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4 대산세계문학총서 24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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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권은 요약본 서유기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뤄지는 중심 사건들이 다 모여있다. 손오공은 황포 요괴에게 납치된 보상국 백화수 공주를 구해내고, 금각대왕 은각대왕과 대결하며, 홍해아를 만난다. 도사에게 살해당하고 왕국을 빼앗긴 오계국 황제 이야기는 대부분 축약본에서 소개하지 않는 이야기인지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명말에 세덕당본으로 집대성된 서유기에는 도교 도사에게 미혹당하는 황제를 조롱하고 부패가 만연한 조정 시스템을 풍자하는 내용이 곳곳에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오계국 황제의 유령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삼장법사가 저승에 내려가 염라대왕에게 고소하지 않은 까닭을 묻는 이 대목.

 

"그 도사란 놈은 신통력이 제법 정도가 아니라 워낙 너르고 커서, 천지간에 이승과 저승 할 것 없이 모든 관리들과 절친하게 사귀고 있소. 도성 안의 서낭신이 그놈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바다의 용왕들이 모두 그놈과 일가친척간이요, 동악제천이 그놈과 절친한 벗으로 사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저승의 십대 염라왕조차 그놈의 배다른 형제가 된단 말이오. 사세가 이러니, 짐도 어디다 호소할 데가 없는 거요. "

- 본문 235쪽에서 인용

 

그동안 왜 그렇게 요괴들은 삼장법사를 잡아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었는데 이번에 본문 중 금각 은각의 대화에 그 이유가 나왔다.

 

"당나라 화상이란 자는 아래 보통 승려가 아니라, 바로 금선장로가 속세에 내려온 사람으로서, 십세(十世)를 두고 수행한 아주 굉장한 인물이라는데, 도를 닦는 데 전념하느라고 원양(元陽)이 한 방울도 새어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살코기를 한 점 먹기만 해도 수명을 늘이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걸세. "

- 본문 85쪽에서 인용

 

그런데 '원양'이 뭔지 역주에 설명이 없었다. 뭘까?

 

여튼, '십세를 두고 수행한'이란 위 인용부분에서도 보이듯, 서유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다들 전생의 인연과 죄과가 얽혀있다. 요괴나 신들도 마찬가지다. 황포 요괴가 백화수 공주를 납치해 강제로 부부의 연을 맺은 이유도 알고보니 안타깝다. 황포 요괴는 원래 천상의 별인 규성, 규목랑이었다. 그는 선녀와 사랑에 빠졌다. 선녀는 벌받아 인간계로 떨어져 보상국 공주로 환생했다. 규목랑은 황포 요괴로 변하여 공주를 납치, 못다한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지워진 공주는 요괴를 죽이고 부모에게 데려다달라고 손오공 일행에게 부탁한다,,, 이럴 수가. 요괴에게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니.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죽기 전에 총명탕을 한 드럼 마시리라고 다짐했다.

 

또 "손대성이 그것을 그냥 보아넘길 리가 있으랴. 훙포한 야성이 되살아난 그는 철봉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후려갈기면서 동굴 쪽으로 다가섰다. 요괴들은 불쌍하게도 인간의 몸을 얻으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이날 이때껏 힘들여 갈고닦은 공과(功果)를 모조리 잃어버린 채 한낱 털 가진 짐승으로 돌아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본문 178~179쪽)' 이런 부분도 가슴 아프다. 난 영웅으로 등장하는 손오공보다 손오공에게 맞아 죽는 요괴에게 더 마음이 간다. 이들도 다 나름 노력하며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존재들이었다니 말이다.

 

'수(水, 저팔계)와 화(火, 손행자)가 서로 도와 저마다 인연이 있으니, 온전히 토모(土母, 사오정)에 의지하여 짝을 이룸이 당연하다. (본문 223쪽)' 여전히 이런 식으로 음양오행이나 도교 관련 서술이 이어진다. 가만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  당시 중국문화를 반영하다보니 자연스레 자꾸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참, '아바마마께서는 저 당나라 이세민이 왕위에 올라 스스로 황제라 일컬으며 강산을 통일하고 나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바다 건너 땅을 정벌하엿던 사실을 상기하옵소서.(본문 316쪽)'라는 오계국 태자의 말을 보면, 바다 건너 땅을 정벌 - 당태종이 나당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침공한 사실이 언뜻 보인다. 궁금하다. 이 소설을 즐기던 명말 이후의 일반 중국 민중들은 이 정도만 언급되어도 알아들을 정도로 역사 지식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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