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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평점 :
노벨상 수상시즌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노벨문학상 예상수상자들에 대한 기사가 꽤 많이 나온다.
노벨문학상은 하나의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연륜있게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보니 나이지긋하신 분들이 후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시즌마다 언급되던 오래된 시인인 고은 시인이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후보로 거론할 만한 작가가 없는 것인지 올해엔 외국작가들에 대한 후보기사만 나왔는데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된 작가가 욘 포세 인것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두명이다 보니 여러 작가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는데 그 작가들이 하나같이 모르는 작가였다는 난감함;;; 여튼 그중에서도 욘 포세 의 작품이 가장 내 눈길을 끌었다.
욘 포세 는 노르웨이의 작가이자 극작가로 최근 몇년간 노벨문학상 수상의 유력한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작가였다고 한다. 비록 올해의 수상은 불발이었지만 자꾸 거론되다 보면 곧 수상을 할지도 모르겠다. 노벨문학상이 아니더라도 세계유수의 상들을 많이 받은 작가라고 하니...
작가는 주로 극작가로서 인정을 많이 받아 그의 연극이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희극에 비해 소설은 주력분야가 아닌듯 한데 '2007년 잠 못 드는 사람들', '2012년 올라브의 꿈' , '2014년 해질무렵' 세 편의 중편 연작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3부작'으로 북유럽문학상을 탔다고 하니 극작가로서도 소설가로서도 꽤 많이 인정받는 작가인가 보다.
비교적 아담사이즈의 소설책, 파스텔톤의 예쁜 표지가 왠지 페이퍼북원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심플한 제목의 이 책은 굉장히 독특했다.
희극작가라고 해서 연극적인 문체라던가 주고받는 대화체가 꽤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설인데.... 마침표 없다. 맺고 끊음이 없이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다.
구두점이 없는 소설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은 소설 속 대화라고 해서 반드시 따옴표 안에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냥 문장으로 길게길게길게길게 주우우우우욱 연결되는 방식이... 뭔가 다르다. 완전 다르다. 그냥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다르다. 독특하다. 어디서 시작한건지 어디서 끝나는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그냥 계속 이어진다. 화자의 변경도 공간의 표현과 시간의 이동도 그냥 다 계속 연결된다. 예를 들어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보자면,
아버지 시그발이 결혼식에서 연주를 할 거라는 사실을 아슬레가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따라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래, 그래도 되지 싶구나,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 싶다, 그가 말했다
피할길이 없거든, 너 역시 연주자가 될 테니까,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시그발은 그건 이런 거란다, 내가 연주자이고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건 원래 그랬던 것이고, 나는 이미 좋은 연주자였으며 연주를 하는 한 나는 이미 뛰어난 연주자였던 게지, 그리고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그럼 넌 이미 연주자인 게야, 거기엔 조금도 다른 여지가 없어, 네가 연주자가 된다면, 네 아들 역시 마찬가지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내 아버지인 늙은 아슬레와 할아버지인 늙은 시그발 두 분 모두 연주자셨으니까, 연주자가 되는 건 우리 가문의 운명이야, 연주자가 되는 게 비운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래, 그런 게야, 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네가 연주자라면, 그래, 그럼 넌 이미 연주자란다, 그런 게지, 그래, 내 생각엔, 그다지 다른 여지가 없어, 그래, 라고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그 운명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나는 슬픔이라고, 무언가에 대한 슬픔이거나 아니면 그냥 슬픔이라고 답할 게다,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은 가벼워질 수 있고 떠오를 수 있게 되는 거고 그 떠오름은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음악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나는 연주를 해야만 하는 거지, (p 48...)
동어반복의 리듬은 있으나 마침표는 없다.
소설 3편 모두에서 단 한번도 찍히지 않는 마침표!
끊어지지 않는 문장을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끊어지지 않아서인지 계속 읽게 된다.
웅장한 서사라던가 세밀한 묘사라던가 풍부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 읽다보면 굉장히 빠져든다. 어느새 몰입하게 된다. 신기한 소설이다. 정말 묘하다.
'3부작' 은 한 남녀의 사랑이 중심 줄거리이긴 하다.
한 여자의 일생이 담긴 인생 이야기 이기도 하다.
한 집안의 연대기적 운명이 이어지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가난과 폭력이 숨겨진 어떻게 보면 약간 스릴러적 요소가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냥 흐른다. 얼키고설키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 그냥 흘러가진다.
뜨거운 사랑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일생동안 단 한번의 사랑으로 지속되었고
주체적이지 못한 여자의 삶처럼 보였는데 항상 스스로 선택을 한 것이었고
죽고 나서 끝난 연주인줄 알았는데 음악은 운명처럼 이어졌고
살인사건이 분명함에도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어찌보면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인데도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계속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오묘한 철학을 품고 있는 소설이었다.
'잠 못 드는 사람들' 에서 어린 연인이 거리를 헤매다
'올라브의 꿈' 에서의 이별이
'해질 무렵' 에서의 만남으로 연결 되는
'잠 못 드는 사람들' 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희망이
'올라브의 꿈' 에서 비참하게 부서지지만
'해질 무렵' 에서 그럭저럭 평온한 삶으로 이어지는
'3부작' 이라는 소설은
세편이 모두 죽음으로연결되지만, 죽음을 관통하는 삶의 무언가를 남기는 소설이었다.
이 무언가를 뭐라고 해야 할까....
죽음은 비참했지만 슬프지 않고 삶은 일상적이었지만 행복하지 않고 사랑은 떠났지만 음악은 귓가에 남은... 갑자기 고요한 바다가 보고싶어지는 이 소설을 어떠했다고 정리할 수 있을까...
마침표가 없는 소설이라 그런지 감상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