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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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때, 명작은 탁월하게 아름다워진다 (표지 中)

 

 

원제는 Look Again : How to Experience the Old Masters

직역하면 다시 봐 : 옛 주인을 경험하는 방법이지만 '다시 보기 : 명작을 경험하는 방법'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듯 하다.

원제의 제목은 '존 버거 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를 떠올리게 하고 저자도 이 책을 언급하며 읽어나가면서도 종종 생각난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는 1972년에 초판 발행된 오래된 미술평론 책이지만 여전히 읽히고 있는 책이라 나도 읽어본 적이 있다. 읽으면서 역시 오래된 책이라 출판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켰겠으나 지금은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도판이 너무 작게 그것도 흑백으로 인용되어 있어서 그림을 알아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었다.

이 책은 2019년판 '명작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한페이지 가득 그림전체를 칼라로 수록해 주어서 좋았다. 그리고 잘 알려져서 이책저책에 매번 인용되는 그림보다 새로운 그림이 더 많이 제공되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존 버거의 책처럼 순수미술에서 광고까지 미술 전반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특정시점의 회화들을 위주로 분석하는 방식도 새로웠다.

저자는 명작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방법으로 10가지 툴을 제시한다.

TABULA RASA

Time - 시간 : 오래, 자주, 계속의 힘

Association - 관계 : 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고

Background - 배경 : 아름다움의 출처를 묻는 일

Understand - 이해하기 : 얼마나 마음을 열 수 있는가

Look Again - 다시 보기 : 작품도 내 마음도 매번 다를 때

Assessment - 평가 : 정답이 없다는 말은 정답이다

Rhythm - 리듬 : 간격과 박자와 배치의 유쾌함

Allegory - 비유 : 그럴듯한 생각과 있음직한 사실들

Structure - 구도 : 그림 속 풍경, 액자 밖 프레임

Atmosphere - 분위기 : 느낌은 아우라가 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10단계의 툴을 설명하면서도 본문 챕터를 10가지로 구분짓지는 않는다.

프롤로그에서 TABULA LASA 에 대해 하나하나 그림과 함께 설명하면서도 매번 한가지 툴로 그림을 해석하기 보다는 한 그림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툴을 함께 생각할 수 있음을 본문에서 풀어내고 있다.

예술작품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게 하는 사전 지식의 페해에서 벗어나 고전 미술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체험'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예술작품 체험은 단순한 시각 훈련 혹은 역사적인 사실을 얼마나 기억해내는지 지적인 능력을 시험하는 게 아니다. 예술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 기분을 바꾸며, 관습에 도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p. 10)

본문의 글 배치도 한 페이지에 빼곡히 텍스트를 채운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글을 배치함으로써 읽으면서 계속 감각적인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여러모로 고전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는 책이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며 혼자만의 깊은 감상에 빠진 듯한 무아지경을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기를 바라며 '혼자 보는 미술관' 이라고 이름지은 것일까?

본문챕터는 영어 원제와 한글 소제목이 함께 읽혀져서 좋았다. 영어 원서를 읽을 능력은 없으나 제목의 원제만이라도 알고 읽으면 본문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된다. 제목은 의외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1. 사유는 붓을 타고 : 철학이라는 캔버스 Art as Philosophy

2. 보이는 그대로, 마음이 느낀 그대로 : 진짜 같은 장면의 속내 Art as Honesty

3. 그림은 무대고, 조명이고, 주인공이다 : 화폭 속의 명연기 Art as Drama

4. 탁월함에는 논쟁이 없다 : 아름다움의 기준 Art as Beauty

5. 가장 그리기 어렵고 가장 느끼기 쉬운 : 공포와 두려움 Art as Horror

6.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하모니 : 모순의 암시 Art as Paradox

7. 빗대에 비웃는 그림들 : 진지하게 건네는 농담, 풍자 Art as Folly

8. 액자 너머의 그림을 읽다 : 그리는 이의 마음을 보는 법 Art as Vision

예술에서 철학과 정직함과 드라마와 아름다움과 공포와 모순과 어리석음과 전망을 본다는 것은 사실 배우지 않고는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방법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예술을 예술로서 멀고 어렵게 느끼기 보다는 이런방식 저런방식 다 해볼법하다는 좀더 편안하면서도 의미있는 방식들을.

조금은 어색하게 보이는 괴테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적어도 보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는 문장을 생각하고

<멜랑콜리아> 라는 판화를 보며 "상상력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유념하면서도 고된 일상을 버텨내는 예술의 힘" 을 생각하고

정물화의 가치를 낮게 보던 시기에 그려진 정물화를 보며 "라틴어로 덧없음을 의미하는 바니타스에서 이름을 따와 '바니타스 정물화'로 알려진 회화'가 알려주는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고

이집트 미라에 그려진 초상화를 보며 "2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의 우리에게 묘한 여운을 안긴다. 이런 식으로 보는 이의 공감을 얻는 게 아마 화가로서 최고의 목표일 것이다" 는 화가의 표현 능력에 대해 생각하고

1915년에 그려진 한국의 병풍그림에 반가워하며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보는 사람이 둘러볼 수 있는 무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다" 는 저자의 분석을 생각하며

책을 읽고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새 표지에 그려진 그림의 전체 컷을 볼 수 있는 페이지가 나온다.

표지에 인용된 <피에로> 라는 그림에 대해 저자는

"유령처럼 하얀 의상을 입고 똑바로 서 있는 어릿광대는 어쩐지 외롭고 불안해 보인다. 자신의 역할을 해내기가 버거워 보이기도 하고, 우리 앞에 서 있으려니 창피한 것 같기도 하다. ... 어쨌든 힘 없고 불편해 보이는 이 피에로는 가장 쾌할해 보이는 광대라도 웃음 뒤엔 슬픔과 몸부림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라고 말하면서

"이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작가들은 겉으로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 흰 종이, 빈 캔버스에서 시작한다. 어떤 방식으로 볼지는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되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게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라고 책을 마무리 한다.

고전예술이라고 어렵게 볼 것 없이 광대를 보듯 가볍게 보면서도 숨은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복잡하고 난해해진 현대미술에 비하면 정직하게 시대와 화가를 반영하고 있는 고전미술에 대한 관람의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듯 하다.

예술에 대한 감흥은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다. 같은 그림을 봐도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은 아마 있을 수 없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미술관에서의 경험은 혼자가도 함께가도 직접봐도 책으로봐도 결국 '혼자 보는 미술관' 이 된다.

그렇게 미술관을 가깝게 느끼게 하는데 이 책은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반가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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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사회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0
심너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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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 들어 주는 AI를 만들 거야. 마지막으로 노인과 이야기하면서 다시금 느꼈어"

2050년대, 한국 사회의 심연을 꿰뚫어 Social SF [소멸사회] (표지 中)

 

 

새로운 SF 시리즈 라는 그래비비티북스의 SF 시리즈를 몇 권 읽었었는데, 너무 맘에 들었었다.

그래서 같은 시리즈물의 최신간인 [소멸사회] 에 대한 기대도 자연스레 컸었다.

이 책은 그리 먼 미래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2043년에 중학생이었던 친구 세명이 2055년에 성인이 되어 만나 벌어지는 일이 큰 줄거리인데,

2043년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4년후 이고 2055년도 50년도 안되는 미래이기에 SF에서 상상할 수 있는 공상과학적인 구상은 사실 어불성설인 시점이다. 시점이 이러하니 만큼 이 작품은 SF 라기 보다는 거의 현재시점의 소설로 읽힌다. 더구나 소재가 'N포세대' 로 불리는 요즘의 청년세대의 고민을 담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심민수와 하수영과 노랑은 중학교 동창이다.

심민수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중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수리기사가 되었고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관련한 능력이 있다.

하수영은 평범한 중산층에서 별일 없이 자라 언론고시에 첫번째 응시에서 합격해 기자가 되었고 글쓰기에 흥미가 있다.

노랑은 배경은 비밀에 쌓여있지만 명품 옷에 비싼차가 있고 시대에 맞지 않을정도로 과한 순수함이 있고 심리학을 전공한다.

이 세친구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핸드폰은 이미 구식이고 첨단 전자기기를 휴대하며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사귀는게 이상한 온라인 시대다.

하지만 심민수는 구식핸드폰을 여전히 가지고 다니며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종이책을 읽는 친구이고

노랑은 의무적이 아닌 자발적인 의사로 노인요양시설에 일주일에 세번이상 봉사를 다니는 눈치라고는 1도 없는 솔직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친구이고

하수영은 이 둘의 친구지만, 셋이 어울려 지지는 않았다.

이 세친구가 어른이 된 시절은 기본소득지급이 정착된 시점이고 만65세이상 노인에게는 조력자살약이 합법적으로 제공되는 시대이다.

학력도 낮고 정식취업도 어려운 경력을 가진 심민수는 기본소득과 낮은 임금으로 한강에 띄워진 임대주택개념의 좁은 배위에서 생활하면서 언제든 삶을 끝낼 수 있는 약을 모으고

원하던 언론사에 들어간 하수영은 거대 소셜미디어에서 재밌는 동영상을 찾아 인공지능에게 단어 몇개 입력하면 기사가 쏟아지는 엔터테인먼트회사화 된 언론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노랑은... 십년 넘게 봉사를 다니며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노인들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을 사업화하기로 결심한다. 말을 들어주는 AI는 이미 기존에도 있었지만 좀더 위안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서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사이였던 민수를 만난다.

민수는 서울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자신도 또 하나의 색다른 별이 되어 빛나고 싶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지옥 같은 대중교통을 견디면서 출퇴근하고, 적당한 회사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올 입에 풀칠을 하고, 개미굴보다 살짝 나은 오피스텔에 지친 몸을 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괜찮은 문화활동을 즐기는 삶, 민수는 그것을 얻는데 실패했다.

그는 노랑을 생각했다. 노랑에게 악의가 없다는사실을 그는 너무 잘 알았다. 몇 년 만에 처음 본 백수에게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은 선의 없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선의에 차 있다고 해도 노랑의 몰이해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수영을 항상 부러워했다. 서울 중산층 출신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수영, 주요 종합지 공채를 단번에 통과할 정도로 유능하고 성실한 수영, 성격도 괜찮아 인간관계도 좋은 수영, 그렇게 따지면 정확히 알 수는 없 지만 상상도 못할 정도로 부유한 노랑을 부뤄워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욕망할 수 없다. (p. 96)

 

민수의 독백은 지금 시대의 청년들의 고민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세 친구의 생각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라인은 공상과학적 배경이 그닥 필요치 않아서 SF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다만 기본소득과 노인대상조력자살서비스 라는 두 가지 새로운 복지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그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래사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재시점의 소설이 아닐 뿐이었다.

언젠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두 제도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상황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사실 그리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수용소에 집어넣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배제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21세기의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말할 자유가 있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히 펼쳐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체념한다. 딱히 정부의 검열이 없어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말의 한계를 알아서 내재화한다. (p. 183)

이 작품에서 시도한 두가지 제도은 결국 체념한 사람들에 대한 제도 였다.

기본소득으로 죽지않고 살고는 있으나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체념을 겪는 사람들과

급변하는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려고 했으나 나이가 들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체념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도는 점점 체념하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친구는 그 체념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기자는 글로써 기사는 프로그램으로써 금수저는 양심으로써 사회에 퍼진 체념을 걷어내는 시도를 하기로 한다.

세 청년의 고민은 지금 시대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멀지 않은 시점의 가상현실은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 소설이다. 미래소설이다.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고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

이 기회는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에게 당연히 더 많이 주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SF 소설이다. 지금 많은 것을 체념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이다. 하지만 앞으로 포기하지 않을 청년세대를 향한 미래소설이다.

소멸시키려고 하는 사회에서 소멸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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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불사를 꿈꾼 영웅 길가메시 - 인류 최초의 신화, 신이 되려 한 인간의 서사시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켄트 H. 딕슨 지음, 방진이 옮김 / 다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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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신화, 신이 되려 한 인간의 서사시

인간의 운명에 맞서 영원한 삶을 찾아 떠난 영웅 길가메시의 위대한 모험

 

신화 하면 대부분 그리스로마신화를 많이 떠올릴 것 같다.

유럽 문화의 대부분은 고대그리스로마문화에 그 바탕을 두고 발전했다.

하지만 최초의 신화는 따로 있다. 수메르 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 가 그것이다.

역사책을 읽다가 관심이 생겨서 찾아 읽었던 수메르문명에 대한 책과 길가메시 서사시는 내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었었다.

고대그리스로마 신화도 성경의 신화도 그 신화들이 기록되기 몇천년 전에 이미 수메르 신화들에 기록되어 있었다. 수메르 문명이 남긴 점토판에는 놀라운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모든 신화가 수메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신화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그또한 놀라웠다. 역사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은 의외로 취사선택된 내용들인 경우가 많다. 수메르 점토판의 내용들은 길가메시 서사시의 신화적 내용들은 고대그리스로마문화의 위대함에도 성경의 신성함에도 상충된다. 유럽중심의 문명과 문화에 반갑지 않은 내용들이다...

저자는 영문학과 교수로 지내다 은퇴한 노학자로 길가메시서사시를 번역하기 위해 설형문자도 공부했다고 한다. 물론, 기존에 수메르 토판들의 번역본은 많이 있어서 기존의 영어 번역본과 프랑스어 번역본 30종도 참고하여 새로운 영어 번역본을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 나름대로 원전에 충실한 새로운 번역본을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으로 펴내고자 시도한 만화그림은 저자의 아들이 그렸다. 그림에 참고할 자료가 별로 없다보니 역사적으로 정확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얼마 못가 포기했다고 그린이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번역한 원전의 내용을 최대한 잘 표현하고자 노력한 듯 하다. 만화적 대사표현과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들은 위트있으면서도 진지해서 읽는 내내 놀랐다. 솔직히 만화라고 해서 가볍게 다룬 책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원전내용을 충실하게 옮기고 있어서.

대부분의 길가메시 서사시 토판 번역본들은 토판 XI까지만 옮기고 있는데, 이 책은 토판XII 까지 번역해 놓았다. 그래서 길가메시 서사시를 처음 읽는 것이 아님에도 마지막장의 토판 번역내용은 처음 읽는 것이라 새롭고 좋았다. 저자도 토판 XII 는 후대에 덧붙여진 허구임을 인정하고 따라서 학자들이 길가메시 서사시로 인정하지 않는 토판이라는 것까지 알려준다. 그렇게 허구적 결말로 마무리 하면서 어차피 온전히 남지 않은 토판의 없어진 부분에 대해 허구를 붙이면 또 어떻겠냐고 되묻는다. 그러고 보니 허구적 결말을 붙이는 것이 정말 뭐 어떤가? 신화는 어차피 지금 우리가 읽기에는 다 허구이자 상상력의 산물인 것을.

 

길가메시 서사시는 친구 엔키두와 함께 하는 여행이 주요 내용이다. 여성과 남성, 이성간의 사랑보다 남성과 남성, 동성간의 사랑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고대그리스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수메르의 문화가 고대그리스문화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신성한 여신이자 처녀의 몸에서 나온 아들인 길가메시에게는 인간의 왕인 루갈반다 아버지가 있다. 이러한 탄생설화 익숙하지 않은가?

 

화가 난 여신이 벌을 내리고 벌을 받은 인간이 동물로 변하고 변한 동물의 몸이 인간이었던 자신이 아끼던 사냥개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은 그리스 신화의 "악타이온'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악타이온은 아르테미스 여신을 화나게 하여 아르테미스 여신이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변신시키고 그렇게 사슴이 된 악타이온은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어뜯겨 죽임을 당한다.

 

엔키두가 야생에서 동물처럼 살때 그를 인간처럼 살도록 지혜를 준 것은 샴하트 라는 여성이었다. 길가메시가 여행중에 머무른 여관에서는 여주인이 삶의 의미를 알려준다. 고대문명은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서도 지혜의 궁극엔 여성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그리스의 신화에서 지혜의 신은 아테네 여신이었고, 고대그리스 철학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지혜와 영감을 준 이는 디오티마 라는 무녀였다.

 

고대신화나 문명에서 열이틀 과 일곱째 날이라는 숫자의 날은 항상 특별했다. 수메르에서부터 이미.

 

엔키두를 잃고 죽음의 공포와 삶의 허무를 알게된 길가메시는 영생의 힌트를 얻기 위해 길을 떠나고 도중에 갖은 고난을 당한다. 사자와 싸워서 이기고 사자 가죽을 옷처럼 입고 다니는 길가메시의 모습은 고대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아마도 홍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신이 인간을 벌하려 홍수를 내리고, 홍수가 나기 직전 신을 따르는 인간커플에게 넌즈시 그 사실을 알려주고 배를 만들도록 하고 배에 동물들을 싣게 하고 홍수가 나고 잠잠해진 후 새를 날려보내 육지를 찾고 그 육지에 인간과 동물들이 다시 정착하게 되는 과정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거의 똑같다. 성경이 쓰이기 전에 기독교가 생기기 전에 이미 수메르 신화에 홍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뱀의 행동은 사악하고 인간은 신의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은 성경에서의 의미와 무척 흡사하다.

 

나중에 덧붙여져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원본적 내용이라고 볼수 없다고 알려진 토판 XII 의 내용에서 엔키두의 저승여행은 고대그리스신화에서 나오는 영웅들의 저승여행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엔키두가 보고 와서 이야기 해주는 저승의 모습은 권선징악의 종교적 의미를 너무도 분명히 드러내고 있어서 이승과 저승의 연결 그리고 이승에서의 삶의 태도에 대해 신을 섬기게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성경의 핵심과 무척 닮아 있어 보인다.

노트크기의 큼직한 책에 빽빽이 들어찬 그림과 글은 가볍게 전달하면서도 길가메시 서사시의 원본 내용도 굉장히 잘 전달하고 있었다. 고전중에 시기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이렇게 만화로 보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화와 종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 기원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 본다면 무척 좋을 것 같다. 문명은 우리가 밝혀내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알 수 없는 그 시절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꿈과는 또다른 꿈을 꾸게 만들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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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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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시즌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노벨문학상 예상수상자들에 대한 기사가 꽤 많이 나온다.

노벨문학상은 하나의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연륜있게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보니 나이지긋하신 분들이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시즌마다 언급되던 오래된 시인인 고은 시인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후보로 거론할 만한 작가가 없는 것인지 올해엔 외국작가들에 대한 후보기사만 나왔는데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가 욘 포세 인것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두명이다 보니 여러 작가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는데 그 작가들이 하나같이 모르는 작가였다는 난감함;;; 여튼 그중에서도 욘 포세 의 작품이 가장 내 눈길을 끌었다.

욘 포세 는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최근 몇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의 유력한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작가였다고 한다. 비록 올해의 수상은 불발이었지만 자꾸 거론되다 보면 곧 수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세계유수의 상들을 많이 받은 작가라고 하니...

작가는 주로 극작가로서 인정을 많이 받아 그의 연극이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희극에 비해 소설은 주력분야가 아닌듯 한데 '2007년 잠 못 드는 사람들', '2012년 올라브의 꿈' , '2014년 해질무렵'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3부작'으로 북유럽문학상을 탔다고 하니 극작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꽤 많이 인정받는 작가인가 보다.

비교적 아담사이즈의 소설책, 파스텔톤의 예쁜 표지가 왠지 페이퍼북원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플한 제목의 이 책은 굉장히 독특했다.

희극작가라고 해서 연극적인 문체라던가 주고받는 대화체가 꽤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설인데.... 마침표 없다. 맺고 끊음이 없이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다.

구두점이 없는 소설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은 소설 속 대화라고 해서 반드시 따옴표 안에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냥 문장으로 길게길게길게길게 주우우우우욱 연결되는 방식이... 뭔가 다르다. 완전 다르다. 그냥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르다. 독특하다. 어디서 시작한건지 어디서 끝나는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그냥 계속 이어진다. 화자의 변경도 공간의 표현과 시간의 이동도 그냥 다 계속 연결된다. 예를 들어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보자면,

아버지 시그발이 결혼식에서 연주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아슬레가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따라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래, 그래도 되지 싶구나,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 싶다, 그가 말했다

피할길이 없거든, 너 역시 연주자가 될 테니까,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시그발은 그건 이런 거란다, 내가 연주자이고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건 원래 그랬던 것이고, 나는 이미 좋은 연주자였으며 연주를 하는 한 나는 이미 뛰어난 연주자였던 게지, 그리고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그럼 넌 이미 연주자인 게야, 거기엔 조금도 다른 여지가 없어,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네 아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내 아버지인 늙은 아슬레와 할아버지인 늙은 시그발 두 분 모두 연주자셨으니까, 연주자가 되는 건 우리 가문의 운명이야, 연주자가 되는 게 비운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래, 그런 게야, 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네가 연주자라면, 그래, 그럼 넌 이미 연주자란다, 그런 게지, 그래, 내 생각엔, 그다지 다른 여지가 없어, 그래, 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해야만 하는 거지, (p 48...)

 

동어반복의 리듬은 있으나 마침표는 없다.

소설 3편 모두에서 단 한번도 찍히지 않는 마침표!

끊어지지 않는 문장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끊어지지 않아서인지 계속 읽게 된다.

웅장한 서사라던가 세밀한 묘사라던가 풍부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 읽다보면 굉장히 빠져든다. 어느새 몰입하게 된다. 신기한 소설이다. 정말 묘하다.

'3부작' 은 한 남녀의 사랑이 중심 줄거리이긴 하다.

한 여자의 일생이 담긴 인생 이야기 이기도 하다.

한 집안의 연대기적 운명이 이어지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가난과 폭력이 숨겨진 어떻게 보면 약간 스릴러적 요소가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냥 흐른다. 얼키고설키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 그냥 흘러가진다.

뜨거운 사랑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일생동안 단 한번의 사랑으로 지속되었고

주체적이지 못한 여자의 삶처럼 보였는데 항상 스스로 선택을 한 것이었고

죽고 나서 끝난 연주인줄 알았는데 음악은 운명처럼 이어졌고

살인사건이 분명함에도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어찌보면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인데도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계속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오묘한 철학을 품고 있는 소설이었다.

'잠 못 드는 사람들' 에서 어린 연인이 거리를 헤매다

'올라브의 꿈' 에서의 이별이

'해질 무렵' 에서의 만남으로 연결 되는

'잠 못 드는 사람들' 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희망이

'올라브의 꿈' 에서 비참하게 부서지지만

'해질 무렵' 에서 그럭저럭 평온한 삶으로 이어지는

'3부작' 이라는 소설은

세편이 모두 죽음으로연결되지만, 죽음을 관통하는 삶의 무언가를 남기는 소설이었다.

이 무언가를 뭐라고 해야 할까....

죽음은 비참했지만 슬프지 않고 삶은 일상적이었지만 행복하지 않고 사랑은 떠났지만 음악은 귓가에 남은... 갑자기 고요한 바다가 보고싶어지는 이 소설을 어떠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까...

마침표가 없는 소설이라 그런지 감상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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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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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인류의 기원과 고대문명,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발굴까지 고고학이 밝힌 인간의 역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유산과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고고학 여행 (표지 中)

 

<소소의 책> 출판사에서 나온 <철학의 역사> 라는 책을 무척 재밌게 읽었었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역사로서의 철학적 맥을 잘 잡은 책이었다.

00의 역사 가 시리즈였나 보다. <고고학의 역사> 라는 책이 나온 것을 본 순간 너무너무 읽고 싶었고, 역시나 읽을만한 좋은 책이었다.

게다가 하드커버의 표지가 일관성있게 디자인되어서 시리즈로 책장에 꽂아 놓으면 그 아우라가 너무 멋질 것 같다는 사심이 생긴다. ㅋ

아무래도 이 시리즈의 책을 쭈욱 찾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ㅎㅎㅎ

역사책을 읽다보면 고고학적 유물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고고학에 대해서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고고학 이라는 왠지 옛스러운 분위기를 내는이 학문은 오히려 가장 최신의 학문에 가깝다. 역사적 사건이나 자료는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실제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유물을 조사하는 고고학이라는 분야는 근대에 새롭게 생긴 학문이다. 도굴과 탐험이라는 비학문적 시작에서 다양한 학문과의 접점을 지닌 고고학이 자리잡게 되기까지 이 책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내주고 있다.

고고학은 왜 중요할까? 고고학이야말로 수백수천 년, 그리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사회의 변화를 연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은 우리 인류를 찾게 해준다. 고고학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밝히고, 인간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곳의 사람들을 연구한다. 고고학은 인간이다. (p. 21)

 

40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챕터는 이 책의 서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제일 앞에 한국어판 기념 서문을 따로 써주었다.)

고고학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와 고고학의 태동 그리고 변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서 고고학의 중요성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작 고개 갸우뚱 하게 하는 고고학과 인간학 과의 연결성은 책을 덮을 때 즈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초기 고고학의 발견들은 주로 이집트 유적지에서 였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친 유럽사회에서는 자유와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에 들뜨고 자본의 성장이 주는 부유함에 지적 탐구의 열망이 커지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진 유럽인들이 가까운 이집트로 여행가서 본 피라미드와 고대이집트신화의 잔재들은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바빌론과 니네베의 발굴은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확인시켰고 수메르 문명을 세상에 등장시켰다. 종교와 신화가 유물과 유적으로 입증되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고, 정말 인류의 역사가 기껏 6,000년 이라는 시간밖지 되지 않는지 성경의 시간을 의심하게 되었다.

지질학과 종교는 날카롭게 충돌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은 일련의 신성한 행위를 통해 지층들을 창조했다. 몇 번의 창조가 있었고, 그 사이에 카타스트로프(대재앙)도 있었다. 그런 대재앙 중에서 어떤 것은 동물의 멸종을 불러왔으며, 그중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 노아의 홍수였다. 성서에 따르면 사람과 절멸 동물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고고학이 성장하면서 아주 오래된 지질층에서 사람과 절멸 동물이 공존했다는 증거가 적지 않게 나온 것이다. (p. 73)

나는 '진화론' 이 가정 먼저 종교와 충돌했다고 생각했었다. (그 전의 과학적 발견들은 종교와 늘 타협해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전에 고고학과 지질학이 있었다. 석기와 인간의 뼈와 동물의 뼈가 함께 발견되고, 유물발굴을 위한 땅을 파내려가면서 확인되는 지질학적 증거들은 그 어떤 과학보다 첨예하게 종교의 신화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발견들은 당대의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 하지만 자꾸자꾸 나오는 증거들은 곧 이론이 되어 갔다.

영국의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1797~1875)은 스미스의 유산에서 더 나아갔다. 라이엘은 유럽 전역에서 지질 연쇄를 연구하고, 19세기의 과학 고전 중 하나를 집필했다. 1830년에 출간한 [지질학 원론]은 지질 변화를 현재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는 자연 과정으로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사람이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기원했다는 주장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강력했고, 라이엘은 책에서 인간의 기원이라는 가시 돋친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다른 많은 위대한 과학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라이엘의 눈부신 연구는 다른 분야의 현장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는 젊은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도 있었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5년간 과학 연구 조사를 위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지질학 원론]을 읽었다. 다윈은 남아메리카에서 지각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었음을 관찰했다. 화석을 수집하고 현대의 동물, 특히 새를 관찰하면서 '생물 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p. 74~75)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란에서 고고학을 중심무대에 올려놓았다.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절멸 동물과 함께 살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이제 다윈의 자연선택과 진화이론은 동물과 다른 생명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다윈이 제시한 새로운 이론은 현대 세계와 절멸 동물이 살았던 이전 세계 사이에 있던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 어떤 끔찍한 홍수나 거대한 멸종도 19세기 과학자들을 이전에 동물과 인간이 살던 지형경관에서 떼놓지 못했다. 절멸된 동물과 사람이 지구상에 동시에 살았다는 데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1859년은 과학계 일반이나 고고학에서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p. 78~79)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확인한 동물들의 변화를 통해 진화론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새로운 증거들에 대한 의문들과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었다. 다윈은 그 이론들을 공부했고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질학 뿐만 아니라 1798년에 출간된 맬서스의 [인구론]도 다윈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맬서스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 개체군, 곧 인구는 식량 공급 한계선까지 팽창한다고 주장했는데, 다윈은 이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진보란 자연 과정의 일부이며, 그 기제는 자연선택이라는 점진적 과정이라고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인류의 기원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된다. 어떤 형태의 인류가 있었을까? 그 사람들은 언제 살았을까? 현생인류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인류 화석과 고고학 발견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타당하다고 여기는 진보의 틀에 집어넣었다. 단일산 선상의 인류 사회진화론은 고고학이 제시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거를 설명하는 편리한 틀이 되었다. (p. 86)

초기의 발견들은 시간적 줄세우기가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단계한단계 차근차근 발달해 왔다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도 쉽고 설명하기도 쉬웠다. 하다못해 지금도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그림으로 침팬지에 가까운 원시인류의 구부정한 모습에서 조금씩 조금씩 일어서고 걷는 현생인류로 변화한 한장의 그림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진즉에 밝혀졌다. 크게 보면 차근차근 발달해 온 것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함께 공존해 왔다. 앞단계에서 뒷단계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쇠퇴와 부흥이 섞이는 중에 공존하며 살다가 지금 우리가 살아남은 것 뿐이다.

유물 분석 전문가가 되려면 특별한 인성도 필요하다.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끝없는 인내와 흔히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세한 특성을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과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작업이다. (p. 113)

생각해보니 과거를 읽어내는 작업은 정말 고된일 인것 같다. 창의적인 생각들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다른 학문들과 달리, 이미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온갖 자료들을 다 파악하고 연결성을 찾고 이해하는 작업은, 먼지날리는 현장의 모험심 가득한 고고학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을 되새기게 한다. 이제 박물관에 가면 작은 돌조각 하나 이어붙인 그릇 하나를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에 감사해야 겠다는 생각이;;;

초기의 고고학적 발견들이 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뜻밖의 발견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읽을 땐 약간 소설적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사우투올라는 동굴을 발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홉 살인 딸 마리아도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꾼들이 곡괭이와 삽으로 퇴적층을 파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이내 땅 파는 일만 구경하기가 따분해져서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낮은 공간에서 "토로스, 토로스" 곧 "황소, 황소다"라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 마리아가 19세기의 위대한 고고학 발견 중 하나를 해낸 것이었다. 낮은 천장에 그림이 그려진 알타미라의 방은 빙하시대 짐승들의동물원과도 같았다. (p. 138)

1940년, 놀라운 발견이 이어졌다. 학교에 다니는 소년들이 몽티냐크 마을 근처에서 토끼 사냥을 나갔는데, 개 한마리가 토끼 굴에 빠지고 말았다. 소년들은 땅속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토끼 굴을 넓히고 힘겹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소년들이 그 아래의 커다란 방에서 야생의 황소와 들소 등 여러 동물 무리를 그린 장엄한 벽화와 마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브뢰이유는 곧장 그곳 라스코 동굴로 향했다. (p. 141)

 

이 동굴들의 벽화도 발견 당시에는 그렇게 오래전의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작이라는 의심까지도 받았었다. 하지만 다른 증거들과 과학적 방법의 발달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라는 명제를 생각했다면 과한걸까?! 그래도 바래본다! ㅎㅎ

중국인들은 중국의 역사가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했음을 알고 있었다. 왕조가 나타나고 멸망하기를 되풀이했지만, 문명은 유지되었다. 그러는 데는 서기전 1500년 즈음까지 올라가는 독자적인 중국 문자 체계의 도움도 있었다. 그림 상징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문자로 발전하여 서기전 500년 이후에는 정부 관리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유럽은 대체로 그와 다른 역사 과정을 겪었다. 문헌 기록은 로마 시대, 그리고 서기전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골족을 정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것은 모두 고고학의 방법으로만 연구할 수 있다. ...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문헌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 발굴과 지표조사법을 발달시켰으며, 브로치나 핀 같은 작은 유물에 주목했다. (p. 223)

 

동서양의 역사진행과정은 참 달랐구나를 새삼 또 느낀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역사는 문명발생이후 문명이 유지되었고 역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양은 문명과 역사가 중간중간 끊겼고 여기저기 산발적이었다. 그래서 고고학의 변모과정도 다른 듯 하다.

서양의 역사에 대한 고고학적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다른 문명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남아메리카의 마야, 동남아시아의 앙코르와트,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중국의 진시황릉 등 세계적인 유적지에 대한 발굴이야기들은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여하튼 고고학의 발전은 각각의 나라에서 각각의 문명에서 전 세계적인 통합연구로 점차 범위를 확장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고고학은 점차 인류학이 되어 간다.

고고학의 발전에서 1949년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은 획기적이었다. 이 측정법은 5만년이 넘은 표본에는 방사성탄소가 극미량만 남아 있어 측정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만년 이내의 역사에 대한 연대만을 측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유물들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연대를 측정하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환경의 영향으로 생물체 내의 방사성탄소의 농도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완책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방사성탄소연대를 나이테 연대와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백만년이 넘는 과거의 시간을 조사할때는 '포타슘-아르곤 측정법'을 이용한다고 한다.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은 바위에 들어 있는 방사성 포타슘이 방사성 아르곤으로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라는데 이 방법은 수십만년 전 이라고 생각했던 인류 진화의 편년표를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다.

고고학적 발견들과 지리학의 증거들은 진화론을 촉발시켰고 화학자의 기술이 고고학의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으로 이용되었다. 과거의 시간들은 과학을 이용하여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고, 이러한 확인들은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해낸다. 이제 고고학은 문명과 역사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류의 변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보물을 찾아내던 고고학은 이제 작은 석기조각의 의미까지 탐구하게 되었다. 또한 고고학은 발굴하는 즉시 파괴되는 유적발굴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고고학자는 오랫동안 힘들고 많은 돈이 드는 발굴을 하지 않고 유적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보통 '리모트센싱'이라고 알려진 '비발굴고고학'은 땅을 파지 않고 유적과 주변을 연구한다. 다시 말해 유적을 파괴하지 않는 연구법인 것이다. 리모트센싱은 항공사진에서 시작되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고고학의 방법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구글어스, 위성사진, 항공레이더와 지표투과레이더 같은 기법으로 지표 아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전체 경관을 조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고고학에서 잘 알려진 학자들 중에는 더 이상 땅을 파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발굴은 실제로 고고학 유적을 파괴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특정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연대 측정 증거를 얻기 위해서라도 선택적 발굴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발굴은 더 작은 규모로, 느린 속도로 세심한 계획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p. 365~366)

 

대부분의 학문은 발전할 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발전할 수록 느려지는 학문이 있다. 바로 고고학이다.

초기에 성급한 발굴로 파괴된 유적이 많았다. 도굴과 불법매매도 많았다. 도시개발로 영영 다시 볼수 없게된 유적도 많다. 전쟁과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로 파괴되고 있는 유적도 있다. 고고학은 물질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 증거들이 없어지면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밝혀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고고학의 가치가 확인될 수록 발굴은 조심스럽고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게 되었다. 곡괭이로 파헤치던 땅을 붓으로 살살 흙을 흩어내게 되었다. 며칠 몇달 만에 마치던 탐사를 몇년의 계획을 세워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세세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견과 보존은 함께 생각해지게 되었다. 지정된 곳에서의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시각에서 기후 변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허리케인이나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후 사건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오래전에 사라진 도거랜드의 주민과 같지만, 이것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그러하다. 해수면 상승을 맞아 작은 수렵민 무리는 이동했다. 그러나 오늘날 커다란 도시에 사는 인구는 그럴 수 없다.

문명이 기후 변동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고고학에서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그리고 다른 많은 방식으로 고고학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도전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p. 383, 384)

 

역사적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다고들 많이 이야기 한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반성에서 깨우침을 얻는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견들에서도 인류의 발자취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인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수단을 통해 살다가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을 통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관계와 자연적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확인하는 것을 통해 지금 하고 있는 잘못들이 계속된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려 볼 수 있다. 사라진 것들을 통해 사라질 것들을 예방할 수 있다.

고고학자의 발견과 주장들은 당대의 편견에 늘 부딪쳐 왔다. 당대의 편견이라는 것도 실은 당대의 지성이었는데도 지금 우리는 그것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안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도 후대가 보면 선조들의 어리석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지나친 편견이 되기 전에 고고학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좀더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고학은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고고학자가 풀어낸 서양중심의 고고학의 역사도 재미있었지만,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고학의 역사도 이 책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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