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재난소설이다.
가상의 지역 부림지구에 지진이 발생하고 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모든 삶이 흔들렸다.
부림지구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한때 제철산업으로 번성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멈추어버린 공장들 사이에 인적도 드문 삶의 막다른 골목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다.
하지만 이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삶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지진이 발생했다.
땅이 갈라지고 도시전체가 무너지는 와중에 생존한 부림지구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부림지구는 오염된 지구였고 생존자인 이재민들은 오염된 사람들로 취급되었다.
유진은 46세의 싱글여성이다.
부림지구에서 나고 자랐고 부모님도 부림지구에서 보내드렸다.
남들이 보기엔 별볼일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생존욕구마저 별볼일 없는 건 아니었다.
지진 발생 후 이런 저런 사연으로 벙커X에 모여살게 된 사람들에 대한 유진의 시선은 인간적이다. 이 인간적이라는 표현은 따듯하다 거나 온정어린 뭐 그런 의미는 아니다. 함께 눈물짓다가 짜증도 나고 불쌍하게 여겨지다가도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는 그런 의미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결코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먼지 한톨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처음엔 구호용품을 나눠주었지만
다시 등장했을 땐 부림지구 사람들에게 칩을 심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려 한다.
사고가 발생을 때 개인신상을 알수 있도록 정보를 넘은 칩이라고 설명하지만 부림지구 사람들에겐 오염됐다는 낙인을 찍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벙커X사람들은 칩을 넣기를 거부하고 점점 더 숨어든다.
학문의 높은 수준을 경험하며 살아온 교수 노부부도, 재난 현장을 발로 뛰며 사진을 찍던 사진가도,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던 신문사 기자도, 평범한 회사원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도, 오염물질을 배달하던 운전기사도 그리고 부림지구를 떠나고 싶지 않은 유진도 지진 앞에서는 다 똑같은 처지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벙커X에서의 생존을 기록하고 있는 이 소설은
파괴되고 무너진 세계에서, 더 무너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더 무너지고 있는 세상을 선택하는 것을 보여주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혹함에도 살아있으려고 하는 욕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ps. 어젠 행복한 소설을 읽어서 하루가 가벼웠는데, 오늘은 어두운 소설을 읽어서 하루가 무겁다. 역시 소설은 시간을 지배하는 힘이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