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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평점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인류의 기원과 고대문명, 그리고 현대의 과학적 발굴까지 고고학이 밝힌 인간의 역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유산과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고고학 여행 (표지 中)
<소소의 책> 출판사에서 나온 <철학의 역사> 라는 책을 무척 재밌게 읽었었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역사로서의 철학적 맥을 잘 잡은 책이었다.
00의 역사 가 시리즈였나 보다. <고고학의 역사> 라는 책이 나온 것을 본 순간 너무너무 읽고 싶었고, 역시나 읽을만한 좋은 책이었다.
게다가 하드커버의 표지가 일관성있게 디자인되어서 시리즈로 책장에 꽂아 놓으면 그 아우라가 너무 멋질 것 같다는 사심이 생긴다. ㅋ
아무래도 이 시리즈의 책을 쭈욱 찾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ㅎㅎㅎ
역사책을 읽다보면 고고학적 유물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고고학에 대해서는 그닥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고고학 이라는 왠지 옛스러운 분위기를 내는이 학문은 오히려 가장 최신의 학문에 가깝다. 역사적 사건이나 자료는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실제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유물을 조사하는 고고학이라는 분야는 근대에 새롭게 생긴 학문이다. 도굴과 탐험이라는 비학문적 시작에서 다양한 학문과의 접점을 지닌 고고학이 자리잡게 되기까지 이 책에서는 다양한 학자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내주고 있다.
고고학은 왜 중요할까? 고고학이야말로 수백수천 년, 그리고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인간 사회의 변화를 연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고고학은 우리 인류를 찾게 해준다. 고고학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밝히고, 인간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곳의 사람들을 연구한다. 고고학은 인간이다. (p. 21)
40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챕터는 이 책의 서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제일 앞에 한국어판 기념 서문을 따로 써주었다.)
고고학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와 고고학의 태동 그리고 변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서 고고학의 중요성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살작 고개 갸우뚱 하게 하는 고고학과 인간학 과의 연결성은 책을 덮을 때 즈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초기 고고학의 발견들은 주로 이집트 유적지에서 였다. 종교개혁과 계몽주의 그리고 르네상스를 거친 유럽사회에서는 자유와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에 들뜨고 자본의 성장이 주는 부유함에 지적 탐구의 열망이 커지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진 유럽인들이 가까운 이집트로 여행가서 본 피라미드와 고대이집트신화의 잔재들은 모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바빌론과 니네베의 발굴은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확인시켰고 수메르 문명을 세상에 등장시켰다. 종교와 신화가 유물과 유적으로 입증되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갔고, 정말 인류의 역사가 기껏 6,000년 이라는 시간밖지 되지 않는지 성경의 시간을 의심하게 되었다.
지질학과 종교는 날카롭게 충돌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은 일련의 신성한 행위를 통해 지층들을 창조했다. 몇 번의 창조가 있었고, 그 사이에 카타스트로프(대재앙)도 있었다. 그런 대재앙 중에서 어떤 것은 동물의 멸종을 불러왔으며, 그중 가장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 노아의 홍수였다. 성서에 따르면 사람과 절멸 동물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고고학이 성장하면서 아주 오래된 지질층에서 사람과 절멸 동물이 공존했다는 증거가 적지 않게 나온 것이다. (p. 73)
나는 '진화론' 이 가정 먼저 종교와 충돌했다고 생각했었다. (그 전의 과학적 발견들은 종교와 늘 타협해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전에 고고학과 지질학이 있었다. 석기와 인간의 뼈와 동물의 뼈가 함께 발견되고, 유물발굴을 위한 땅을 파내려가면서 확인되는 지질학적 증거들은 그 어떤 과학보다 첨예하게 종교의 신화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발견들은 당대의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다. 하지만 자꾸자꾸 나오는 증거들은 곧 이론이 되어 갔다.
영국의 유명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1797~1875)은 스미스의 유산에서 더 나아갔다. 라이엘은 유럽 전역에서 지질 연쇄를 연구하고, 19세기의 과학 고전 중 하나를 집필했다. 1830년에 출간한 [지질학 원론]은 지질 변화를 현재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는 자연 과정으로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사람이 6,000년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기원했다는 주장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강력했고, 라이엘은 책에서 인간의 기원이라는 가시 돋친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다른 많은 위대한 과학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라이엘의 눈부신 연구는 다른 분야의 현장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는 젊은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도 있었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5년간 과학 연구 조사를 위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지질학 원론]을 읽었다. 다윈은 남아메리카에서 지각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었음을 관찰했다. 화석을 수집하고 현대의 동물, 특히 새를 관찰하면서 '생물 종'이 점진적으로 변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p. 74~75)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란에서 고고학을 중심무대에 올려놓았다.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절멸 동물과 함께 살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이제 다윈의 자연선택과 진화이론은 동물과 다른 생명체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다윈이 제시한 새로운 이론은 현대 세계와 절멸 동물이 살았던 이전 세계 사이에 있던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 어떤 끔찍한 홍수나 거대한 멸종도 19세기 과학자들을 이전에 동물과 인간이 살던 지형경관에서 떼놓지 못했다. 절멸된 동물과 사람이 지구상에 동시에 살았다는 데 더 이상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1859년은 과학계 일반이나 고고학에서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p. 78~79)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확인한 동물들의 변화를 통해 진화론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미 새로운 증거들에 대한 의문들과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었다. 다윈은 그 이론들을 공부했고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질학 뿐만 아니라 1798년에 출간된 맬서스의 [인구론]도 다윈에게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맬서스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 개체군, 곧 인구는 식량 공급 한계선까지 팽창한다고 주장했는데, 다윈은 이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진보란 자연 과정의 일부이며, 그 기제는 자연선택이라는 점진적 과정이라고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인류의 기원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된다. 어떤 형태의 인류가 있었을까? 그 사람들은 언제 살았을까? 현생인류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인류 화석과 고고학 발견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타당하다고 여기는 진보의 틀에 집어넣었다. 단일산 선상의 인류 사회진화론은 고고학이 제시하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거를 설명하는 편리한 틀이 되었다. (p. 86)
초기의 발견들은 시간적 줄세우기가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다. 한단계한단계 차근차근 발달해 왔다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도 쉽고 설명하기도 쉬웠다. 하다못해 지금도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그림으로 침팬지에 가까운 원시인류의 구부정한 모습에서 조금씩 조금씩 일어서고 걷는 현생인류로 변화한 한장의 그림이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진즉에 밝혀졌다. 크게 보면 차근차근 발달해 온 것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함께 공존해 왔다. 앞단계에서 뒷단계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쇠퇴와 부흥이 섞이는 중에 공존하며 살다가 지금 우리가 살아남은 것 뿐이다.
유물 분석 전문가가 되려면 특별한 인성도 필요하다.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끝없는 인내와 흔히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세한 특성을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과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작업이다. (p. 113)
생각해보니 과거를 읽어내는 작업은 정말 고된일 인것 같다. 창의적인 생각들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다른 학문들과 달리, 이미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온갖 자료들을 다 파악하고 연결성을 찾고 이해하는 작업은, 먼지날리는 현장의 모험심 가득한 고고학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고고학자들의 노력을 되새기게 한다. 이제 박물관에 가면 작은 돌조각 하나 이어붙인 그릇 하나를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에 감사해야 겠다는 생각이;;;
초기의 고고학적 발견들이 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뜻밖의 발견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읽을 땐 약간 소설적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사우투올라는 동굴을 발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홉 살인 딸 마리아도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랐다. 아버지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꾼들이 곡괭이와 삽으로 퇴적층을 파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이내 땅 파는 일만 구경하기가 따분해져서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낮은 공간에서 "토로스, 토로스" 곧 "황소, 황소다"라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 마리아가 19세기의 위대한 고고학 발견 중 하나를 해낸 것이었다. 낮은 천장에 그림이 그려진 알타미라의 방은 빙하시대 짐승들의동물원과도 같았다. (p. 138)
1940년, 놀라운 발견이 이어졌다. 학교에 다니는 소년들이 몽티냐크 마을 근처에서 토끼 사냥을 나갔는데, 개 한마리가 토끼 굴에 빠지고 말았다. 소년들은 땅속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토끼 굴을 넓히고 힘겹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소년들이 그 아래의 커다란 방에서 야생의 황소와 들소 등 여러 동물 무리를 그린 장엄한 벽화와 마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브뢰이유는 곧장 그곳 라스코 동굴로 향했다. (p. 141)
이 동굴들의 벽화도 발견 당시에는 그렇게 오래전의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작이라는 의심까지도 받았었다. 하지만 다른 증거들과 과학적 방법의 발달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라는 명제를 생각했다면 과한걸까?! 그래도 바래본다! ㅎㅎ
중국인들은 중국의 역사가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했음을 알고 있었다. 왕조가 나타나고 멸망하기를 되풀이했지만, 문명은 유지되었다. 그러는 데는 서기전 1500년 즈음까지 올라가는 독자적인 중국 문자 체계의 도움도 있었다. 그림 상징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문자로 발전하여 서기전 500년 이후에는 정부 관리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유럽은 대체로 그와 다른 역사 과정을 겪었다. 문헌 기록은 로마 시대, 그리고 서기전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골족을 정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것은 모두 고고학의 방법으로만 연구할 수 있다. ...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문헌 기록에 의지하지 않고 발굴과 지표조사법을 발달시켰으며, 브로치나 핀 같은 작은 유물에 주목했다. (p. 223)
동서양의 역사진행과정은 참 달랐구나를 새삼 또 느낀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역사는 문명발생이후 문명이 유지되었고 역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양은 문명과 역사가 중간중간 끊겼고 여기저기 산발적이었다. 그래서 고고학의 변모과정도 다른 듯 하다.
서양의 역사에 대한 고고학적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다른 문명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남아메리카의 마야, 동남아시아의 앙코르와트,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중국의 진시황릉 등 세계적인 유적지에 대한 발굴이야기들은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여하튼 고고학의 발전은 각각의 나라에서 각각의 문명에서 전 세계적인 통합연구로 점차 범위를 확장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고고학은 점차 인류학이 되어 간다.
고고학의 발전에서 1949년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개발은 획기적이었다. 이 측정법은 5만년이 넘은 표본에는 방사성탄소가 극미량만 남아 있어 측정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만년 이내의 역사에 대한 연대만을 측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유물들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연대를 측정하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이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환경의 영향으로 생물체 내의 방사성탄소의 농도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보완책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방사성탄소연대를 나이테 연대와 비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백만년이 넘는 과거의 시간을 조사할때는 '포타슘-아르곤 측정법'을 이용한다고 한다.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법'은 바위에 들어 있는 방사성 포타슘이 방사성 아르곤으로 붕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라는데 이 방법은 수십만년 전 이라고 생각했던 인류 진화의 편년표를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다.
고고학적 발견들과 지리학의 증거들은 진화론을 촉발시켰고 화학자의 기술이 고고학의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으로 이용되었다. 과거의 시간들은 과학을 이용하여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고 있고, 이러한 확인들은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해낸다. 이제 고고학은 문명과 역사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서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인류의 변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보물을 찾아내던 고고학은 이제 작은 석기조각의 의미까지 탐구하게 되었다. 또한 고고학은 발굴하는 즉시 파괴되는 유적발굴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발전시켜가고 있다.
고고학자는 오랫동안 힘들고 많은 돈이 드는 발굴을 하지 않고 유적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꿈을 갖고 있다. 보통 '리모트센싱'이라고 알려진 '비발굴고고학'은 땅을 파지 않고 유적과 주변을 연구한다. 다시 말해 유적을 파괴하지 않는 연구법인 것이다. 리모트센싱은 항공사진에서 시작되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고고학의 방법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구글어스, 위성사진, 항공레이더와 지표투과레이더 같은 기법으로 지표 아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전체 경관을 조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고고학에서 잘 알려진 학자들 중에는 더 이상 땅을 파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발굴은 실제로 고고학 유적을 파괴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특정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연대 측정 증거를 얻기 위해서라도 선택적 발굴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발굴은 더 작은 규모로, 느린 속도로 세심한 계획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p. 365~366)
대부분의 학문은 발전할 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발전할 수록 느려지는 학문이 있다. 바로 고고학이다.
초기에 성급한 발굴로 파괴된 유적이 많았다. 도굴과 불법매매도 많았다. 도시개발로 영영 다시 볼수 없게된 유적도 많다. 전쟁과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로 파괴되고 있는 유적도 있다. 고고학은 물질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 증거들이 없어지면 영영 알 수 없게 된다. 밝혀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고고학의 가치가 확인될 수록 발굴은 조심스럽고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게 되었다. 곡괭이로 파헤치던 땅을 붓으로 살살 흙을 흩어내게 되었다. 며칠 몇달 만에 마치던 탐사를 몇년의 계획을 세워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세세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발견과 보존은 함께 생각해지게 되었다. 지정된 곳에서의 발견에서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시각에서 기후 변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허리케인이나 가뭄 같은 극단적인 기후 사건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오래전에 사라진 도거랜드의 주민과 같지만, 이것은 전 지구적 규모에서 그러하다. 해수면 상승을 맞아 작은 수렵민 무리는 이동했다. 그러나 오늘날 커다란 도시에 사는 인구는 그럴 수 없다.
문명이 기후 변동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고고학에서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그리고 다른 많은 방식으로 고고학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도전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p. 383, 384)
역사적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다고들 많이 이야기 한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반성에서 깨우침을 얻는다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견들에서도 인류의 발자취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인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수단을 통해 살다가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을 통해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관계와 자연적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확인하는 것을 통해 지금 하고 있는 잘못들이 계속된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려 볼 수 있다. 사라진 것들을 통해 사라질 것들을 예방할 수 있다.
고고학자의 발견과 주장들은 당대의 편견에 늘 부딪쳐 왔다. 당대의 편견이라는 것도 실은 당대의 지성이었는데도 지금 우리는 그것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안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도 후대가 보면 선조들의 어리석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지나친 편견이 되기 전에 고고학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좀더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고학은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고고학자가 풀어낸 서양중심의 고고학의 역사도 재미있었지만, 동양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고학의 역사도 이 책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