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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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은 전 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오리지널 힐링 소설이다. <츠바키 문구점>, <라이온의 간식> 등으로 유명한 작가 오가와 이토의 대표작이 12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특유의 맑고 깊은 시선으로 상처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링고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집은 텅 비었다. 3년을 같이 살던 남자 친구가 전 재산과 가재도구를 챙겨서 사라져 버렸다. 충격이 컷던 탓인지 목소리마저 잃어버렸다. 실어증에 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링고는 십 년 전 열다섯에 가출한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을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집을 나와 외할머니 집에서 하숙하며 튀르키예 음식점에서 일을 했다. 할머니가 남겨준 겨된장항아리를 안고서 고향으로 온 것이다.

 

엄마가 경영하는 작은 술집 아무르와 창고, 밭 등이 있는데 엄마의 남자 친구 네오콘의 소유였다. 엄마는 언제나 아무르에서 교태를 부리며 손님을 상대하느라 바빴다. 돼지 엘메스를 돌보는 조건으로 식비, 난방비, 월세 등은 별도로 내야 한다. 엄마 집 창고를 빌려서 식당을 열기로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복도에서 울고 있는 링고를 구마 씨가 직원실로 데려가 냄비안에서 자는 동면쥐를 보여 주었다. 구마 씨는 식당 개업 준비에 착수하였고 일련의 준비를 지원해 주었다. 열두 시 정각에 우는 부엉이 영감의 소리를 듣다가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달팽이 식당이라 정했다.

 

달팽이 식당은 손님을 하루에 한 팀만 받는 조금 색다른 식당이다. 재료는 미리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 본 후 영감으로 정한다. 개업 준비를 도와 준 답례로 구마 씨가 먹고 싶다는 카레를 만들었다. 집을 나간 아르헨티나 아내와 딸이 잠시 집에 다녀갔다는 것이다.

 

다음 손님은 몇십 년 상복을 입고 지내는 할머니를 위해 메뉴를 생각했다. 세상에 닫혀 버린 마음의 눈을 부디 떠 주기를 바람으로 요리를 했고 할머니는 엄청난 양의 풀코스 메뉴를 전부 먹었다. 며칠 후, 상복만 고집하던 할머니가 일상복을 입고 외출하고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소문을 듣고 젊은이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농사 후계자와 선생님의 맞선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계절 야채로 만든 주 뗌므 수프는 식당의 간판 메뉴가 됐다.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에서 부엌에 서야 해.”p205

 

고즈에는 거식증 걸린 토끼를 구해주라고 한다. 링고는 하루 동안 토끼를 돌봐준다고 약속하였고 먹기를 거부하던 토끼가 비스킷을 먹었다. 링고가 마음을 담아 만든 음식을 사람이나 동물이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의 도피를 해 마을에 왔다는 남자 커플에게 호숫가 방갈로까지 배달하기도 했다. 링고는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다.

 

내게 요리란 기도 그 자체다. 엄마와 슈이치 씨의 영원한 사랑을 비는 기도이고, 몸을 바친 엘메스에게 감사의 기도이고, 요리를 만드는 행복을 베풀어 준 요리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기도 했다.p245~246

 

달팽이 식당은 동면 시기를 맞았다.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 하나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고, 엄마가 링고를 사랑했다는 것과 첫사랑과 재회했다는 고백을 듣게 되었다. 엄마가 암에 걸렸고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하며, 담당 의사가 첫사랑 슈 선배였다. 엄마의 결혼 준비를 하며 피로연을 링고에게 부탁을 했다. 애지중지 기르던 엘메스에게 미안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돼지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마지막 효도가 돼 버렸다.

 

엄마가 떠나고 달팽이 식당은 쉬고 있다. 집의 수호신인 부영이 영감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세상에, 거기 있는 것은 진짜 부엉이가 아니라 부엉이 모양의 자명종 시계였다. 시계 안에는 엄마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네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엄마는 살아갈 수 없었다. 남자 친구에게 차인 게 뭐 대수라고! 씩씩한 딸이니까. 가슴을 더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살아라고 하였다.

 

모든 일이 해결된 것 같아 보이는데, 후회는 가시처럼 목에 걸린 채 내려가지 않았다.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창문에 떨어진 비둘기를 발견한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비둘기를 구어서 와인을 한모금 입에 넣은 순간 오, 맛있어, 목소리가 나왔다. 그후 링고는 요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먹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요리를 만들자고 다짐한다[달팽이 식당]은 저자가 혼을 담아 쓴 소설이라고 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고단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줄 다정한 문장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힐링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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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 함께 우는 존재 여섯 빛깔 무당 이야기
홍칼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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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만나러 갑니다]의 저자는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지향 3년 차 무당이다. 무당도 연애하나요? 무당도 노래방에 가나요? 무당은 자기 전에 뭘 하나요? 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무당으로서 무당을 직접 인터뷰하기로 하였고 무당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들으면서 평소에 느낀 궁금증이 많이 풀렸고, 무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새롭게 배우면서 이 책이 나온 것이다.

 

고 김금화 만신의 조카이자 제자혜경궁 김혜경

손님과 함께 울어주며 사회문제를 공부하는 무당무무

DIY와 미싱을 좋아하는 트랜스젠더 무당예원당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무당솔무니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는 시각장애인 무당송윤하

무당의 자활을 돕는 MZ세대 무당가피 등 여섯 명을 소개하였다.

저자는 인도에서 일본의 부토춤을 추다가 접신하고 신내림을 받았다. 한국에서 내림굿을 했으니 전통적인 무당이기도 하지만, 이름이칼리(힌두교의 신 이름)’인 만큼 내 정체성에는 여러 종교가 섞여 있다고 한다.

 

무당은 잘 안 되는 집을 더 많이 빌어줘야 하고, 잘될 때까지 계속 빌어주는 역할을 한다. 무당도 힘들 때가 있는데 어디 가서 치유를 받는가? 물음에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는 산 기도를 간다. 어릴 때부터 무당인 고모가 작두 타는 것을 보고, 난 무당 되면 죽어야지, 생각했는데 일찍 결혼하고 신의 풍파가 삶을 흔들기 시작했고 애가 아프면서 어쩔 수 없이 무당이 돼었다. 무당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무는 무당이란 함께 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함께 우는 일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함께 울 일이 없어지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사회가 쉽지는 않다고 말한다. 커밍아웃은 평생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내 정체성을 알려야 하니까. 비슷한 맥락에서, 무밍아웃을 처음 해보니까 반응이 어떨지, 어떤 반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의 데이터가 전혀 없어서 두려웠다. 끝없는 공부가 필요한 직업 옷이 오히려 종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튜브 채널 예원당은 트랜스젠더 무당이라고 소개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도 어려운데, 무당이기까지 하다니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 무당이 된 후에 부모님과 멀어지겠구나 싶었는데 부모님이 정체성도 알고 있어 인정받으면서 살았다. 성소수자에게 해줄 말은 당당하게 살아라. 우리나라 퀴어들 눈치 좀 안 봤으면 좋겠다. 남 눈치를 자꾸 보니까 실수를 한다고 말한다. 무당은 희생하는 사람, 대가를 바라면 안 되는 사람, 목숨을 내놓고 사는 사람 그래야만 살 수 있단다.

 

대동굿판을 여는 무당 솔무니는 2008, 열여덟 살 때 생애 처음으로 굿판에 참여했다. 대동이 크게 하나가 된다라는 뜻으로 모든 사람이 대동굿판에서 축제처럼 신분 성별 나이 다 내려놓고 사회를 정화하는 에너지를 하나로 엮는다. 무당의 시각으로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책을 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욕망도 있고 이제까지 해온 작업을 돌아보고 적립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송윤하 선생님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경계를 해체하며 만물과 교감하는 분이다. 직업으로 사람의 몸을 만지다 보니까 깨달았는데, 마음이 아프면 그게 몸에 드러난다고 했다. 죽음처럼 푹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른 공간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보통 기도하고 책 읽고 사람 만나고 다시 책 읽고, 거의 책 읽는 게 시작이고 끝이다.

 

가피는 노래하는 사람, 은퇴한 무당, 은퇴한 스님이다. 무당의 자활을 도우면서 유튜브 채널 행운 멘토 나비쌤에서 기도와 운세 영상을 공유하고, 사람들이 자기 안의 신을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상담과 교육을 진행한다. 무당은 영성을 추구하는 명상이나 요가처럼 마음을 본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상담을 통해서 상대방을 바꾸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변화가 일시적이어서 근본을 들여다보게 됐다.

 

이 책에는 무당 개개인의 정과 기가 담긴 괴로움과 기쁨을 기록했다. 샤머니즘과 무당에 대한 편견을 벗길 수 있는 안내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 영적인 것, 혁명과 영성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실천서가 되면 좋겠다고 전한다. 책을 읽으면서 홍칼리, 예원당, 나비쌤 유튜브를 찾아서 봤다. 무당의 삶에 대해서, 손님으로서 마주하는 무당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무당을 만나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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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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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는 앨러산드라 토레의 서스펜스에 대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픈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 책은 주인공 헬레나 로스와 대필 작가의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15권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말할 수 없었던 어두운 비밀이 드러난다.

 

헬레나 로스는 32살로 암 말기 진단과 함께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녀가 죽기 전엔 쓰려고 미뤄두었던 마지막 소설은 더 이상은 미룰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다. 자신을 도와 줄 누군가 필요했다. 13년을 함께 일해 온 케이트에게 대필 작가를 찾아주라고 한다. 헬레나가 그토록 쓰고 싶어 하는 지난 4년간 비밀로 간직해 온 그날의 기억은 무엇일까?

 

4년 전, 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었다. 인생 최고의 거짓 이야기를 꾸며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타고난 능력이 아니던가. 샬럿 블랜튼이라는 여자가 몇 가지 남편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고 하였다. 경찰에게 모두 진술 했고, 질문 수백 개에 답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라니. 관심 없다.

 

대필 작가를 7년 전쟁의 상대 마르카 반틀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진실을 담은 신랄한 이메일을 보내왔던 것이다. 헬레나 책이 끔찍하다는, 밋밋하고 지루하며, 인물들의 로맨스가 설득력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여자인 줄 알았던 대필 작가가 남자인 마크 포춘이었다. 원래 비대면으로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이 남자 목소리가 말도 못하게 다정하다. 나이는 50대 초반, 아내가 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크가 3년이 걸려 쓴 로맨스를 편집자들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읽은 헬레나가 마크 편집자에게 소설의 결점들을 써서 이메일을 보냈고, 계약은 취소됐고 출간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마크는 물불 안 가리고 여러 장르들을 썼고, 성애물이 그 중 성공한 장르였다. 그렇게 마르카 반틀리가 태어났다. 헬레나를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는데 증오심에서 이메일을 보냈고 7년 동안 마크의 글을 발전시켰다.

 

헬레나는 자신이 괴물이었던 날이 있었다. 마크는 얼마 후면 그 진실을 짊어져야 할 것이다. 그 비밀을 품고 무덤까지 가야 할 것이다. 지금 그가 알고 있는 것은 헬레나가 가족을 잃었다는 것이 전부다. 어떻게 잃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마크가 키우던 소 마터의 출산이 앞당겨져서 헬레나와 같이 가자고 한다. 멤피스의 9월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였다. 그의 경비행기는 작았고 출발 전에 먹은 항불안제도 무력화시킬 정도의 강력한 공포감이다. 그곳에서 바이크를 타자고 하면서 카르페 디엠헬레나를 외친다. ‘오늘을 즐긴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지만 도전정신이 헬레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헬레나는 평범한 일상을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는데 이것이 행복일까 생각했다. 마크는 그녀의 삶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사람을 못 믿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헬레나는 멍청한 임신과 맛간 호르몬 때문에 전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정신과 의사인 엄마가 부적격 엄마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딸을 사랑했다. 그 일이 일어난 날, 우연히 파일을 발견하고 사이먼이 소아성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하는 데 중독된 사람이었다. 가끔 새벽에 남편이 영상을 보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 영혼을 다해 사이먼을 증오한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죽었고 내가 그를 죽였으므로.. 반전에 소름이 돋는다. 마크는 그녀의 마지막 삶을 함께하며 어두운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끝났다. 나의 이야기. 시작부터 끝까지. 지난 6주 동안 그것을 말할 수 없을 거라고, 그 날로, 그 끔찍한 순간들로 다시 걸어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이제야 모두 끝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p383

 

그녀의 마지막 소설 [말할 수 없던 이야기]는 끝이 났다. 헬레나는 비탄과 죄책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그 동기를 설명하고 싶어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과업을 도와줘서 고맙고 우정에 감사하고 당신의 글에 감사한다. 내가 떠난 후 정리를 해주게 될 것에 정말 감사하다고 마크에게 편지를 남긴다. 헬레나 로스 (1984~2017)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이 허구를 가장한 실제 인물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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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
강한수 지음 / 파람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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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당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성당이 세워지다 보면 시대별로 건축적인 특색을 띠게 되는 건축 양식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제이다. 신학교에 가기 전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외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현재 본당 사목과 함께 건축신학연구소를 맡고 있으면서 의정부교구 주보에 연재한 것들을 재정리한 것이다.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을 차지하기 전부터 로마는 그들의 로망이었고, 로마를 건축물과 미술품에 담아냈다. 성당 건축이 프레-로마네스크에서 로마네스크로 발전되고 자연스럽게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로마네스크는 로마풍의 건축양식을 말하며,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건축된 서유럽의 성당들이 대부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고대 로마 제국의 공공건물을 발전시킨 바실리카 양식과 중세 고딕 양식 사이의 건축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코어 기둥의 네 면에 대응 기둥이 덧붙여진 형태의 기둥과 아케이드와 갤러리의 벽체는 그 두께가 상당하여 로마네스크 성당이 갖는 물질성을 드러내고 있고, 한 가지 로마네스크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수평성이다.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로마 제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유럽은 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카롤루스 대제 이후 왕국은 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로 분열되었고, 유럽은 다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카롤링거 왕조의 전통과 영광을 잇고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새로운 건축술을 개발하여 성당을 건립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건축술을 바탕으로 대형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술의 석조 둥근 천장 대신 경량의 목조 평면 천장이 트러스 형태로 설치하는 것을 선택했다.

 

라인란트 상류 지역의 대표적인 독일 초기 로마네스크 성당은 제1 슈파이어 대성당으로, 프랑스 남부의초기 로마네스크 성당인 클루니 수도원 성당과 견줄만한 위상을 갖추고 있다. 1 슈파이어 대성당은 3랑식 바실리카 평면으로 되어있다. 라인란트 하류 지역의 트리어 대성당은 트란셉트가 발달하지 않았고 네이브나 아일의 베이가 일정하지 않아 평면의 모듈화를 이루지 못했다.

 

프랑스의 로마네스크가 수직성을, 독일의 로마네스크는 수직성과 수평성을, 영국 로마네스크는 건물의 무게감을, 이탈리아 로마네스크는 고전주의를 강조한다. 3 클루니 수도원 성당은 규모 면에서 당대 최대의 성당이었다.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클뤼니가 가지고 있는 위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평면은 바실리카형을 기본으로 이중의 아일을 갖는 5랑식이며, 네이브는 11베이에 이르렀다. 트란셉트도 두 개를 가지고 있었고, 앱스와 트란셉트의 동쪽면에 일련의 소성당들이 둘러있다.




3 클뤼니 성당은 보편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종교적인 면이 강했던 반면, 2 슈파이어 성당은 지역 교회 차원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많이 띠었다. 두 성당 사이에 공통점도 있었는데 각각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종합한 것과 그 결과로 모두 대형화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로마네스크는 알프스 이북의 로마네스크에 비해서 로마 고전주의와의 연속성이 훨씬 깊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네이브월을 구성하는 아치, 오더, 볼트 등의 요소들과 바실리카에서 발전한 라틴 크로스 평면 역시 로마 고전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탈리아 로마네스크는 로마네스크의 고전주의라 말할 수 있다.

 

건축이나 성당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책에 나오는 건축물의 화려함과 웅장함이 아름답다. 저자는 잡초만이 들어서 있던 성당부지에 성당을 지었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현장에서 일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성당에 담긴 이야기는 감동이다. 이 책은 성당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될 것이며 성지 순례나 유럽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성당의 건축 양식과 구조, 역사적 맥락과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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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높다란 그리움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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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높다란 그리움]은 이상훈 저자가 서재를 정리하다 빛바랜 공책 몇 권이 담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세상사에 덜 여문 탓도 있으려니와 스스로 감정의 늪에 발을 디뎠던 일도 없지 않다.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시라고 하였다. 그 안에 담긴 길게는 50년이 지난 몇 권의 노트에 담긴 시편들을 가려 뽑고, 거기에 근작 몇 편을 보탠 것이다.

 

저자의 첫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재 드라마와 뮤지컬로 제작 중이다. <제명공주>도 드라마 계약을 마쳤으며, 소설 <김의 나라>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고향생각] 1, 2권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시는 인생의 대변자로서, 삶의 증거자로서 저자와 함께 할 것이라고 적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다>

어릴 때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고향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고향보다 더 큰 세상이 있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가르쳐줬습니다

(중략)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요

위대한 성인들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니까요

백사장 모래 한 톨보다 못한 지구에서

우주보다 큰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텅 빈 세상에 외칩니다

내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다p17



 

어느 사진작가는 말한다. 인생은 줌아웃으로 살아야 한다. 줌인하면 모르는 것들이 줌아웃하면 다 보인다고 했다. 멀리서 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가끔은 게으름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고 말한다. 몸의 게으름이 아니라 생각의 게으름이라고 한다.

 

소풍 가기 전날, 운동회가 있는 날, 첫사랑과 데이트 하던 날, 첫 출근 하는 날, 첫 해외여행을 가던 날, 결혼하는 날, 첫아이를 만나던 날, 잠 못이루거나 마음 졸이던 순간들이 있다. 오늘 같이 추운 날은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운 한때는 추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하얀 눈이 하얀 머리에 쌓인다>

하얗게 덮인 시골길을

눈을 맞으며 걸어간다

온 세상이 하얗다

내 머리도 하얗다

내가 눈이 되고

눈이 내가 된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은

눈을 닮았기 때문이다

눈의 외로움과 눈의 추억

하얀 머리는 눈을 닮아 어여쁘다

하얀 머리에 떨어진 하얀 눈이

눈물과 함께 떨어진다.p82





초겨울 까치를 위해 홍시를 남기는 농부의 마음이 넉넉하다. 하얀 눈 속에 남아 있는 빨간 홍시처럼 작은 사랑을 남기는 일이다. 누군가 보고 싶을 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별이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엄마를 닮아 갈 것이다. 목소리, 외모, 솜씨까지 닮는다.

 

아랫목 밥그릇이란 시에는 세 개의 밥그릇이 누워있었다. 한 그릇은 할머니를 위해 한 그릇은 입시공부로 늦게 들어오는 형님을 위해 마지막 한 그릇은 귀가가 늦은 아버지를 위해서다.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이불 속에 뛰어들다 밥그릇을 뒤집어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랫목에 밥그릇 그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할머니가 서른여덟에 혼자가 되셨고, 일찍 가신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할머니를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나이 서른여덟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할머니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나도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뿌듯하고 기쁘기도 하고 나를 닮은 모습이 신기하기도 할 것 같다.

 

[아주 높다란 그리움]은 한 두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몇 편씩 읽었다. 열심히 살다가도 세상이 부질없음이 느껴질 때가 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시를 읽으며 오랜만에 고향을 떠올리며 내 젊은날을 되새기게 해준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대부분이 청춘의 시편들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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