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숨 특서 청소년문학 31
오미경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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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숨]은 일제강점기 제주 하도리를 배경으로 어린 해녀 영등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상군 해녀를 꿈꾸는 어린 영등은 바다에서 삶을 배우고, 해녀 삼촌들과 함께 울고 웃고 연대한다. 책의 앞페이지는 소설의 배경 하도리를 지도에 넣었고 영등의 일기를 통해 제주어 매력을 담아냈다.

 

할망처럼 상군 해녀가 되는 게 꿈인 영등은 줄줄이 딸린 세 명의 동생들과 물질하는 할망, 육지로 돈 벌러 간 아빠가 있다. 연화, 춘자와 바다에서 놀 때가 좋았는데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는다. 삼촌들도 영등이 야무지다고 칭찬했다. 어느 날 할망이 물숨을 먹고 돌아가시고 동생들을 돌보며 물질을 나서고 학교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모슬포에서 흉흉한 소문이 넘어왔다. 일본이 사람들을 동원해 땅굴을 판다거나 비행기 창고를 만든다는 둥 남의 농토에 전쟁 기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산호 가지를 셋으로 잘라 하나씩 나눠준 뒤 연화, 영등, 춘자, 세 동무의 우정을 평생 함께 할 것을 맹세했다. 물질이 없는 날 영등은 춘자네 농사를 거들었다. 야학에서 한글과 산술, 한자 기초적인 것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영등은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공부에 대한 열망을 눌러버렸는데 가슴이 뛰었다.

 

육지 물질은 잘만 하면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어서 동생에게 살림을 맡기고 삼촌들과 배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병이 잦은 어멍을 대신 집안 살림을 맡은 순덕은 영등과 닮은 게 많았다.해파리에 쏘인 순덕이 이틀 후 돌고래에게 변을 당하고 말았다. 임신한 배선이 삼촌은 배에서 아기를 낳았다. 어린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것도 일본이 조선을 삼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영등은 야학강습소에서 권리, 의무, 자유 같은 말들을 배워나갈 땐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글자를 익히자 세상이 영등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영등은 삼촌들에게 물질에 관한 것과 삶의 지혜, 풍습에 관해 모든 것을 배웠다. 가끔 물숨 먹은 곳으로 가서 몇 번 숨비고 나오라고 했다. 영등의 숨비소리에 바다가 붉었다. 딴 살림을 차린 아빠에게 실망하고 돌아왔을 때 강오규 선생님은 말했다. ‘두려움이 없으면 성장도 없는 법, 성장 없는 사람이란 죽음과도 같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넌 강하니까 반드시 이겨낼 수 있어.’ 그중에 죽음이란 말이 유독 가슴에 박혔고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상인의 횡포를 막기는커녕 방관하는 해녀조합에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집회를 열어 연설을 했다. 시위대가 끌려가게 되었고 옥순이 삼촌과 강오규 선생님은 순사가 물으면 자신들이 시켜서 했다고 말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고 말했기에 채찍을 치고, 고문을 받았다. 몸은 풀려나왔지만 다른 고문이 영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에 뛰어 들고 싶었다. 바다는 숨통이었고 눈물 나도록 바다가 그리웠던 것이다. 영등은 오사카, 대마도, 다롄, 블라디보스토크, 칭다오를 가서 물질을 했다. 옥순이 삼촌은 오사카로 떠났다. 감시가 심하여 수시로 주재소로 불러냈고 하루의 일과를 보고케 했다.

 

[푸른 숨]은 고된 삶에도 서로의 아픔을 아는 친구와 삼촌들이 있었다. 해녀들의 숨의 노래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챕터마다 제목에 제주 방언들은 읽기 어려웠는데 영등의 일기에 풀이가 되어 있다. 저자는 소설을 쓰는 내내 질문 하나가 있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다. 영등의 삶을 그리면서 그 질문이 수시로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제주, 바다에서 숨값을 치르며 살아가는 해녀들의 아름다운 공존을 담은 이야기는 새롭고 감명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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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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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실존 인물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1850년대 오리건 트레일을 배경으로 한 서부 이주에 관한 역사소설이다. 긴장감과 시련들이 가득찬 서부 이주의 고난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랑과 생존에 관한 이야기면서 두려움에 맞서는 사람들의 스토리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스무살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나오미와 백인 아버지와 포니 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존 라우리는 서부 이주 행렬에서 만났다. 존은 어느 쪽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고 두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두 발이었다. 애벗이 이끄는 이주에 보조를 맡게 되었다. 나오미 가족은 물론 시댁 식구였던 대니얼 가족도 함께였다. 애벗에게 마흔 가족이 계약을 했고, 가능한 한 고통 없이 캘리포니아까지 갈 수 있도록 돈을 지불했다.

 

존 라우리는 포니 족 여성과 백인 남성 사이에 태어나, 서부로 이주해 1850년대에 유타에 정착했었던, 실재했던 인물이며, 저자의 남편 5대 조부님이다. 와샤키 추장은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영토를 보유했던 몇 안 되는 원주민 추장 중 한 명이었다. 두 명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은 이 책을 다 쓰고 난 후, 저자는 두 사람 모두를 마치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2천 마일에 걸쳐, 평야와 산과 강과 계곡을 가로지르며 땅 위에 바퀴 자국과 발자국으로 다져 놓은 길은 미주리 강 유역에 위치한 열 몇 곳의 출발 지점에서 시작되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역에 있는 신록의 협곡들까지 이어져 있었다.p63

 

존이 아카아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포니족이긴 하지만 백인이라고 생각한다. 제니는 애벗 씨와 남매지간이고 제니가 자신을 길러주었다고 말했다. 존이 싸움을 잘해서 올바르게 행동할 줄 알게 될 때까지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오탁타이에게 맡겨 칼 쓰는 솜씨와 격투를 배우게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나오미는 존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고 트릭을 타고 가면서 공책에 그림을 그렸다. 엄마는 아기를 낳았고 울프라는 이름을 지었다. 콜레라에 부모를 잃은 아이가 생기고 아내를 잃은 아저씨, 오빠의 아내도 죽었다. 존에게 자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결혼해주라고 말한다. 존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지만 나오미를 좋아하게 된다. 제니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통 말이다. 견딜 가치가 있는 거야.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아픈 법이다. 하지만 견딜 만한 가치가 있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게 바로 사랑이야.p256


마차와 트릭을 이용해 강을 건너다가 폭풍이 찾아왔고 마차의 바퀴들은 말뚝에 고정하고 동물들은 울타리 안으로 몰아넣었지만 사람들은 계속 이동하고 싶은 의지를 상실했다. 존이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노새들이 사라졌다. 존은 노새를 찾아서 서쪽으로 출발했다. 어머니 마을 포니족 전사들이 노새들을 발견했고 댓가로 노새를 요구하기도 했다. 브리저 요새에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존의 가족과 함께 지낸 적이 있던 아나를 만났다. 하나비라는 이름으로 쇼쇼니 족 와샤키 추장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하나비는 막내 동생 울프에게 젖을 먹일 수 있게 해주었다.

 

존과 와이엇이 먼저 길을 떠나고 나오미 부모와 오빠, 빙엄씨 가족들의 마차가 쇼쇼니 족의 습격을 받아 끔찍한 죽음을 당한다. 마차는 불태우고 죽은 사람의 머리 가죽을 가져갔다고 했다. 나오미와 울프는 납치를 당했다. 윌과 웨브는 숨어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프롤로그에 가족들이 죽게 된 상황이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존은 쇼쇼니 족인 와샤키의 도움으로 원주민의 대집회에 가게 되었지만 순순히 나오미와 울프를 돌려주지 않고 내기를 걸어왔다. 나오미를 끌고 간 남자 매귀치와 결투를 벌였고 매귀치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나오미와 그녀의 그림 가방도 돌려받았다. 그러나 윌이 활을 가지고 놀다가 사고로 비아귀의 형제를 죽였기 때문에 울프는 줄 수 없다고 했다. 나오미의 엄마는 존을 만나기 전에 꿈을 꾸었고 원주민 여자가 울프에게 젖을 먹이는 꿈도 꾸셨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아셨던 것이다.

 

마치 함께 길을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은 콜레라, 폭풍우, 원주민의 공격 등으로 고난과 두려움,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험난한 여정에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화합과 우정, 사랑, 희망을 전하는 역사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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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고전 - 날마다 내공이 쌓이는 고전 일력 365
이상민 지음 / 라이온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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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고전]50여 권의 동양고전에서 건져 올린 주옥같은 지혜와 통찰을 고전 문장의 원문과 해석이 있고 저자의 해석을 더하여 읽으면 귀에 쏙 들어온다. 매일 아침 5, 고전으로 하루를 시작해보자. 저자는 5천 권의 독서와 4천 편의 다큐멘터리 섭렵을 바탕으로 20권의 책을 출판한 16년 차 전업작가. 유로저널을 통해 유럽 19개국에 한국 대표 청년작가로 소개되었으며, 그동안 쓴 책들 중 2권이 종합 베스트셀러 5위에 진입하였다. 이상민책쓰기연구소에서 책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룬 동양고전이다. <논어, 맹자, 사기, 좌전, 근사록, 노자, 장자, 손자, 한비자, 오자, 회남자, 채근담, 관자, 묵자, 순자, 십팔사략, 송명신언행록, 공자가어, 대학, 소학, 중용, 예기, 효경, 충경, 시경, 서경, 역경, 당시선, 삼체시, 고시원, 문장궤범, 고문진보, 한서, 진서, 당서, 전국책, 여람, 열자, 울료자, 안자, 여론어, 전등록, 초목자, 통속편, 송시기사, 고시, 홍루몽, 위문제, 조터감구시> 제목을 쓰고 보니 절반 정도는 처음 들어보는 책이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공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반드시 원인이 있다. 개인의 성공도 그렇다. 성공은 멀리 있지 않으니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 모든 것에는 해야 할 가 있다. 그때를 부지런하게 보내지 않으면 다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공부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일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그 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독서를 많이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하기만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책을 읽되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잡힌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습관을 만드는 법은 일단은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 시간에 일어나고, 책상에 앉으면 일어나지 않고, 그 시간에 밥 먹고 그 시간에 운동하는 걸 6개월 정도 그냥 하는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대한 호기심과 열의를 가지고 치열함과 느슨함을 병행하면 된다. 때로는 치열하게 책을 읽고, 대화하고, 숙고해야 한다. 때로는 느슨하게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야 한다. 독서에는 인문학이 많은 도움이 된다. 문 사 철은 세상과 인간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다.

 

사람이 너그럽기만 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된다. 사람이 엄하기만 하면 주위에 사람이 없게 된다. 그러나 너그러워야만 사람이 따르고, 엄해야만 규율이 선다. 사람은 너그럽되 엄해야 한다. 이중적인 면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생은 얼마나 양극단을 자유자재로 잘 조화시키느냐로 훌륭함이 결정된다. 본바탕은 너그러움을 간직하되 때로는 엄함을 드러내야만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은 자신이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실패했다면서 어리광을 부려봤자 소용없다. 시기와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내가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온다면, 주의의 말을 듣지 말고 자신의 길을 뱃심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인생의 모든 일은 자로 잰 듯이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긍정하며 오늘을 소중히 살아야 한다. 모든 걱정은 지우고, 사람도 용서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며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문제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해결책을 얻는 것은 역시 고전이다. 직장인들에게 삶의 성찰의 기회를, 사업가들에게는 문제해결의 통찰력을, 주부에게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 힘을, 학생에게는 공부할 지혜를 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날마다 내공이 쌓이고 고전 일력으로 필사를 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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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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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는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에 이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첫 번째책이다. 한국인 이야기의 바탕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물음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둘러싼 하늘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하면 먼저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구약성경>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란 하늘을 뜻한다.

 

판단이라는 글자 자체에도 나타나 있듯이 판()이란 칼로 반을 자른다는 뜻이다. 칼은 붓보다 언제나 분명하다. 붓으로 싸우는 선비들의 승부는 칼로 싸우는 무사(武士)들보다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천지인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철학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불행에 좌절하지 않는 희망이다. 희망이 있으면 나에게 나도 몰랐던 재능이 생겨날 수 있다. 희망은 절망을 몰아내지만 희망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내 것이냐, 네 것이냐를 따지는 소유의 희망은 가짜 희망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총을 쏘아 죽인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영웅이다. 어떻게 해야 안중근 의사가 위대해질까? 국가주의를 넘어 그보다 더 높은곳에서 말을 해야 한다. 일본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인도주의에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영웅이 아니라 세계 인류에 대한 폭력을 막은 사람,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는 일본인과 맞서 싸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이미 코앞의 죽음을 목도한 도스토옙스키는 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사형수들은 형장에서 죽기 전에 예외 없이 하늘 한 번 쳐다보고땅 한 번 쳐다보고 죽는다고 한다.

 

윤동주 <서시>에서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버티고 싸운다. 윤동주는 그 안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올라갔다. 하늘에 올라가면 역사를 포함하고 점점 위로 올라가면 땅이 보이고 지구가 보이고, 쭈욱 올라가서 별을 노래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다. <서시>를 일제에 대한 저항시라고 했을 때는 정치적 레벨에서 읽은 것이다. 국가의 개념을 털어내고 인간 레벨의 문제로만 읽었을 때는 휴머니즘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서시>는 저항시, 인간주의시, 종교시 3개 층위로 읽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뜻은 천지인이다.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애, 인간애, 우주애 말이다. 이처럼 하늘, , 사람으로 나눠놓으면 놀랍게도 이 시가 금세 보인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을 가장하여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이별을 상상하면서 이별을 통해 오늘의 반대되는 상황으로 오늘의 내가 누리고 있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패러독스 아이러니 수법이라고 한다. 다시 <서시>로 돌아가서 잎새에 이는 바람인데, 그 바람이 지금은 하늘의 별에 스치고있다. 모든 것을 시들게 하고 죽게 하는 바람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별에 스치면 영원까지 간다. 윤동주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야겠다라고 말할 때의 그 길은 풀잎에서부터 별까지 가는 것이다.

 

대중문화 시대에는 유명 연예인들을 뜻하는 스타가 되기도 하고 21세기의 별은 군인의 별도, 단순한 무비 스타인 할리우드의 별도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서양이나 동양에서 이제는 꿈의 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 기업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IT혁명을 한마디로 설명하려면 그것은 꿈을 만들어 내는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되어야 값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달나라에 계수나무로 지은 초가삼간처럼 우리는 가상공간의 메타버스 속에서 집을 짓고 그림도 걸고 방도 만들고 손님도 맞을 수 있다. 꿈 산업, 별 산업의 자원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그 꿈속에서 퍼 올리는 자원으로 만들어진다.

 

지도가 없던 시대, 유일한 지도는 별자리였다. 길잡이들은 어두운 밤, 빛나는 별을 보며 길을 재촉했다. 별이 지도가 되던 시절, 인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윤동주도 별을 헤며 시를 썼을 것이다. 시인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죽는 날까지 부끄러움이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별을 보고 하늘을 보는 여러분이 시인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는 말이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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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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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옆에 둔 스승 이어령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을 묻는 애잔한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답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가 인터뷰의 핵심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선생님은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한다. 어둠의 손목을 쥐고서 말이야.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은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 있다. 생명의 중심은 비어 있다. 다른 기관들은 바쁘게 일하지만 오직 배꼽만이 태연하게 비어 있어. 비어서 웃고 있지.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았고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재미없으면 던져버리고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그 기나긴 [카라마조프이 형제들]도 세 번을 읽었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작가나 예술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야. 도덕자나 지식자가 아니라네. 감추고 싶은 인간의 욕망, 속마음을 광장으로 끌어내 노출시키는 사림들이지. 왜 주사 맞을 때 고개 안 돌리고 똑바로 쳐다보는 사람 있지? 독한 사람이잖아. 바늘 들어가는 거 보는 사람, 심지어 그 장면과 느낌을 묘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예술가가 됀다. 지독한 인간들이지.

 

저자는 기자로서 선생님을 만나는 일과 묘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돌아갔다. 의문을 가지고 쓴 칼럼에 스승의 의견을 듣는 일은 즐겁기도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선생은 내가 죽거든 책을 내게라고 말해서 놀라게 하곤 했다. 라스트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 땅에 남은자들의 가슴을 적셔줄 잠언에 가까운 카운슬링의 언어를 들려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인터뷰어의 통제를 벗어났고, 그 예측불허의 확장성으로 덮여 있던 이불을 들추고, 그 안의 낯선 세계를, 세계의 민낯을 현미경처럼 비췄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는 인터뷰라니. 과히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스승에게 강렬하게 끌리는 이유라고 했다.

 

글을 쓸 때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관계가 생긴다. 행복은 완벽한 글 하나를 쓰는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지. 그러니까 계속 쓰는 것이고.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은 실패한 글이라네.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라고 했다.

 

이 시대는 핏방울도 땀방울도 아니고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 눈물 한 방울은 디지로그나 생명자본과 궁극적으로 같은 말이다. 눈물은 소리가 없는데도 우리말은 재밌게도 뚝뚝 흘린다고 해. 유명한 농담이 있는데 홍도야 울지 마라를 한 글자로 줄이면 뭐지? ‘!’이다.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기가 막힌 것이 돈이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교환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숨 쉬는 것도 식물과의 교환이다. 우리는 탄소를 내뱉고 식물은 산소를 내뱉는다. 핵심 교환은 세 가지인데 피의 교환과 언어교환, 돈의 교환이다. 돈의 교환을 통해 생산과 소비와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터뷰는 봄에서 초여름으로 이어졌고 코로나 시국이 길어질수록 세상 사람들은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을 일상의 언어로 감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온라인 교실과 줌 화면으로 모여 회의도 하고 회식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공연도 보며 조금씩 디지로그 생활에 정착해 갔다. 뱀 한 마리가 있다고 치면 어디서부터가 꼬리인가? 10센티 정도 끝부분이 꼬리인가요? 뱀은 전체가 꼬리야. 연속체지. 그게 아날로그일세. 뱀이 아날로그면 디지털은 도마뱀이다. 도마뱀은 꼬리를 끊고 도망가니까 정확히 꼬리의 경계가 있다.

 

가족들과 서로 오해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서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가 하면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그때 고맙다고 할걸..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다저자는 마지막을 써내려가는 이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꽃 한 송이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령이라는 스승을 만나기 위해 평생 기자로 살고 작가가 되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읽기를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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