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마지막 서점
매들린 마틴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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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런던의 마지막 서점이

세상에 보내는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

책을 좋아하다 보면 서점까지 좋아지고 그러다보면 북카페라던가 북캠프같은 것에도 관심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책이 있는 공간은 로망어린 공간일뿐, 어렸을 땐 만화방 주인이 꿈이었다가 지금은 서점 주인이 꿈이라해도 꿈은 꿈일 뿐 현실이 되기엔 너무나 멀고먼 것이기에 서점이야기를 책으로 읽는 것으로라도 위안삼고는 한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인 런던의 그것도 마지막 서점이라니, 어떤 이야기일지 몽글몽글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소설 초반에 '여기에 더해 어깨에 걸친 방독면 상자까지 챙기느라 자세도 엉거주춤했다. 그 무시무시한 물건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혹시 일어날지 모를 가스 공작에 대비해 어디를 가든 챙겨야 했다. (p. 10)' 라는 문장에서 문득 <라스트 세션>이라는 연극이 떠올랐다. 2차세계대전 중 런던에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났다는 가정에 따른 연극이었는데 그때 젊은 청년이었던 루이스의 허리춤에 방독면 가방이 달려 있었다. 연극을 볼땐 그닥 중요한 소품이라고 생각지 않았었는데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으며 같은 소품을 만나고 보니 깨알재미가 다시 느껴지는 듯 했다. 여하튼 본격적으로 소설에 들어가보자.

시작은 1939년 8월의 영국 런던에서다. 2차대전의 포화가 런던을 덮치기 직전인 이 시기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런던으로 상경한 두 아가씨가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런던의 화려함을 동경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레임에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패딩턴역에 내려섰던 두 아가씨 비브와 그레이스.

"6개월 동안 일을 하고 적절한 추천서를 받을 만한 곳이 하나 있기는 해" (p. 24)

"서점이야"

그레이스는 찌르르하게 올라오는 실망감을 애써 감추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p. 28)

그레이스 엄마의 절친이었던 웨더포드아주머니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비브와 그레이스. 비브는 헤롯백화점에 점원으로 바로 취직을 했고 추천서가 없었던 그레이스는 웨더포드아주머니의 소개로 서점직원으로 취직을 한다. 6개월만 일하고 추천서를 받게 되면 바로 비브가 일하는 헤롯으로 옮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런던은 예전의 런던이 아니었고 전쟁은 모든 상황을 변화시켰다.

런던은 그들이 예상한 만큼 보석은 아니었다. 스크림 테이프와 두려움이 뒤섞여, 머지않아 일어날 전쟁의 영향 때문인지 생기 넘치던 그레이스도 금세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녀의 반짝이던 얼굴은 모래주머니로 만든 벽 뒤로 숨어 버렸고 영혼도 대피소와 참호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p. 37)

하지만 그레이스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프림로즈 힐 이라는 서점에서의 경험과 서점 주인 에번스 씨와의 인연은 런던이나 전쟁보다 더 그레이스의 삶을 변화시켜 놓게 된다. 특히 서점에서 만난 조지에 의해.

"성함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레이스 베넷이에요"

"저는 조지 앤더슨 입니다. 서점을 어떻게 만들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p. 56)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추천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서점을 개선하겠다는 당신의 의지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책에 대해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어떻게 광고할지 결정하려구요"

"오, 독자의 마음 속으로 다가가고 싶어 하시는 군요, 아주 훌륭해요"

"독서의 가장 좋은 점이 뭐예요?" (p. 101)

그레이스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일단은 좋은 추천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서점직원이 되고자 했다. 한창 고민중을때 만난 조지는 그레이스에게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선물했고 그레이스는 서점 운영과 책에 대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는 그렇게 빨리 소집 명령이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원하고 이틀 만에 그 소식을 듣고 말았다. 조지 앤더슨은 데이트를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많은 유감을 표했고, 가게를 개선시키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 (p. 121)

"나 영국 여성 국방군에 지원할까 해" (p. 134)

"저는 제 의무를 다할 거예요, 엄마. 국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요" (p. 138)

전쟁은 점점더 성큼성큼 가까이오고 있었다. 조지는 공군으로 소집됐고 비브는 여성군에 자원했으며 웨더포드아줌마의 아들인 콜린도 징집됐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모여들고 있었고 그들을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초조속에 런던에 남아 있었다. 그레이스는 비브가 함께 가자는 제안에 고민되기도 했지만 '나는 자네가 서점에서 여태까지 해 준 일에 감사하고 있네. 그래서 여기에서 계속 일할지 여부를 고려해 주었으면 해 (p. 180)' 라는 에번스씨의 제안에 런던에 남기로 마음을 굳힌다. 처음엔 불툭대기만 했던 에번스씨가 붙잡지 않았더라도 서점에 남고 싶은 마음이 이미 커졌던 때였다. 책들을 읽으며 책이 보여주는 세상에 푸욱 빠져있던 때였다. 하지만 전쟁터에 직접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 평화롭고 안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야, 베넷 양. 자네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고. 그래, 이런 혼돈의 상황에서 카페는 약탈당할 수 있어. 하지만 불에 타 버리지는 않았잖아. 자네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 그래도 자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계속해 나가게." (p. 229)

밤이면 밤마다 독일폭격기들이 런던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수많은 건물이 불탔다. 때로는 무너진 상점이 약탈되기도 했고 적군국적의 이웃이 공격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폭탄이 휩쓸고 간 자리는 너무나 참혹했다. 야간공습감시원으로 봉사하면서 그레이스는 험한 장면을 너무나 많이 목격해야 했다. 그때마다 에번스씨는 훌륭한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자신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사라져가는 책을 구해오고 지켜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럼 계속 읽어요"

그레이스가 주저했다.

"그러니까... 읽어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패링턴 역의 플랫폼에 있던 모든 이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레이스를 바라보았다. (p. 268)

여느날처럼 공습을 피해 지하철역에 모여있던 때 그레이스는 책을 읽었다. 옆사람이 무엇을 읽고 있냐고 묻기에 대강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레이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뒷내용은 아직 읽지않아서 모르겠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그레이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뒤로 공습이 있을 때마다 그레이스는 사람들에게 책을 낭독해주기 시작한다.

거룩한 자들이 축복을 내리던 거리에는 지옥이 내려왔다. 화염 속에서 숨이 막힐 듯한 연기 기둥이 뿜어져 나왔고 타 버린 책의 낱장들은 잔해가 어지러이 널린 거리 위에 흩어졌는데, 그 모습이 마치 뜯겨 나간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 같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대화재로 거리는 빨갛게 번쩍거렸지만 그래도 몇몇 건물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었다. 건물 주인들이 지붕 위에 화재 감시인을 두고 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서점에는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불쏘시개처럼 마른 책들이 가득했다. (p. 362)

"제발 낭독회를 그만두지 말아주세요. 이곳은 런던에 마지막으로 남은 서점이에요" (p. 432)

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런던은 갈수록 폐허가 되고 있었다. 서점또한 폭탄을 피해갈 수는 없었으며 사람들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폐허속의 서점은 어떻게 될까? 그레이스의 삶은 어떻게 될까? 소중한 사람들은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처절한 전쟁과 그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희망에 대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과 나무 한그루를 심겠다는 말은 공감되지 않을지라도 내일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책읽기는 멈추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엔 공감하게 될 것이다.

ps. 런던을 배경으로 영국작가가 쓴 소설이라서인지 소설의 곳곳에서 런던에 대한 자부심과 런던시민에 대한 자긍심이 과하게 넘쳐나는 것이 간혹 부담스러울때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평소와 다른 공동체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으로 넘기며 읽으면 이 책은 런던에 대한 새로운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 될수도 있을 듯 싶다. 여하튼, 런던을 사랑하고 서점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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