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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지도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평점 :
[별의 지도]는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에 이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첫 번째책이다. 한국인 이야기의 바탕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물음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를 둘러싼 ‘하늘’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별’하면 먼저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구약성경>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란 하늘을 뜻한다.
판단이라는 글자 자체에도 나타나 있듯이 판(判)이란 칼로 반을 자른다는 뜻이다. 칼은 붓보다 언제나 분명하다. 붓으로 싸우는 선비들의 승부는 칼로 싸우는 무사(武士)들보다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천지인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철학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불행에 좌절하지 않는 희망이다. 희망이 있으면 나에게 나도 몰랐던 재능이 생겨날 수 있다. 희망은 절망을 몰아내지만 희망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이다. ‘내 것이냐, 네 것이냐’를 따지는 소유의 희망은 가짜 희망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총을 쏘아 죽인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영웅이다. 어떻게 해야 안중근 의사가 위대해질까? 국가주의를 넘어 그보다 더 높은곳에서 말을 해야 한다. 일본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인도주의에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중근 의사는 우리의 영웅이 아니라 세계 인류에 대한 폭력을 막은 사람,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는 일본인과 맞서 싸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미 코앞의 죽음을 목도한 도스토옙스키는 “생生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사형수들은 형장에서 죽기 전에 예외 없이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땅 한 번 쳐다보고 죽는다고 한다.
윤동주 <서시>에서 사람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버티고 싸운다. 윤동주는 그 안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올라갔다. 하늘에 올라가면 역사를 포함하고 점점 위로 올라가면 땅이 보이고 지구가 보이고, 쭈욱 올라가서 별을 노래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다. <서시>를 일제에 대한 저항시라고 했을 때는 정치적 레벨에서 읽은 것이다. 국가의 개념을 털어내고 인간 레벨의 문제로만 읽었을 때는 휴머니즘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서시>는 저항시, 인간주의시, 종교시 3개 층위로 읽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뜻은 천지인이다.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애, 인간애, 우주애 말이다. 이처럼 하늘, 땅, 사람으로 나눠놓으면 놀랍게도 이 시가 금세 보인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을 가장하여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이별을 상상하면서 이별을 통해 오늘의 반대되는 상황으로 오늘의 내가 누리고 있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패러독스 아이러니 수법이라고 한다. 다시 <서시>로 돌아가서 ‘잎새에 이는 바람’인데, 그 바람이 지금은 ‘하늘의 별에 스치고’있다. 모든 것을 시들게 하고 죽게 하는 바람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별에 스치면 영원까지 간다. 윤동주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야겠다’라고 말할 때의 그 길은 풀잎에서부터 별까지 가는 것이다.
대중문화 시대에는 유명 연예인들을 뜻하는 ‘스타’가 되기도 하고 21세기의 별은 군인의 별도, 단순한 무비 스타인 할리우드의 별도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서양이나 동양에서 이제는 꿈의 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 기업’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IT혁명을 한마디로 설명하려면 그것은 꿈을 만들어 내는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되어야 값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달나라에 계수나무로 지은 초가삼간처럼 우리는 가상공간의 메타버스 속에서 집을 짓고 그림도 걸고 방도 만들고 손님도 맞을 수 있다. 꿈 산업, 별 산업의 자원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그 꿈속에서 퍼 올리는 자원으로 만들어진다.
지도가 없던 시대, 유일한 지도는 별자리였다. 길잡이들은 어두운 밤, 빛나는 별을 보며 길을 재촉했다. 별이 지도가 되던 시절, 인간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윤동주도 별을 헤며 시를 썼을 것이다. 시인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죽는 날까지 부끄러움이 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별을 보고 하늘을 보는 여러분이 시인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는 말이 감동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