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사회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10
심너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잘 들어 주는 AI를 만들 거야. 마지막으로 노인과 이야기하면서 다시금 느꼈어"

2050년대, 한국 사회의 심연을 꿰뚫어 Social SF [소멸사회] (표지 中)

 

 

새로운 SF 시리즈 라는 그래비비티북스의 SF 시리즈를 몇 권 읽었었는데, 너무 맘에 들었었다.

그래서 같은 시리즈물의 최신간인 [소멸사회] 에 대한 기대도 자연스레 컸었다.

이 책은 그리 먼 미래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2043년에 중학생이었던 친구 세명이 2055년에 성인이 되어 만나 벌어지는 일이 큰 줄거리인데,

2043년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4년후 이고 2055년도 50년도 안되는 미래이기에 SF에서 상상할 수 있는 공상과학적인 구상은 사실 어불성설인 시점이다. 시점이 이러하니 만큼 이 작품은 SF 라기 보다는 거의 현재시점의 소설로 읽힌다. 더구나 소재가 'N포세대' 로 불리는 요즘의 청년세대의 고민을 담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심민수와 하수영과 노랑은 중학교 동창이다.

심민수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중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수리기사가 되었고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관련한 능력이 있다.

하수영은 평범한 중산층에서 별일 없이 자라 언론고시에 첫번째 응시에서 합격해 기자가 되었고 글쓰기에 흥미가 있다.

노랑은 배경은 비밀에 쌓여있지만 명품 옷에 비싼차가 있고 시대에 맞지 않을정도로 과한 순수함이 있고 심리학을 전공한다.

이 세친구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핸드폰은 이미 구식이고 첨단 전자기기를 휴대하며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사귀는게 이상한 온라인 시대다.

하지만 심민수는 구식핸드폰을 여전히 가지고 다니며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종이책을 읽는 친구이고

노랑은 의무적이 아닌 자발적인 의사로 노인요양시설에 일주일에 세번이상 봉사를 다니는 눈치라고는 1도 없는 솔직함이 장점이자 단점인 친구이고

하수영은 이 둘의 친구지만, 셋이 어울려 지지는 않았다.

이 세친구가 어른이 된 시절은 기본소득지급이 정착된 시점이고 만65세이상 노인에게는 조력자살약이 합법적으로 제공되는 시대이다.

학력도 낮고 정식취업도 어려운 경력을 가진 심민수는 기본소득과 낮은 임금으로 한강에 띄워진 임대주택개념의 좁은 배위에서 생활하면서 언제든 삶을 끝낼 수 있는 약을 모으고

원하던 언론사에 들어간 하수영은 거대 소셜미디어에서 재밌는 동영상을 찾아 인공지능에게 단어 몇개 입력하면 기사가 쏟아지는 엔터테인먼트회사화 된 언론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노랑은... 십년 넘게 봉사를 다니며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노인들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을 사업화하기로 결심한다. 말을 들어주는 AI는 이미 기존에도 있었지만 좀더 위안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서로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사이였던 민수를 만난다.

민수는 서울 사람들 사이에 서서 자신도 또 하나의 색다른 별이 되어 빛나고 싶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지옥 같은 대중교통을 견디면서 출퇴근하고, 적당한 회사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올 입에 풀칠을 하고, 개미굴보다 살짝 나은 오피스텔에 지친 몸을 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괜찮은 문화활동을 즐기는 삶, 민수는 그것을 얻는데 실패했다.

그는 노랑을 생각했다. 노랑에게 악의가 없다는사실을 그는 너무 잘 알았다. 몇 년 만에 처음 본 백수에게 같이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은 선의 없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선의에 차 있다고 해도 노랑의 몰이해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수영을 항상 부러워했다. 서울 중산층 출신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수영, 주요 종합지 공채를 단번에 통과할 정도로 유능하고 성실한 수영, 성격도 괜찮아 인간관계도 좋은 수영, 그렇게 따지면 정확히 알 수는 없 지만 상상도 못할 정도로 부유한 노랑을 부뤄워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욕망할 수 없다. (p. 96)

 

민수의 독백은 지금 시대의 청년들의 고민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세 친구의 생각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라인은 공상과학적 배경이 그닥 필요치 않아서 SF소설을 읽고 있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다만 기본소득과 노인대상조력자살서비스 라는 두 가지 새로운 복지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그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래사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재시점의 소설이 아닐 뿐이었다.

언젠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두 제도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상황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사실 그리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수용소에 집어넣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배제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21세기의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말할 자유가 있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히 펼쳐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체념한다. 딱히 정부의 검열이 없어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말의 한계를 알아서 내재화한다. (p. 183)

이 작품에서 시도한 두가지 제도은 결국 체념한 사람들에 대한 제도 였다.

기본소득으로 죽지않고 살고는 있으나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체념을 겪는 사람들과

급변하는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려고 했으나 나이가 들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 체념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도는 점점 체념하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친구는 그 체념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기자는 글로써 기사는 프로그램으로써 금수저는 양심으로써 사회에 퍼진 체념을 걷어내는 시도를 하기로 한다.

세 청년의 고민은 지금 시대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멀지 않은 시점의 가상현실은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 소설이다. 미래소설이다.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고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

이 기회는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에게 당연히 더 많이 주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SF 소설이다. 지금 많은 것을 체념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이다. 하지만 앞으로 포기하지 않을 청년세대를 향한 미래소설이다.

소멸시키려고 하는 사회에서 소멸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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