학의 경계를 구분지었고 문학에서 식물은 그 존재만으로도 상징성이 뚜렷했으며, 인간보다 빠르게 서식지를 넓혀 세계화를 이룬 것은 어쩌면 잡초였다. 이러한 잡초의 활약에는 물론 인간의 의도가 계획따위는 없었다.

잡초들이 문제를 일으키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옹호론자들은 지구상에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설명하고, 그들의 생태에서 무언가 도덕적 가르침을 찾기 위해 애써왔다. (p. 225)

잡초들에서도 나름의 유용성을 찾아내야 인간은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일까. '야생정원'이라는 서로 너무나 상반된 두 단어를 붙여 보기도 하면서 인간은 가끔 잡초들에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잡초를 침략자라고 생각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은 한 장소의 문화적 전통이나 유산이자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존재이다. 또한 우리의 건물과 어설픈 손질들이 한낱 덧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곳, 그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유전자은행의 일부이기도 하다. (p. 266)

새로운 전염병이 생길때마다 새삼 유전자풀의 중요성이 거론되곤 한다. 멸종동물들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개체의 종말이 아니라 전 지구적 종말의 시작임을 역설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 쉽게 눈을 돌려오곤 했다. 그러니 잡초의 유전자은행에 관심을 가진 시기가 짧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서 마녀 취급을 당하던 잡초이지만, 인간이 훼손하고 무너뜨리고 파괴시킨 땅에 가장 먼저 생명의 꽃을 피워낸 것은 늘 잡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는 여전히 악역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잡초의 이미지는 그들이 차지한 땅을 옮기거나 넓힐 때, 어딘가 새롭게 침입할 때 변하고, 대중적 감성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p. 394)

잡초의 시대가 변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더 성공적인 동시에 잔인하게 공격받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농부나 정원사,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실시하는 잡초 방제와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들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제의 엄청나게 다양한 동기와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식물 세계나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p. 406)

우리는 지구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자연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잡초는 뽑아버리고 약을 뿌리고 만다. 게다가 '잡초, 그리고 그들의 필연성과 화해하는 것은 항상 아찔한 과정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실질적인 통제와 문화적 수용을 결합하는 것이 포함된다. (p. 419)' 그래서 프레임의 전환은 늘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첫머리에서 나는 잡초가 자연계를 야생과 길듦으로 엄격하게 분리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경계 파괴자들, 즉 무국적 소수민족으로서 우리에게 삶이 그렇게 정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들이라면 우리가 다시 자연의 경계선들을 넘어 사는 법을 배우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p. 421)' 라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게 남는다. 우리가 처음으로 잡초의 이야기를 읽어야할 시대가 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니 문명과 정복과 인간 이라는 단어들을 버리고 오로지 자연 그 자체로서의 잡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생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자. 침입자들은 잡초가 아니라 인간이 아니었을지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ps. 잡초라는 한국어판 제목을 달고 나오면 외면받았을 것 같았는지 책 제목에조차 드러내지 못한 잡초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의미에 공감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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