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몰락한 왕의 역사 - 동물 위계로 본 서양 문화사
미셸 파스투로 지음, 주나미 옮김 / 오롯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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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명한 중세유럽사학자인 저자의 아주 매력적인 역사책이다. 곰의 역사를 통해 서유럽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아주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저절로 신음 소리를 흘렸다. 책 오른쪽 면의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괴로웠고, 이런 멋진 책을 쓰는 저자에게 질투가 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 이런 경지에 올라 보나! 너무 심술이 나서 읽은지 오래 되었지만 리뷰도 안 쓰다가 이제야 쓴다.

 

책의 구성은 제1부는 '숭배 받는 곰 - 구석기시대에서 봉건시대까지'이고, 제2부는 '싸우는 곰 - 카롤루스대제에서 루이 성왕까지', 제3부는 폐위당한 곰 - 중세 말에서 현재까지'이다. 통사식 구성이다. 1부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유럽 각지에서 보이는 동굴 속 곰 숭배 흔적에 대한 여러 견해를 소개한다. 곰과 관련한 신화를 통해 켈트족과 게르만족들 사이에 곰 숭배가 널리 퍼져 있음을 설명한다. 곰은 곧 신이자 왕이었던 것이다. 각 왕가나 민족 시조 신화에도 곰은 조상으로 등장한다. 2부에서는 기독교 포교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경쟁자인 곰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과정을 추적한다. 기독교로 개종이후 유럽 군주들은 곰 사냥에 나선다. 곰과 관련한 축제는 기독교 성인의 축제로 대체하며 곰에 악마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그리고 사자를 동물의 왕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존재로 밀어준다. 이는 실제 숲에서 볼 수 있어 그 위력을 숭상할 수 있는 곰보다 상상만으로 그려지는 사자를 왕좌에 앉히는 것이 대중들의 정신세계를 콘트롤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구약 성경이나 실제 사자가 사는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등지에서 이미 넘어온 사자의 부정적 이미지였다. 이 부분은 '레오파르두스'라는 다른 사자 종을 만들어 떠 넘긴다. 3차 십자군에 참전한 '사자심왕 리처드'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제 사자는 기독교 군주의 상징이 되었다. 13세기가 되면 곰은 확실히 사자에게 졌다.

 

이렇게 이 책은 유럽 중세사에서의 곰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 과정을 보여준다. 정말이지 내가 그동안 읽은 중세 유럽사와 문화사 쪽 빈틈을 속속 채워주는 책이었다. 좀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이런 역사책은 대개 초판이후 절판이다. 소장 가치가 있다. 책 앞 부분의 컬러 도판과 뒤의 참고 문헌도 잘 실려 있다. 1부 구석기 시대의 곰 관련해서 나카자와 신이치의<곰에서 왕으로 : 국가, 그리고 야만의 탄생>을 같이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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