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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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 '만화열전'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등 방송사를 대표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그동안 여러권의 에세이를 낸 작가로, 대학원에 진학해 심리학을 공부한 뒤 심리상담가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연자로, 그야말로 화려한 이력이 넘쳐나는 (저자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A4용지 6장을 꽉 채우는 이력서를 소지하게 된) 작가가 쓴 책이라는 소개글을 봤을때 궁금했다.

그야말로 내로라하는 라디오디제이들과 함께 하고 유희열의 따뜻한 추천사를 받고 정재승에게 '심리적 산소'를 제공해줄 글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가의 글이 어떨지 궁금했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갈수록 에세이를 꽤 읽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에세이만 쓰는 작가도 작가인가 라는 나의 의문에 대해 저자의 글이 어떤 감상을 전해줄지 궁금했다.

여하튼 책은 궁금해져야 시작할 수 있는듯 ㅎㅎ

일단 예쁜 책이라 좋았다. (나는 책도 예쁜 책이 좋다. 이 예쁨이라는 것은 미적 아름다움과는 좀 다르다. 뭐랄까.. 책과 어울리는 예쁨을 말하고 싶은데...;;;)

작고 화사한 느낌의 책구성이 봄의 분위기를 풍겼고,핑크 아이스바가 반쯤 녹아내린 하트호수위에 러버덕이 아닌 러버홍학이 떠있는 모습이 제목과도 잘 어울려 보였다. 표지에 대한 첫인상이 중요한 편인 나에게는 일단 호감인걸로 ㅎㅎ

저자는 경력만 봤을땐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아무리 화려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다 각자의 인생고충이 있는 법인 것처럼, 저자 개인의 삶은 녹록치 않았음을 고백한다. 남다른 감성과 경제적 어려움과 신체적 고난을 겪어오며 성장했음에도 치유되지 않았던 심리적 불충분함을 심리학을 배우고나서야 딛고 일어섰음을 담담이 풀어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저자의 심리일기 같은 것은 아니다. 라디오 작가였던 만큼 다양한 사연과 인연이 있었고 그 에피소드들을 통해 심리서처럼 읽히기도 하고 방송후일담같기도 하고 문화적 소양이 남다른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덕질공감기 같기도 한 글들이 내내 잔잔하면서도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좀 많이-)고급지게 이야기되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고 그림을 자주 보고 음악을 즐겨듣는 감성에 대한 공감이 저자의 글들을 내게 가깝게 다가올수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그들이 정말로 떠나고 싶어했던 곳은 어디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리거나 비행기를 타고 만 킬로미터를 날아도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여행 갈때 다른 건 다 버리고 갈 수 있어도, 이메일 알람과 핸드폰 전원까지 끌 수 있어도, 자신은 데리고 가야 한다. (p. 28)

 

대부분 떠나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일상을 여행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낯선 곳으로 떠날때조차 자기자신은 데리고 가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이 너무너무 가고싶어질때는 다시말해 내 마음이 '나를 더 돌봐줘'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왠지 처음해보는 기분이다.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관계를 통해 진정한 공감을 얻으면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는다고 했다. 나는 이 표현을 좋아한다. 나에게 공감해주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면 꼭 질식할 것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무엇을 해도 피곤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피곤하며, 평생 누워만 있고만 싶다면 당신은 심리적 산소가 부족한 상태이다. 꾹 참고 지내다 응급실에 실려 가기 전에 이산화탄소발생기 같은 사람들을 떠나서 산소발생기 같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p. 52)

 

'심리적 산소' 라는 표현이 나도 마음에 든다. 이산화탄소발생기 같은 사람들을 정말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많이 만나며 살게 된다. 나에게 심리적 산소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상담공부를 하게 되었을때, 칼 융을 좋아하는 교수님이 매주 설명하셨던 개념으로 '상처입고 좌절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한 치유자'라는 의미이다.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남을 돕는 데 한계가 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은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만이 진정한 치유자가 된다. 내가 생각하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다. (p. 96)

심리치료사나 정신과의사들이 써낸 에세이들을 꽤 여럿 읽었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을 치료해주어야 할 사람들이 이렇게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아파도 되나 이 사람들 부터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았다. 심리치료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심리에 문제가 있었고 정신과 의사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신건강이 건강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상처입은 치유자' 라는 표현을 보니 예전에 읽은 책들에 대한 미심쩍음이 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일부를 상실에 바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p. 116)

인간은 살면서 늘 상실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상실에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또한 인간은 상실에 일부러 자기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바치는 존재이다. 이 역설이 인간의 삶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이 표현이 좋았다.

이기적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안전한 새장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음이 상한 사람들, 슬픔을 아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p. 135)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약해빠진 인간이라고 함부로 말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약해빠진 인간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안위를 점검하고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당위감을 얻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아픔을 감춘채 사는 사람들보다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울함에서 처음으로 용기를 발견한 듯하다.

사심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처럼 무해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목적없는 공부는 지복이다. (p. 165)

저자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이 공부라는 것이 학생들이나 어떤 시험을 목표로 하는 공부와 다른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나또한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에 저자의 탐구 여행에 공감이 갔다.

왜 사람은 시간을 들여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어할까?

책을 읽는 이유는 잃어버린 사랑과 존재의 슬픔에 대한 존중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 인간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최대한 세밀하게 묘사해내는 도구는 '글' 말고는 아직 없다. 정제된 문학작품에 이르면, 현실의 비애에 대한 묘사는 최고점에 이른다. 나 역시 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슬픔에 매료된다. 자신의 상처를 대신 읽어주는 문학을 사랑한다. (p. 226)

 

나도 책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하고 문학작품을 사랑하지만 너무 우울하기만 한 문학작품을 읽고나면 한동안 마음이 힘들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대신 읽어주는 문학이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 것도 같다. 글자로 된 모든 작품이 다 작품으로 불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제된 글'은 늘 어떤 식으로든 삶에 위안을 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삶에는 늘 위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는 내내 '글' 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나라고 인지할까?' 라는 질문에 사로잡혔다. 나를 나로 인식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신기했다. (프롤로그 중 p. 8)

중학생 때 '끝' 이라는 말이 갑자기 이해가 안됐던 때가 있었다. 모든 물체에는 끝이 있다. 탁자의 끝 TV의 끝 책장의 끝... 모든 물건들은 물건들 자체와 물건들이 속해있는 공간과의 단절이 '끝'으로 표현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끝났지만 공간이 있지 않은가 그러면 끝난것이 아니지 않는가 끝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가... 뭐 이런 식의 생각의 고리들에 대해 답도 없이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답을 구하지 못했음에도 그 질문은 계속 내 머릿속에 한자리 차지해오고 있었는데, 저자의 호기심들 중에 나와 비슷한 면들이 보여서 반가움이 일었다. 스님들은 평생 한가지 화두에 몰입한다는데, 나는 종교적 화두는 아닐지라도 존재의 인식에 대한 개인적 화두가 늘 있어왔달까... 어찌보면 사람은 내가 했던 생각처럼 말도 안된다고 여겨지는 질문에 한번씩은 확 꽂히게 되는 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해본 적 없던 질문들이었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오래전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좋았다.

에세이만 쓰는 작가도 독자로 하여금 이런저런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구나 싶어서 에세이의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같다. 제목만 보면 여기저기 넘쳐나는 다정다감한 힐링에세이 같지만, 나는 그런 내용들보다 몇마디의 문장들이 개인적으로 훅 들어와서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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