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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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영미 문학의 거장이 써내려간, 시대를 품은 시의 향연

소소의 책 출판사에서 나오는 00의 역사 시리즈를 좋아한다. 책이라는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일테지만 은근 디자인이 먹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나에겐 이 시리즈가 그랬다. 하드커버의 묵직함 대비 쉽게 넘어가는 페이지들의 여백과 일관된 표지 디자인이 일단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갖게 하는 책이었다. 그렇게 <세계 종교의 역사> <철학의 역사> <고고학의 역사> <언어의 역사>를 모두 읽었으니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가 '시'일지라도 새로 나온 <시의 역사>를 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달까.

시란 무엇일까? 시와 언어의 관계는 음악과 소음에 견줄 수 있다. 기억에 남고 가치를 부여받도록 특별히 지은 언어라는 뜻이다. 언제나 그 목적을 달성하는 건 아니다. 수 세기가 흐르는 사이 까맣게 잊힌 시가 수천수만 편에 달한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잊히지 않은 시들을 다루려 한다. (p. 11)

제목이 시의 역사 이고, 첫줄부터 오래도록 전해져 온 시를 다룬다는 목적을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알아두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시'는 '英詩'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영어의 모국인 영국에서 영국의 평론가가 쓴 책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영시가 주된 '시'이긴 하나 '역사'적 흐름으로 서술되고 있기에 기원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시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 (p. 11)' 부터 저자의 '시의 역사'는 시작된다.

시의 지혜는 우리에게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시는, 아니 어떤 시들은 죽지 않고 인간 수명의 한계를 훌쩍 넘어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어째서 그러한가는 수수께끼다. 날마다 눈사태처럼 우리를 무서운 속도로 덮치고 흘러가는 망망한 언어 속에서 시인이 몇 개의 단어를 골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것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예술을 창조하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까지 아무도 이 신비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시인은 이 목표를 추구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p. 18) 무엇이 시에 영생을 부여하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시를 판단하는 기준 역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나의 선호도는 독자 여러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시처럼 보이더라도 우리가 다른 정신과 다른 과거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미학적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의견이 있을 뿐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 책에서 예전에 몰랐던 시들을 발견하고 그 시들을 나날의 생각 속에 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들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길 바란다. (p. 19)

서문없이 바로 길가메서 서사시로 시작한 이 책에서 이 첫 챕터는 서문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내용과 이 시가 후대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시란 무엇인가 로 시작해서 독자의 시상으로 끝나는 이 챕터는 '시'에 대한, 그중에서도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시'에 대해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앞으로 미래에 전해져 남겨질 '시'에 대한 독자(나)의 감상이라는 뚜렷한 목표감을 심어준다. 그러니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나게 될 시를 읽으며 계속 느껴봐야 할 것이다. 나의 어떠한 주관적 판단이 그 시에 영생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英詩의 역사이므로 서양사의 흐름과 큰 맥을 같이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로 시작했으니 그 다음은 당연히 호메로스 였는데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를 설명하는 중에 나온 문장이 의미있어 보였다. '많은 다른 시와 달리 호메로스의 작품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도 크게 훼손되지 않는데, 그 이유를 하나 들자면 서술 기법의 단순성, 속도감, 직접성이다. (p. 26)' 길가메시 서사시도 호메로스의 시도 영어로 쓰인 시가 아니다. 심지어 그 언어를 해독했을지라도 그 당시의 발음은 재현할 길이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고대시가 갖고 있는 영생성은 언어와는 큰 상관이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로서의 '시'의 탄생은 로마제국의 탄생과 함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유럽을 통합한 제국은 단순히 지역적 통합이 아니었음이 '시'에서도 확인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서양역사나 철학이나 문학작품이나 많은 분야에서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라기 보다는 라틴어에서 찾아지곤 하는 것 같다. 로마제국의 언어였던 그 라틴어 말이다. 그러니 라틴어 고전의 출발을 알린 세 명의 시인(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이 모두 아우구스투스 초대 로마황제 시절을 함께 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로마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브리튼 섬에서 英時가 시작된다. 앵글로색슨 시의 첫 작품은 '기독교 신상 선언이 이교의 영웅도와 병존해 나타난 (p. 36)' [베오울프] 였다.

앵글로색슨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두운이 맞는 동의어를 찾는 시인의 노력 탓에 시가 아주 이상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베오울프]는 3,100여 개에 달하는 구체적 단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중 거의 3분의 1이 앵글로색슨 산문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로지 [베오울프]나 여타 시에서만 발견된다. 시를 처음 들은 사람들에게는 일상적 용례와 동떨어진 이런 어휘가 영웅 설화의 배경이 되는 다른 세상에 어울리는 경이로운 감정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p. 39)

'시의 역사'는 '언어의 역사'와 함께 했다. 산문과 달리 시에 사용된 언어들은 시인의 느낌을 좀더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성 있게 혹은 구체적으로 전달되게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의 조합을 시도한 단어들이었다. 그러니 새로 탄생하는 단어들과 지역적 방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상 이미 이 초창기의 시부터 우리는 그 시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수 없게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시의 '영생성'에 대해 독자는 궁금함을 품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이 이 시를 고전으로 남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을 통틀어 단테 알리기에리 만큼 현대 독자에게 호소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찾기 어렵다. 단테의 시가 속속들이 중세 신학에 젖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낙 그의 믿음이 우리의 반감을 유발하기 일쑤라서 그렇기도 하다. 단테는 인간으로서의 매력도 없었다. 복수심이 강하고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p. 45)

ㅍㅎㅎㅎㅎㅎ

인문학 책을 읽으며 이렇게 빵 터져서 웃게 될 줄이야. ㅋㅋㅋ

단테의 <신곡>을 읽었지만 그 명성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저자의 저 문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래서 내가 영국작가들의 책을 좋아한다.

고전으로 남겨진 시의 흐름에서 단테와 페트라르카가 빠질 수 없다. 저자는 '중세 유럽 대륙의 거장들' 이라는 제목 아래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시를 소개하면서 직접적으로 그 단점들을 적시한다. 고전으로 남은 작품에 대한 단점 분석이라니, 이또한 마음에 든다! ㅋㅎㅎ

중세시대에는 영시의 계보가 아직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은 때였기에 '제프리 초서는 중세의 위대한 영국 시인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유럽인이기도 했다. (p. 54)' 라는 식의 관점은 당분간 유지된다.

초서에 대한 설명중 마지막 문장에 호기심이 남았는데, '어느 다른 초서의 작품을 읽더라도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미 읽었다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한 번 더 읽어보라.(p. 61)' 라는 저자의 권유가 (이 책에 등장하는 시들 중에서) 유일했기에 나중에 꼭 읽어보리라 마음먹어 본다.

초서 이후로도 중세 시인들이 연대기적으로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스펜서의 [요정 여왕]이라는 작품이 상당히 궁금해졌지만 검색해보니 국내 번역된 작품집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가 되어 세익스피어가 등장한다. 세익스피어를 비롯하여 이 시대의 시인들을 저자는 '사랑 시인들' 이라고 명명한다. 이 식민지의 시대에 존 던 이라는 시인은 '시의 코페르니쿠스'라 불렸고 존 밀턴의 시는 '피안의 세계에서 온 시' 라고 정리되었는데, 저자는 '17세기는 영국 시의 역사에서 놀라운 다양성의 시대였다. 초기는 존 던이 장악했고, 후기는 존 밀턴이 지배했다. (p. 111)' 라고 하면서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대는 완전히 뚜렷하게 개인주의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 중에서도 하버트, 본, 트래헌 은 '종교적 개인주의자들' 이었다. 이 뒤로는 '신고전주의 시대'가 이어진다.

저자는 '또 다른 18세기' 라는 챕터에서 굉장히 다양한 시인들을 소개하는데 그중에서도 '신고전주의 문학사를 설명할 대는 여성 작가들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지만, 18세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여성 작가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p. 171)' 라는 부분에서 등장하는 여성시인들과 '민중시'라는 챕터에서 설명되는 시들을 통해 이 책이 정리하는 '시의 역사'가 어느 한 쪽에 편중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이제 근대에 이르렀고 낭만주의자 시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낭만주의 시인들을 안내하며 저자는 잠시 독일의 시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데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독일은 1871년까지 국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 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미쳤다. 낭만주의를 '발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이 요한 볼프강 폰 괴테라고 대답할 것이다. (p. 236) 독일 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괴테도 하이테도 아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였다. (p. 241)

이 시대에 독일에 괴테와 하이테와 릴케가 있었다. 시의 역사에서 어찌 이 시인들을 빼놓을 수 있었겠는가.

참고처럼 덧붙여진 이 챕터 뒤에는 러시아의 푸시킨이 소개된다.

다음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들이 나오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시인들'을 별도의 챕터로 소개하는 저자의 성의가 반가웠다.

이 뒤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英詩 영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최초의 미국 시인들은 영국 이민자 였다. (p. 285)'

19세기를 매듭짓는 수십 년 동안 유럽 문화는 파편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랑스가 무참하게 패배하자 유럽의 권력 지도가 불길하게 재편되었다. 19세기 내내 산업과 상업이 도시의 삶을 변모시켰고, 많은 사람의 눈에 예술은 곁가지로 밀려나는 듯 했다. 유럽의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사람들은 군중과 군중의 힘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또 다른 발전은 교육의 확산이었다. 1900년대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초등교육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대중을 창출해냈다. 더불어 대량으로 유통되는 신문과 잡지가 생겨났다. (p. 302)

20세기를 앞두고 모든 것의 근간이 흔들렸다. 시대의 끝에서 새로운 목소리들이 등장했고, '조지 시대의 시인들' 이라고 묶이는 그룹이 있기도 했지만, 세계대전은 모든 것을 뒤엎었다. 그 혼란의 시대에도 '시'는 노래했다. 예이츠 처럼 도피하는 시인들도 있었고 엘리엇 처럼 모더니즘의 선두에 선 시인들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서양과 동양의 만남에 관심을 갖는 시인들이 있기도 했다. 모더니즘의 창시자라 할 미국인 엘리엇은 영국인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미국의 시인들은 엘리엇과 다른 모더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모더니즘에 반하는 새로운 시류가 등장했다. 모더니즘이 극복된 이후 시인들은 이제 하나의 시조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기에 어떤 시풍 보다는 시대별로 정리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는 고백 시인들이 영국에는 무브먼트 시인들이 있기도 했지만 사회상을 밀접하게 반영한 정치적 시인들도 다수 있었는데, '휴즈와 플라스' 라는 커플에 대한 단독 챕터는 그 어디에도 묶여질 수 없는 내용이라서 신선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 따로 이 커플 시인을 설명했을까 의아해지기도 했는데 마지막 챕터인 '경계를 넘는 시인들'에서 그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저자가 마지막 시로 선택한 작품이 '머레이의 시 [존재의 의미]' 라는 것이 다시 처음의 목적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면 시의 결말은 신념 체계를 뒤흔들고, 심지어 자신의 확실성마저 포함한 모든 확실성에 의문을 갖는 시의 힘을 보여주는 걸까? (p. 495)

역자는 '옮긴이의 말'에서 - '시의 역사' 라는 야심만만한 포괄적 제목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책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 교수의 관점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p. 507)- 라고 이 책이 제목과는 다른 불완전성을 가진 책임을 인정한다. 또한, - 모든 문학은 번역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시는 유달리 그렇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단어 하나 대체할 수 없다는 대체 불가능성, 절대적인 유일무이성이 곧 존재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를 타국어로 '옮긴다' 는 행위는 반달리즘이 무색한 파괴의 작업일 수밖에 없고, 언어권 밖의 사람이 시를 이해하려 들 때의 한계는 너무나 참담하게 뚜렷하기 때문이다. (p. 508) - 라며 시에 대한 책을 번역함에 있어 한계가 어쩔 수 없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역사>를 옮긴 이유는, 우리 역시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끝없이, 부단히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더라도, 원래의 형태를 잃고 해체되어 재조립된, 복제된 언어의 직조물이라 해도 언제나 타자를, 타 문화를, 타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p. 508)- 라고 이 책의 의미를 밝힌다. 그리고 저자가 물음표로 끝낸 책의 마지막 문장이 남긴 여운에 대해 역자가 답을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 답이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 세기에 걸쳐 까맣게 잊힌 수천수만 편의 시가 있으나, 끝내 잊히지 않은 소수를 다루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권의 시들은 아니나, 수 세기의 시험을 통과한 걸작들은, 경이롭게도, 번역자의 손에 무너져 내렸다. 재조립된 너덜너덜한 언어의 누더기 속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의미의 찬란한 빛을 발하기도 한다. 정말로 빛나는 시성詩性은 시간과 장소는 물론, 언어마저 초월하기도 한다. (p. 509) -옮긴이의 말 中-

찾아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시간과 장소는 물론 언어를 초월한 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지지 않는가? 서양사에 관심있던 사람이라면 그 시작을 <시의 역사>라는 책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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