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가 담긴 옷 이야기 - 동서양의 옷에 얽힌 뜻밖의 문화사
쓰지하라 야스오 지음, 이윤혜 옮김 / 혜문서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이따금 내가 생각해도 내가 매우 변태스럽게 학구적일 때가 있다. 나는 팬티의 역사가 너무 궁금하다. 15세기에 만들어진 베리공의 호화로운 기도서를 보면, 2월달에 농가에서 불을 쬐고 있는 아낙네들 그림이 있다. 치마를 들고 불을 쬐는 모습을 보면, 두 여인의 치마 안은 그냥 알몸이다. 왜 이런 것일까?

 

역사서 읽어가다보면 묘하게도 팬티(팬츠, 넓게봐서 바지 포함)와 여성 억압사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지를 입었다는 죄목이 추가되어 화형당한 잔 다르크, 스커트 속이 보이기에 승마와 자전거 타기 등 여성의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사실들, 바지는 이교도와 남성의 옷이기에 금지당했던 역사,,,,  이런 이야기를 띄엄띄엄 각종 역사책에서 주워 읽으면서 나는 팬티의 역사를 한 편의 글로 좌악 꿰어 읽기를 원했다.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원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검색하다보니 이런 역사를 책으로 이미 써 놓은 사람이 있었다. 역시나 일본 저자다. 다른 급한 작업 제쳐두고 주문해 읽었다. 아, 이런 쓸데없는 호기심이라니.


책 제목은 <문화와 역사가 담긴 옷 이야기>이지만 옷 이야기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신사복, 넥타이, 바지, 스커트, 제복, 민족 의상, 속옷, 팬티,  코르셋과 브래지어, 잠옷, 손수건, 모자, 잠옷, 가발, 보석, 화장, 향수 등 인간의 알몸에 걸치고 붙이고 그리고 뿌리는 모든 것을 다룬다. 각 꼭지는 짧다. 예전의 나라면 돈 아깝고 시시했을 텐데, 이제 좀 읽어서인지 행간의 이야기를 내가 다 채워갈 수 있어서 그리 책이 수준 낮아 보이지 않았다. 손수건 이야기만 해도 이 책에 나온 것 외에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올리버가 손수건 소매치기를 배우는 장면이라든가, <오셀로>에서 데스데모나 모략에 사용된 손수건 등 여러 이야기가 팝업북처럼 책갈피에서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아, 재미있다.

프랑스 혁명과 바지의 관계라든가, 스커트를 짧고 가볍게 만든 신여성의 역할, 파자마와 아랍 문화 등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도 많다.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무무 드레스는 선교사 영향일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하와이의 알로하 셔츠 역사는 뜻밖이었다. 알로하 셔츠가 하와이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이주해간 일본계 이주민의 체크무늬 기모노에서 유래했다니!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은 어디에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일본인 저자의 책이어서, 일본 의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은근 일본 근대 문화사도 엿볼 수 있다.

 

팬티는 여성용 속옷 가운데 가장 최근에 개발된 것이다. 드로어즈가 개량된 것으로 팬티라는 호칭은 이미 1845년 미국에서 불리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짧은 쇼츠가 나온 것은 1924년 전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여성은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성들은 노팬티 차림이었다. 물론 고대부터 속옷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 얇은 직물을 입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부를 보호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의복이었지 특별히 속옷으로 고안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속바지라고 할 수 있는 드로어즈는 중세 말기부터 남성들이 착용하기 시작했으며 여성들은 거부감이 심해서 좀처럼 입지 않았다.

- 본문 140 ~ 141쪽에서 인용

 

책 내용과 관련은 없지만 한 마디.

늘 생각하는 건데, 일본에는 참 별별 사소한 역사서가 많이 나온다. 기존 역사서에 중요하지 않게 구석에 잠깐 등장한 이야기들을 모아 한 주제 아래 새롭게 짜내는 책들이 많다. 그럴려면 굵직한 역사서를 먼저 두루두루 섭렵해야 한다. 결국 저자에게는 시간과 양의 싸움이다. 원서로만 봐서는 능률적이지 않다.  원서 한 권 볼 시간이면 번역서 30권은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에 이런 대중 역사서를 쓰는 저자층이 두꺼울 만큼 외국 역사서 번역서가 많이 나와있다는 것에 관심이 간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에 대해 들으면, 나는 그들이 자국어로 번역된 세계의 최신 선진 서적들을 접하고 자국어로 연구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부럽다. 어차피 공부는 비슷한 지적 능력을 가졌다면, 시간과 양에서 승부가 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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