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집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나경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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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동화집이다. 다른 작업하다가 어린이용 편역본이 아닌 완역본으로 안데르센 동화내용을 확인해볼 일이 생겨서 읽었다. 유명한 이야기 외에 처음 읽는 이야기도 여러 편 있어, 완역본이 궁금한 독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어른이 읽어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화작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 여행작가이기도 했다. 당대에는 디킨스나 하이네, 위고 등과 나란히 거론되던 대문학가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아래와 같다.

 

황제 폐하의 새 옷(그러니까 벌거벗은 임금님), 눈의 여왕: 일곱 편의 이야기가 전하는 동화, 공주님과 완두콩, 나이팅게일, 못생긴 새끼 오리(미운 오리 새끼), 인어공주, 부시통, 백조왕자, 엄지공주, 성냥팔이 소녀, 꿋꿋한 양철 병정, 잠의 요정 올리, 빨간 구두, 그림자, 프시케, 가장 놀라운 일, 어느 어머니의 노래, 빵을 밟은 소녀, 불사조, 집요정과 식료품장수, 치통 아주머니, 하늘을 나는 가방, 상심 ,종소리

 

어릴적 계몽사전집에서 읽고 무서워했던 눈이 둥그런 개들이 나오는 <부싯돌>도, 불꽃놀이의 무서움을 잘 알려준 <하늘을 나는 가방>도,,,, 다들 옛친구처럼 반가왔다. <엄지공주>를 다시 읽으니, 튤립이 필 때마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엄지공주가 들어 있을까봐 설레곤하던 생각이 나서 행복했다. <공주님과 완두콩>을 다시 읽으며, 내가 멍이 잘 드는 이유를 알아내서 기뻤다.

 

이들 중 가장 관심이 가는 동화는 <빨간 구두>이다. 마치 된장녀 허영녀를 공격하는 이야기의 원조같은 이 잔혹동화. 카렌이 나쁜 아이인 것도 알겠고 그런 짓하면 받는 벌도 무서운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내게, 아니 세상의 모든 얌전한 소녀들의 마음 속에, 벌 받아도 욕 먹어도 좋으니 빨간 구두 신고 마음껏 춤추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일까.

 

어느 날 여왕이 어린 딸인 공주를 데리고 시골을 지나 여행을 왔다. 사람들이 성 주위로 몰려들었고, 카렌도 거기 있었다. 어린 공주는 고운 흰 옷을 입고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창가에 서 있었다. 공주에게는 길게 끌리는 옷자락도 없었고 머리에 황금 왕관도 쓰지 않았지만 고급 가죽으로 지은 화려한 빨간 구두를 신고 있었다.

- 252쪽에서 인용 

 

원래 유럽에서 빨간 구두는 황제만이 신을 수 있었다. 서로마, 동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전임 교황 성하가 빨간 구두 신은 사진을 검색해보라). 종교 개혁 이후 루터파 신교 국가가 된 덴마크에서는 사악한 로마교황을 상징하는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없었겠지. 그런데 그렇게도 욕 먹는 빨간 구두를 공주가 신었을 때는 왜 아무도 욕하지 않을까. 게다가 카렌이 신은 구두는 백작이 딸을 위해 주문했다가 치수가 맞지 않아 찾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백작의 영애도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주도 백작의 영애도 아닌 가난한 고아 카렌만 욕 먹는다. 이거 참 이상하다.

 

"춤을 추거라!"그가 카렌에게 말했다. "네가 차갑고 창백하게 될 때까지, 네 피부가 미라처럼 쭈글거릴 때까지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춰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춤을 춰라. 교만하고 허영심 많은 아이가 사는 집마다 문을 두드려 아이들이 네 이야기를 듣고 널 두려워하게 해라! 춤을 춰라! 춤을!"

- 257쪽에서 인용

 

게다가 카렌은 너무 과한 벌을 받는다. 아무래도 이 동화는 여성/약자의 욕망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고 과잉반응을 보인다,,, 고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갈 즈음, <빵을 밟은 소녀>라는 작품을 처음 만났다. 주인공은 가난한 농가집 딸 잉게르. 그녀는 시골 귀족 집에 일하려 간다. 주인집은  잉게르에게 잘 대해 주었다. 옷도 예쁘게 입혀주었다. 잉게르는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다워짐에 따라 점차 허영심이 커졌다. 주인집에서 1년 일한 후 잉게르는 휴가를 받아 집에 간다. 그러나 들에서 일하고 있는 어머니의 남루한 모습을 보고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겨서 돌아선다. 다시 여섯 달 후, 주인집에서는 이번에는 흰빵을 선물로 주며 집에 보낸다. 늪지대를 지나며 잉게르는 구두가 더러워질까 걱정해서 흰빵을 땅바닥에 던지고 징검다리 삼아 밟고 건너가다가 지옥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두고두고 잉게르의 이야기를 하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울고 반성하던 잉게르는 작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 라는 이야기이다.

 

빵을 신성시하여 생긴 유럽의 전설이 바탕이긴 하지만, <빵을 밟은 소녀>는 거의 <빨간 구두>와 비슷하다. 예쁜 구두 탐닉, 허영, 가난한 소녀, 벌,,,, 그런데 이 완역본 전집 전체를 봐도 교만하거나 허영에 들뜬 소년이 과한 벌을 받는 이야기는 없다. 안데르센 자서전을 보면, 세례식에 구두 생각만 했던 자기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자기가 쓴 작품에는 소년이 아니라 소녀로 주인공을 바꾼다. 여기에 없는 소설이지만, <즉흥 시인>을 봐도, 같이 성애에 탐닉하는 실수를 저질러도 청년에 비해 여인이 더 타락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아, 안데르센 선생은 여성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일까? 가난하고 못배운 자신의 과거로 덴마크 상류사회에서 멸시를 받은 사실 때문에, 외모에 신경쓰거나 자기 표현에 솔직한 여성들을 보면 '비뚤어져서' 허영심 많고 비기독교적이라고 공격하게 된 것일까? 

 

선생의 심리나 견해가 어떻든, 이런 이야기가 명작으로 계속 유통되는 이유는 뭘까. 소녀가 벌받기 이전에 욕망추구하는 부분을 우리 어린이/여성/약자 독자들은 더 흥미로워하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아픈 할머니를 간호하지 않고 무도회장에 가는 거, 이거 너무 통쾌하지않나? 우리는 그런 상상만 하고 실행은 못하기때문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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