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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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이 책의 추천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올리버 색스를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집어들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선생님이 추천의 글을 올렸다. 나는 올리버 색스 때문이라기 보다는 하지현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저 추천문장이 이 책을 정말 잘 표현한 문장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는 데 실패한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정상적인 것으로, 다른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또 일부 경험을 병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나는 정상과 비정상 경험을 구분하는 경계선에는 관심이 없지만, 경험을 창출하는 신경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항상 큰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신경에 입각하여 경험-감각, 인지, 감정-을 설명하는 연구는 어디서 시작하든 결국 언제나 기억으로 이어진다. 기억은 우리가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을 한데 합치고, 현재의 의식적·비의식적 경험을 걸러내는 매체가 된다. (p. 21)

책의 제목이 알려주고 있듯이 이 책은 '기억'에 대한 책이다. 다만 그냥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 여겨지는 때의 기억 혹은 기억이 아니라고 여겨지던 때의 기억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하자면 신경증이라는 병에 걸렸을 때 환상 환청 등의 경험 혹은 진짜가 아니라고 여겨져왔던 환자의 기억도 기억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까.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신경 회로, 그것은 인간 경험의 세계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질적으로 이 책에서 탐구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p. 23)

저자는 '기억'에 대해 특히나 신경증 혹은 정신병 환자들의 기억에 대해 탐구한다. '기억은 본질적으로 두뇌에 운반된 감각 정보들의 무한히 복잡한 신경적 표상이다. (p. 42)' 라고 말하면서 뇌과학의 발달을 따라 신경증의 진단 및 치료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 그 추이를 살펴보는데, 이러한 시스템적 기억은 역으로 그 기억의 소유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즉, 기억이 우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경증 환자들에게는 더욱 큰 변곡점이었다.

1980년대에는 신경학과가 없었고, 1990년대에도 아주 드물었다. 두뇌에 관한 이 모든 지식은 새로운 것이고 전체 역사를 두고 본다면 눈 깜짝할 새에 발전했다.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두뇌에 대해 배웠지만, 이 새로운 지식의 기준점이 되는 내 기초적 기억은 개인적 경험에, 또 내 환자들, 이제야 과학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을 직관했던 위대한 창조적 사상가들, 또 우리가 관련 과정들에 대해 아직 입에 올리지도 못할 때 이미 내적 성찰에 푹 잠겨 기억의 경험에 대한 글을 썼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경험에 뿌리를 둔다. 모두가 그렇듯 나는 지식과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근본적인 기억은 아마 기존의 과학적 지식이나 수정되지 않은 동화의 집단적 지혜 혹은 고도로 창조적인 관찰자들의 천재성을 토대로 할 것이다. 지식과 경험의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층적인 두뇌 기억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p. 311)

'신경학자들은 기억을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고, 정신과 의사들은 그것을 경험의 저장고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신경과 의사들은 두뇌의 특정 구역에 병이 생겨 기억 기능의 특정한 결손을 유발한다고 할 수도 있다. (p. 313)' 너무 당연하게 사용해왔던 단어인 '기억'에 대해서 막상 따지고 들면 그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고 입장에 따라 상반된 정의를 내릴 수도 있는 거였다. '살아있는 인간 경험은 발상보다 더 크다. 두뇌와 마찬가지로, 경험은 단순화할 수 없다. (p. 314)' 라고 마무리 하는 저자의 논지는 일면 <뇌가 아니라 몸이다> 라는 책에서 말했던 '몸의 지식력'을 생각나게 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정상적이건 비정상적이건 병적이건 그 모든 기억들은 다 '진짜' 라는 것이다. 몸으로 경험했건 머릿속으로만 경험했건 그 경험이 환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은 기억이고 그 모든 기억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들이 우리의 내면을 완성하는 거라고.

'오래된 기억들의 방' 이라는 제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제인 'The Rag and Bone Shop' 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자는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거의 추억 같은 오래된 기억들이 아니라 신경증 환자들이 병을 앓고 있을 때의 기억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그 병적 상태에서의 감각의 실체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다. 더구나 'The Rag and Bone Shop' 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걸레와 뼈 가게' 라고?;;; 제목에 대해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책의 영국판 원제는 ‘The Rag and Bone Shop’으로, 다소 이해가 쉽지 않은 이 제목은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폐품 가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목은 남겨진 기억들이 마치 누더기처럼 아무렇게나 쌓인 데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A Sense of Self’라는 제목으로 조금 더 자아에 초점을 맞춰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아우르는 동시에,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각자 ‘나’라는 자아를 이루는 마음의 방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라고 한다.

예이츠의 시 '서커스 동물들의 탈주'를 검색해 보았지만 시 원문을 찾아 읽어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시가 수록된 책을 찾아 읽을 정도까지의 열의는 생기지 않았다. 읽고도 여전히 이해가 되진 않을 것 같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어보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내가 왠만해서는 책을 중간에 접는 경우가 없는데 살면서 그렇게 중간에 읽기를 포기한 책이 딱 두권인데 그 하나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였다. 그러니 '이 책은 “글에서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의학적 연민이 희귀한 신경질환을 유려한 필체로 풀어낸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받으며, 아마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출판사의 소개글 中)' 라는 이 책이 쉽게 읽힐 리 만무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중간에 접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을 수는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하지만 '세계적인 신경학자의 30년 임상 기록' 이라는 이 책의 문학적 서술을 다 이해하며 읽은 것은 아니었다. 뇌과학적으로 혹은 신경학적으로 혹은 임상기록적으로 읽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고 조언드리고 싶다. 이 책은 문학적으로 그중에서도 시적으로 읽으시라고 꼭 권하고 싶다. 그렇게 읽을 수 없었던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능력자시라면 굉장한 책으로 '기억'하게 되실수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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