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글 배치도 한 페이지에 빼곡히 텍스트를 채운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글을 배치함으로써 읽으면서 계속 감각적인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여러모로 고전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는 책이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며 혼자만의 깊은 감상에 빠진 듯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기를 바라며 '혼자 보는 미술관' 이라고 이름지은 것일까?
본문챕터는 영어 원제와 한글 소제목이 함께 읽혀져서 좋았다. 영어 원서를 읽을 능력은 없으나 제목의 원제만이라도 알고 읽으면 본문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된다. 제목은 의외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1. 사유는 붓을 타고 : 철학이라는 캔버스 Art as Philosophy
2. 보이는 그대로, 마음이 느낀 그대로 : 진짜 같은 장면의 속내 Art as Honesty
3. 그림은 무대고, 조명이고, 주인공이다 : 화폭 속의 명연기 Art as Drama
4. 탁월함에는 논쟁이 없다 : 아름다움의 기준 Art as Beauty
5. 가장 그리기 어렵고 가장 느끼기 쉬운 : 공포와 두려움 Art as Horror
6.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하모니 : 모순의 암시 Art as Paradox
7. 빗대에 비웃는 그림들 : 진지하게 건네는 농담, 풍자 Art as Folly
8. 액자 너머의 그림을 읽다 : 그리는 이의 마음을 보는 법 Art as Vision
예술에서 철학과 정직함과 드라마와 아름다움과 공포와 모순과 어리석음과 전망을 본다는 것은 사실 배우지 않고는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방법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예술을 예술로서 멀고 어렵게 느끼기 보다는 이런방식 저런방식 다 해볼법하다는 좀더 편안하면서도 의미있는 방식들을.
조금은 어색하게 보이는 괴테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적어도 보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는 문장을 생각하고
<멜랑콜리아> 라는 판화를 보며 "상상력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유념하면서도 고된 일상을 버텨내는 예술의 힘" 을 생각하고
정물화의 가치를 낮게 보던 시기에 그려진 정물화를 보며 "라틴어로 덧없음을 의미하는 바니타스에서 이름을 따와 '바니타스 정물화'로 알려진 회화'가 알려주는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고
이집트 미라에 그려진 초상화를 보며 "2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의 우리에게 묘한 여운을 안긴다. 이런 식으로 보는 이의 공감을 얻는 게 아마 화가로서 최고의 목표일 것이다" 는 화가의 표현 능력에 대해 생각하고
1915년에 그려진 한국의 병풍그림에 반가워하며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보는 사람이 둘러볼 수 있는 무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다" 는 저자의 분석을 생각하며
책을 읽고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새 표지에 그려진 그림의 전체 컷을 볼 수 있는 페이지가 나온다.
표지에 인용된 <피에로> 라는 그림에 대해 저자는
"유령처럼 하얀 의상을 입고 똑바로 서 있는 어릿광대는 어쩐지 외롭고 불안해 보인다.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가 버거워 보이기도 하고, 우리 앞에 서 있으려니 창피한 것 같기도 하다. ... 어쨌든 힘 없고 불편해 보이는 이 피에로는 가장 쾌할해 보이는 광대라도 웃음 뒤엔 슬픔과 몸부림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라고 말하면서
"이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작가들은 겉으로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 흰 종이, 빈 캔버스에서 시작한다. 어떤 방식으로 볼지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게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라고 책을 마무리 한다.
고전예술이라고 어렵게 볼 것 없이 광대를 보듯 가볍게 보면서도 숨은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복잡하고 난해해진 현대미술에 비하면 정직하게 시대와 화가를 반영하고 있는 고전미술에 대한 관람의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듯 하다.
예술에 대한 감흥은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다. 같은 그림을 봐도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은 아마 있을 수 없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미술관에서의 경험은 혼자가도 함께가도 직접봐도 책으로봐도 결국 '혼자 보는 미술관' 이 된다.
그렇게 미술관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데 이 책은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반가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