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자들 3 - 사회 발견자들 3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이경희 옮김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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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세상 전체는 여전히 아메리카와 같다.

인간 지식의 지도 위에 지금까지 쓰인 가장 기대되는 말은

'미지의 영역 terra incognita' 이다.

나는 여전히 공교육의 힘을 믿고 EBS의 질을 믿는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EBS BOOKS에서 나오는 책들이 좋다. 더구나 깔끔한 표지와 과장된 추천문구 하나 없는 것까지 딱 내스타일이다.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자한자 빼놓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고 한문장한문장 그냥 넘길 수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 이들의 시간에는 비할바 못되는 어려움이었기에 그저 감사하고 감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갔다.

본 도서의 원서는 1권으로 구성되었으나 한국어판은 3권으로 나누어 출간합니다. (p. 14)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러두기>에서 알려준 것을 보니 이 책의 원서는 상당한 두께였을 것 같다. 한국어판의 3권을 합하면 천페이지가 족히 넘는 분량이고 저자의 이력을 보니 그동안 펴낸 책들또한 대단해보였다. 저자의 내공에 시작부터 살짝 압도되는 기분이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위대한 발견자들이다. 지금 우리가 서양의 지식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 즉 시간의 전망, 육지와 바다, 천체와 인체, 식물과 동물, 과거와 현재의 인간 사회와 역사 등은 무수한 콜럼버스 같은 존재들이 우리를 위해 펼쳐 놓은 것이다. 과거의 깊숙한 곳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역사의 빛으로 나타나, 인간의 본성만큼 다양한 인물로 등장한다. 새로운 발견은 위대한 발견자들이 우리에게 펼쳐 놓은 새로운 세계들처럼 예측할 수 없는 개개인의 일대기 속 이야기들이 된다. (p. 15) 이 책에는 발견의 필수적인 도구가 된 몇 가지 중요한 발명들, 예컨대 시계, 나침반, 망원경, 현미경, 인쇄기와 주조 활자 등에 관한 이야기만 담았다. 정부의 형성, 전쟁, 제국의 흥망성쇠 등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중략) 문화의 연대기도 싣지 않았다.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인류가 알아야 할 필요성에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연대순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부적으로는 서로 겹치도록 배열되어 있다. 고대에서 현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15부가 각각 연대순으로 앞부분과 겹친다. (p. 16) 이 책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세상 전체는 여전히 아메리카와 같다. 인간 지식의 지도 위에 지금까지 쓰인 가장 기대되는 말은 '미지의 영역terra incognita' 이다. (p. 17) -독자에게 전하는 글 中-

이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인물열전으로 읽힌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위인전처럼 읽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중요했던 발견들에 집중하다 보면 그 발견을 한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인물에게서 영향을 받은 다른 인물들이 나오고 그렇게 하나의 사회 이야기로 한 시대의 이야기로 읽혀지는 책이다. 따라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끝이 없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새로운 발견은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술을 만들어 낸 사람은 다재다능한 그리스의 서정시인 케오스의 시모니데스(기원전 550~468?)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시를 지어 최초의 대가를 받은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자신의 기억술로도 유명한 키케로의 웅변술에 관한 저서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p. 24)

한 권의 책이 3권으로 나눠졌다는데 3권만 읽고 있는 나로서는 연대기순으로 쓰여진 책을 중간부터 읽게되는 기분이 들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발견자들>의 1권이나 2권을 읽지않고 3권만 읽는 것임에도 전혀 끊어진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매 주제마다 늘 과거부터 서술되는데 고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다가 뒤로 갈수록 그 시대가 현대에 가까워짐으로써 시간이 왔다갔다했다기 보다는 '중첩'된 서술이 어떤 자연스러운 독해를 도와주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고대의 모든 지식은 구전이었다. 그 바탕에는 기억술이 중요했고 기억술은 인쇄술이 확산되면서 쇠퇴해갔다.

인쇄술이 안착되기까지는 언어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했다. 서양에서 학문적 언어로 자리잡은 것은 라틴어였다. '중세 유럽의 라틴 문화는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트(480?~543?)의 의욕과 열정과 분별력이 없었더라면 거의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베네딕트는 또한 도서관의 창설자이기도 했다. (p. 42)'

성 베네딕트가 중세에 필사본의 수호성인이었다면 샤를마뉴(742~814)는 속세의 필사본 후원자였다. 매우 유능한 통치자가 또한 기록에도 헌신했다는 사실은 서구 문명의 다행스러운 우연이었다. (p. 48) 샤를마뉴가 촉발시킨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는 라틴 르네상스였다. (p. 49) 샤를마뉴 제국의 다른 기념비가 허물어진 훨씬 후에도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의 페이지에는 잘 만들어진 글씨의 위력이라는 생생한 유물이 남아 있다. 오늘날 로마자라고 부르는 문자는 사실 앨퀸의 알파벳이다. (p. 52)

기억술에서 인쇄술로 바로 넘어갈 것 같던 내용은 중세역사에서 필사본과 알파벳의 생성에 잠시 머문다. 그리고나서 '인쇄'라는 영역으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도 바로 구텐베르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동양과 서양에서 서로 달랐던 인쇄술의 발달과정이 설명되고 이 부분에서는 한반도의 역사도 잠시 등장한다. 다른 영역에서는 몰라도 인쇄 영역에서만큼은 한반도가 선진기술의 역사처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서야 구텐베르크를 등장시킨다. 구텐베르크에 대해서도 그가 단순히 '인쇄'라는 기술적 영역의 선구자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뚝심있는 예술가로서의 면면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기존에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적 발견들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던 것이다.

뒤의 내용들도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서술된다. 인쇄술이 나왔으니 인쇄물이 설명되어야 할테고 인쇄물은 당연히 책이지만 책을 소개하기 전에 언어의 변천을 소개하고 책의 외형적 발달을 안내한 후 서적이 어떻게 지식을 축적하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동시에 결코 서적으로 지식을 축적하지 않았던 이슬람 역사도 들춰보고 번역과 사전편찬으로 으로 연결되면서 [지식 공동체의 확대]라는 13부가 마무리된다. 간단하게 보자면 '인쇄'라는 주제인데 그 설명을 함에 있어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훑게 하는 저자의 서술이 무척 흥미진진했다.

이어지는 14부-과거를 드러내다 와 15부-현재를 조사하다 역시 인류역사 전체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간단한 하나의 주제로 집약시킬 수 있는 서술은 한 페이지도 놓칠 수 없이 꼼꼼하게 읽어나가게 만들었다. 중첩되면서도 전혀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계속 새롭게 읽혀서 어느 한곳 그냥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14부에서 알수 있는 역사 혹은 역사학의 발달은 다른 학문들의 발달로 자연스레 이어졌고 그렇게 15부에서 다양한 학문의 영역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읽고나면 어느새 현재에 도착해 있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끼는 내 기억으로, 적어도 50여 년 전 내가 처음으로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와 처음으로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에드워드 기번의 저서를 읽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5년 동안 이 책을 집필해 온 개인적인 시간은 내게 기쁨이었다. (p. 413)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라는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냈던 저서들의 목록을 보면 이 책처럼 상당한 깊이가 있는 책이었음이 느껴진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책들과는 또다른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1983년에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게 읽히는 역사 이야기들이었다. 많은 역사책들이 큰 사건들과 소수의 영웅들을 다룬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의 맛은 이 책처럼 그 큰 사건이 있기까지의 발견들과 그 발견들을 발전시켜 나간 잊혀진 다수의 사람들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의 새로운 면을 배우게 되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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