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야 - 지금 이 순간 용기가 필요한 너에게 디즈니 레이디스 시리즈
인어공주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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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행복한 공주들?! 에세이가 나왔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 <라푼젤>의 라푼젤, <미녀와 야수>의 벨, <알라딘>의 자스민 그리고 <인어공주> 의 에리얼 이다. 그중 한 권을 읽어보았다.

작고 얇고 예쁜 컬러풀의 이 에세이는 사춘기를 막 시작하려는 때의 감수성을 딱 그 또래의 감성을 느끼거나 떠올리게 하는 동화적 순수함을 표현하고 있다.

 

 

표지를 한꺼풀 벗기면 인어공주가 사는 곳이 등장한다. 두둥! 바다속 궁전이다. 그렇다. 인어공주는 공주다!

생각해보니 공주들은 이름이 없었다. 동화책속에서도 언제나 공주님공주님 하고 불리었지 공주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백설공주의 이름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이름은? 인어공주의 이름이 동화책 속에 나왔던가???

 

 

에리얼

인어공주의 이름이다.

디즈니애니메이션은 공주들에게 이름을 부여했다. 이름을 부여한 순간 독립적 개체가 된듯 공주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 다 알다시피 동화책속의 비극적 엔딩은 디즈니공주들에겐 없다. ㅎㅎ

 

 

소녀감성 공주에세이인만큼 근자감은 필수이고~ ㅎㅎ

 

 

세상을 향한 호기심엔 당당하며

 

 

부모와의 갈등 속에서도 잘 성장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용기있게 걸어나간다.

 

 

멀리 있는 저 세상이 어떨지 모르지만

멀리 있는 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꿈을 꾼다.

 

 

그리고 그 도전의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왕자를 만나야만 행복해진다고 말하긴 뭣하지만,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게 애초의 목표였으므로 어쨌든 목표달성! 해피엔딩이다.

인어공주 동화책은 사실 로미오와줄리엣 저리가라 싶은 비극이다. 동화책이 이래도 되나 싶게 슬프고 잔혹한 결말을 가진 것들이 은근 많다;;;

하지만 디즈니애니메이션에서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필수요소다. 이 필수요소덕분에 어른들도 아이들과 함께 디즈니애니메이션을 보는게 아닐까?

책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귓가에 under the sea~ 노래가 들리는 듯 했다. 그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가 여전히 선명한 것을 보면 역시 어릴때?! 젊었을 때 기억은 대단한 것 같다. 그러니 딱 그나이 그시절에 가질 수 있는 감성을 한층 북돋워주기 위해, 그런 감성을 가진 소녀들을 위해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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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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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은 마을이 도시에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

은폐되었거나 함축되었거나 혹은 쓰이지 않았을 것들에 관한 기록...

 

 

『작렬지』는 옌렌커가 직접 역사지리서의 편찬을 맡아 작성한 것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자례'라는 허구의 마을이 점차 대도시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구체적 연대기를 통해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그 길은 발전과 부귀, 영웅과 승리자로 나아가는 지혜의 계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중국 현실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의미의 작렬하는 마을, 그 폭발적인 번영의 시작과 끝이 불러온 폐허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표지 中)

중국 소설가 하면 '루쉰' 이 떠올랐었다. 두 작품 밖에 안 읽었지만 루쉰의 소설은 혁명의 격동을 품고 있는 소설이었고,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젊었을때 읽으면 그 오래전 그 오래된 뜨거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투쟁의 시기는 지나갔고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년에 테드창 과 류츠신 의 SF 소설들을 여럿 읽었다. 중국 SF소설이 이정도 였나 하며 놀랍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었다. 아직 검열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작가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분야는 SF 뿐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하튼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루쉰 과 SF 사이에 '위화' 의 소설 두편을 읽었었다. 내가 읽은 두 작품(인생, 허삼관매혈기)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위화의 소설은 유머를 가장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로 가득한 분위기라서 읽고나면 왠지 맥빠지는 기분이었다. 과거말고 지금을 이야기하는 중국소설은 없는건가? 하는 의문이 남았었다.

그러다 옌렌커의 '작렬지'를 만났다.

옌렌커(1958~)는 중국에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고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 출간되는 작품을 여럿 보유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한국의 문학단체들과도 인연이 깊어서 종종 방한도 하고 그때마다 인터뷰에서 한국에 호감을 표현하는 작가라고도 한다. 필력깊은 중국 현대작가의 장편소설을 드디어 읽게되는 구나 싶어 기대감이 올랐고 하드커버의 두툼하면서 인상적인 표지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편집장 서문' 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옌렌커 본인이 '작렬지' 라는 역사지리서를 쓰게된 경위를 밝히며 시작함으로써 현실과 소설의 구분을 흐려놓고 시작한다. 허구의 도시 '자례시'에서 의뢰받아 쓰게 됐다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저자는 자신에게 어떤 욕을 해도 좋으니 부디 이 역사지리서를 읽어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며 작품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인해 저자는 고향에서 영구 퇴출되었음을 밝힌다.

2012년 시 정부와 각계각층 인사들이 『작렬지』를 심의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고 성토와 욕설이 난무함. 이로써 자례시의 비공식 시지이자 기서가 됨.

2013년 『작렬지』가 마침내 중국어로 출판되었지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례시의 지도층으로부터 간부, 평민까지 지식인이든 일반인이든 거의 모두가 황당하고 기괴한 시지를 거부하면서 전대미문의 지방사 부정 기류가 형성됨. 또한 옌렌커에게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땅 자례시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영구 퇴출을 명함. (p. 16)

 

자례시의 아들이자 유명한 소설가인 저자에게 고향 자례시의 위대한 발전과정을 써달라 시에서 의뢰했을 것인데, 저자가 쓴 역사지리서인 '작렬지'는 엄청난 금액이 투자되어 나온 작품임에도 비공식지가 되고 기이한 책이되어 자례시 관련자 모두에게 거부당한 역사지리서가 되었다. 저자는 왜 자신의 고향시에 대해서 거부당할만한 내용들을 썼을까? 대체 자례시가 어떤 발전사를 가졌길래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자례시' 라는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화산이 폭발해 수개월 동안 연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지질이나 지각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그것을 땅이 갈라진다거나 터진다고 표현했다. 어쨌든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화산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가 화산 입구에서 100여리 떨어진 바러우산맥으로 달아나 논밭을 일구며 정착했다. 이후 촌락을 이루게된 사람들은 땅이 갈라지고 터져 달아났다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을 작렬하는 마을(자례촌)이라고 지었다. (p. 19)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 자례촌의 역사는 새로운 중국의 발전과 진통을 고스란히 반영한 축소판이 되었다. (p. 23)

 

송나라때 화산 언저리에 생겨난 작은 마을 자례촌. 화산이 폭발해 수개월 동안 흩어지지 않던 연기는 소설을 마지막장에 가서 스모그로 재현되면서 무엇이 폭발해 땅이 갈라지고 터져 사람들이 달아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원, 명, 청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되면서 자례촌의 번영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례촌의 역사는 곧 중국 발전사의 축소판임을 시작부터 언질해놓았기에 소설을 읽는내내 자례시의 어떤 모습이 중국 번영사와 겹쳐지는 것일까 생각하게 한다.

자례촌에는 대표적인 두 씨족이 있는데 주씨네와 쿵씨네이다. 두 집안은 거의 서로 원수처럼 사이가 안좋다. 기존의 주씨네를 누르고 쿵씨네가 촌장이 되면서 마을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중심에 쿵씨네 둘째 아들 쿵밍량이 있다. 쿵밍량에겐 야망이 있었다.

쿵등더는 어느날 네 아들에게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다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이 운명을 좌우하게 될 거라며 내보낸다. 첫째 쿵밍광은 분필을 주웠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셋째 쿵밍야오는 군용차를 만났고 군인이 되었다. 넷째 쿵밍후이는 어린 소년이었고 자신이 만난 것이 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둘째 쿵밍량은 인장석을 주웠고 주씨네 딸 주잉을 만난다. 쿵밍량과 주잉은 서로에게 욕을 하며 뒤돌아 서지만 평생의 숙적이 되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1980년대 초 중국은 경제부흥을 위해 도전적인 과업을 요구하던 때였다. 쿵밍량은 기발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 재산으로 주잉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후 새 촌장의 자리에 오른다. 쿵밍량에게 촌장이라는 첫 도장이 생겼고 주잉은 아버지의 죽음을 곱씹으며 마을을 떠난다.

그는 총부리에서 나오는 연기를 입으로 불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손잡이와 총신을 닦고 총을 허리게 꽂은 다음 큰 소리로 "민주선거 좋죠. 누구를 뽑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외쳤다. (p. 117)

행동은 쿵밍야오와 비슷했지만 밍야오의 총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무기는 지폐였다. (p. 125)

 

촌장 위의 향장이 되기 위해 선거에 쿵밍량이 출마했을때 맞붙은 상대후보는 주잉이었다. 쿵밍량은 가가호호 선물공세로도 모자라 군인인 동생을 불러내지만 거리에서 돈을 뿌리는 주잉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화류계에 몸담고 큰 재산을 모은 주잉은 고향 자례로 돌아와 쿵밍량을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그 첫 대결이 향장 선거였다.

"형수로서 하는 말인데, 대학을 졸업하면 자례로 돌아오지 마요. 나랑 둘째 형이랑 결혼한 이상 자례는 조만간 형과 내손에 망할거야" (p. 176)

운명을 찾아 떠났던 날 서로에게 처음 만났던 상대였던 쿵밍량과 주잉은 결국 결혼하지만 주잉은 막내시동생 쿵밍후이에게만은 솔직하게 경고한다. 하지만 주잉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을만큼 이 부부의 미래와 자례향의 미래는 엄청난 범위의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한마디로, 자례진에는 노는 사람이 없었다. 농사짓는 사람도 없었다. 각각의 회사와 개개의 공장 덕분에 새로운 자례는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 들썩거렸다. (p. 213)

촌에서 향으로 향에서 진으로 마을의 범위는 점점 확대되었고 인구는 증가했고 산업은 바뀌었다. 노는 사람은 없었지만 농사짓는 사람도 없었다는 문장이 묘하게 울림을 남긴다. 끓는 물을 계속 끓이면 넘치거나 쫄아서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다. 자례는...

"죽고 싶냐? 그럼 내가 이뤄주지" 쿵둥더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다가 가늘고 질긴 회색 삼끈을 찾아냈다. 가장 높고 굵은 나뭇가지에 삼끈을 묶고 머리를 맞춤하게 넣을 수 있는 매듭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기 머리를 공중에 매달린 매듭 안으로 집어넣고 맞은편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전부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으로 완벽하게 금괴, 금덩이, 은화 모양이었고 젊은 여자의 얼굴처럼 뽀얀 구름도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머리를 빼내고는 다시 햇살 아래 구름을 보았다. 모든 것이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다시한번 고개를 매듭으로 통과시켜 바라보자 역시 금괴과 금덩이 구름, 나무 같은 구름송이에 걸린 원보, 여인,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머리를 빼낸 뒤 아주 진지하게 아들 밍광에게 말했다. "죽는 게 좋겠다. 죽으면 넌 뭐든 다 가지게 될 거야" (p. 291)

조강지처 내버리고 젊은 여자와 바람나서 집나갔다가 버림받은 장남 쿵밍광에게 찾아간 아버지는 차라리 죽으라며 나무에 줄을 걸어준다. 그런데 그 줄에 목을 넣는 순간 부귀영화가 보이고 목을 빼는 순간 그저그런 현실이 보인다. 죽는게 나은 것 같아보이지만, 아들에게 그러한 죽음을 권하는 아버지는 죽을 생각이 없다. 소설속 인물들은 묘하게 조금씩 비틀린 성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 비틀림이 현실의 비틀림과 맞물리면서 묘한 풍자의 뉘앙스를 풍긴다.

자례 시내는 늘 증축 공사가 벌어졌다. 무구한 지퍼가 달린 것처럼 지면이 수시로 벌어졌다 오므라들고 뜯기고 헐리고 파여, 도시가 한 번도 수술대에서 내려온 적 없이 주야장천 개복수술을 받는 것 같았다. (p. 464)

어찌 되었든 자례는 위대한 도시였다. 원래 자례가 가졌던 모든 것이 현실과 역사, 후세의 기억이 되었다. 자례의 옛 거리와 새로운 자례시도 현실과 역사 때문에 두 세계로 나뉘었다. (p. 480)

 

진에서 현으로 더 커진 자례는 곧 시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숨가쁘게 마을의 규모가 커지는 동안 자례는 늘 수술중 공사중이었다. 한번도 수술대에서 내려올새 없이 주야장천 개복수술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 결과가 밝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시작된 수술은 멈출수가 없다.

쿵밍량은 야망은 점점 더 커지고 가속도가 붙을수록 본인은 속도감에 무뎌져 간다. 속도에 따라붙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곳은 과거가 되고 현실은 과거와 점점더 멀어져 간다. 나누어지기 시작하면 잊혀지는 것도 순식간인것을...

"곧 돌아올 거예요. 돌아와서 날 찾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자례라는 이 중형 도시를 중국의 대도시로, 성만큼 크고 성보다 더 크게 키우고 싶어 하니까. 베이징, 상하이, 텐진, 광저우처럼 성보다 큰 직할시로 만들기 위해 도성 각계각층의 수뇌들에게 동의를 구할 때, 그런 인물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줘야 할까요? 결국에는 알게 되겠지. 무엇이든 이 여성직업기술학교 학생들보다 나은 건 없다는 걸요" (p. 493)

이 소설이 진지한 문체의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에 대한 시종일관 가벼운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8~90년대의 뒤틀린 권력관계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것은 성적노리개일 뿐이다. 주잉의 재산과 권력은 퇴폐업에서 나오고 그 무기는 지속적으로 먹혀들어간다. 주잉이 생각할 수 있는 여성의 직업과 여성의 기술이라는 것은 퇴폐업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집안살림을 하거나 유흥거리가 되거나 둘중 하나다. 이것도 중국번영사의 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작가의 성향것인지...흐음...

등불 밑에서 책을 넘겨보니 누군가 수천수만 번 읽은 책력이었다. 선장본으로 만들어져 장마다 침을 묻혀 넘긴 땟자국이 까맣게 번들거렸다. 심지어 눅눅한 곰팡내까지 풍겼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다 있던 책이었다. 60년을 주기로 양력과 음력 대조표가 있고 24절기 시간과 날씨가 있었다. 그리고 몇 쪽마다 나오는 여백에는 점치는 방법과 해설이 적혀 있었다. (p. 498)

양력과 음력 대조표의 여백에 누군가 붓으로 적어놓은 작은 해서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잃었다가 되찾다'라는 글귀를 보자 한겨울에 화톳불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따스해졌다. (p. 500)

그는 자신의 지난 삶과 사건이 하나하나 전부 책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탄과 후회가 가슴에서 밀려오더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변해 물처럼 그를 적셨다. 옛거리를 지나는 발걸음이 옛강을 떠나는 배 같았다. (p. 501)

 

운명은 정해져있는 것일까... 뒤늦게 발견한 책력에는 모든 것이 써있었다. 하지만 한번에 다 보여주지 않았다. 책력은 한장한장 떼어내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조금씩조금씩 볼 수 있었다. 읽고나서 수습할 수 있는 상황도 있었지만, 읽었음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 더 많았다. 운명을 안다해도 받아들이지 않는이상 운명은 운명이 아닌 것일까...

"일주일 안에 아시아 제일, 세계 1,2위를 다투는 초대형 공항을 자례에 건설해야 해. 일주일 안에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철을 자례 지하에 건설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례는 중국에서 대도시가 될 수 없어. 베이징, 상하이, 뉴욕, 도쿄 같은 대형 직할시가 될 수 없다고." (p. 588)

"그런 것들을 건설하고 싶다면 나한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다리 5천개와 손가락 만 개를 줘. 다리를 그 정도로 잘라내지 않고 손가락을 그렇게 꺾지 않는다면, 대가도 없이 그런 작업을 단시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p. 590)

"도련님이 평생 처음으로 내가 입맞춤한 사람이에요. 부탁이니 조카를 잘 키워주세요. 그리고 아빠엄마가 살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주지 말고, 그냥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시체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고 말해줘요." 그날밤, 그녀는 정확히 아가씨 천 명을 모아 여군의 명목으로 밍야오의 군대에 들어갔다. (p. 642)

 

급격한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빠르게 키우려는 자, 그 속도를 지지해주기 위해 대가를 원하는 자, 자신이 이루지 못한거라면 없애려는자, 이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고 키워낸 세력이 주축이 되었을때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례는 자례시가 되었지만 축하연이 벌어진 바로 그날 자례시 전체의 모든 벽시계와 손목시계의 시침과 초침이 하룻밤 사이 죽어버렸다. "한 도시의 번영이 그렇게 끝이 났다." (p. 643)

소설의 마지막장인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작렬지』 를 읽은 쿵시장을 만난다. 쿵시장은 작렬지의 초고에 불을 붙이며 말한다.

"나와 자례가 있는 한 이 책을 출판할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중국 이외의 다른 곳에서 이 책을 출판한다면 당신은 평생 고향인 바러우산맥으로 돌아올 생각을 버려야 할 거요. 오늘 당장 자례시를 떠나시오. 떠나지 않으면 나도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소!"

"감사합니다. 쿵 시장님. 시장님이 첫 번째 독자이신데 시장님 말씀으로 제 책이 괜찮은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 652)

 

소설가는 '작렬지' 의 마무리를 도시의 몰락으로 썼지만, 에필로그에서 자례시는 존재하고 쿵시장은 격노한다. '작렬지'의 결말은 자례시와 쿵시장에게 저주 와 다를바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가는 쿵시장의 분노에 만족감을 느낀다.

소설은 묘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오간다.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리고 장미나무에서 모란이 피는 자연의 비자연적 현상이 수시로 묘사되고 존재하지 않는 자례시의 역사지리서로 시작한 '작렬지'를 도시의 몰락으로 결말지었으면서, 자례시는 여전히 존재하고 쿵시장도 여전히 존재하는 에필로그는 '작렬지' 자체를 허구속의 허구로 만들어버리는 듯 하다.

중국인이 이 작품을 읽었다면 바로 은유와 풍자를 눈치챘을 것 같지만, 중국의 현실을 근대사를 잘 모르는 외부인에 읽었을때는 어디까지를 현실로 이해하고 어디까지를 비현실로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고 난해해서 난처해진다;;; 저자는 '작가의 말' 에서 그 해석을 '신실(神實)주의'로 설명하고 있지만 '신실'의 정체는 무엇인걸까...

모두 진실 같지 않고 인류의 상식적 논리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또 일상적이며 매일 매 순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버린 물과 공기처럼 보편적이고 자욱하게 발생한다. 이곳은 새로운 나라면서 오래된 나라다. 극도로 봉건적이고 전체적이지만 무척 현대적이고 풍족하다. 지극히 서구적이면서도 본질은 동양적이다. 세계가 그를 변화시키고 그 역시 세계를 변화시킨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의 모든 새로움은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을 통해 인류 생성과 상상의 하한선을 뛰어넘거나 거기에 도전한다. 따라서 그는 진실하지 않은 진실과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가능하지 않은 가능을 내포한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심지어 느낄 수없는 생성 규칙과 법칙을 가진다. 그는 새로운 논리와 새로운 의식을 지닌다. 이른바 '신실(神實)'이라는 보편의 존재를 가진다. 이러한 신실의 현실과 역사, 진실과 생성에 대해 중국인도 처음에는 경악하고 의심했지만 점점 일상처럼 받아들여 익숙해지다가, 결국에는 무감각해지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를 인정하게 되었다. 전 세계가 오늘날 중국에서 날마다 발생하는 기이한 일들에 아연실색할 때, 모든 중국 작가는 그러한 인류 역사와 경험을 초월하는 실재 앞에서 현실에 대한 글쓰기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한지를 느꼈다. 세계문학의 모든 유파와 주의, 기교가 중국의 기이한 이야기 앞에서는 거센 탄식을 내뱉을 것이다. 중국의 현실은 새로운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다. (p. 655~656)

저자에게 새로운 글쓰기를 강요하는 중국의 현실을 담아낸 '작렬지' 는 분명 기존의 소설이해방법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되새겨지는 문장들이 있기에 그 문장들을 곱씹어보다보면 아주 조금씩조금씩 저자가 알려주고 싶어하는 중국의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작렬지』 라는 소설은 중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작품이기도 했지만, 쿵씨네 네형제의 서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읽는동안 개인적으로 네자매 이야기인 '작은 아씨들' 이 생각나기도 했다. 네형제와 네자매의 특성은 묘하게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작품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는데 그대로 다 믿는 자례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은 메주를 콩으로 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옌렌커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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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고1을 위한 확 바뀐 학생부종합전형 - 2022~2024 대학입시 전략 핵심 포인트
장정현 지음 / 경향BP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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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4 대학입시 전략 핵심 포인트

정시가 확대되어도 학종의 영향력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2024년 대입 개편, 오히려 학종 준비가 더 쉬워졌다

2012~2024학년도 학생부종합전형 팩트 체크

 

 

작년에 교육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 대입제도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었다.

대학입시제도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일부 전형에 대해서는 금수저논란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한 논란과 불만을 잠재우고자 조금씩조금씩 개선해 나가겠다는 대입제도의 중심에 '학종' 이 있다.

대입제도는 3년예고제(곧 4년예고제로 변경된다고 함)이기 때문에 중학교3학년이 되면 그해부터 변경적용되는 대입제도를 눈여겨 봐야 한다.

하지만 작년에 예고된 소규모 개편안들은 전면 교육과정 개편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매년 다른 대입제도가 적용되게 생겼다.

2021~2024년 대입제도는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 개략적으로는 단순화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 중심엔 '학종' 이 있다.

이 책에서는 학종의 비율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반면에 학종을 준비하기가 더욱 쉬워졌음을 최신 자료를 통해 조목조목 밝힙니다. 또한 2021~2024학년도까지 시기별로 학종 전략을 올바로 세울 수 있도록 명쾌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p. 4)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의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처음부터 강조한다. '학종의 영향력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고.

2021학년도 입시 요강은 결정된 사항이기에 정시 비율이 낮은 상태로 진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2022~2023학년도는 이미 발표된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을 토대로 학종 공정성 강화방안이 더해지고, 2024학년도 부터는 가장 단순화된 학종이 적용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2024학년도 부터는 자기소개서 폐지, 비교과활동 반영폐지, 수상경력 및 자율동아리 기재등이 제한된다.

결국 이 책은 지금까지 어떤 항목들이 대입제도에 반영되어 왔는지 설명하고 없어져 가는 항목들을 알려주면서도 기존의 평가항목들에 대한 준비사항을 조언해주지만, 2024학년도 에 대해서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의 잘못도 이 책의 부족함도 아니다. 어쩔 수 없다. 2024학년도 부터는 지금껏 기재되어 왔던 그 다양한 항목들이 없어진 단순하고 간략해진 학종으로 어떻게 대학들이 학생선발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뽑는 사람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것이다. 최소 2024학년도 대입이 끝나야 단순화된 학종으로 어떻게 대입준비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대학들이 선발했는지 조금씩 방향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중3학년은 새로운 학종의 최초 시험학년인 셈이다.

하지만 그게 나쁠것 같지는 않다. 여하튼 그동안 금수저 논란이 일어왔던 그 모든 지나치게 다양한 활동들 기재가 폐지되고 자소설이라 불리던 자소서가 폐지되고 우수학생에게 몰아주던 상장도 의미없어지고 부모의 스펙으로 준비되던 비교과활동을 기재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학종은 각 대학들이 가장 선호하는 입시전형제도다. 대학들은 정시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들의 평가기준으로 삼았던 그 모든 항목들이 사라졌을때 과연 학종의 어떤 부분을 볼것인가? 결국 내신과 세특이다. 학종은 고등학교 3년간의 과정을 보여준다. 3년 내내 모든 과목에서 성적과 태도에 있어서 선생님들 눈 안에 들도록 관리해야 한다.

학종은 거의 완벽한 학생들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한 학기라도 소홀한 친구는 그만큼 합격에서 멀어집니다. 학종을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학생들은 타이밍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뒷북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p. 71)

학종의 성패 여부는 고1때 결정됩니다. (p. 105)

 

저자는 학년별 중요도를 따지자면 2학년1학기->2학년2학기->1학년2학기->3학년1학기->1학년1학기 순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들 정신없어할 1학년 1학기부터 꼼꼼하게 학종준비를 하는 학생의 경쟁력은 무척 높을 것이라며 중3때부터 대입제도에 관심을 갖고 학종준비를 할 수 있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타이밍은 한순간이 아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타이머는 눌러진다.

학생부종합전형을 꼭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의 특성에 따라 어떤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문제는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피할 수 없는 전형이라는 겁니다. 수능을 통한 정시전형은 재수생들과 자사고/특목고에서 내신이 받쳐주지 못하는 학생들의 몫이지 일반고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은 많지 않습니다. (p. 108)

 

교육비리가 터져나왔을때 임시방편으로 내려진 지침이 정시확대였다. 여론은 정시확대를 요구했고 일부 반영된 셈이다. 하지만 교육관계자들은 대부분 정시확대가 일반고 학생들에게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평가에 대한 불신은 시험으로 줄세우기가 낫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저래도 속시원한 답은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을 기록 싸움이라고 합니다. 누가 철저하게 그리고 꾸준히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기록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기록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학종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활동은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성취와 활동을 하였더라도 학생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학종에서는 무엇을 평가하든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을 바탕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평소에 수행하였던 각종 활동을 그때그때 정리하고 기록해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기록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학생부 관리 기록장을 사용하지 않고 좋은 학생부를 만든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p. 123)

하지만 학종에 기록을 써 주는 것은 선생님이다. 학생의 관리가 어느정도까지 보완시켜 줄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더구나 잘 쓰여진 학종이라 해도 입학사정관 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능력으로 어떻게 선출되는지 모르겠어서 어떻게 평가하는 건지 이런저런 책을 읽어도 도통 알수가 없다...

제가 오랫동안 입시지도를 하면서 많은 학생을 관찰하며 느낀 점은 모든 입시가 결국 독서에 귀결된다는 원리입니다. 독서, 특히 초·중등시절의 독서 수준이나 습관이 입시까지도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역시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며 등급이 벌어지는 결정적 요소가 독서이고 그 갭을 좁히지 못하는 것이 독서량 차이 때문입니다.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심지어는 수학까지도 결국은 독서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p. 135)

한때 독서기록만으로 학종의 페이지수를 늘리는 것이 당연했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제목과 저자만 기재하고 2024년부터는 그조차 기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어떻게든 높은 수준의 학생을 선발하고자 한다. 대학내에서의 학업을 최상위로 따라올 수 있는 학생의 기본 조건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독서력은 중요하다. 독서기록항목이 없어졌다해서 학종에 그 내용이 필요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과별 세특에 들어갈 수도 있고 각 대학의 면접이나 기타항목에서 어떻게든 독서력은 평가 된다. 아직 초·중학생이라면 대입제도 준비를 위해 일단 독서습관부터 들여야 할듯;;;

서울대는 '책을 많이 읽는 인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냈다. 학문의 메카인 상아탑의 출발점은 독서라는 것이다. 책은 필요해서 읽는다. 알고 싶어서, 느끼고 싶어서, 생각하고 싶어서, 앎에 대한 만족감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생각의 강물이 바다가 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책을 좋아하게 되고 다시 책을 읽게 된다. 자연스럽게 독서의 폭이 넒어지고 책이 말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녹여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쌓은 역량은 '창의적 지식공동체'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가 선발하고자 하는 인재상의 밑바탕이 된다' 고 강조했습니다. (p. 137)

서울대는 독서활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다른 대학들은 이것을 따라 하려 합니다. 하지만 서울대가 원하는 독서수준은 남들이 다 읽는 필독서 수준이 아닙니다. (p. 138)

 

이 책은 기존 입시제도에 대해 거의 몰랐던 사람들에게 세세하게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2023년 까지는 자소서니 독서활동이니 동아리니 기존의 항목들이 줄어들면서도 여전히 평가항목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2022~2023년 에 대입제도를 준비하는 학생과 부모에게는 도움될 자료들이 많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활동을 해야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등등등...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2024년 이후 입시를 치루게 될 학생과 부모들은 지금으로선 현실적 조언을 받을 수 없다. 그저 이렇게 복잡했던 평가항목들이 단순화된다는 위안을 얻고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정신차려야 겠구나 하는 비장함?!을 인식할 수 있을뿐.

조금이라도 대학을 편하고 쉽게 들어갈 수 없나 하며 입시관련 책들을 찾아 아무리 읽어봤자 소용없는 것 같다. 학교 성실히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며 예의바르게 생활하는 학생의 기본자세가 일단 되어있어야 온갖 정보들도 쓸모가 있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입시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건 결국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거다. 공부를 제대로 안하면 그 어떤 입시제도에서도 해결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건데 이 당연한걸 간과하고 입시제도만 아무리 파고들어봤자...

여하튼, 책을 꾸준히 읽으면 뭐가 되도 된다. 뭘 해야 할지 모른다면 일단 책부터 읽는 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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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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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 '만화열전'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등 방송사를 대표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그동안 여러권의 에세이를 낸 작가로,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한 뒤 심리상담가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연자로, 그야말로 화려한 이력이 넘쳐나는 (저자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A4용지 6장을 꽉 채우는 이력서를 소지하게 된) 작가가 쓴 책이라는 소개글을 봤을때 궁금했다.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라디오디제이들과 함께 하고 유희열의 따뜻한 추천사를 받고 정재승에게 '심리적 산소'를 제공해줄 글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가의 글이 어떨지 궁금했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갈수록 에세이를 꽤 읽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에세이만 쓰는 작가도 작가인가 라는 나의 의문에 대해 저자의 글이 어떤 감상을 전해줄지 궁금했다.

여하튼 책은 궁금해져야 시작할 수 있는듯 ㅎㅎ

일단 예쁜 책이라 좋았다. (나는 책도 예쁜 책이 좋다. 이 예쁨이라는 것은 미적 아름다움과는 좀 다르다. 뭐랄까.. 책과 어울리는 예쁨을 말하고 싶은데...;;;)

작고 화사한 느낌의 책구성이 봄의 분위기를 풍겼고,핑크 아이스바가 반쯤 녹아내린 하트호수위에 러버덕이 아닌 러버홍학이 떠있는 모습이 제목과도 잘 어울려 보였다. 표지에 대한 첫인상이 중요한 편인 나에게는 일단 호감인걸로 ㅎㅎ

저자는 경력만 봤을땐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다 각자의 인생고충이 있는 법인 것처럼, 저자 개인의 삶은 녹록치 않았음을 고백한다. 남다른 감성과 경제적 어려움과 신체적 고난을 겪어오며 성장했음에도 치유되지 않았던 심리적 불충분함을 심리학을 배우고나서야 딛고 일어섰음을 담담이 풀어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저자의 심리일기 같은 것은 아니다. 라디오 작가였던 만큼 다양한 사연과 인연이 있었고 그 에피소드들을 통해 심리서처럼 읽히기도 하고 방송후일담같기도 하고 문화적 소양이 남다른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덕질공감기 같기도 한 글들이 내내 잔잔하면서도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좀 많이-)고급지게 이야기되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고 그림을 자주 보고 음악을 즐겨듣는 감성에 대한 공감이 저자의 글들을 내게 가깝게 다가올수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로 떠나고 싶어했던 곳은 어디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리거나 비행기를 타고 만 킬로미터를 날아도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여행 갈때 다른 건 다 버리고 갈 수 있어도, 이메일 알람과 핸드폰 전원까지 끌 수 있어도, 자신은 데리고 가야 한다. (p. 28)

 

대부분 떠나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일상을 여행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떠날때조차 자기자신은 데리고 가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이 너무너무 가고싶어질때는 다시말해 내 마음이 '나를 더 돌봐줘'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왠지 처음해보는 기분이다.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관계를 통해 진정한 공감을 얻으면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는다고 했다. 나는 이 표현을 좋아한다. 나에게 공감해주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면 꼭 질식할 것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무엇을 해도 피곤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피곤하며, 평생 누워만 있고만 싶다면 당신은 심리적 산소가 부족한 상태이다. 꾹 참고 지내다 응급실에 실려 가기 전에 이산화탄소발생기 같은 사람들을 떠나서 산소발생기 같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p. 52)

 

'심리적 산소' 라는 표현이 나도 마음에 든다. 이산화탄소발생기 같은 사람들을 정말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많이 만나며 살게 된다. 나에게 심리적 산소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상담공부를 하게 되었을때, 칼 융을 좋아하는 교수님이 매주 설명하셨던 개념으로 '상처입고 좌절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한 치유자'라는 의미이다.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남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만이 진정한 치유자가 된다. 내가 생각하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다. (p. 96)

심리치료사나 정신과의사들이 써낸 에세이들을 꽤 여럿 읽었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을 치료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아파도 되나 이 사람들 부터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심리치료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심리에 문제가 있었고 정신과 의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신건강이 건강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상처입은 치유자' 라는 표현을 보니 예전에 읽은 책들에 대한 미심쩍음이 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일부를 상실에 바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p. 116)

인간은 살면서 늘 상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상실에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또한 인간은 상실에 일부러 자기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바치는 존재이다. 이 역설이 인간의 삶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이 표현이 좋았다.

이기적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안전한 새장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음이 상한 사람들, 슬픔을 아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p. 135)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약해빠진 인간이라고 함부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약해빠진 인간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안위를 점검하고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당위감을 얻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아픔을 감춘채 사는 사람들보다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울함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발견한 듯하다.

사심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처럼 무해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목적없는 공부는 지복이다. (p. 165)

저자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 공부라는 것이 학생들이나 어떤 시험을 목표로 하는 공부와 다른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나또한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저자의 탐구 여행에 공감이 갔다.

왜 사람은 시간을 들여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어할까?

책을 읽는 이유는 잃어버린 사랑과 존재의 슬픔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인간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최대한 세밀하게 묘사해내는 도구는 '글' 말고는 아직 없다. 정제된 문학작품에 이르면, 현실의 비애에 대한 묘사는 최고점에 이른다. 나 역시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슬픔에 매료된다. 자신의 상처를 대신 읽어주는 문학을 사랑한다. (p. 226)

 

나도 책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하고 문학작품을 사랑하지만 너무 우울하기만 한 문학작품을 읽고나면 한동안 마음이 힘들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대신 읽어주는 문학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 것도 같다. 글자로 된 모든 작품이 다 작품으로 불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제된 글'은 늘 어떤 식으로든 삶에 위안을 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삶에는 늘 위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는 내내 '글' 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나라고 인지할까?' 라는 질문에 사로잡혔다. 나를 나로 인식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신기했다. (프롤로그 중 p. 8)

중학생 때 '끝' 이라는 말이 갑자기 이해가 안됐던 때가 있었다. 모든 물체에는 끝이 있다. 탁자의 끝 TV의 끝 책장의 끝... 모든 물건들은 물건들 자체와 물건들이 속해있는 공간과의 단절이 '끝'으로 표현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끝났지만 공간이 있지 않은가 그러면 끝난것이 아니지 않는가 끝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뭐 이런 식의 생각의 고리들에 대해 답도 없이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답을 구하지 못했음에도 그 질문은 계속 내 머릿속에 한자리 차지해오고 있었는데, 저자의 호기심들 중에 나와 비슷한 면들이 보여서 반가움이 일었다. 스님들은 평생 한가지 화두에 몰입한다는데, 나는 종교적 화두는 아닐지라도 존재의 인식에 대한 개인적 화두가 늘 있어왔달까... 어찌보면 사람은 내가 했던 생각처럼 말도 안된다고 여겨지는 질문에 한번씩은 확 꽂히게 되는 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해본 적 없던 질문들이었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오래전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좋았다.

에세이만 쓰는 작가도 독자로 하여금 이런저런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구나 싶어서 에세이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같다. 제목만 보면 여기저기 넘쳐나는 다정다감한 힐링에세이 같지만, 나는 그런 내용들보다 몇마디의 문장들이 개인적으로 훅 들어와서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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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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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지진

오염된 세계, 끔찍한 벙커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더는 무너지고 싶지 않운 우리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얼마나 가혹한가

 

 

이 작품은 재난소설이다.

가상의 지역 부림지구에 지진이 발생하고 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모든 삶이 흔들렸다.

부림지구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한때 제철산업으로 번성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멈추어버린 공장들 사이에 인적도 드문 삶의 막다른 골목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삶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진이 발생했다.

땅이 갈라지고 도시전체가 무너지는 와중에 생존한 부림지구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부림지구는 오염된 지구였고 생존자인 이재민들은 오염된 사람들로 취급되었다.

유진은 46세의 싱글여성이다.

부림지구에서 나고 자랐고 부모님도 부림지구에서 보내드렸다.

남들이 보기엔 별볼일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생존욕구마저 별볼일 없는 건 아니었다.

지진 발생 후 이런 저런 사연으로 벙커X에 모여살게 된 사람들에 대한 유진의 시선은 인간적이다. 이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따듯하다 거나 온정어린 뭐 그런 의미는 아니다. 함께 눈물짓다가 짜증도 나고 불쌍하게 여겨지다가도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는 그런 의미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결코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먼지 한톨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처음엔 구호용품을 나눠주었지만

다시 등장했을 땐 부림지구 사람들에게 칩을 심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려 한다.

사고가 발생을 때 개인신상을 알수 있도록 정보를 넘은 칩이라고 설명하지만 부림지구 사람들에겐 오염됐다는 낙인을 찍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벙커X사람들은 칩을 넣기를 거부하고 점점 더 숨어든다.

학문의 높은 수준을 경험하며 살아온 교수 노부부도, 재난 현장을 발로 뛰며 사진을 찍던 사진가도,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던 신문사 기자도, 평범한 회사원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도, 오염물질을 배달하던 운전기사도 그리고 부림지구를 떠나고 싶지 않은 유진도 지진 앞에서는 다 똑같은 처지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벙커X에서의 생존을 기록하고 있는 이 소설은

파괴되고 무너진 세계에서, 더 무너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더 무너지고 있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을 보여주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혹함에도 살아있으려고 하는 욕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ps. 어젠 행복한 소설을 읽어서 하루가 가벼웠는데, 오늘은 어두운 소설을 읽어서 하루가 무겁다. 역시 소설은 시간을 지배하는 힘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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