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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라진 스푼 -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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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발견의 역사부터 과학자들의 실수와 경쟁까지

주기율표에 담긴 전쟁과 신화, 열정과 탐험의 순간들

주기율표에 얽힌 과학과 모험, 세계사 이야기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공기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화려한 입담으로 펼쳐내는 것을 보며 과학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구나 싶어 신선했더랬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사라진 스푼>이라는 책의 청소년 버전이다. <사라진 스푼>이라는 저자의 책도 관심을 갖고 있던 책이었기에 청소년 버전을 반갑게 펼쳤다. 청소년 버전은 아무래도 좀더 쉽고 짧으니까. ㅎㅎㅎ

주기율표는 인류학적으로도 경이로운 대상이다. 이 인공물에는 경이롭거나 예술적이거나 추한 것까지 포함한 인간의 모든 속성과 인간과 자연 세계의 상호 작용 방식까지 반영돼 있다. 다시 말해서, 주기율표는 간결하고도 우아한 문자로 표시된 우리 종의 역사이다. 그러니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복잡성이 증가하는 순서에 따라 이 모든 층들을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주기율표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교과서나 실험 안내서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주기율표를 이해하게 해준다. (p. 12)-머리말 中-

화학이라는 과목을 생각했을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주기율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기율표의 원소 하나하를 알아가는 과정이 곧 화학이고 그 원소들의 결합과 해체와 충돌을 연구해나가는 것이 화학이기 때문이다. 화학은 과학관련 교과과정에서도 중요한 과목이다. 중요한 과목 대부분 그렇듯이 화학도 어려운 과목이다;;; 어려운 과목에 접근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서 이야기처럼 술술 읽고 친근하게 느껴보는 방법은 어떨까? 바로 이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주기율표라고 하면, 아마도 여러분은 과학실 뒤편에 걸려 있던, 많은 가로줄과 세로줄로 이루어진 여러 가지 색의 도표를 떠올릴 것이다. 수업 시간에 주기율표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시험을 칠 때 주기율표를 마음대로 참고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을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활용하는 법을 제대로 몰라 이 거대한 커닝 페이퍼는 여러분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기율표와 각각의 칸에는 풀리길 기다리는 비밀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p. 17)

저자는 주기율표의 구조와 읽는 법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 주기율표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란 무엇이고 주기율표에서의 위치가 그 원소의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면서 화학의 기본바탕이라 할 수 있는 주기율표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원소들 하나하나가 발견된 역사들을 살펴보기 전에 주기율표를 그려낸 과학자들을 먼저 소개한다. 대부분 주기율표는 멘델레예프 라는 과학자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든 발명과 발견이 그러하듯이 어느날 뚝딱 한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는 법, 주기율표도 그러했다.

거의 모든 언어는 왼쪽에서 오른쪽(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읽는다. 하지만 주기율표는 위에서 아래방향으로 읽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그러면 경쟁 관계를 비롯해 원소들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기율표에는 그 나름의 문법이 있으며, 행간을 잘 살피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p. 46)

자, 이제 본격적으로 원소들 하나하나를 살펴볼 차례다. 원소 하나하나 마다 그 탄생기가 하나의 역사이자 발전사였다. 그런데 원소 이름들을 알게 되면서 대한화학회에 아쉬운 마음이 커졌다. 책의 앞쪽에 '일러두기'에서 '대한화학회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써오던 원소 이름을 영어식으로 대폭 바꾸었다.' 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갔다. 이 책의 옮긴이 또한 '대한화학회는 이런 역사적, 지리적, 언어적 배경을 무시하고 이테르븀, 테르븀, 에르븀이 아니라 영어식 발음을 따 이터븀, 터븀, 어븀으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p. 45)' 라면서 안타까워하는데 나또한 그런 마음이었다. 많은 학문들에서 학명은 라틴어를 사용한다. 라틴어 학명은 만국공통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영어식 발음으로 고치려 하는가? 우리나라 언어가 영어도 아닌데. '대한화학회는 '두브나'라는 러시아 지명을 무시하고 105번 원소를 두브튬이 아니라 영어식으로 '더브늄'으로 표기하기로 정했는데, 이는 파리Paris를 패리스라고 표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옮긴이 (p. 105)' 프랑스의 도시 파리를 한국사람 중 누가 패리스라고 읽을까? 그런데 대한화학회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게르마늄이라는 원소를 저마늄이라고 바꿔 부르라는 식으로 많은 원소이름들을 바꿔버렸다. 라틴어 학명을 굳이 영어발음으로 고치려는 대한화학회의 결정은 큰 착오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이 책의 주된 내용들인 원소들의 이야기이자 주기율표의 이야기는 때로는 우주적이었고 때로는 인간적이었다. 때로는 실수가 있었고 때로는 경쟁이 있었고 때로는 파괴적이기도 했지만 거시적으로도 미시적으로도 어쨌든 화학은 물리나 지구과학, 생명과학과 연결되면서 과학은 서로 유기적 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해주었다. 더구나 '범우주적으로 보편적인 것(즉, 외계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되는데, 주기율표도 그중 하나이다. (p. 247)' 라고 하니 주기율표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과학을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편한 이야기로 읽고 싶은 이들에게, 특히 화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쉽고 유용하게 읽을만한 책이 될 것 같다.

ps. 그런데 왜 책 제목이 주기율표 어쩌구가 아니고 '사라진 스푼' 이냐고?

그건 갈륨에서 힌트를 얻은 제목 같다.

지구상에서 돌고도는 공기를 굳이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라고 불러서 독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겼던 것처럼. ㅎㅎㅎ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29.8℃에서 녹기 때문에,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녹아서 액체로 변한다. (체온은 약 36.7℃이므로) 갈륨은 액체 상태로 만져도 살이 타지 않는 극소수 금속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갈륨은 종종 마술을 보여주는 도구로 쓰인다. 갈륨은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고 알루미늄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트릭 중 하나는 갈륨으로 스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뜨거운 차와 함께 갈륨 스푼을 손님에게 내놓는다. 그러면 잠시 후 손님은 찻잔에 넣은 스푼이 사라지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p. 40)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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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 지음, 이지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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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영국왕립미술협회 회원이면서 미술사학자라는 수지 호지의 책들 중 <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 과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마로니에 북스에서 나온 미술책의 특장점인 크고 선명한 도판에 저자의 깔끔하고 명료한 서술까지, 미술에 대해 비전문가인 나같은 독자가 읽기에 참 좋은 책들이었다. 그러니 미술 중에서도 내가 가장 난감하게 느끼는 현대 미술에 대해 시대순으로 정리해주는 저자의 이 책이 반갑게 다가왔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사물을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다. 묘사된 대상이 사실적으로 보일 때, 우리는 작가가 기술적으로 숙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미술은 변했고, 현재 생산되는 많은 작품은 우리가 알아볼 만한 것들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중략) 미술은 언제 그리고 왜 변했을까? (중략) 이런 모든 문제를 탐구하고자 이 책은 미술계를 강타하고 미술사의 경로를 바꾼 1850년대 이후 생산된 혁신적인 작품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p. 6)-서론 中-

저자는 1850년대 이후 미술계에 혁신적인 변화들이 시작되었다고 명확한 시점을 제시한다. 마음에 든다.

두루뭉술해보일 수 있는 예술작품들에 대하여 이렇게 깔끔하게 연대정리며 사건들을 정리해주는 책은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읽기에 참 좋다. 저자는 '미술은 언제나 그것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흔히 작가는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작품에 반영하고, 대개는 사소한 방식으로라도 독창적이기를 추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p. 7)' 라고 말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역사적 변화들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저자가 연대순으로 시대적 주요 사건들의 연표와 함께 미술사조까지 정리해주는 이 책은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다.

저자는 1850년대 이후의 시기를 5챕터로 구분한다.

전통의 타파 : 1850~1909 → 전쟁의 참상 : 1910 ~ 1926 → 갈등과 퇴조 : 1927 ~ 1955 → 상업주의의 저항 : 1956 ~ 1989 → 프레임 너머로 : 1990 ~ 현재

시대적 구분만 봐도 단순히 10년이나 50년단위로 그냥 뭉퉁그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특징을 잡아서 구분했기 때문에 이 5시대 구분만 알아도 현대미술의 개력적 흐름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각 챕터의 시작에는 늘 그 시대 예술에 대한 개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시대적 사건들에 대한 간단한 연표가 있고 미술사에 획을 그은 작품들 하나하나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사이사이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그렇게 200여 페이지의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이 책을 읽고 나면 현대 미술의 혁신적 작품들은 어느정도는 훑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술책이 이렇게 명료할 수도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전통의 타파에는 튜브형 물감의 발명이 핵심 사건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휴대용 이젤의 발명까지 함께 묶어 이 두가지 발명품이 동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전통을 잇는 것이 아닌 혁신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튜브형 물감에 대해서는 미술책 좀 몇 권 읽다보면 상식처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간단하고 짧은 서술 속에 휴대용 이젤의 중요성까지 부각시키는 것을 보면서 역시 전문가의 책이구나 싶었다.

미술용품의 발달도 미술에 혁신을 가져왔겠지만 세계대전만큼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없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예술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전시장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21세기가 도래했을 때, 미술가들은 전보다 더 개별적으로 작업했고 미술운동은 더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앞으로의 미술은 어쩌면 계속 '현대 미술'이라고밖에는 부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략적으로 현대미술을 훑어나가게 해주는 것도 좋지만 미술책의 좋은 점은 뭐니뭐니해도 그림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책은 다양하다. 저자의 책만해도 현대미술을 다룬 책이 이 한권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을 다룬 책이라 해도 책마다 포인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저자의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 이라는 책은 제목처럼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이 돋보였다면 이 현대미술 책은 미술사적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현대미술로 오기까지 혁신의 선구자였던 작품들에 대해 왜 그 작품이 '혁신적'인지 설명함으로써 현대미술의 흐름을 깨닫게 해준다.

도판을 크게 배치한 미술책들은 코팅된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선 좋지만 사실 빛이 반사되어서 눈이 아플 때도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독특하게 두툼한 종이질감의 책이었다. 처음엔 좀 낯설고 아쉽기도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빛이 반사되지 않는 종이이면서도 큰 도판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느껴져서 이또한 좋았다.

현대미술이 어렵고 왜 봐도 알수 없는 작품들을 만드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궁금하고 관심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왜 현대 미술이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면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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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똑똑해지는 경제 속 비하인드 스토리 - 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EBS 알똑비 시리즈 3
EBS 오디오 콘텐츠팀 지음 / EBS 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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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알면 똑똑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 일명 알똑비 시리즈는 EBS북스에서 나오는 스낵형 지식콘텐츠를 담고 있는 책이다.'인류사에서 뒷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 라는 수식어구 처럼 평범한 상식 속에 숨어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줌으로써 지적 호기심과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켜는 일종의 잡학서라고도 할 수 있다.

알똑비시리즈 중에서 이번 책은 '경제' 분야이다. 경제 중에서도 학문적 깊이 필요 없이 읽을 수 있는 상식 선에서 다룰 만한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나 상품에 대한 뒷이야기들일 것이다. 따라서 기발한 창업의 비밀 - 색다른 경영의 비결 - 아주 특별한 광고의 효과 - 기업을 일으킨 인물들의 특이점 - 망해버린 제품 이야기 라는 챕터들만 봐도 이 책의 내용이 얼추 짐작은 갈 것같다.

전체 50개의 에피소드는 알려진 것도 있고 생소한 것도 있지만 스낵형 지식콘텐츠 답게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스윽 읽히는 이야기들이다.

지금은 너무나 성공한 기업들로 보이는 넷플릭스 나 인스타그램, 에어앤비 등이 이런저런 실패 끝에 이루어낸 성공이라는 뻔할 수도 있는 성공신화도 새롭게 읽히고 기네스 맥주의 기네스 가문이 기네스북의 그 기네스 였다는 것이나 다이소의 출발점인 100엔샵이 자포자기순간에 귀찮아서 내뱉은 말한마디에서 시작됐다는 등의 조금은 웃긴 에피소드들도 새롭게 읽힌다.

스타벅스의 사이렌오더 개발자가 한국인이었다거나 디즈니랜드의 직원이라면 파트타임 직원이든 임원이든 입사 후 반드시 디즈니대학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거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대처가 보여준 반전 등은 색다른 경영법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갔던 내용은 '편집자 없는 출판사 인키트' 였다.

나도 무척 좋아하는 슬로건인 'Just Do it' 이 사형수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거나 산타클로스의 이미지가 코카콜라 광고에서 출발했다는 등의 에피스도들은 광고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는데 앱솔루트 라는 독주의 광고가 그토록 일관적이면서도 동시에 변화무쌍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기도 했다.

명품인줄로만 알았던 루이비통이나 프라다의 가방이 창업주의 관점에서 보면 무척 실용적인 출발이었다는 점이 신선하기도 했고 탐스 신발이나 XO노트북의 실패이야기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처럼 때로는 절실함에 공감하고 창의력에 놀라며 역발상에 감탄하고 수없는 실패를 딛고 일어선 끈기에 응원을 보내며 아무리 유명하고 잘 나갔다한들 실패하고 만 상품들의 이유를 깨닫고 나면 어느새 책한권을 호로록 다 읽었다는 사실에 작은 웃음이 난다.

또한 경제라고 하면 그닥 관심이 생기지 않지만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고나면 사회속 경제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성공이든 실패든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서 왠지모를 위안을 좀 얻게 되기도 한다.

팝콘 먹으며 코미디 영화를 볼때 낄낄거리듯 책을 보며 실실거리면서 잡지 보듯 술술 넘어가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지식인듯 아닌듯 경제도 좀 알게 되고 자기계발인듯 아닌듯 에너지도 좀 얻게 될 것이니 가볍고 쉬우면서 재미있는 지식정보책(이라 쓰고 알쓸신잡 또는 지대넓얕 이라 읽는 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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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자들 3 - 사회 발견자들 3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이경희 옮김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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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세상 전체는 여전히 아메리카와 같다.

인간 지식의 지도 위에 지금까지 쓰인 가장 기대되는 말은

'미지의 영역 terra incognita' 이다.

나는 여전히 공교육의 힘을 믿고 EBS의 질을 믿는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EBS BOOKS에서 나오는 책들이 좋다. 더구나 깔끔한 표지와 과장된 추천문구 하나 없는 것까지 딱 내스타일이다.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자한자 빼놓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고 한문장한문장 그냥 넘길 수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 이들의 시간에는 비할바 못되는 어려움이었기에 그저 감사하고 감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본 도서의 원서는 1권으로 구성되었으나 한국어판은 3권으로 나누어 출간합니다. (p. 14)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러두기>에서 알려준 것을 보니 이 책의 원서는 상당한 두께였을 것 같다. 한국어판의 3권을 합하면 천페이지가 족히 넘는 분량이고 저자의 이력을 보니 그동안 펴낸 책들또한 대단해보였다. 저자의 내공에 시작부터 살짝 압도되는 기분이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위대한 발견자들이다. 지금 우리가 서양의 지식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 즉 시간의 전망, 육지와 바다, 천체와 인체, 식물과 동물, 과거와 현재의 인간 사회와 역사 등은 무수한 콜럼버스 같은 존재들이 우리를 위해 펼쳐 놓은 것이다. 과거의 깊숙한 곳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역사의 빛으로 나타나, 인간의 본성만큼 다양한 인물로 등장한다. 새로운 발견은 위대한 발견자들이 우리에게 펼쳐 놓은 새로운 세계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개개인의 일대기 속 이야기들이 된다. (p. 15) 이 책에는 발견의 필수적인 도구가 된 몇 가지 중요한 발명들, 예컨대 시계, 나침반, 망원경, 현미경, 인쇄기와 주조 활자 등에 관한 이야기만 담았다. 정부의 형성, 전쟁, 제국의 흥망성쇠 등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중략) 문화의 연대기도 싣지 않았다.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인류가 알아야 할 필요성에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연대순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부적으로는 서로 겹치도록 배열되어 있다. 고대에서 현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15부가 각각 연대순으로 앞부분과 겹친다. (p. 16) 이 책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세상 전체는 여전히 아메리카와 같다. 인간 지식의 지도 위에 지금까지 쓰인 가장 기대되는 말은 '미지의 영역terra incognita' 이다. (p. 17) -독자에게 전하는 글 中-

이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인물열전으로 읽힌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위인전처럼 읽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중요했던 발견들에 집중하다 보면 그 발견을 한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인물에게서 영향을 받은 다른 인물들이 나오고 그렇게 하나의 사회 이야기로 한 시대의 이야기로 읽혀지는 책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발견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술을 만들어 낸 사람은 다재다능한 그리스의 서정시인 케오스의 시모니데스(기원전 550~468?)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시를 지어 최초의 대가를 받은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자신의 기억술로도 유명한 키케로의 웅변술에 관한 저서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p. 24)

한 권의 책이 3권으로 나눠졌다는데 3권만 읽고 있는 나로서는 연대기순으로 쓰여진 책을 중간부터 읽게되는 기분이 들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발견자들>의 1권이나 2권을 읽지않고 3권만 읽는 것임에도 전혀 끊어진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매 주제마다 늘 과거부터 서술되는데 고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다가 뒤로 갈수록 그 시대가 현대에 가까워짐으로써 시간이 왔다갔다했다기 보다는 '중첩'된 서술이 어떤 자연스러운 독해를 도와주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고대의 모든 지식은 구전이었다. 그 바탕에는 기억술이 중요했고 기억술은 인쇄술이 확산되면서 쇠퇴해갔다.

인쇄술이 안착되기까지는 언어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했다. 서양에서 학문적 언어로 자리잡은 것은 라틴어였다. '중세 유럽의 라틴 문화는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트(480?~543?)의 의욕과 열정과 분별력이 없었더라면 거의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베네딕트는 또한 도서관의 창설자이기도 했다. (p. 42)'

성 베네딕트가 중세에 필사본의 수호성인이었다면 샤를마뉴(742~814)는 속세의 필사본 후원자였다. 매우 유능한 통치자가 또한 기록에도 헌신했다는 사실은 서구 문명의 다행스러운 우연이었다. (p. 48) 샤를마뉴가 촉발시킨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는 라틴 르네상스였다. (p. 49) 샤를마뉴 제국의 다른 기념비가 허물어진 훨씬 후에도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의 페이지에는 잘 만들어진 글씨의 위력이라는 생생한 유물이 남아 있다. 오늘날 로마자라고 부르는 문자는 사실 앨퀸의 알파벳이다. (p. 52)

기억술에서 인쇄술로 바로 넘어갈 것 같던 내용은 중세역사에서 필사본과 알파벳의 생성에 잠시 머문다. 그리고나서 '인쇄'라는 영역으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도 바로 구텐베르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동양과 서양에서 서로 달랐던 인쇄술의 발달과정이 설명되고 이 부분에서는 한반도의 역사도 잠시 등장한다. 다른 영역에서는 몰라도 인쇄 영역에서만큼은 한반도가 선진기술의 역사처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서야 구텐베르크를 등장시킨다. 구텐베르크에 대해서도 그가 단순히 '인쇄'라는 기술적 영역의 선구자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뚝심있는 예술가로서의 면면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기존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적 발견들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던 것이다.

뒤의 내용들도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서술된다. 인쇄술이 나왔으니 인쇄물이 설명되어야 할테고 인쇄물은 당연히 책이지만 책을 소개하기 전에 언어의 변천을 소개하고 책의 외형적 발달을 안내한 후 서적이 어떻게 지식을 축적하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동시에 결코 서적으로 지식을 축적하지 않았던 이슬람 역사도 들춰보고 번역과 사전편찬으로 으로 연결되면서 [지식 공동체의 확대]라는 13부가 마무리된다. 간단하게 보자면 '인쇄'라는 주제인데 그 설명을 함에 있어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훑게 하는 저자의 서술이 무척 흥미진진했다.

이어지는 14부-과거를 드러내다 와 15부-현재를 조사하다 역시 인류역사 전체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간단한 하나의 주제로 집약시킬 수 있는 서술은 한 페이지도 놓칠 수 없이 꼼꼼하게 읽어나가게 만들었다. 중첩되면서도 전혀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계속 새롭게 읽혀서 어느 한곳 그냥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14부에서 알수 있는 역사 혹은 역사학의 발달은 다른 학문들의 발달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그렇게 15부에서 다양한 학문의 영역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읽고나면 어느새 현재에 도착해 있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끼는 내 기억으로, 적어도 50여 년 전 내가 처음으로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와 처음으로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에드워드 기번의 저서를 읽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5년 동안 이 책을 집필해 온 개인적인 시간은 내게 기쁨이었다. (p. 413)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라는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냈던 저서들의 목록을 보면 이 책처럼 상당한 깊이가 있는 책이었음이 느껴진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책들과는 또다른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1983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게 읽히는 역사 이야기들이었다. 많은 역사책들이 큰 사건들과 소수의 영웅들을 다룬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의 맛은 이 책처럼 그 큰 사건이 있기까지의 발견들과 그 발견들을 발전시켜 나간 잊혀진 다수의 사람들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의 새로운 면을 배우게 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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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마지막 서점
매들린 마틴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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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런던의 마지막 서점이

세상에 보내는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

책을 좋아하다 보면 서점까지 좋아지고 그러다보면 북카페라던가 북캠프같은 것에도 관심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책이 있는 공간은 로망어린 공간일뿐, 어렸을 땐 만화방 주인이 꿈이었다가 지금은 서점 주인이 꿈이라해도 꿈은 꿈일 뿐 현실이 되기엔 너무나 멀고먼 것이기에 서점이야기를 책으로 읽는 것으로라도 위안삼고는 한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인 런던의 그것도 마지막 서점이라니, 어떤 이야기일지 몽글몽글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소설 초반에 '여기에 더해 어깨에 걸친 방독면 상자까지 챙기느라 자세도 엉거주춤했다. 그 무시무시한 물건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혹시 일어날지 모를 가스 공작에 대비해 어디를 가든 챙겨야 했다. (p. 10)' 라는 문장에서 문득 <라스트 세션>이라는 연극이 떠올랐다. 2차세계대전 중 런던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났다는 가정에 따른 연극이었는데 그때 젊은 청년이었던 루이스의 허리춤에 방독면 가방이 달려 있었다. 연극을 볼땐 그닥 중요한 소품이라고 생각지 않았었는데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으며 같은 소품을 만나고 보니 깨알재미가 다시 느껴지는 듯 했다. 여하튼 본격적으로 소설에 들어가보자.

시작은 1939년 8월의 영국 런던에서다. 2차대전의 포화가 런던을 덮치기 직전인 이 시기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런던으로 상경한 두 아가씨가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런던의 화려함을 동경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레임에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패딩턴역에 내려섰던 두 아가씨 비브와 그레이스.

"6개월 동안 일을 하고 적절한 추천서를 받을 만한 곳이 하나 있기는 해" (p. 24)

"서점이야"

그레이스는 찌르르하게 올라오는 실망감을 애써 감추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p. 28)

그레이스 엄마의 절친이었던 웨더포드아주머니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비브와 그레이스. 비브는 헤롯백화점에 점원으로 바로 취직을 했고 추천서가 없었던 그레이스는 웨더포드아주머니의 소개로 서점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6개월만 일하고 추천서를 받게 되면 바로 비브가 일하는 헤롯으로 옮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런던은 예전의 런던이 아니었고 전쟁은 모든 상황을 변화시켰다.

런던은 그들이 예상한 만큼 보석은 아니었다. 스크림 테이프와 두려움이 뒤섞여, 머지않아 일어날 전쟁의 영향 때문인지 생기 넘치던 그레이스도 금세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녀의 반짝이던 얼굴은 모래주머니로 만든 벽 뒤로 숨어 버렸고 영혼도 대피소와 참호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p. 37)

하지만 그레이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프림로즈 힐 이라는 서점에서의 경험과 서점 주인 에번스 씨와의 인연은 런던이나 전쟁보다 더 그레이스의 삶을 변화시켜 놓게 된다. 특히 서점에서 만난 조지에 의해.

"성함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레이스 베넷이에요"

"저는 조지 앤더슨 입니다. 서점을 어떻게 만들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p. 56)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추천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서점을 개선하겠다는 당신의 의지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책에 대해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어떻게 광고할지 결정하려구요"

"오, 독자의 마음 속으로 다가가고 싶어 하시는 군요, 아주 훌륭해요"

"독서의 가장 좋은 점이 뭐예요?" (p. 101)

그레이스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일단은 좋은 추천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서점직원이 되고자 했다. 한창 고민중을때 만난 조지는 그레이스에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선물했고 그레이스는 서점 운영과 책에 대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는 그렇게 빨리 소집 명령이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원하고 이틀 만에 그 소식을 듣고 말았다. 조지 앤더슨은 데이트를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많은 유감을 표했고, 가게를 개선시키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p. 121)

"나 영국 여성 국방군에 지원할까 해" (p. 134)

"저는 제 의무를 다할 거예요, 엄마. 국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요" (p. 138)

전쟁은 점점더 성큼성큼 가까이오고 있었다. 조지는 공군으로 소집됐고 비브는 여성군에 자원했으며 웨더포드아줌마의 아들인 콜린도 징집됐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모여들고 있었고 그들을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초조속에 런던에 남아 있었다. 그레이스는 비브가 함께 가자는 제안에 고민되기도 했지만 '나는 자네가 서점에서 여태까지 해 준 일에 감사하고 있네. 그래서 여기에서 계속 일할지 여부를 고려해 주었으면 해 (p. 180)' 라는 에번스씨의 제안에 런던에 남기로 마음을 굳힌다. 처음엔 불툭대기만 했던 에번스씨가 붙잡지 않았더라도 서점에 남고 싶은 마음이 이미 커졌던 때였다. 책들을 읽으며 책이 보여주는 세상에 푸욱 빠져있던 때였다. 하지만 전쟁터에 직접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 평화롭고 안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야, 베넷 양. 자네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고. 그래, 이런 혼돈의 상황에서 카페는 약탈당할 수 있어. 하지만 불에 타 버리지는 않았잖아. 자네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 그래도 자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계속해 나가게." (p. 229)

밤이면 밤마다 독일폭격기들이 런던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수많은 건물이 불탔다. 때로는 무너진 상점이 약탈되기도 했고 적군국적의 이웃이 공격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폭탄이 휩쓸고 간 자리는 너무나 참혹했다. 야간공습감시원으로 봉사하면서 그레이스는 험한 장면을 너무나 많이 목격해야 했다. 그때마다 에번스씨는 훌륭한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자신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사라져가는 책을 구해오고 지켜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 계속 읽어요"

그레이스가 주저했다.

"그러니까... 읽어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패링턴 역의 플랫폼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p. 268)

여느날처럼 공습을 피해 지하철역에 모여있던 때 그레이스는 책을 읽었다. 옆사람이 무엇을 읽고 있냐고 묻기에 대강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뒷내용은 아직 읽지않아서 모르겠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그레이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뒤로 공습이 있을 때마다 그레이스는 사람들에게 책을 낭독해주기 시작한다.

거룩한 자들이 축복을 내리던 거리에는 지옥이 내려왔다. 화염 속에서 숨이 막힐 듯한 연기 기둥이 뿜어져 나왔고 타 버린 책의 낱장들은 잔해가 어지러이 널린 거리 위에 흩어졌는데, 그 모습이 마치 뜯겨 나간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 같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대화재로 거리는 빨갛게 번쩍거렸지만 그래도 몇몇 건물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었다. 건물 주인들이 지붕 위에 화재 감시인을 두고 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서점에는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불쏘시개처럼 마른 책들이 가득했다. (p. 362)

"제발 낭독회를 그만두지 말아주세요. 이곳은 런던에 마지막으로 남은 서점이에요" (p. 432)

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런던은 갈수록 폐허가 되고 있었다. 서점또한 폭탄을 피해갈 수는 없었으며 사람들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폐허속의 서점은 어떻게 될까? 그레이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소중한 사람들은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처절한 전쟁과 그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희망에 대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과 나무 한그루를 심겠다는 말은 공감되지 않을지라도 내일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책읽기는 멈추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엔 공감하게 될 것이다.

ps. 런던을 배경으로 영국작가가 쓴 소설이라서인지 소설의 곳곳에서 런던에 대한 자부심과 런던시민에 대한 자긍심이 과하게 넘쳐나는 것이 간혹 부담스러울때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평소와 다른 공동체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으로 넘기며 읽으면 이 책은 런던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될수도 있을 듯 싶다. 여하튼, 런던을 사랑하고 서점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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