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은 故 유재하의 기일이었다. 1962년에 때어나 1987년에 돌아갔으니 만 25세의 죽음이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뒤 그가 남긴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앨범 한 장뿐이었다. 생전의 그는 무명이었으나 사후의 그는 눈부셨다. 유재하라는 이름은 어느새 ‘요절한 천재‘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음악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그에게 기꺼이 존경을 바쳤다. 그러나 어떤 이도 그를 온전히 되살려내지 못했다. 모든 천재가 그렇듯. 그는 한 세계를 열었고 또 닫았다. 유재하는 ‘유재하‘라는 음악의 기원이자 종언이었다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가듯 떠나듯 이는 제 갈 길을 찾았나.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을.˝ 그의 요절이 이 노래를 더욱 사무치게 한다. 그가 길을 찾자마자 그의 여행은 끝나버렸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스스로 길이 되었다

유재하는 언제나 스물다섯 살 청년의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한다. 고인의 20주기에 <사랑하기 때문에>를 다시 듣는다. 이 곡의 도입부 35초를 이 세상의 어떤 음악과도 바꿀 생각이 없다. 아. 이것은 20년 전의 음악이다.
음악은 진보하지 않는다

(200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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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2-2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움악은 진보하지 않는다라고 하니깐 생각 나는 게… 제가 올초부터 인스타 릴스를 보기 시작하면서 팝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어요. 저는 저의 십대 시절의 음악 80년대 팝과 락을 좋아하는데.. 마일리 사일러스를 비롯해 그 감성이 묻어있는 것 같아서 다시 팝이 좋아져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유재하, 레코드 남동생집에 있을 것 같은데..저 때만해도 블랙레코드 모은 던 시절이었거든요!!!

나와같다면 2023-02-24 14:51   좋아요 0 | URL
듣는다는 것은 참 보수적인것 같아요

10대 20대 듣던 음악적 감성은 참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는거 같습니다

유재하 LP판은 절판됐고 중고로 30만원 정도로 거래되더라구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도망쳐 떠나온 모든 것들에 바치는 영화입니다. 한때는 삶을 바쳐 지켜내리라 결심했지만 결국 허겁지겁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있다고 할까요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떠나갑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혼자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만의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히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쳐야 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 조제 뒷모습처럼, 종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길

이동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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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애가 자기가 삼만 살이래
왜 자꾸 태어나는지 모르겠다는데,
난 알아.
왜 자꾸 태어나는지,
여기가 집이 아닌데,
자꾸 여기가 집이라고 착각을 한 거야
그래서 자꾸 여기로 오는거야
어떡하면 진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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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독일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의 시구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그래, 환멸 속에서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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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역사가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는 싸움도 해야 한다. 어쩌면 이 세상이 완전한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은 지는 싸움을 해온 사람들 덕분이다. 진 싸움이 만든 역사가 희망을 지켜주었다. 이러한 믿음을 품고 우리는 함께 환멸의 땅을 건너가야 한다. 넘어지고 부서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꿈꾸던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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