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대담집이다. 일본의 여성주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임상심리 상담가 노부타 사요코가 2000년대 초반 일본 현실을 기준으로 결혼 제도, 연애, 성, 가정 폭력, 세대 갈등, 경제와 관련한 사회문제에 대해 대담한 내용이다.

 

결혼이 여성을 억압한다,,, 같은 기본적이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도 있고 '사랑 없이도 섹스할 수 있다'라는 낚시성 제목이 달린 장도 있다. 하지만 책은 더 깊다. 둘의 대화는 더 폭넓게 문제의 근원, 미래에 대한 우려까지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결혼 제국'이라는 제목과 출판사의 책 소개글은 책 내용을 다 담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대담은 여성에게 결혼이 필수냐 선택이냐,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비혼 여성의 증가와 노령화가 앞으로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가 핵심인데.  특히 우에노 치즈코의 주전공은 사회학 중에서도 개호(care, 돌봄노동) 쪽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이 대담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주로 논하는 세대는 당시 30대 여성이다. 대담자들은 일본 경제의 혜택을 받아 남녀평등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여 30대가 된 2000년대 일본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과 변화를 그린다. 그 이전 세대 여성들이 결혼제도에 의지하여 노후를 보내던 것과 달리, 이들 비혼 여성들이 나이가 들면 '복지의 하위계급'이 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눈이 번쩍 뜨인다. 안타깝게도, 일본의 사회문제는 늘 10년후 우리나라의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종이나 이민자와의 갈등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공격의 대상이 내부의 적, 즉 복지 하위계급(250쪽)'이 될 수도 있겠구나. (사실 우리나라 보수언론은 지금도 그런 쪽으로 여론을 돌리고 있기는 한데. 왜 내가 낸 세금을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에게 쓰냐! 이런 식의 반응을 유도하면서. )

 

부모를 부양하는 것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부모의 재산을 가지고 먹고 사는 거예요. 요컨대 여자는 남편의 경제력이나 부모의 재정적 여유, 둘 중 어느 쪽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시중을 들거나 부모의 대소변 시중을 들거나 하면서. 그런데 재산도 없고 자식도 없는 독신도 등장하겠죠. 정규직으로 계속 근무하면 연금이 있습니다만, 비정규직으로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파견 근무일 경우에는 노후에 복지의 하위계급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있어요.

- 251쪽에서 인용

 

30대 독신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세대입니다. 이 신자유주의는 '자기 결정, 자기 책임'이 키워드입니다. 페미니즘에서 내세우는 '여성의 자립'도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파악하면 '자기 결정, 자기 책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페미니즘도 신자유주의 사상, 즉 '경쟁에서 이긴 쪽' 여성들의 사상으로 재해석되어버리고 맙니다.

- 253쪽

 

우리 세대에서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여자는 모두 한 덩어리로 차별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쪽에서도 한 덩어리가 돼 연대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해를 공유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어설픈 선택지가 존재하는 탓에, 지혜와 능력을 가진 여자가 그런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는 데가 아니라, 다른 여자들을 따돌리는 데 사용해요. 이런 세상에서 페미니즘이 성립할 리가 없는 거죠.

- 254쪽

 

한 대담자는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즉 이론가이고 한 대담자는 현장에서 직접 많은 사례를 접하며 상담한 현장 활동가이다. 전문가 두 분의 이론과 경험, 관록을 이렇게 쉽게 내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특히 우에노 치즈코(일본에서 열정적인 싸움닭 논객으로 소문난)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 강추한다. 대담이어서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보다 편히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