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학자들은 기억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고, 정신과 의사들은 그것을 경험의 저장고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신경과 의사들은 두뇌의 특정 구역에 병이 생겨 기억 기능의 특정한 결손을 유발한다고 할 수도 있다. (p. 313)' 너무 당연하게 사용해왔던 단어인 '기억'에 대해서 막상 따지고 들면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고 입장에 따라 상반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는 거였다. '살아있는 인간 경험은 발상보다 더 크다. 두뇌와 마찬가지로, 경험은 단순화할 수 없다. (p. 314)' 라고 마무리 하는 저자의 논지는 일면 <뇌가 아니라 몸이다> 라는 책에서 말했던 '몸의 지식력'을 생각나게 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정상적이건 비정상적이건 병적이건 그 모든 기억들은 다 '진짜' 라는 것이다. 몸으로 경험했건 머릿속으로만 경험했건 그 경험이 환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은 기억이고 그 모든 기억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이 우리의 내면을 완성하는 거라고.
'오래된 기억들의 방' 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제인 'The Rag and Bone Shop' 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자는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거의 추억 같은 오래된 기억들이 아니라 신경증 환자들이 병을 앓고 있을 때의 기억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그 병적 상태에서의 감각의 실체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다. 더구나 'The Rag and Bone Shop' 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걸레와 뼈 가게' 라고?;;; 제목에 대해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책의 영국판 원제는 ‘The Rag and Bone Shop’으로, 다소 이해가 쉽지 않은 이 제목은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폐품 가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목은 남겨진 기억들이 마치 누더기처럼 아무렇게나 쌓인 데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A Sense of Self’라는 제목으로 조금 더 자아에 초점을 맞춰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아우르는 동시에,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각자 ‘나’라는 자아를 이루는 마음의 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라고 한다.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를 검색해 보았지만 시 원문을 찾아 읽어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시가 수록된 책을 찾아 읽을 정도까지의 열의는 생기지 않았다. 읽고도 여전히 이해가 되진 않을 것 같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어보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내가 왠만해서는 책을 중간에 접는 경우가 없는데 살면서 그렇게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책이 딱 두권인데 그 하나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였다. 그러니 '이 책은 “글에서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의학적 연민이 희귀한 신경질환을 유려한 필체로 풀어낸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받으며, 아마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출판사의 소개글 中)' 라는 이 책이 쉽게 읽힐 리 만무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중간에 접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을 수는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신경학자의 30년 임상 기록' 이라는 이 책의 문학적 서술을 다 이해하며 읽은 것은 아니었다. 뇌과학적으로 혹은 신경학적으로 혹은 임상기록적으로 읽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고 조언드리고 싶다. 이 책은 문학적으로 그중에서도 시적으로 읽으시라고 꼭 권하고 싶다. 그렇게 읽을 수 없었던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능력자시라면 굉장한 책으로 '기억'하게 되실수도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