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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이런 느낌의 소설은 처음이다.
아름답다...
처음엔 소설치고는 좀 지루하다 싶게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가랑비에 옷젖듯이 빠져들어 마지막에 가선 자야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놓을 수가 없어서 결국 다 읽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작가의 이력은 여타 소설가들과 무척 다르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과학자가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했다. 2018년 8월 출간된 책은 지금도 여전히 밀리언셀러의 기록을 경신중이고 출간후 1년이 채 안되어 번역본이 국내 출판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이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단언했고 처음부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번역한 옮긴이는 여주인공 카야의 '외로움'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대부분의 화자는 '카야' 이다. 카야의 말과 카야의 생각을 읽으며 어느 순간 카야가 된다. 습지에서 혼자 사는 소녀 카야.
1969년과 1952년이 교차 서술되다가 사건을 계기로 합쳐져서 1970부터 현재시점으로 여겨지는 그 시간의 간격이 줄어들수록 카야는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아가씨로 성장하지만, 카야의 삶에서 외로움도 그만큼 성장한다.
배경은 미국 남부 해안가의 습지 빈민촌.
노예해방이 선언된지 오래지만 남부 특유의 인종차별은 아직 남아있었고, 부농의 자만심도 남아있었고, 전쟁의 상흔도 남아있었다.
카야에게는 엄마도 있었고 아빠도 있었고 언니들과 오빠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알콜중독과 폭력에 지친 가족들은 하나둘 떠나고 여섯살 어린 카야와 아빠 단 둘이 남는다.
그러다 아빠마저 떠나고 카야는 혼자 생존하는 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시하고 조롱했지만,
의식하지 못할때 지켜봐 준 사람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가족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 찾아왔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갈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처럼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사람들이 무서워서 혼자 숨어드는 카야를 이해해주고, 글자도 가르쳐주고, 습지에서의 외로운 시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학문연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함께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람이.
하지만 사랑은 외로움도 가르쳐 주었다.
몸이 성장하면서 마음도 성장해가던 때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카야는 용의자로 체포됐다.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카야는 자연을 통해 삶의 순리를 배웠고 그저 순리대로 자연과 함께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도 하고, 순리대로 행동하지 않기도 하면서, 자연속에 사는 카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느껴지는 에세이처럼, 뜨거운 나이의 설레는 사랑을 담은 로맨스처럼, 생존을 위한 법정드라마처럼 읽히는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스릴러 다. 하지만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나는 그런 스릴러 라기 보다는, 마음 한켠이 애잔해지고 또다른 마음 한켠이 카야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지고 또다른 마음한켠이 슬퍼지는 잔잔하고 차분해지는 묘한 스릴러다.
높은 캐노피 밑에서 발길을 멈추고 습지의 어두운 비원으로 손짓해 부르는 수백 마리의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깊은 곳,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으로.
카야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 살고 싶었고,
카야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을 소중히 여겼다.
다 읽고 나서 표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표지에 카야가 있었다.
가장 아름다울 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카야가 있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카야가 있었다.
여운이 긴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