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작은 마을이 도시에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

은폐되었거나 함축되었거나 혹은 쓰이지 않았을 것들에 관한 기록...

 

 

『작렬지』는 옌렌커가 직접 역사지리서의 편찬을 맡아 작성한 것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자례'라는 허구의 마을이 점차 대도시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구체적 연대기를 통해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그 길은 발전과 부귀, 영웅과 승리자로 나아가는 지혜의 계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중국 현실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의미의 작렬하는 마을, 그 폭발적인 번영의 시작과 끝이 불러온 폐허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표지 中)

중국 소설가 하면 '루쉰' 이 떠올랐었다. 두 작품 밖에 안 읽었지만 루쉰의 소설은 혁명의 격동을 품고 있는 소설이었고,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젊었을때 읽으면 그 오래전 그 오래된 뜨거움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투쟁의 시기는 지나갔고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년에 테드창 과 류츠신 의 SF 소설들을 여럿 읽었다. 중국 SF소설이 이정도 였나 하며 놀랍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었다. 아직 검열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작가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분야는 SF 뿐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하튼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루쉰 과 SF 사이에 '위화' 의 소설 두편을 읽었었다. 내가 읽은 두 작품(인생, 허삼관매혈기)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위화의 소설은 유머를 가장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로 가득한 분위기라서 읽고나면 왠지 맥빠지는 기분이었다. 과거말고 지금을 이야기하는 중국소설은 없는건가? 하는 의문이 남았었다.

그러다 옌렌커의 '작렬지'를 만났다.

옌렌커(1958~)는 중국에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고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 출간되는 작품을 여럿 보유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한국의 문학단체들과도 인연이 깊어서 종종 방한도 하고 그때마다 인터뷰에서 한국에 호감을 표현하는 작가라고도 한다. 필력깊은 중국 현대작가의 장편소설을 드디어 읽게되는 구나 싶어 기대감이 올랐고 하드커버의 두툼하면서 인상적인 표지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편집장 서문' 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옌렌커 본인이 '작렬지' 라는 역사지리서를 쓰게된 경위를 밝히며 시작함으로써 현실과 소설의 구분을 흐려놓고 시작한다. 허구의 도시 '자례시'에서 의뢰받아 쓰게 됐다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저자는 자신에게 어떤 욕을 해도 좋으니 부디 이 역사지리서를 읽어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며 작품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인해 저자는 고향에서 영구 퇴출되었음을 밝힌다.

2012년 시 정부와 각계각층 인사들이 『작렬지』를 심의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고 성토와 욕설이 난무함. 이로써 자례시의 비공식 시지이자 기서가 됨.

2013년 『작렬지』가 마침내 중국어로 출판되었지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례시의 지도층으로부터 간부, 평민까지 지식인이든 일반인이든 거의 모두가 황당하고 기괴한 시지를 거부하면서 전대미문의 지방사 부정 기류가 형성됨. 또한 옌렌커에게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땅 자례시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영구 퇴출을 명함. (p. 16)

 

자례시의 아들이자 유명한 소설가인 저자에게 고향 자례시의 위대한 발전과정을 써달라 시에서 의뢰했을 것인데, 저자가 쓴 역사지리서인 '작렬지'는 엄청난 금액이 투자되어 나온 작품임에도 비공식지가 되고 기이한 책이되어 자례시 관련자 모두에게 거부당한 역사지리서가 되었다. 저자는 왜 자신의 고향시에 대해서 거부당할만한 내용들을 썼을까? 대체 자례시가 어떤 발전사를 가졌길래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자례시' 라는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화산이 폭발해 수개월 동안 연기가 흩어지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지질이나 지각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그것을 땅이 갈라진다거나 터진다고 표현했다. 어쨌든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화산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가 화산 입구에서 100여리 떨어진 바러우산맥으로 달아나 논밭을 일구며 정착했다. 이후 촌락을 이루게된 사람들은 땅이 갈라지고 터져 달아났다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을 작렬하는 마을(자례촌)이라고 지었다. (p. 19)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 자례촌의 역사는 새로운 중국의 발전과 진통을 고스란히 반영한 축소판이 되었다. (p. 23)

 

송나라때 화산 언저리에 생겨난 작은 마을 자례촌. 화산이 폭발해 수개월 동안 흩어지지 않던 연기는 소설을 마지막장에 가서 스모그로 재현되면서 무엇이 폭발해 땅이 갈라지고 터져 사람들이 달아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원, 명, 청을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이 되면서 자례촌의 번영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례촌의 역사는 곧 중국 발전사의 축소판임을 시작부터 언질해놓았기에 소설을 읽는내내 자례시의 어떤 모습이 중국 번영사와 겹쳐지는 것일까 생각하게 한다.

자례촌에는 대표적인 두 씨족이 있는데 주씨네와 쿵씨네이다. 두 집안은 거의 서로 원수처럼 사이가 안좋다. 기존의 주씨네를 누르고 쿵씨네가 촌장이 되면서 마을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중심에 쿵씨네 둘째 아들 쿵밍량이 있다. 쿵밍량에겐 야망이 있었다.

쿵등더는 어느날 네 아들에게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다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이 운명을 좌우하게 될 거라며 내보낸다. 첫째 쿵밍광은 분필을 주웠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셋째 쿵밍야오는 군용차를 만났고 군인이 되었다. 넷째 쿵밍후이는 어린 소년이었고 자신이 만난 것이 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다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둘째 쿵밍량은 인장석을 주웠고 주씨네 딸 주잉을 만난다. 쿵밍량과 주잉은 서로에게 욕을 하며 뒤돌아 서지만 평생의 숙적이 되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1980년대 초 중국은 경제부흥을 위해 도전적인 과업을 요구하던 때였다. 쿵밍량은 기발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고 그 재산으로 주잉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후 새 촌장의 자리에 오른다. 쿵밍량에게 촌장이라는 첫 도장이 생겼고 주잉은 아버지의 죽음을 곱씹으며 마을을 떠난다.

그는 총부리에서 나오는 연기를 입으로 불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손잡이와 총신을 닦고 총을 허리게 꽂은 다음 큰 소리로 "민주선거 좋죠. 누구를 뽑든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외쳤다. (p. 117)

행동은 쿵밍야오와 비슷했지만 밍야오의 총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무기는 지폐였다. (p. 125)

 

촌장 위의 향장이 되기 위해 선거에 쿵밍량이 출마했을때 맞붙은 상대후보는 주잉이었다. 쿵밍량은 가가호호 선물공세로도 모자라 군인인 동생을 불러내지만 거리에서 돈을 뿌리는 주잉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화류계에 몸담고 큰 재산을 모은 주잉은 고향 자례로 돌아와 쿵밍량을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그 첫 대결이 향장 선거였다.

"형수로서 하는 말인데, 대학을 졸업하면 자례로 돌아오지 마요. 나랑 둘째 형이랑 결혼한 이상 자례는 조만간 형과 내손에 망할거야" (p. 176)

운명을 찾아 떠났던 날 서로에게 처음 만났던 상대였던 쿵밍량과 주잉은 결국 결혼하지만 주잉은 막내시동생 쿵밍후이에게만은 솔직하게 경고한다. 하지만 주잉 스스로도 짐작하지 못했을만큼 이 부부의 미래와 자례향의 미래는 엄청난 범위의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한마디로, 자례진에는 노는 사람이 없었다. 농사짓는 사람도 없었다. 각각의 회사와 개개의 공장 덕분에 새로운 자례는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 들썩거렸다. (p. 213)

촌에서 향으로 향에서 진으로 마을의 범위는 점점 확대되었고 인구는 증가했고 산업은 바뀌었다. 노는 사람은 없었지만 농사짓는 사람도 없었다는 문장이 묘하게 울림을 남긴다. 끓는 물을 계속 끓이면 넘치거나 쫄아서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다. 자례는...

"죽고 싶냐? 그럼 내가 이뤄주지" 쿵둥더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다가 가늘고 질긴 회색 삼끈을 찾아냈다. 가장 높고 굵은 나뭇가지에 삼끈을 묶고 머리를 맞춤하게 넣을 수 있는 매듭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기 머리를 공중에 매달린 매듭 안으로 집어넣고 맞은편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이 전부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으로 완벽하게 금괴, 금덩이, 은화 모양이었고 젊은 여자의 얼굴처럼 뽀얀 구름도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머리를 빼내고는 다시 햇살 아래 구름을 보았다. 모든 것이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다시한번 고개를 매듭으로 통과시켜 바라보자 역시 금괴과 금덩이 구름, 나무 같은 구름송이에 걸린 원보, 여인, 여자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머리를 빼낸 뒤 아주 진지하게 아들 밍광에게 말했다. "죽는 게 좋겠다. 죽으면 넌 뭐든 다 가지게 될 거야" (p. 291)

조강지처 내버리고 젊은 여자와 바람나서 집나갔다가 버림받은 장남 쿵밍광에게 찾아간 아버지는 차라리 죽으라며 나무에 줄을 걸어준다. 그런데 그 줄에 목을 넣는 순간 부귀영화가 보이고 목을 빼는 순간 그저그런 현실이 보인다. 죽는게 나은 것 같아보이지만, 아들에게 그러한 죽음을 권하는 아버지는 죽을 생각이 없다. 소설속 인물들은 묘하게 조금씩 비틀린 성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 비틀림이 현실의 비틀림과 맞물리면서 묘한 풍자의 뉘앙스를 풍긴다.

자례 시내는 늘 증축 공사가 벌어졌다. 무구한 지퍼가 달린 것처럼 지면이 수시로 벌어졌다 오므라들고 뜯기고 헐리고 파여, 도시가 한 번도 수술대에서 내려온 적 없이 주야장천 개복수술을 받는 것 같았다. (p. 464)

어찌 되었든 자례는 위대한 도시였다. 원래 자례가 가졌던 모든 것이 현실과 역사, 후세의 기억이 되었다. 자례의 옛 거리와 새로운 자례시도 현실과 역사 때문에 두 세계로 나뉘었다. (p. 480)

 

진에서 현으로 더 커진 자례는 곧 시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숨가쁘게 마을의 규모가 커지는 동안 자례는 늘 수술중 공사중이었다. 한번도 수술대에서 내려올새 없이 주야장천 개복수술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 결과가 밝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시작된 수술은 멈출수가 없다.

쿵밍량은 야망은 점점 더 커지고 가속도가 붙을수록 본인은 속도감에 무뎌져 간다. 속도에 따라붙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곳은 과거가 되고 현실은 과거와 점점더 멀어져 간다. 나누어지기 시작하면 잊혀지는 것도 순식간인것을...

"곧 돌아올 거예요. 돌아와서 날 찾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자례라는 이 중형 도시를 중국의 대도시로, 성만큼 크고 성보다 더 크게 키우고 싶어 하니까. 베이징, 상하이, 텐진, 광저우처럼 성보다 큰 직할시로 만들기 위해 도성 각계각층의 수뇌들에게 동의를 구할 때, 그런 인물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줘야 할까요? 결국에는 알게 되겠지. 무엇이든 이 여성직업기술학교 학생들보다 나은 건 없다는 걸요" (p. 493)

이 소설이 진지한 문체의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성에 대한 시종일관 가벼운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8~90년대의 뒤틀린 권력관계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는 것은 성적노리개일 뿐이다. 주잉의 재산과 권력은 퇴폐업에서 나오고 그 무기는 지속적으로 먹혀들어간다. 주잉이 생각할 수 있는 여성의 직업과 여성의 기술이라는 것은 퇴폐업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집안살림을 하거나 유흥거리가 되거나 둘중 하나다. 이것도 중국번영사의 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작가의 성향것인지...흐음...

등불 밑에서 책을 넘겨보니 누군가 수천수만 번 읽은 책력이었다. 선장본으로 만들어져 장마다 침을 묻혀 넘긴 땟자국이 까맣게 번들거렸다. 심지어 눅눅한 곰팡내까지 풍겼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다 있던 책이었다. 60년을 주기로 양력과 음력 대조표가 있고 24절기 시간과 날씨가 있었다. 그리고 몇 쪽마다 나오는 여백에는 점치는 방법과 해설이 적혀 있었다. (p. 498)

양력과 음력 대조표의 여백에 누군가 붓으로 적어놓은 작은 해서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잃었다가 되찾다'라는 글귀를 보자 한겨울에 화톳불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따스해졌다. (p. 500)

그는 자신의 지난 삶과 사건이 하나하나 전부 책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탄과 후회가 가슴에서 밀려오더니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변해 물처럼 그를 적셨다. 옛거리를 지나는 발걸음이 옛강을 떠나는 배 같았다. (p. 501)

 

운명은 정해져있는 것일까... 뒤늦게 발견한 책력에는 모든 것이 써있었다. 하지만 한번에 다 보여주지 않았다. 책력은 한장한장 떼어내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조금씩조금씩 볼 수 있었다. 읽고나서 수습할 수 있는 상황도 있었지만, 읽었음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 더 많았다. 운명을 안다해도 받아들이지 않는이상 운명은 운명이 아닌 것일까...

"일주일 안에 아시아 제일, 세계 1,2위를 다투는 초대형 공항을 자례에 건설해야 해. 일주일 안에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철을 자례 지하에 건설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례는 중국에서 대도시가 될 수 없어. 베이징, 상하이, 뉴욕, 도쿄 같은 대형 직할시가 될 수 없다고." (p. 588)

"그런 것들을 건설하고 싶다면 나한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다리 5천개와 손가락 만 개를 줘. 다리를 그 정도로 잘라내지 않고 손가락을 그렇게 꺾지 않는다면, 대가도 없이 그런 작업을 단시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p. 590)

"도련님이 평생 처음으로 내가 입맞춤한 사람이에요. 부탁이니 조카를 잘 키워주세요. 그리고 아빠엄마가 살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주지 말고, 그냥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시체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고 말해줘요." 그날밤, 그녀는 정확히 아가씨 천 명을 모아 여군의 명목으로 밍야오의 군대에 들어갔다. (p. 642)

 

급격한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빠르게 키우려는 자, 그 속도를 지지해주기 위해 대가를 원하는 자, 자신이 이루지 못한거라면 없애려는자, 이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고 키워낸 세력이 주축이 되었을때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자례는 자례시가 되었지만 축하연이 벌어진 바로 그날 자례시 전체의 모든 벽시계와 손목시계의 시침과 초침이 하룻밤 사이 죽어버렸다. "한 도시의 번영이 그렇게 끝이 났다." (p. 643)

소설의 마지막장인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작렬지』 를 읽은 쿵시장을 만난다. 쿵시장은 작렬지의 초고에 불을 붙이며 말한다.

"나와 자례가 있는 한 이 책을 출판할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중국 이외의 다른 곳에서 이 책을 출판한다면 당신은 평생 고향인 바러우산맥으로 돌아올 생각을 버려야 할 거요. 오늘 당장 자례시를 떠나시오. 떠나지 않으면 나도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소!"

"감사합니다. 쿵 시장님. 시장님이 첫 번째 독자이신데 시장님 말씀으로 제 책이 괜찮은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 652)

 

소설가는 '작렬지' 의 마무리를 도시의 몰락으로 썼지만, 에필로그에서 자례시는 존재하고 쿵시장은 격노한다. '작렬지'의 결말은 자례시와 쿵시장에게 저주 와 다를바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가는 쿵시장의 분노에 만족감을 느낀다.

소설은 묘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오간다.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리고 장미나무에서 모란이 피는 자연의 비자연적 현상이 수시로 묘사되고 존재하지 않는 자례시의 역사지리서로 시작한 '작렬지'를 도시의 몰락으로 결말지었으면서, 자례시는 여전히 존재하고 쿵시장도 여전히 존재하는 에필로그는 '작렬지' 자체를 허구속의 허구로 만들어버리는 듯 하다.

중국인이 이 작품을 읽었다면 바로 은유와 풍자를 눈치챘을 것 같지만, 중국의 현실을 근대사를 잘 모르는 외부인에 읽었을때는 어디까지를 현실로 이해하고 어디까지를 비현실로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고 난해해서 난처해진다;;; 저자는 '작가의 말' 에서 그 해석을 '신실(神實)주의'로 설명하고 있지만 '신실'의 정체는 무엇인걸까...

모두 진실 같지 않고 인류의 상식적 논리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또 일상적이며 매일 매 순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버린 물과 공기처럼 보편적이고 자욱하게 발생한다. 이곳은 새로운 나라면서 오래된 나라다. 극도로 봉건적이고 전체적이지만 무척 현대적이고 풍족하다. 지극히 서구적이면서도 본질은 동양적이다. 세계가 그를 변화시키고 그 역시 세계를 변화시킨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의 모든 새로움은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을 통해 인류 생성과 상상의 하한선을 뛰어넘거나 거기에 도전한다. 따라서 그는 진실하지 않은 진실과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가능하지 않은 가능을 내포한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심지어 느낄 수없는 생성 규칙과 법칙을 가진다. 그는 새로운 논리와 새로운 의식을 지닌다. 이른바 '신실(神實)'이라는 보편의 존재를 가진다. 이러한 신실의 현실과 역사, 진실과 생성에 대해 중국인도 처음에는 경악하고 의심했지만 점점 일상처럼 받아들여 익숙해지다가, 결국에는 무감각해지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를 인정하게 되었다. 전 세계가 오늘날 중국에서 날마다 발생하는 기이한 일들에 아연실색할 때, 모든 중국 작가는 그러한 인류 역사와 경험을 초월하는 실재 앞에서 현실에 대한 글쓰기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한지를 느꼈다. 세계문학의 모든 유파와 주의, 기교가 중국의 기이한 이야기 앞에서는 거센 탄식을 내뱉을 것이다. 중국의 현실은 새로운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다. (p. 655~656)

저자에게 새로운 글쓰기를 강요하는 중국의 현실을 담아낸 '작렬지' 는 분명 기존의 소설이해방법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되새겨지는 문장들이 있기에 그 문장들을 곱씹어보다보면 아주 조금씩조금씩 저자가 알려주고 싶어하는 중국의 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작렬지』 라는 소설은 중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작품이기도 했지만, 쿵씨네 네형제의 서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읽는동안 개인적으로 네자매 이야기인 '작은 아씨들' 이 생각나기도 했다. 네형제와 네자매의 특성은 묘하게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작품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는데 그대로 다 믿는 자례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은 메주를 콩으로 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옌렌커의 다른 작품들을 좀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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