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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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처럼 긴 시차를 두고 도착한 애틋한 화홰

 

주인공 해미는 1994년 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었다. 딸을 잃은 부모님의 사이가 멀어졌고 엄마는 신학을 공부한다며 독일로 유학을 가자고 했다. 아빠는 부산으로 가고 엄마와 여동생 해나와 셋이 이모가 사는 독일로 향했다. 아마도 서로 싸우는 것보다 떨어져 있는 것이 나았으리라. 딸을 잃은 부모로 기억되는 동네에서 멀리 떠날 계기가 필요했겠지 이해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체념이 필요했다. 독일에서 새로 사귄 친구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하였고 한국의 친구들에게 독일 생활이 행복하다고 적었다. 이모는 간호조무사로 나중엔 의사가 되었고 일해서 보내준 돈으로 대학을 나오고 결혼자금을 마련한 엄마가 품고 살았을 미안한 마음 같은 것에 대해 이해했다.

 

이모는 레나와 한수를 소개해주었다. 레나 엄마 마리아 이모와 한수 엄마 선자 이모는 이모처럼 파독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한수는 엄마의 첫사랑에게 편지를 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자 이모는 뇌종양을 앓고 있는데 기억을 잃어버리기 전에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아주려는 것이었다.

G시에 사는 파독간호사 이모들은 진짜 자매는 아니지만 마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처럼 결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수는 광부 출신 아빠가 한국으로 가버려 원망했다. 선자 이모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K.H 라는 사람이 첫사랑이 아닐까 추측을 하게 되었다. 선자 이모와 가까운 사람들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찾아갈 순서를 정하려고 비밀 노트에 적어 나갔다. 파독간호사가 등장하는 연애소설을 쓰기 위해 조사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졌다.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 겨울까지 독일에서 살았다. 엄마가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아빠가 있는 부산에서 살게 되었다. 한수가 엄마 첫사랑을 찾는데 진전이 있는지 물어왔다.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한수에게 그 사람이 선자 이모를 아주 그리워하고 있고 아프다는 소식에 무척 슬프다며 울먹였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결혼해서 가정도 있고, 직장 때문에 지금은 불가능해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해미가 직접 편지를 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 후, 레나와 한수의 연락을 끊었고, 다른 인간관계의 만남을 자제하였다.

 

세월이 흘러 대학동기 우재와 사진전에서 우연히 재회하였다. 동아리에서 만나 몇 번의 우연과 엇갈림 끝에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고, 각자 연애를 하는 동안엔 서로에게 멀어졌다가 한쪽 연애가 끝나면 다시 애달파지는 그런 사이로 변해갔었다. 해미가 만약 글을 쓴다면 이모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p306

 

20년이 지나서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우재는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지만 해미는 우재에게서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리고 선자 이모 이야기를 떠올렸다. 추적해서 찾아간 곳, 그 사람의 정체는(?) 반전이었다. 해미는 K.H라는 이름을 도용해 거짓 편지를 쓰고 모두와 연락을 끊었다는 이야기에 가까워질수록 참담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밀어냈다. 동생에게 오랫동안 나만 괴로운 줄 알았다고 사과했다. 해나는 언니,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한수를 구원해주고 싶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과연 내가 구원하고 싶었던 건 정말 한수였을까? 어릴 적 언니를 잃은 자신을 다독이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내 생각이다. 우재와 해미 나이도 들어가는데 아름다운 사랑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기대를 해본다. 이 소설은 힘든 가운데서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만든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지? 나는 지금 막 도착했어.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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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천개산 패밀리 1~2 세트 - 전2권 특서 어린이문학
박현숙 지음, 길개 그림 / 특서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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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동화 쓰기를 좋아하는 어른, 박현숙 작가가 쓴 천개산 들개와 인간의 공존, 진정한 반려의 이야기 [천개산 패밀리] 1, 2권이 나왔다. 저자는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에게 쫓기는 개들을 봤고, 들개가 되어 마을로 내려와 가축을 해치고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했다. 덩치가 작은 개가 눈에 들어왔고 어떻게 산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 소설을 쓰면서 천개산 패밀리가 사람과 함께 뛰어노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천개산 산66번지에 대장, 번개, 바다, 미소, 얼룩이 다섯 마리가 같이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험한 산속에 조난을 당한 인간이 나타났고 벼랑에서 떨어질까봐 개들이 걱정하고 있다.

얼룩이~개 농장에서 탈출한 개. 이름이 없어서 천개산 들개들이 얼룩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오른쪽 앞다리 한쪽을 쓰지 못한다.

바다~주인이 산속에 버리고 간 강아지. 하지만 자신은 버려진 게 아니라 길을 잃은 것뿐이라고 우긴다.

미소~똥 더미 위에 묶여 있다가 대장과 번개가 구출해주었다. 천개산에 나타난 조난당한 사람이 이상하게 낯이 익다.

번개~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빈 동네에 버리고 가 버렸다, 진돗개라는 자부심이 크다.

대장~검은 털에 파란 눈을 가진 용감한 대장. 어디에서 왔는지,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난당한 사람에게 개들이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저리 가라고 소리쳤다. 그렇다고 산 밑으로 내려가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행동은 금지라고 했다. 천개산 산66번지를 들킬 수도 있어 모두 헤어지게 될 것이다.

 

굴 창고에 개들의 먹을 어묵과 햇반이 없어졌다. 모두 대장을 의심을 했다. 번개와 대장이 그 일로 다투게 되었고 번개가 굴을 나가버렸다. 얼룩이가 그 사람에게 족발 두 개를 물고 다가가니 들개야 라고 불렀다. 품종을 말하는 것인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도로 가져가서 먹으라고 했다.

 

마지막 햇반을 바다가 가지고 나갔는데 왜 그랬느냐고 따졌다. 바다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가면 되지 않느냐며 뛰쳐나갔다. 얼룩이는 바다를 찾아 나서면서 떠돌이 개 파도를 만나게 되었다.침을 질질 흘리는 누런 개와 같은 편은 아닌가 물었다. 자기가 이 동네의 대장인 줄 알고 있다고 했다. 파도에게 품종을 물어보았다. 파도는 떠돌이 개이고 사람들에게 버려져서 산으로 들어가 사는 개들을 들개라고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얼룩이가 분식집 튀김 쟁반을 향해 뛰어 오르다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바다는 자기가 산을 내려와서 다쳤다며 울먹였다. 바다가 그 사람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준 이유가 밝혀졌다. 미소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는데 자기가 묶여 있을 때 먹을 걸 딱 한 번 준 사람이었다. 함께 먹을 음식을 가져다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중얼거린 것을 바다가 들었고 미소 대신 해준 것이었다.

 

산 밑으로 내려온 바다는 주인 차와 같은 차를 발견하고, 주인인 줄 착각하고 차에 뛰어 들었다. 그런 바다를 구하려다 얼룩이가 차에 튕겨나가고 말았다. 얼룩이는 바다에게 너는 주인에게 버려진 게 아닐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바다는 얼룩이에게 용감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산속에 헬기가 떴고 조난당한 그 사람을 구조해갔다. 천개산에서 시내로 접어들기 직전에 작은 동네 사는 사람이었다. 전원주택이라고 예쁜 집이 몇 채 있는 마을에 사람들이 공동으로 닭과 오리를 키운다. 얼마 전부터 밤마다 닭과 오리들이 납치되고 있단다. 사람들은 들개들의 짓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파도가 말해주었다. 혹시 굴을 떠난 번개의 소행이 아닌가 대장과 개들은 의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산으로 들어 올 것이고 아지트를 떠나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누런 개의 거짓말에 속아 대장이 닭장에 갇히게 되었다. 대장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파도가 말하는 소문 속 전설의 검은 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천개산 패밀리]는 웃음과 눈물이 있다. 속임수에도 깊은 우정이 남아 있는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29장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버려진 상처와 아픔 속에서 서로 위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동화는 아이들에게 재미와 교훈을 선사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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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출구 있음 YOU TURN - 힐링닥터 사공정규의 유턴 처방전
사공정규 지음 / 가디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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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013<문장 작가상>을 수상한 등단작가이다.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의사의 소명으로 의료봉사를 했다. 이 책은 34년 동안 정신과 진료·상담, 1,000여 회의 정신치유 인문학적 스토리텔링 강연으로 수십만 명의 삶을 변화시킨 힐링닥터의 힐링처방전이다.

 

진료실을 찾는 사람 가운데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는 분들이다. 트라우마는 잊혀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스스로든 타인으로부터든 비난, 경멸, 조롱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마음이 우울하고 불안하다면 불행하다는 시그널이니 지금 U턴해야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비난에 크게 상처받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 부정성편향 때문인데 칭찬보다 비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좋은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이 더 강하고 오래 남고,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에 더 신경이 쓰인다. 인간관계는 가까울수록 더 신경 쓰고 아껴야 한다. 가까울수록 장점을 말하고 존중하고 칭찬해야 한다.

 

살다 보면 세상 일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삶이 힘들 때 우리는 남이나 주위 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남 탓을 하는 것을 정신의학적으로 투사라고 한다. 정신치료도 자기 문제를 남이나 외부로 투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비추어보게 해준다.

 

대구에서 의료봉사로 진료를 할 때 자살 사고로 정신과적 응급상태의 환자를 상담하러 갔다. 방호복을 입고 있던 저자가 탈수된 상태가 되었다. 진심이 통했는지 환자가 말을 했다. 선생님도 힘드신데 직접 찾아와 상담해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 후 치료 잘 받고 퇴원한 환자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 진료를 받고 약을 먹듯, 마음의 감기라 불리는 우울증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전문적인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우울증은 치료된다.

 

시집와서 시어머니에게 호되게 당했던 시집살이 이야기하며 펑펑 울었던 상담자는 자신이 며느리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사이에 자신을 괴롭히던 공격하고 싫어했던 시어머니를 닮아간다. 이것을 공격자와의 동일시라고 한다.

 

누군가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슬퍼해주기는 쉬운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잘되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준다면 성공한 사람들을 가까이 둘 수 있고, 그 기운으로 노하우를 얻고 운을 얻고 복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적개심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해방시켜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증오에서 나 자신이 해방되는 일이다. 무조건 참고 용서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와 가까운 사람부터, 작은 것부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연습해봐야 한다.

 

항상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인생의 기본값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고통이 완화되면, 혹은 잠깐이라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하루 중 몇 번 이라도 소소하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매사에 감사하라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의 생활은 불행해지고, 감사하는 이들의 생활은 행복해진다. 가까운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더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당연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감사함을 방해하는 것이다. 부부이거나 가족이기에 감사하다는 말이 더욱 필요하다. 이웃에게도 더불어 사는 이들에게 모두에게도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부가 정말로 일심동체가 되려면, 부부가 이심이체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행복하게 살길 바랄 것이다. 우리 자녀에게 꼭 필요한 교육은 아마도 마음근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뭔가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뇌가 우리에게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지금 당장 U_TURN 하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을 알고 있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정신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가 우리들의 인생을 행복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마음 출구의 뱡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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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 노화와 질병 사이에서 품격을 지키는 법
헨리 마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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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것은 암과 죽음, 고통이 주는 두려움이다. 이 책은 40년이 넘도록 의사로 살았던 저자가 암환자가 되고 죽음 앞에서 삶을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삶의 끝에서 가장 나다움을 되찾는 법,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이면서 저자의 노력을 담은 이야기다.

 

저자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지 섬세한 문필가다. 신경외과를 선택한 것은 수련의 시절 유연히 보게 된 뇌수술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들의 뇌스캔 연구에 자원하던 참에 MRI 스캔을 통해 본인의 뇌가 궁금했다. 뇌스캔 검사를 받고 20개월 후 전립선암 4기를 진단받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은퇴를 하고 70세에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완전히 잊고 지냈던 수많은 환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은퇴한 후와 코로나19 전까지 네팔과 우크라이나에서 일을 했다. 친구 데브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몇 주 근무하면서 아들 윌리엄과 히말라야산맥을 오르기도 했다. 데브는 담관암을 앓았는데, 저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죽을 때 그처럼 위엄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의사들처럼 친절하고 인정 있는 의사였다고 생각했지만 암을 진단받고 나서야 환자와 의사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의사들이 얼마나 환자가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저자는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신보다 실력이 있는 동료에게 환자를 보내야 할 때, 코로나19가 시작되어 손녀들에게 줄 인형 집을 만들면서 느끼는 감정들이라고 했다.

 

25년 동안 간헐적으로 전립선 증상을 겪었는데 창피한 마음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방치한 것이 중증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다. 의사로서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서 죽길 바랐던 적이 있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몇 가지 긍정적인 깨달음도 얻었다.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는 성공적인 삶이라고 느꼈다.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하게 지낸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현재 내 삶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항상 또 다른 파도가 다가왔다. 환자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기다림이다. 외래 환자 대기실에서, 예약 날짜, 각종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누군들 그렇겠는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노쇠하고 싶지도 않다. 과거에는 70대에 죽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노화를 막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역노화 연구가 자리 잡았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수명을 연장한다는 개념이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면에 있는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견을 극복해야만 한다. 저자는 지나온 삶을 노화와 질병의 경험 등 존엄한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인터넷에서 내가 진단받은 병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매우 불행해지기 쉽다. 정보가 유용할 때도 많지만, 희망을 주는 인정 있는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꼭 의사가 나를 낫게 해줄 거라는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해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암과 내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달리기와 비슷하다.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고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시련을 견디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잠시 멈추어 휴식을 취하고 걷기도 하며 주변 풍경을 감사하는 법도 배우며 깨닫는다.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정말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의사로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았고 죽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했다.

 

이 책은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이 꼭 한번 생각해야 할 존엄한 화두, 죽음을 맞이할 때 필요한 지혜란 무엇인가. 노화와 질병 사이에서 어떻게 품격을 지킬 것인가. 가장 나다운 마무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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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백영옥 지음 / 나무의철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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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 넘쳐도 좋아요]의 백영옥 작가의 산문집을 대출하였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이후 출간하여 10년 만의 재출간 되었다. 작가의 이십 대와 삼십 대 시절 삶을 다양하게 쓴 따뜻하고 다정한 문장들이다.

 

저자는 10년 전쯤의 책이니 원고를 고치며 10년의 세월을 통과한 몸과 마음, 특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은 많은 걸 바꾼다. 한결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세월을 그대로 관통해 몸과 마음에 진한 삶의 무늬가 새겨진 사람도 있다. 살아보니 변해서 좋은 때도 있고,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경우도 있다. 청춘은 돌이키고 싶은 과거가 아니다. 노안 때문에 책 읽기가 다소 불편해지고, 오래 앉아 있으면 좌골 신경통에 다리가 저릿하다고 한다. 작가의 이런 말들이 참 좋다.

 

서른아홉, 저자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프로필을 가장 먼저 본다. 책 한 권을 읽는 일상적인 방법의 시작이다. 남들은 성공이라고 부르는 어떤 실패에 대해서, 간간이 흐르는 침묵을 참지 못해 주워 담지 못할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혼자 살거나 결혼한 여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조건 남이 해준 집밥, 남편이 아니라 아내와 결혼하고 싶다는 내 친구들의 마음은 그런 거 아닐까. 요즘은 간편식도 많이 생겼지만 집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니까

 

소설가가 된 후 가장 많이 먹은 건 주먹밥이다. 마감이 많고 시간이 없는 날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길을 걷다가 삼각김밥을 먹으며 걷는 사람을 마주치면 저 사람은 아주 바쁘고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구나 친근한 마음마저 든다고 했다. ‘리브로는 기묘하게 엉뚱하고 사랑스런 직장이었다. 책 읽고 리뷰만 쓰면 월급을 주는 회사가 존재하다니. 그곳에 작가들이 많았다. 창피할 것도 없이 신춘문예를 비롯한 문학 공모전에 참 많이 떨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된 사건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저자는 동생과 여행 중이었다. 백화점이 사라진 자리에 큰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가 죽음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을 때 윤대녕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어떤 소설을 꺼내 들고 문장들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작가가 된 후에 겪은 작은 기적 중 하나는 좋아하는 책을 쓴 사람과 친구가 되거나 선후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와 함께 고속터미널 근처 극장에서 <인어공주>를 봤다. 엄마가 영화를 보고 싶다고 전화했을 때 나는 분명 야근 핑계를 댔던 것 같지만, 오랜만에 모녀는 극장 주변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작가님도 내 딸처럼 자상한 딸인거 같다. 친구랑 볼때도 많지만 이런 영화는 엄마가 좋아하겠지 먼저 물어보는 딸이어서 좋다.

 

서른여덟에 읽은 <안나 카레니나>이렇게 사는게 나쁘다!’라는 답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가?’라는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던져주었다. 13년간 신춘문예에 낙방했던 저자가 거짓말처럼 등단한 건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난 후였다.

 

제주도는 오랫동안 저자에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관광특구였다. 시간을 더 낸다면 렌트카를 타고 바닷길을 따라 민속촌, 여미지 식물원, 테디베어 박물관이나 용머리 해안, 성산포 같은 정해진 코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제주는 올레 전과 올레 후로 나뉜다. 제주 올레가 열린 후, 섬의 구석구석을 걷기 시작했다. 제주의 속살은 분명 걸어야만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여행자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본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을 먹는다. 돼지국수나 갈칫국, 보말 비빔밥과 돔베고기 같은 음식들. 올레를 걸으며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걷는 여행이 울퉁불퉁해진 삶을 위로한다는 걸 아는 나이의 여자들이었다.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언제나 백발이 성성해진 허리 굽은 노인의 모습과 함께 시작된다. 곱게 늙은 노인의 얼굴이 담긴 사진 프레임을 상상하면서, 나는 스스로의 죽음을 준비하는 어른의 삶이란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를 통해 나의 젊은 날을 회상하게 되고, 곧 닥칠 나의 노년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천천히 정리하고 싶어진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채로 기억한다. 떠나간 것은 떠나간 대로 추억한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새로 산 운동화의 끈을 단단히 묶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은 지나간 청춘을 보내며 조금씩 배워가는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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