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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마을 - 아직도 탐험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39개 미지의 장소들
앨러스테어 보네트 지음, 방진이 옮김 / 북트리거 / 2019년 6월
평점 :
아직도 탐험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39개의 미지의 장소들
모든 것이 밝혀졌다고 믿는 측정과 기록의 시대, 지도 위의 빈틈을 찾아 떠나다
산책자처럼, 탐험가처럼 지도 밖을 거닐다
등등의 표지문구들을 보면서, 오지탐험기 혹은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에 대한 여행기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편안한 색감의 온유한 표지가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지리학자가 쓴 사회학 내지는 정치학 에세이 로 읽히는 책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와 정치역학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역사가 증명해준다.
대표적인 책으로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는 지리를 바탕으로 역사의 흐름을 분석한 대단한 역작이었다.
나는 예상과 다른 내용의 책을 읽고 나면 원서 제목을 주의깊게 생각해보는 편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Beyond the Map
Unruly enclaves, ghostly places, emerging lands and our search for new utopias
번역기를 돌려보니,
지도 넘어 - 배타적인 땅, 유령의 땅, 떠오르는 땅 그리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는 우리의 수색
정도의 뜻이 되는 듯 하다.
이 책은 정치적 갈등이 있는 땅, 잊혀져 유령이 있을 것 같은 땅, 융기되어 바다에서 떠오르고 있는 섬들 그리고 유형이건 무형이건 어딘가에 있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 지도에 표시되지 않거나 표시될 수 없는 곳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원서의 제목은 내용유추가 가능했던 것을 보면 한국어판 제목은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1장 제멋대로인 섬들
암초 섬에 얽힌 지정학적 욕망-맹키에군도 에서는 암초정도에 지나지 않는 섬들로 인해 바다에서의 경계가 국가들 간에 얼마나 첨예하게 계산되어질 수 밖에 없는지를 이야기 한다.
섬들의 연합체를 만드는 일에 관하여-미국령 군소 제도와 범대양 군도 초소형국가체 연합 에서는 땅따먹기도 아니고 섬따먹기 느낌이 들었다.
누가 섬을 건설하려 하는가-스프래틀리제도 에서는 섬이라고 하기에 불분명하더라도 섬이라고 쳐서 생겨난 신생 섬들에 대한 영유권 다툼이 가장 치열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미친짓이라고 부끄러워 하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바다에서 섬이 솟아나고, 섬이 육지가 된다면-보트니아의 떠오르는 섬들 에서는 융기라는 자연적 현상을 통해 생겨난 섬들에 대한 소유권 분쟁을 다룬다,
섬의 개수는 어떻게 세는가-필리핀에서 새로 발견된 534개의 섬들 에서는 섬들이 곧 영토이고 영해를 구분지어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섬이라고 부를 만한 조건은 무엇이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버림받은 도시 공간을 보살피는 방법-교통섬 에서는 도시에서 도로가 얼키고설킨 사이지대의 빈공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씨앗폭탄'투척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의 대부분의 내용은 결국 섬을 사이에 둔 영역분쟁 이야기들이다.
2장 고립지와 미완의 국가들
사라져 가는 소수 언어의 행방-라딘어의 골짜기들 에서는 언어의 섬, 즉 고립된 지역에서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서핑 천국에 숨어 있는 기묘한 종교 구역-본다이 해변의 에루브 에서는 유대교 율법에 다스려지는 구역을 알려주는데 그런 지역이 꽤 많아서 놀랐다. 게다가 에루브 가 급성장 하고 있다고 하니 종교적 보수주의와 지역주의 가 정말 심화되고 있구나 싶어서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다
복잡하고 위험한 국경선 긋기-페르가나 분지 에서는 더 심한 영토분쟁을 다룬다. 영토는 곧 자원이고, 자원은 곧 힘이 되기에 중앙아시아에서의 민감한 지역이 새삼 위험해 보인다
그들의 국경은 왜 인정받지 못하는가-사하라의 모래벽 에 나오는 모로코 지역의 분쟁은 몰랐던 내용이라 영유권 분쟁이 정말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구나 싶었다
분리주의는 어떻게 싹트는가-신러시아 에서는 노보로시야 를 대표적으로 소련이 해체되면서 생겨난 국가들이 아직도 혼란스러운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영토가 없어도 주권을 인정받은 나라-몰타기사단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영토가 없고, 따라서 국경도 없는데 주권이 있고 세계에서 인정받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종교조직이자 가장 작은 국가라고 불리는 몰타기사단 의 존속여부가 계속 궁금해진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분열되고 있다-스트랫퍼드공화국 에서는 영국인으로서 저자의 브랙시트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브랙시트는 정부의 규모와 형태가 고정불변이 아닌 유동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준 사건이라고 하는데, 화합이 아닌 분열로 가는 모든 시도는 위태로워 보인다
2장의 대부분의 내용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들을 다루고 있다.
3장 유토피아의 장소들
종교적 야심이 낳은 암울한 유토피아-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에서는 IS 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는 유토피아 였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디스토피아였던
가상현실이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신화-사이버토피아 에서는 사이버공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사이버토피아도 결국 유토피아는 아니다
어떤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은 행복한가-신유목민 에서는 스스로를 크리에이터이자 혁신가로 표현하며 부유하게 떠돌고 있는 신유목민에 대한 허상을 짚어내고 있다.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유쾌한 이중주-넥 찬드의 록가든 에서는 인도에서의 두 장소를 비교함으로써 주류와 비주류 전통과 비전통에 대한 통념을 비판한다
도시 한복판에서 자유로운 삶을 실험하다-크리스티아니아 에서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중심에 있는 크리스티아니아 라는 곳을 이야기 한다. 자유롭지만 새로운 주민을 받지 않는 배타성을 보며, 자유는 이기적이어야만 지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한다
야생 식물 채집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나라-헬싱키의 야생 식량 수확 체험기 에서는 도시와 자연을 이어주는 일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아쉬움이 읽힌다
헬리콥터는 어떻게 최상위층의 전유물이 되었는가-헬리콥터의 도시 에서는 브라질의 상파울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헬리콥터 도시는 결국 부유층을 위한 유토피아였음을 밝힌다
수직 도시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지면이 없는 도시 에서는 홍콩을 예로 들면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로 대부분의 이동을 함으로써 지면과 멀어진 도시가 가진 부족한 부분을 드러낸다
3장에서는 어디에서도 어떤 방법으로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새삼 결론내게 된다
4장 유령과 환영이 떠도는 장소들
도시는 사람을 집어삼킨다-신주쿠역의 유령 터널 에서는 삭막한 도시풍경 풍경을
성급한 개발 계획의 잔재, 흉물로 남다-고가보도 에서는 이용되지 않는 영국내 고가보도의 흉물스러움을
폐허가 매력적인 이유-보이즈빌리지 에서는 영국내 보이즈빌리지 라는 버려진 캠핌장에 대한 향수를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방치된 식민지의 흔적-심라의 영국인 묘지 에서는 인도내에 영국인 묘지에 대한 쇠락에 대한 단상을
무대 위에 재현한 '멋진 신세계'-[다우] 영화 세트장 에서는 연기와 연기가 아닌것이 혼합된 영화와 무대와 현실이 혼합된 세트장을 통한 기묘함을
땅의 신성한 기운을 읽기 위한 지리학-주술의 도시 런던 에서는 주술의 신비성을 빌려서라도 인간과 도시가 좀더 자비롭게 관계맺었으면 하는 바람을
머나먼 미래 세대에게 어떻게 경고할 것인가-쓰나미 비석과 핵폐기물 표식 에서는 자연에 대한 책임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책임감을 읽을 수 있었다.
4장은 도시의 삭막함과 버려진 장소들에 대한 향수에서 자연과 도시의 좀 더 잘 어우러지는 미래를 그리는 저자의 마음이 읽혔다
5장 감춰진 장소들
누가 이 도시를 더럽다 하는가-카이로의 쓰레기 도시 에서는 이집트 카이로의 자발린이 사는 쓰레기 마을이 나온다. 90%가 이슬람교도인 곳에서 소수의 기독교분파로 쓰레기를 분류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건 쓰레기 보다도 종교적 편견 같아 보여 마음이 안좋았다
구글 어스 시대의 빈틈-스트리트뷰에 나오지 않은 히든힐스 와 와나타몰라 빈민가 에서는 최상위 부유층이 사는 곳과 최하위 극빈층이 사는 곳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알려준다. 두 계층이 사는 곳이 모두 구글 스트리트뷰에 나오지 않는 다는 것. 보호와 무시의 그 경계란 참...
지도에 숨어 있는 덫-트랩스트리트 에서는 지도의 저작권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잘못 표시한 장소인 트랩스트리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해리포터의 킹스크로스역의 9와3/4 승강장에 대한 묘사가 이래서 나올 수 있었구나 싶다
미지의 땅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미개척지 콩고 에서는 콩고의 자연을 이야기하며 왜 미지의 땅이 계속 등장하는지 새삼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검은 돈이 머무는 곳-에든버러 로이스턴 메인스가 18번지 2호 에서는 페이퍼컴커니 같은 탈세의 장소들을 이야기 한다.
보행자의 움직임은 어떻게 통제받는가-스파이크 지대 를 읽으며 걷지말라고 수많은 표지판을 박아놓는 것보다 길바닥에 스파이크를 박아놓는 것이 효율적이었구나 그렇게 보이지 않게 질서가 통제되는구나 놀랍고 씁쓸했다
비밀 영토에 도사린 야망-하이난섬의 유린 지하 해군기지 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의 장소 중국이 건설한 군사섬에 대한 이야기이다
왜 잠들어 있는 유적을 깨우려 하는가-예루살렘 땅 아래 에서는 예루살렘 전역에서 선대의 유골들이 상반되는 주장으로 되살아나 끊임없이 분쟁으로 번지고 있음을 새삼 알수 있었다
가라앉은 땅으로 떠난 짧은 여행-도거랜드 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지고 있는 땅에 대한 자연의 힘을
기회의 땅이 빚어낸 욕망의 정치학-북극의 신세계 에서는 빙하가 녹으면서 드러나는 북극에 대한 분쟁들을
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를 향한 열망-콘 셸프 해저 기지 에서는 땅도 모자라 바다에까지 도시를 세우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5장이 보여주는 감춰진 장소들은 차라리 감춰진 채 있는 것이 나은게 아닐까 싶은 생각과 얼마나 더 감춰진 장소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분열된 세계와 유토피아나 분리/독립을 염원하는 야심이 솟구치고 있는 곳과 환영과 끝없는 비밀이 무리지어 떠돌고 있는 곳을 보여주면서, 그래서 더 분열되고 있고 더 기묘해지는 장소들에 대한 변화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담아낸다. 현재의 지리적 혼돈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들을 골라 엮은 이 책에 나오는 39 곳 중 나는 어느 한곳도 가고 싶지 않다. 안타깝거나 아쉽거나 무섭거나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장소들... 하지만 지도가 보여주는 곳들 외에도 이런 곳들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 같긴 하다. 삶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들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인해 더 큰 변화를 겪게 마련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