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김소연 지음 / 효형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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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그들이 자신으로 살기까지 그리고 그 자신이 이름이 되기까지

 

오래전 신여성에 관한 글을 읽다가 눈에 번쩍 들어온 구절이 있다. "미치거나 죽거나"

글쓴이는 신여성의 운명을 그렇게 단칼로 표현했다.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 윤심덕... 100여 년 전 신여성의 대명사로 통한 그들은 여성의 인격과 개성을 화두로 자유연애와 여성 해방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결국 '미치거나 죽거나' 했던 그들. 그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신여성은 어땠을까? 이를테면 그들을 자유주의 신여성이라고 할 때 사회주의 신여성 허정숙, 주세죽이나 개신교 민족주의 신여성 김마리아, 김필례는? 의문은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던가. 나라가 무너지고 전통적인 경제 기반과 신분 질서가 흔들렸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전통적인 경제 기반과 신분 질서가 흔들렸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혼돈과 혼란의 시대에 이쪽은 신여성, 저쪽은 구여성으로 흑백처럼 선명한 구분이 가능했을까... 그러다 한참을 잊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 '건축과 젠더' 에 관한 글을 제안받고 나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 다시금, '미치거나 죽거나' 홀린듯 나는 원래 의도와 달리 옆길로 새고 말았다. (프롤로그 中)

 

저자의 소개글이 짧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자는 건축과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글을 청탁받고 예전에 가졌던 의문이 떠올라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옆길로 샛다고 말했지만 이 책은 나름 '공간' 과 '건축' 을 기초로 두고 그 위에 당시 여성의 삶을 소설형식을 빌어 재구성한 책이었다. 소설인듯 아닌듯 술술 읽혀지는 내용속에 등장하는 여성마다 생애가 하도 사연이 많아서 삶 자체가 그냥 소설같기도 했다.

space #1 이화학당 woman #1 메리 스크랜턴 - 사람대접을 받게 해주고 싶어요

1885년 스크랜턴 가족과 아펜젤러 부부는 뉴욕을 출발하여 조선을 향한다. 여성 해외 선교회가 조선 여성을 주목하게 되면서 처음 출발한 선교단 이었다. 여성을 중심에 둔 선교를 목적으로 했던 스크랜턴은 여학교를 세웠으나 학생을 모집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시도끝에 고종에게서 이화학당 이라는 여학교 이름을 하사받은 이후에야 학생이 늘기 시작했고 이후 걸출한 여성 선각자를 다수 배출하게 된다. 하란사, 여메례, 박에스더 등 여성운동과 여성의학에 있어서 굵직한 인물들이 후처, 청상과부, 버려진 딸에서 교육자, 의사 등 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space #2 보구여관 woman #2 로제타 셔우드 홀 & 박에스더 - 여성이 여성에게 의술을 전한다

조혼 풍습때문에 여학생을 구하기 어려웠던 여학교에 비해서 여성의료원은 초기 오해를 딛고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여성의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교단에서 파견된 여성의사 로제타를 돕던 이화학당 학생 김점동은 이화학당 구내에 준비된 여성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여의사의 꿈을 키웠다. 당시의 병원은 전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병원에 오기 전에는 신앙이 없던 사람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는 신앙인이 되어 돌아갔다. 작은 병원을 통해 신자가 많아지면 그 병원을 헐고 큰 서양식 병원과 예배당을 세우는 의료 선교였다. 김점동에서 박에스더가 되기까지 미국에서 아이도 잃고 남편도 잃고 병까지 얻어가며 마침내 의사가 되었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이자 후배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다.

space #3 상동교회 woman #3 차마리사 -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1893년 남대문 시약소 예배처소는 상동교회로 승격되었지만 초기 신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화학당을 후임 여선교사에게 물려준 스크랜턴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남대문 시병원을 세우고 여성 교육을 실시하였다. 매일여학교와 전도부인 양성학원도 만들었다. 상동교회는 당시 최대규모의 신자가 예배 볼 수 있는 교회건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힘들게 살았던 한 여성이 상동교회를 나가며 여성운동가 차미리사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난한 여성에게 복음을, 포로된 여성에게 해방을, 억눌린 여성에게 자유를, 고통 받는 여성에게 평안을' 차미리사는 청상과부 섭섭이의 삶을 살았기에 신여성보다 구여성에게 관심을 가졌다. 조선의 모든 섭섭이들이 교육으로 눈을 뜨고 자립할 직업을 가져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어렵게 유학하며 목격했던 외국생활에서 인종차별과 선교사의 우월의식과 차별적 언사를 본 경험은 주체성과 자립정신을 강조한 여성운동을 앞장서 이끌게 했다.

space #4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양성소 woman #4 정종명 -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과 단결을 주장하오

보구여관은 감리교, 세브란스병원은 장로교로 교파는 달랐지만 전문성과 넓은 경험을 위하여 수업과 임상 실험, 수술실 등을 공유했는데, 1903년 보구여관이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한 후 1906년 세브란스병원도 간호부 양성소를 개설하였다. 1회 졸업생은 김배세 단 한명이었는데,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의 동생이었다. 1917년 정종명이 간호부 양성소에 입학했을 때 아들하나를 둔 지독하게 가난한 스물두살의 청상과부였다. 3.1운동때 간호부 양성소 학생이었던 정종명은 투옥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사회운동의 의지는 강해져갔다. 졸업후 산파 면허를 딴 후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1920년대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말로는 알려지지 않는다.

space #5 조선일보 & 동아일보 woman #5 최은희 & 허정숙 - 당당해야 삶이 바뀐다

이광수의 추천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조선일보에 발탁된 최은희 여성의 교육과 권리 등에 대한 다수의 기사를 썼으나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 되고 지식인들이 친일의 행보를 선택할때 사회활동을 접고 잠적한다. 동아일보에 발탁되기 전부터 유명했던 여성 논객 허정숙은 자유연애로 인한 이슈메이커였으나 개의치 않고 혁명가의 길을 걸어갔다.

space #6 조지아백화점 & 화신백화점 woman #6 송계월 & 임형선 - 내 밥벌이는 내 손으로

북촌에는 한국인 사업가의 백화점 화신백화점이 남촌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조지아백화점을 비롯한 여러개의 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은 휘황찬란한 신천지였고 그 안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고학력에 외모가 출중해야 했지만, 그렇게 일하는 현실은 엘리베이터걸 데파트걸 로서 성희롱과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많은 여성들에겐 꿈의 직장이었다. 데파트걸에서 신여성 이라는 잡지의 기자가 된 송계월은 여성해방이론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전개해 나갔다. 학업에 대한 열정은 넘쳤으나 가난에 발목이잡혔을때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선생님이 소개시켜준 곳이 화신백화점 내 미용부였다. 기술은 역시 밥벌이를 가능케 했다.

space #7 평원고무공장 & 대동방적공장 woman #7 강주룡 & 강경애 - 죽을 각오로 싸운다

1931년 5월 평양에 있는 평원고무공장 여공 강주룡은 을밀대 용마루로 올라갔다. 열악한 환경의 여공들의 처우를 알리고 임금 삭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벌인 첫 고공농성은 '체공녀 강주룡' 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1934년 8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인간문제는 강경애가 자신의 험난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쓸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당시 작가들이 지식인은 노동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자와 선구자의 이미지로 그린데 반해 강경애의 소설속 지식인은 전향자였다. 현실속에서 볼수 있었던. 죽을 각오로 싸웠음에도 강주룡의 외침은 통하지 않았고 강경애의 소설은 주목받지 못했다.

소설이 뚝 끊겼다 싶게 맺어진 마무리 뒤에 '그후, 그 장소, 그 사람' 이라는 글로 각각의 장소들과 주인공들이 이후에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짧게 요약해 준다. 그런데 이 요약은 소설처럼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있다. 아마도 앞서 읽은 파란만장한 삶들이 마지막마저 해피엔딩은 없어서였을까...

이 책은 100여 년 전 전통 사회가 강요했던 삶을 떨치고 일어난 여성들과 그들에게 새 삶을 열어준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다룬 여학교, 여성 병원, 간호원 양성소, 교회, 신문사, 백화점, 공장 등은 집안에 갇혀 있던 여성을 사회적인 존재로 나아가게 했던 공간이다. 이제는 남녀공학이 대부분이며 교회든 어디든 남녀를 구분하는 출입문이나 가림막은 없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벽과 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예저에는 두꺼운 콘크리트처럼 실체가 보였지만, 지금은 투명한 유리처럼 실체가 잘 안 보인다는 것. 그래서인지 여성이 장벽을 돌파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여성들이 스스로 남성화하여 전투력을 높였다면, 요즘은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고 '나답게' 를 외치며 연대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나 반동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이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이다.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일상을 바구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는 오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설령 잠시 멈추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하루하루 포기하지 않으면 한 달을 포기하지 않게 되고 그리하여 일년, 십년...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삶이 된다. 인생이란 원래 숱한 실패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결국은 너나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며 인간답게 살자는 문제가 아닌가. (에필로그 中)

공간에서의 여성 점유율은 어쩌면 여권 확대와 연관이 깊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간에 갇혀 있느냐 나오느냐 부터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기까지 여성의 활동에서 공간의 의미는 남성보다 뭔가가 더 있는 느낌이다. 백년 전에 두드러진 여성들이 걸어간 길을 뒤따라 간 여성들은 얼마나 됐을까... 그들은 미치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냈을까... 지금은 과연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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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아리아 - 스물세 편의 오페라로 본 예술의 본질
손수연 지음 / 북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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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만 느껴지는 예술, 오페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명화로 한층 더 가까워지다

 

 

단 한번도 오페라를 본 적도 없고, 오페라에 대한 상식도 전혀 없는 내게 오페라는 예술 중에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예술이다.

그림보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듣는 것도 좋아하며 발레의 움직임에도 경탄하지만 오페라는 영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 멀고먼 오페라를, 들어도 어차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는 언어로 노래되는 오페라를 그림으로 읽는다니 시도해볼만하다고 여겨졌다.

저자는 오페라 전문가다. 오페라에 대한 음악평론을 주로 하며, 성악을 전공했고 문학박사 학위를 따서인지 오페라속의 서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 하다. 그래서 아리아 한 곡과 명화 한 점을 두고 그 안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감성을 엮어 풀어낸 글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 칼럼들을 묶은 것이 이 책이 되었다.

아리아 한 곡과 명화 한 점을 엮었다고 해서 오페라와 관련된 그림들인 것은 아니다. 오페라를 바탕에 두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서로 다른 예술 사이에서 공통의 접점을 찾아 함께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낸 것이므로 어쩌면 지극히 사적인 감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오페라에 대해 알 수 있다면 읽어봄직한 에세이들이 아니겠나 싶다.

오페라는 어렵다. 드라마와 음악, 무용, 무대미술, 의상 등이 포함되는 종합예술인데, 비슷한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처럼 쉽게 접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다만 아리아 라는 단어는 친숙하다. 오페라 안에서 주요 등장인물이 부르는 서정적인 독주성악곡인 아리아는 아리아 자체만으로 유명해진 곡들도 꽤 있다. 그 한 곡의 아리아에 대해 그림과 함께 보는 시도는 아리아를 들어볼까 싶은 관심을 유도한다. 그러한 관심이 오페라까지 연결된다면야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스물 세편의 글에 스물 세 개의 오페라가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은 스물 세점이 등장한다.

오페라의 개요를 설명하고 아리아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왜 이 아리아에서 이 그림이 떠올랐는지 저자의 생각을 읽은 후 마지막 부분의 그림을 보면 앞서 읽었던 글들을 음미하게 된다. 때로는 저자의 감상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아해하기도 하면서 여건이 된다면 그 아리아를 들으며 그림을 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짧고 굵은 메시지로 마무리하는 하나의 문장까지, 매 글마다 일관성 있는 체계가 정돈된 느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기 편했다.

오페라의 줄거리를 읽는 것도 재밌었고,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성악가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도 신기했고, 그림과 연결되는 감성도 신선했다. 작고 얇은 책 한권이 오페라를 가깝게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한 맛이 있는 책이었다. 한국어로 노래해주는 오페라 공연이 있으면 한번쯤 보러 가고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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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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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법과 현실 사이에서 변방에 선 이들을 변호한다는 것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저자는 국선전담변호사 이다. 기자로 15년 일하다가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던 2009년에 법공부를 시작하여 졸업 후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을 거쳐 수원지방법원에서 6년째 일하고 있다. 기자로 오래 일했던 경력이 있어서인지 이야기 풀어내는 솜씨가 자연스럽다. 그냥 국선변호사도 아니고 국선전담변호사 로서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모두가 우리의 이웃들이기도 하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 사건만 하도록 각극 법원장이 위촉하는 변호사로, 원칙적으로 일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게 일반 국선변호사와 다르다고 한다. 이 직업은 2004년에 생겼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사건이 굴러들어오던 때라 국선 사건은 변호사들이 당번처럼 돌아가며 담당하다보니 변론을 무성의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피고인 사건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자 대법원은 국가가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주면서 국선변호만 전담하는 변호사를 따로 선발하기로 했고, 2006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 이 제도는 그 도입 취지에 걸맞게 국선변론의 수준을 대폭 올렸다고 한다. 이 제도가 어느정도 정착되었을 시기인 2014년 저자는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었다.


이 직업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만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상대로 서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 덕분에 당사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취했다. 이 '이중적 독립성'이 변론의 수준을 높인 핵심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선변호인으로 일할 때는 객관적으로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받은 돈(수임료)때문에 자백을 권유하기가 어렵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할 때가 많았는데, 국선전담변호사는 법률 전문가로서 냉정하게 수사 기록을 평가한 의견을 피고인에게 먼저 말해주고 그 의견을 기초로 재판 진행에 관해 논의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었다.(사선변호인이 의뢰인에게 다 휘둘린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선변호인은 국선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당사자와 소통하며 사건을 연구하기에 변론의 수준이 국선보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p. 5)


국선변호사 라는 말을 들으면, 몇몇 영화들이 각인시켜 놓은 마지못해 하는 봉사 수준의 변론이 예상됐었다. 변호사를 고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 국선변호사에게 매달려보지만 국선변호사는 그야말로 해도되고 안해도되는 일이다 보니 마지못해 그냥 대충 뭐 그런...

그런데 국선전담변호사는 좀 다를 것 같긴 하다. 변호인이지만 유죄가 확실할 경우 형량을 감형받을 수 있도록 자백을 권유할 수 있기도 하고 무죄가 확실할 경우 제대로 된 변론준비를 할 수 있기도 하고... 물론 전담받는 사건수가 워낙 많다보니 시간상 한 사건 분석에 많은 연구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봉사수준에서 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이 생겼기에 가능한 직업이 아닌가 싶다. 몇년을 고시공부하던 사람이 변호사가 됐을때 과연 국선전담을 하려고 했을까?


국선전담변호사가 맡는 사건들은 절차상 변호인없이 재판할 수 없는 사건들이기 때문인데, 피고인이 사선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을 때 재판장이 국선전담변호사를 지정해준다. 거의가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피고인인 경우가 많지만, 사선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제도 이기에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젊었을 때 사고로 뇌를 다쳐 7살의 지능을 갖게 된 남자가 시설 안에서 조현병 환자와 싸우다 상대방이 사망하는 사건에서 그남자가 저자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 저자가 살아온 만큼 그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그 세월에 무감할 수가 없었고,

마약중독으로 구속수감된 남자의 변호인으로서 알코올중독자 엄마의 폭력아래 신음하며 아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편지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성희롱 문자를 보낸 노인의 변호인으로 유순하고 무지한 노인의 말을 믿었다가 거짓임을 알았을때 분노했지만 치매로 인한 증상이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치매걸린 노모를 생각하며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기억할 수 있던 때를 그리워 하기도 한다.


끔찍한 성장기를 거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구속된 사이 조폭이 된 아들의 폭력사건, 종교적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대로 선택하는 징역살이, 북한에서 어렵게 탈출해 왔으나 알콜중독에 빠진 청년, 아이를 버린 미혼모대신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주던 일 등 저자가 말하는 사건들은 정말 어쩔수 없는 범죄자의 길이 사회 도처에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사연들이었다.


저자는 일명 '장발장법' 헌법소원 위헌판결로 유명해진 국선변호사이기도 하다. 단순절도와 특가절도의 가중처벌의 위헌성을 인정받은 사건은 분명 훌륭한 일이었지만 저자는 많은 우연이 합쳐져 자신을 찾아온것이라고 말하면서 '재심'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를 한다. 어찌되었건저찌되었건 장발장법의 폐지는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그 무렵 조현병 증상을 가진 이가 환청이나 망상에 사로잡혀 저지른 끔찍한 범죄 소식이 잇따랐다. 사람들은 저렇게 위험한 환자를 왜 사회에 방치하느냐고, 강제입원을 시켜서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들을 국가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가족조차 그들의 폭력이 무서워서 혹은 평생 짊어져야 할 그 짐이 너무 무거워서 도망갔다. 긴 세월 버려지고 방치된 그들의 증상은 계속 나빠졌다. (p. 125)

그에게 왜 술을 끊지 못하느냐고 비난하며 더 엄격하게 처벌한들 술을 부르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그의 재범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범죄가 해결될 수 없는 사람을 두고도 우린 범죄만 보고 있다. (p. 139)


조현병이나 마약중독, 알콜중독등 중독환자들은 필요에 따라 재판시 정신감정을 받고 치료감호 명령을 받기도 한다. 치료감호소는 범죄자의 정신건강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향후 사회 복귀 시 재범을 막기 위한 예방적 조치로 세워진 교도소 병원인데, 여러 여건상 인력 및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는 곳이라고 한다. 정신건강보건법은 입원환자 60명당 정신과 의사 한 명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치료감호소에서는 정신과 의사 한 명당 맡은 환자 수가 135.75명이니 치료는 커녕 인권침해의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는 곳이다. 그나마 그런 치료감호소 마저 퇴소하고 사회에 다시 나오면 상담받으러 갈 곳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저지르는 재범... 악순환...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가 많기는 하지만, 꼭 그런 계층이 아닌데도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야말로 다채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국선전담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징 같달까? 그런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저자가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소통' 의 중요성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고 저자의 조언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저자는 그들에게 좋은 국선이 되기도 하고 나쁜 국선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그저 객관적이고자 할 뿐인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은 법이다.


저자는 자신의 부끄러웠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처럼, 자신이 소홀했던 일들에 대해 자신이 잘못한 거라고 그때의 부끄러움은 두고두고 약이 되고 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실수를 드러내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런면에서 박수 ㅎㅎ


국선변호는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비용이다. 형편이 되는데도 변호인을 굳이 선임하지 않는 이들에게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는 건 공동의 비용을 늘리는 일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분명 '빈곤 기타 사유' 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법원에서 좀 더 엄격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p. 261)


저자가 국선변호를 했던 사건의 피의자 중에는 사업가, 대학교수, 유력집안 부인 등 부유층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은근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국선변호인에게 사건변론을 의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직업상 그들의 변론을 해주긴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저자의 뼈있는 한마디가 제도의 공정성을 위해 저~위에 좀 들렸으면 좋겠다.


경찰의 '채증' 활동에 대한 것도 처음 알았는데, 시위가 있을때 '채증' 활동원들이 시민들의 사진을 찍고 프로그램을 통해 SNS를 뒤져서 그 시민을 찾아내 죄를 구형한다는 것이 참 너무 어이없었다. 합법적으로 신고된 시위에 나갔는데, 그 수천수만명을 어떻게든 한사람이라도 더 찾아내서 교통방해죄로 기소를 한다는 것이 거참... 그래도 과거에 비해 무죄로 판결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니 다행이긴 한데, 그런 경험을 한 시민들이 과연 국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를 좀 저~위에 있는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선 이 자리에서는 이렇게 작고 분절된 이야기밖에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의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은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내 그 안에서 우리 사회의 '불완전하고 조각난, 미완의' 경계를 조금씩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p. 274)


저자는 늘 새로운 사건을 만난다. 비슷한듯 다른 그 사건들은 작고 분절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매달 새로운 사건을 25건 내외로 배당받는 시간 속에서 눈코뜰새 없이 바쁠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의뢰인과 변호사로서의 관계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재판이 있는 동안 잠깐 만났다가 재판이 끝나면 대부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을 기억하고 사건들을 기록한다. 그렇게 분절된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면서 어떤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흐름이 자신을 지나 독자에게 흐르고 사회에 흐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도 그 흐름속에 이야기의 힘을 믿고 싶다. 세상과 사람이 연결되는 이야기의 힘이 어떻게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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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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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심장,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비오이 카사레스는 나의 진정한 그리고 비밀스러운 스승이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1914~1999) 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다. 1932년 열여덟 살의 비오이 카사레스는 서른 두 살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처음 만나 지적이고 문학적인 모험의 동반자로 평생을 교류했다고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보르헤스 생전에는 잘 인정받지 못하다가, 1986년 보르헤스 타계후 비로소 재조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르헤스의 이름은 꽤 여러번 들었던 이름인데,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거의 평생을 보르헤스와 교류하며 함께 쓴 작품이 많아서인지 그만의 작품은 뒤늦게 재조명된 것 같다. 보르헤스는 왜 생전에 비오이 카사레스를 밀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1944년부터 1967년까지 비오이 카사레스는 소설집 여덟 권을 출간했다. 그는 1972년에 그때까지 쓴 단편소설들을 [사랑 이야기] 와 [환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모아 놓았다. 이번 단편선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환상 이야기] 에 수록된 이야기들이다. 나이로치면 30~50대에 쓴 단편들로 가장 전성기때 쓰여진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비오이 카사레스의 작품들은 '환상적 사실주의' 가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는 책을 읽어보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영향이 짙게 배인 나라다. 19세기에 스페인들에게 점령당한 후 원주민들은 밀려났고, 스페인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자리잡아 언어는 스페인어 이고 국교는 카톨릭이다. 세계2차대전 이후 '페론' 독재 시기가 있었고, 이후 군부와 독재와 개혁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해오던 시기에 비오이 카사레스가 살았고, 작품을 썼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할때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중요시하는 편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이 쓰여졌던 시기는 독재와 혁명의 혼란기였고, 스페인이주민이 원주민을 무시하던 때였고, 다양한 차별적 성향이 만연하던 때였다. 그리고 같은 아르헨티나 사람인 체 게바라가 죽은 년도가 1967년이다. 아르헨티나는 짧은 안정기와 긴 혼란기를 반복하고 있던 곳이었다.

14편의 단편들이 거의 시간순서로 배치되어 있는듯 하니 읽어갈수록 저자의 작품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몇 년 동안 나는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이별로 인한 고독보다는 단절로 인한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좋았는데, 그것은 그 순간을 그녀와 함께 보냈기 대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들을 살펴보았고, 자세히 되돌아보았으며, 되살리려고 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지나간 일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파울리나를 기리며> -p. 16

'나' 는 파울리나를 사랑한다. 파울리나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울리나는 갑자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나'는 떠났고 2년후 돌아왔을때 집으로 찾아온 파울리나와 재회한다. 그러나 사실 파울리나는 2년전 살해당했다.

아마도 같은 세계는 무한히 많을 것이다. 약간의 변화만 있는 세계도 무한하며, 서로 다른 세계도 무한할 것이다. 지금 내가 토로 요새의 감옥에 갇혀 쓰는 것은 내가 이전에 이미 썼던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 쓰게 될 것이다. 책상에서, 종이에, 감옥에서 쓸 것이며, 이런 모든 것은 완전히 똑같을 것이다. 무한한 세상에서도 내 상황은 똑같을 테지만, 아마도 내가 갇힌 이유는 점차로 숭고함을 상실하여 결국 추잡하고 천하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쓰는 글은 아마도 다른 세상에서 명언에 버금가는 부정할 수 없는 탁월한 것이 될 것이다.

<하늘의 음모> -p. 69

알베르토와 모리스는 친하지 않은 친구 사이다. 의사인 알베르토에게 어느날 모리스가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온다. 그리고 알베르토가 찾아갔을 때 모리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모리스는 다른 세계에 다녀왔으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알베르토는 다수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오리베는 루시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눈에 띌 정도로, 거의 연극을 하다시피 침울해져 있었다" 실제로 오리베는 훌륭한 배우 같았고, 자신이 맡은 배역을 분명하게 상상했으며,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과 자기 자신을 혼동하곤 했다.

<눈의 위증> - p. 122

'나' 는 비야파네 의 유고집을 출간하며 비야파네가 숨기려 했던 것이 분명한 어떤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비야파네 는 어떤 여행에서 젊은 시인 오리베를 만났다. 오리베가 살해당한 후 오리베에 대한 이야기를 펴냈던 비야파네의 글은 사실 거짓이었다. 루시아의 아버지는 오리베를 죽였고, 오리베는 그것을 알았음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비야파네의 장화에 묻은 눈이 증거였다. 하지만 비야파네는 시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지옥으로 갔어요." 바보들의 입에서는 진실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인자는 우리 쪽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 사람이 음산한 외모의 소유자이자 파리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기를 보대던 코우토씨였을까? 사람들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악마, 진정한 악마였다.

<이상하고 놀라운 이야기> -p. 166

'나' 는 랑케르와 올리비아를 소개 받는다. 랑케르는 '신' 들은 믿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 어느날 파티에서 랑케르의 논리에 격분한 사람과 결투를 하게 되고 랑케르는 죽는다. 그런데 살인자들은 사실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시기를 보냈지만, 거스를 수 없는 갑작스러운 우연의 공습으로 혼란스럽고 영웅적인 절정의 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비천한 무명작가의 전혀 철학적이지 않은 외침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비천한 무명의 사람이기에 하나 이상의 끔찍한 사건에 관해 증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심지어 의미가 있다고 반박하고 싶다.

<남의 여종> - p. 169)

우르비나는 플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플로라는 미쳤거나 사생활이 문란하다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많다. 플로라는 비밀이 많다. 우르비나는 플로라의 비밀이었던 루돌프를 만나게 되고 실명까지 하게 되는데, 루돌프는 아프리카 피그미족이 축소시킨 소형인간이었다. 플로라는 우르비나를 버리고 자신의 난쟁이 남자에게로 갔다.

사랑하는 라울, 생각 전송이라는 것을 아나요? 당신이 내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슬픈 일이에요.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나를 슬프게 만들어요. 호세피나 같은 개에게, 혹은 당신 같은 사람에게, 또는 당신 아내에게 생각을 전송하고 꿈을 전송하는 것은 모두 같은 하나의 것이지요.

<파리와 거미> -p. 245

라울과 안드레아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라울은 와인가게를 운영했고 안드레아는 하숙집을 운영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라울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안드레아는 불륜을 저지른다. 라울은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드레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그러다 안드레아는 자살을 하고 라울은 하숙인인 한 여자에게서 '생각전송' 을 당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내가 확실하게 말하는데, 여기 있는 고양이는 라비니아야. 나는 먼저 레토와 함께 느끼고 경험했는데, 그건 라비니아였어. 같은 것과 유사한 것은 엄청나게 달라. 네가 설명해 달라고 하면, 나는 니체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말하는 영원한 회귀를 떠올려 주고 싶어. 지금은 암고양이로 제한된 영원한 회귀만 생각하도록 해. 고양이를 원래 이루고 있던 요소들이 호텔이 타면서 흩어졌는데, 갑작스러운 우연 때문에 그것들이 모여 똑같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늘 쪽> -p. 284

'나'는 여행하던 중 우연히 옛 친구 '베블런'을 만난다. 그리고 베블런이 왜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지를 듣게 된다. 베블런은 레다를 사랑했다. 그러나 레다에게는 남편도 있었고 애인도 있었다. 그러나 레다도 베블런을 사랑한다고 한다. 둘은 여행을 떠나고 베블런이 레다를 떠났을때 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베블런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하인이 재산을 탕진하고 도망간 것을 알고 좌절했을때 새로운 일자리가 들어온다. 그일을 하기 위해 온 곳에서 화재에서 죽은 것은 고양이 뿐이라며 레다에게서 편지가 온다. 둘은 만나고자 했지만, 레다가 사고로 죽는다. 베블런은 고양이를 다시 만난 것처럼 레다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레다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일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씩씩하고 활기차며 무감각한 성격의 신사인 스탄들 사니첼리를 제외한 사망자는 더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자와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사자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있는 고대의 동물적 본성을 따랐다. 그들은 공격적이고 잔인했으며, 비겁했고 멍청했다. 시청 직원들이 맹수를 생포하자, 모든 사람의 안에서 다시 인간의 기준과 척도가 널리 퍼졌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 기준은 위선으로 더러워졌지만, 마찬가지로 동정심과 용기로 찬란하게 빛났다.

<팔레르모 숲속의 사자> - p. 299

어느날 동물원에서 사자가 탈출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나갔고 어떤 사람들은 나가지 않은채 집에서 먹고 마시고 희롱하며 창밖을 살폈다. 그러다 아이가 숲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낸 순간 사자는 잡혔고 누군가는 죽어있었다.

좋건 나쁘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랐다. 강도 높은 삶에 익숙해진 탓인지, 나는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다. (p.312)

"메기는 죽었어요" (p. 320)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고른다>

한 마을에 무료한 일상속에 사소해보이던 변화가 품고 있던 진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알게 된 것은 외계인이 왔었다는 것. 본적은 없지만 안타깝게도 죽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계속 생각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어요. 계속 생각하는 것이 죽은 것보다 더 낫다고 말했어요. 불멸성으로서의 생각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고 했어요. 내가 외운 그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면, 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그의 생각을 전하게 될 거에요. 그는 인간이 물질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결합체며, 항상 파ㅗ기와 죽음이 물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고는 자기가 어떻게 그 일을 진행했는지 하나하나 말해주었어요.

<열망> - p. 352

나와 엘라디오는 친구다. 마을에 있는 모든 청년들이 밀레나를 사랑한다. 밀레나는 엘라디오와 결혼한다. 그런데 부부생활이 행복하지 않다. 어느날 엘라디오는 죽고 엘라디오의 막내동생 디에고는 나에게 엘라디오의 비밀을 말해준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밀레나는 엘라디오의 '틀'을 부수었고, 밀레나를 사랑하게 된 디에고와 결혼했다. 나는 엘라디오가 만든 '틀'을 전시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자신이 무한히 살 것이며, 항상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비록 그의 직업은 과거와 관련되었지만 항상 미래에 호기심을 느꼈다.

<위대한 세라핌> - p. 361

알바레스는 건강이 안좋아져서 요양차 여행을 떠난다. 호텔에서 만난 사람들은 피곤했고 건강이 좋아지기는 커녕 어느날 주변엔 유황냄새가 진동을 하고 물은 썩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종말을 믿지 않는다. 알바레스는 종말을 예감하며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행동을 선택한다.

염려나 배려와는 거리가 먼 부인은 재빠르게 애국적 내용의 불평을 들려주었어. 아르헨티나 사람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깃털을 꽂은 원주민이 아니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외국 소설이 들어온다는 말이었어. (p. 412)

"그건 회복될 수 없는 순간들이야. 즉시 과거로 들어가기 때문이지. 진짜 순간들인데,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의 것이야. 그곳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아" (p. 414)

한 도시에 이틀 혹은 사흘간 머무르는 대신, 나는 내 여정의 다음번 목적지로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여행했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리거나 뒤로 돌려야 했지. 그런 시차로, 그리고 피로 때문에, 나는 모든 것, 그러니까 시간과 나 자신이 비현실이라고 느끼게 되었지. (p. 425)

<기적은 복구되지 않는다>

나와 그레베는 기차역에 너무나 일찍 도착한 나머지 함께 커피를 마시게 된다. 나는 여행에서 같은 인물이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하는 듯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레베는 카르멘과 사랑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카르멘은 죽었으나 다시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가야 할 길을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군요" 구스만은 마음속으로 기쁘게 이런 찬사를 음미하면서 그럴 만하다고 여기고는, 자기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었다. .. 하지만 그 길은 힘들게 절약한 몇 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 그는 이 길로 가는 게 맞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고 지나쳤고, 자기가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 그러니까 바틸라나가 제안한 것처럼 길을 잘 아는 사람의 이미지를 지키려고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름길> - p. 439

구스만은 동료 직원인 바틸라나와 차를 타고 출장을 가는 중이다. 갑자기 차가 고장나서 도움을 청하러 간 곳에서 둘은 감금되고 구스만 혼자 탈출하게 된다. 구스만은 자신이 겪은 일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일등실은 모두 이점을 상실했어요. 심지어 금과 유사하게 그 가치만 보존하는 속물근성까지도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결점 때문에, 그러니까 내 나이 때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치유할 수 없는 흠 때문에 이등실 승객이 될 마음은 없답니다.

<일등실 여자 승객> p. 464

이 책에서 가장 짧은 이 단편은 단 4페이지이고 여자승객의 독백이다. 이등실 승객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과 일등실이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끝까지 일등실만을 고집하는 여자승객의 마지막 대화이다.

이 책에 대한 작품들 면면 모두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었다. 읽다가 저자에 대해 조사해보고 읽다가 작품에 대해서 찾아보고 읽다가 옮긴이의 말 부터 읽어보고 해가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던 책이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 보다 더 적절한 평을 쓸 수 없어서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의 문학은 환상문학에서 사실주의로 혹은 그 반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두 흐름은 공존했다. 이것이 바로 이 단편선에 수록된 작품들이 보여 주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완전히 확실한 세상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환상문학의 사실주의 경향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환상문학의 서술 방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추측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당혹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들을 공유한다" 비오이 카사레스에게 환상문학이란 현실은 논리적이고 정돈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도구, 즉 의문을 던지면서 안정된 질서에 틈을 만들고 또 다른 통일성을 엿보게 하거나, 혹은 단순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면서, 우리를 혼란스러워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옮긴이의 말> - p.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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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헌법 -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박주민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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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회의원 박주민의 헌법 이야기

헌법 130조문 기본 골격부터 최근 사회 이슈와의 연결성까지

법알못도 쉽게 이해하는 '국민이 알아야 할 최소한의 헌법'

헌법 꼭 알아야 하냐고요? 몰라도 살 수 있지 않냐고요? 네, 몰라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면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 중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더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에 힘을 모으고, 어떤 일에 분노해야 마땅한지를 가려낼 수 있게 합니다.



한집에 상식책 한권을 반드시 구비해야 한다면 이 책을 전국방방곳곳가가호호 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ㅎㅎ

법은 왠지 무겁고 어렵고 무서운데.. 게다가 법중의법 헌법이라니! 생각만해도 움추러드는;;; 그런데 왠걸 의외로 너무 간단하고 기초적인데다 재미있다~!


헌법을 그냥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적용되는 유용한 정보가 많거든요. 그뿐 아닙니다. 사회를 보는 눈도 달라질 거라고 제가 장담합니다. 더군다나 읽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헌법이라고 하면 두꺼운 법전 한 권 정도는 되는 방대한 분량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아닙니다. 헌법은 아주 짧아요. 조문이 굉장히 적어서 누구나 금방 읽을 수 있어요. 이 짧은 법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거예요. (p. 7)


헌법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았다. 지금의 헌법은 1988년판이다. 그 이전 시대는 법을 초월한 무법지대였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치사 대비 법의 역사는 길지 않았다. 결국 법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발전과 맞물려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얼마 안됐다고 생각하니 좀 서글프기도 하고, 그래서 여전히 시끄러울 수 밖에 없구나 싶기도 했다. 정착됐다고 보기엔 아직이라...

헌법은 전체 130개 조항이 열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헌법은 A4용지에 130줄 정도 치면 다 쓸 수 있을 정도로 길지 않다는 얘기다. 130줄 이면 2장안에 다 프린트 될 정도의 양이다. 마음만 먹으면 금새 읽어버릴 수 있는 이 130개 조항에 대하여 저자는 알기쉽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시사적인 예들로 설명해주는 풀이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p. 20)


교과서마다 제일 앞장에 국민교육헌장이 쓰여있고 그 전문을 외워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이름은 국민교육헌장이었지만 학생들에게 무조건적 충성맹세를 시키는 듯한 내용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되어 있는 헌법전문을 외웠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은 법이다. 헌법은 본문에 앞서 전문을 두고 있는데, 전문이 저게 다다. 저 전문 내용에 모든 헌법의 기초가 녹아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연도를 1919년으로 하느냐 1948년으로 하느냐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었다. 그땐 왜 그걸가지고 그렇게 왈가왈부하나 싶었는데... 헌법전문에 3.1운동을 계승한다고 써있는데, 1948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무식하거나 철면피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이 왜 1948년을 주장하느냐. 1919년 건국은 일제강점기를 포함한다. 하지만 1948년으로 하면 일제강점기가 빠진다. 일제강점기가 빠지게 되면 친일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건국년도는 우리나라 법기준점을 세우는데 의외로 중요한 것이었음을 저자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48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매국노에 다름아니다.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p. 32)


아무리 법상식이 없어도 대부분 알고 있는 헌법항목이 1항과 2항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공화국' 이라는 말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이념이건 다른이념이건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화국임을 말하고 있다. 공화국이란 중국 주나라 여왕 축출후 백성들이 왕을 세우지 않은 채 백성과 신하들이 서로 화합하여 나라를 잘 다스렸던 것에서 '왕이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참여와 합의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共和 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영어에서도 로마시대때 왕정폐지후 '나라는 우리 모두의 것 res publica' 에서 republic 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한 어원을 갖고 있는 공화국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어 좋았다. 민주공화국이건 공산공화국이건 왕이 없는 체제는 다 공화국인 것이다. 왕은 없다. 누구도 왕이 될 순 없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군신관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의외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헌법은 평화주의 헌법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무조건 전쟁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먼저 침략하는 전쟁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북한과의 긴장이 높아지면 북한을 공격하자고 한다거나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서 핵을 갖다 놔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다 헌법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국회의원이 헌법을 무시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거죠. (p. 47)


헌법 3조, 4조, 5조 에서는 북한과 통일에 대한 규정이 있다. 평화와 공존의 원칙이 있음에도 무식한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너무 많다. 국회는 입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의 본업은 법안을 만드는 것이다. 법안을 만들려면 법을 잘 알아야 할텐데 법알못 국회의원들이 참 많다. 딴짓좀 하지 말고 법공부나 열심히 제대로 하면 좋으련만...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p. 72)


헌법의 이 한줄에서 많은 기본법들이 탄생한다고 한다. 평등권, 행동자유권, 자기결정권 등 국민입장에서 가장 중요할수 있는 기본권이 다 이 조항에서 시작한다. 이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하려고 했지만 개헌이 안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법안들이 얼마나 막히고 있는지 알게 될 때마다 참...답답했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p. 108)


헌법에서 사용하는 양심은 바른 마음, 도덕적인 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법관이 재판할 때 '법률과 양심에 따라' 라고 하는 것도 바른 마음에 따라서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헌법재판소의 표현을 한번 볼까요? 헌법재판소에서는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 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법률에서 쓰이는 양심은 바로 신념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의 자유란 국민 각자가 자기의 신념을 가질 자유가 있다고 해석하면 됩니다. (p. 109)

양심과 신념과 이념이 혼합되어 정확하게 규정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양심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중립적이고 포괄적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기도 했다.


제27조는 형사소송법 중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되어 있다고 되어 있는데, '법관에 의하여' 라는 부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배심원제가 들어올수 없는 거라고 한다. 그래서 '법원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로 헌법개정안을 냈는데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안 됐다고 한다. 검사든 변호사든 심지어 판사까지 자기네들 손아귀라고 자기네들이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국민이 배심원이 되는 배심원제를 반대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일까...


기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검사만 기소를 할 수 있어요. 이걸 '기소독점주의라고 합니다. 요즘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줄여서 공수처라고 하는데, 판사나 검사, 고위직 공무원을 전담해 수사하는 기구에요. 그런데 설치하냐 마냐도 쟁점이지만, 설치를 찬성하는 사람 중에서도 공수처에 어떠한 권한까지 줄지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기소권' 입니다. (p. 137)


저자는 기소권이 검사의 권한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기소를 해야 재판을 받는데 기소를 안 하면 재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죄를 범해서 수사를 했는데도 기소를 안해버리면 끝이고, 죄의 성립이 모호한대도 기소를 해버리면 범죄인 만드는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검사가 어디 소속인지를 보면 참 신기한게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라고 한다. 입법부도 사법부도 아니고 행정부 소속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검찰은 법무부의 외청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청 소속 공무원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이 사법부를 건드리는 것마냥 표현하는 사람들은 말도안돼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고 행정부 수반이 개혁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오히려 검찰의 수장이 행정부 수장의 말을 안듣는것이 그렇게 초법적 위치에 있으려고 하는것이 정말 문제인거다. 검찰이 자기네가 소속된 행정부에 반항하니 이때다 싶게 입법부인 국회에서 일부국회의원들에게 조종되는 것이다.


제29조 1)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2)군인, 군무원, 경철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법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 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p. 143)


국가배상법과 관련된 헌법조항이다. 여기서 '보상' 과 '배상' 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보상은 잘못이 없을 때 주는 것이고 배상은 잘못했을 때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보상금이라고 주면 우리는 받을 수가 없는 거다. 배상금이라고 줘도 받을까말까한데.

이 조항관련해서 안타까운 개헌무산사례를 또 접했다. 이 조항을 이용해서 베트남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소액만 주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다고 한다. 전쟁때도 아니고 나랏돈이 아깝다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 푼돈을 주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조항을 없애려고 했다는데, 결국 개헌이 안됐다고 한다. 왜 개헌이 안됐는지는 너무나 빤히 보이는 놈들 때문이다.


왜 노동의 권리가 아니라 근로의 권리일까요? 그냥 노동의 권리나 일할 권리라고 하면 되지 왜 성실히 일할 권리라고 말할까요? 이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하면 되지 잘생긴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이상한 거죠.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서 일할 권리라는 의미를 담아서 근로를 노동이라는 단어로 바꾸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난을 했어요. 특히 자유한국당에서요. 우리나라는 노동자가 대부분인 나라인데도 '노동' 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빨갱이라고 색깔을 덧씌우면서 이렇게 공격을 해댑니다. (p. 151)

32조1항을 보면 최저임금제 얘기도 있어요. 헌법에서 최저임금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 처음 아셨죠? 가끔 경제 논객이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최저임금제 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얼마 없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잖아요? 정치인이 헌법도 안 읽고 그런 말 하면 안되죠. 최저임금제, 헌법에서 하라고 해서 헌법대로 하는 겁니다. (p. 153)


헌법 32조와 33조는 근로자의 지위나 권리, 근로자의 권리의 한계를 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그런데, 근로란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한다 즉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냥 일한다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다...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다. 모두 다 노동을 해서 먹고산다. 그런데 '노동' 이라는 단어조차 아직도 색깔논쟁에 빠져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 정말 갑갑할 따름이다. 왜 말을 그냥 말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잘못된 이미지를 덧씌워 이용하려고 하는건지... 에혀...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그저 일하는 노동자의 개념이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것을...

최저임금제 얘기 읽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거 원 법알못이 국민들에게 많은게 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 더 많은거 아닌가 싶어서... 남들이 낸 좋은 법안 반대하느라 법공부 할 시간이 없는건가? 그들은 법안을 한건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보기나 했을까? 이래서 선거를 투표를 잘 해야 하는데...


최근에 왜 남자만 병력 형성의 의무를 져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심해지고 있어요. 군대 갔다 온 남성들이 취업이 안돼서 그 원인을 찾아보니 남자들이 군대 가 있는 동안 여자들이 토플, 토익 점수 따고 취업 준비를 하더라는 겁니다. 남자는 그 중요한시기를 군대에서 보낸다는 거죠. 그래서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을 합니다.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거예요, 내가 힘들다고 해서 왜 다른 사람도 같이 힘들어야 하나요? 그 사람도 안 힘들도 나도 안 힘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바람직한 거 아닌가요? (p. 175)

서로가 좋을 수 있는 플러스적인 해결 방법이 있음에도 내가 힘드니까 너도 힘들어야 한다는 식의 제로섬적인 해결 방법에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요? (p. 177)

요즘에는 군가산점제 대신 성비 균형을 맞추기 위한 플러스 알파 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너무 적으면 여성을, 남성이 너무 적으면 남성을 추가적으로 채용하는데 플러스 알파 채용의 혜택을 남자도 많이 봅니다. 왜냐고요? 남자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여자들이 시험을 더 잘 본다고 하더군요. 결국 성별 균형을 위한 플러스 알파 채용에서 남자들이 더 많이 혜택을 보고 있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p. 179)


군가산점제 위헌판결이 내려졌을때 정말 말들 많았었다. 병역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긴하지만 여전히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말이 나올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제로섬적인 해결방법에 혈안이 되 있는 현실을 저자의 글을 통해 찬찬히 읽다보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소모적인 논쟁이 어디 이것뿐이랴마는 좀더 생산적인 혜안을 가진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회의원 숫자가 많아지면 국회의원 한 사람의 특권과 권력이 세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겠죠. 국민 입장에서는 국회의원 월급 반으로 깍고 보좌관 수 반으로 줄이는 대신 국회의원 수 두 배로 늘리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어요. 국회의원 수를 두 배로 늘리면 300명 중의 하나가 아니라 600명 가운데 하나가 돼요. 그러면 권한도 600분의 1로 쪼개지잖아요. 이런 점에 대해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p. 186)


국회의원들이 하도 본업은 안하고 싸움만 하는 것처럼 보이니 피곤해진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 않게 여겨진다. 하지만, 소수일수록 특권은 많아진다. 다수일수록 힘은 분산된다. 게대가 우리나라의 인구대비 국회의원수는 무척 적은 편이라고 한다. 자신의 소속구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비싼 월급 세금으로 주며 팽팽 노는 것처럼 보이는 국회의원들 월급 깍고 수를 배로 늘리면 국민 무서운줄 알고 눈치보며 좀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정말 욕심하는 제안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수를 늘리고자 하는 시도도 막히겠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을 체결하고 비준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선전포고를 하거나 국군을 외국에 파견할 때 등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고요. 그래서 남북판문점선언에 대해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 국회에서 동의를 해줘야 헌법에 의해서 체결된 선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의가 필요해요. 또 재정적 부담 측면에서도 국회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국회가 아직 동의 안 해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10.4선언도 동의 못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 때 6.15 남북공동선언도 결국 국회 동의를 못 받았어요. '판문점선언을 이행하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 거다 퍼주기다 돈낭비다' 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조선일보 2014년에 연재했던 '통일이 미래다' 라는 기사만 봐도 통일이나 남북경제협력은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거든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잖아요. ... 개성공단에 들어갔던 한국 기업들 어때요? 개성공단에 다시 안들어가겠다고 하는 기업 없습니다. 다들 개성공단 재개해서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해요. 5억 달러 투자해서 30억 달러를 갖고 왔습니다. 경제협력을 하면 우리가 손해 볼게 없어요. ... 경제협력 할 때 드는 돈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p. 223)


국가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권실세에게 유리한 말을 하느라 어느땐 경제적으로 유익하다 했다가 어느땐 낭비다 라고 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보수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정말 한심스럽다. 대체 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


제65조 4)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p. 229)

탄핵으로 공직에서 파면되었다고 해서 민사상 또는 형사상 책임이 없어지지는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후 형사재판을 받고 있잖아요. 탄핵으로 다 끝나는 게 아니예요.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분들이 '탄핵해서 쫓아냈으면 됐지 왜 또 재판에 세우냐' 라고 말하잖아요. 헌법에 파면이 끝이 아니고 재판 다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력이 재판을 받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혹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헌법을 읽어봤으면 그런 말 안 할 텐데 말이에요. 다들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p. 231)


인정이고 온정이고 법앞에선 아무 효력이 없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이시대의 장발장들도 여전히 수두룩 하다. 하지만 죄를 지으면 재판을 받아야 한다. 누구만 특정해서 봐줄수는 없는 거다. 더구나 큰 잘못을 해서 탄핵을 당한 사람이면 더더욱. 왜냐하면 법이 그러니까. 법에 그렇게 하라고 나와있으니까. 법조항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생활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 취임 때 선서하는 모습 본 적 있죠? 그런데 놀라운 게 있습니다. 이때 읽은 취임 선서문이 헌법에 아예 쓰여 있다는 거예요. ... 그래서 이 헌법이 대단하다는 거예요. 선서문까지 정해놨잖아요. 따옴표까지 딱 쳐서. 그런데도 국민들이 이 헌법을 읽어보질 않아요. 이렇게 많은 것들이 헌법에 정해져 있고 헌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모르다니 정말 아쉽습니다. (p. 241)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헌법엔 정말 많은 것들이 규정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규정들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정말 너무 몰랐구나 싶었다. 읽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읽어보자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굉장히 중요한 조항입니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앞에서 다룬 것처럼 '착한 마음'이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이때의 양심은 신념을 의미합니다.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함은 주로 법원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임을 의미해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문제가 된 사법농단의 경우 이것이 매우 좁은 생각이었음을 알게 해주었어요. 정말로 재판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영향력도 차단해야 하기에 특히 법원행정처와 같은 기구를 해체하고 법관의 인사권을 대법원의 손으로부터 풀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이런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데 아직 제대로 논의가 안 되고 있어요. (p. 295~296)


또또또 논의가 안되고 있단다. 아놔 대체 법안논의는 언제 하는 건가?


자유한국당은 경제민주화 조항인 119조를 수정해서 국가의 규제나 조정권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해요. 저는 국가가 적절히 시장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게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p. 332) 정부가 시장에 관여하지 않는 나라는 없어요. 관여하는 게 기본이고 관여하지 않으면 시장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시장에 대한 규제를 하려고 하면 사회주의자다, 공산주의자다 하면서 공격해요. 이렇게 시장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현재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 사람을 계속 이기게 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소위 시장지상주의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실 시장에서 현재 이기고 있는 기업을 계속 이기게 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시장에서 현재 이기고 있는 것은 거의 재벌이기에 사실상 재벌에 대한 규제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 재벌이 계속 해서 이길 수 있게 해주려고 재벌 손대지 말라고 하는 거죠. (p. 336)

시장을 위해서도 외부에서 시장에 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관여를 허용하고 있어요. 이런 게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p. 337)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참 손해보는 게 많다. 모든 논리가 여전히 빨갱이 라는 단어앞에서 무너진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조정하는 것이 재벌을 규제하고 조정하는 유일한 법적 방법인데 서민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방법인데 그 반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재벌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제발 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제128조 1)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2)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p. 348)

앞서 얘기한 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낸 개헌안에 대통령 중임제로 변경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거에 대해서 처음에 자유한국당이 뭐라고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장기 집권 계획이라고 비난했었잖아요. 그런데 헌법에 이렇게 써놓았어요.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중임변경을 할 때는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요. 임기변경이나 중임변경의 경우는 개정안 낼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고 못 박아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장기집권을 합니까? 말이 안 되죠. 국민들이 헌법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아무 소리나 하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헌법을 읽었으니까 그런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그건 헌법에 어긋나는 말이라고 반박하세요. 국회의원이 헌법도 모르고 그런 소리 하면 되겠냐고 하면 됩니다. (p. 349)


언론이 얼마나 왜곡했던가? 법조항을 밝히지도 않으면서 위법인것처럼 오도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모든 국민이 두꺼운 법전 공부를 할 필요는 없다. 할수도 없다. 그 어려운걸 누가 어떻게 왜 읽겠는가;;; 하지만 헌법은 다르다. 짧고 굵고 강렬하다. 세세한 법률들은 검사 변호사 판사들이 잘 알면 된다. 자문을 구하려면 법조인과 상담하면 된다. 그러나. 기본법률상식으로 헌법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게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헌법이 생각보다 너무 기본적인 내용들이라 의외였고, 이 짧은 문장에서 그토록 어려운 법들이 줄줄이 파생된다는 것에 놀랐다. 헌법조항마다 붙여 놓은 설명이 구구절절 옳은말이 너무 많아서 다 옮기지 못함이 아쉬울 정도다. 헌법을 국민이 알면 그 헌법대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어내라고 국회의원들에게 더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만의 세상속 규칙도 아니다. 법은 국민 모두를 규정한다. 국민이 헌법을 키우고 그렇게 키운 헌법에 의해 국민이 제대로 보호받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감사하다. 이렇게 잘 알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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