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높다란 그리움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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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높다란 그리움]은 이상훈 저자가 서재를 정리하다 빛바랜 공책 몇 권이 담긴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세상사에 덜 여문 탓도 있으려니와 스스로 감정의 늪에 발을 디뎠던 일도 없지 않다.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놓은 시라고 하였다. 그 안에 담긴 길게는 50년이 지난 몇 권의 노트에 담긴 시편들을 가려 뽑고, 거기에 근작 몇 편을 보탠 것이다.

 

저자의 첫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재 드라마와 뮤지컬로 제작 중이다. <제명공주>도 드라마 계약을 마쳤으며, 소설 <김의 나라>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했다. [고향생각] 1, 2권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시는 인생의 대변자로서, 삶의 증거자로서 저자와 함께 할 것이라고 적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다>

어릴 때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고향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고향보다 더 큰 세상이 있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가르쳐줬습니다

(중략)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요

위대한 성인들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니까요

백사장 모래 한 톨보다 못한 지구에서

우주보다 큰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텅 빈 세상에 외칩니다

내가 세상의 시작이고 끝이다p17



 

어느 사진작가는 말한다. 인생은 줌아웃으로 살아야 한다. 줌인하면 모르는 것들이 줌아웃하면 다 보인다고 했다. 멀리서 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가끔은 게으름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고 말한다. 몸의 게으름이 아니라 생각의 게으름이라고 한다.

 

소풍 가기 전날, 운동회가 있는 날, 첫사랑과 데이트 하던 날, 첫 출근 하는 날, 첫 해외여행을 가던 날, 결혼하는 날, 첫아이를 만나던 날, 잠 못이루거나 마음 졸이던 순간들이 있다. 오늘 같이 추운 날은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운 한때는 추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하얀 눈이 하얀 머리에 쌓인다>

하얗게 덮인 시골길을

눈을 맞으며 걸어간다

온 세상이 하얗다

내 머리도 하얗다

내가 눈이 되고

눈이 내가 된다

머리가 하얘지는 것은

눈을 닮았기 때문이다

눈의 외로움과 눈의 추억

하얀 머리는 눈을 닮아 어여쁘다

하얀 머리에 떨어진 하얀 눈이

눈물과 함께 떨어진다.p82





초겨울 까치를 위해 홍시를 남기는 농부의 마음이 넉넉하다. 하얀 눈 속에 남아 있는 빨간 홍시처럼 작은 사랑을 남기는 일이다. 누군가 보고 싶을 때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별이 그리움이 되어 내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엄마를 닮아 갈 것이다. 목소리, 외모, 솜씨까지 닮는다.

 

아랫목 밥그릇이란 시에는 세 개의 밥그릇이 누워있었다. 한 그릇은 할머니를 위해 한 그릇은 입시공부로 늦게 들어오는 형님을 위해 마지막 한 그릇은 귀가가 늦은 아버지를 위해서다.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이불 속에 뛰어들다 밥그릇을 뒤집어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랫목에 밥그릇 그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할머니가 서른여덟에 혼자가 되셨고, 일찍 가신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할머니를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나이 서른여덟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할머니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 태어나고 나도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뿌듯하고 기쁘기도 하고 나를 닮은 모습이 신기하기도 할 것 같다.

 

[아주 높다란 그리움]은 한 두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몇 편씩 읽었다. 열심히 살다가도 세상이 부질없음이 느껴질 때가 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시를 읽으며 오랜만에 고향을 떠올리며 내 젊은날을 되새기게 해준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대부분이 청춘의 시편들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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