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의 문명사 -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까지 화장실을 통해 보는 인류 문명사
줄리L.호란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1996년 12월
평점 :
품절


 

연일 영하 15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서울. 내 집에서 그나마 가장 따끈따끈한 곳이 화장실 변기 위이다. 변기 위에 앉아 열선이 들어간 변기를 개발한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화장실이나 변기의 역사에 대한 책도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과연 있었다! <1,5평의 문화사>! 여기서 1,5평이란 것은 화장실의 평수를 말하는 것인가보다.

 

책은 거의 유럽 중심으로 인간의 배설물 처리의 역사를 늘어 놓는다. 고대 도시에 건설되었던 하수도, 거리에 그냥 오물을 버리던 관습과 그로인한 콜레라 등 전염병 창궐, 근대 이후 도시 하수도 건설(여기서 또 <레미제라블>에서 쟝 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걷던 파리의 하수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 등,,, 이에 반해 동양에서는 인간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썼기에 서양에 비해 도시 분뇨와 악취, 전염병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는 점. 또 가장 역사가 오랜 화장실은 예나 지금이나 땅에 판 구덩이와 요강인데 그의 변천 역사도 나열된다. 개인 요강을 쓰던 귀족, 왕족들의 요강은 엄청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되어 부를 과시했으나 지금과 같은 화장실 붙박이 가족 공용 변기가 되면서 변기는 심플하게 변해간다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뭐라뭐라해도 가장 회기적인 것은 수세식 변기의 발명과 화장실이 옥내로 들어온 사건이 아닐까 싶고. 그밖에 화장지의 역사라든가 1차대전 당시 참호 안에서의 화장실 문제 등등도 흥미로웠다.

 

비데(bidet)라는 말의 어원은 153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는 당나귀나 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700년대에 비데는 배설을 한 뒤 밑을 닦는 장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비데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아마도 당나귀나 말을 탈 때처럼 기다란 그릇 위에 걸터앉기 때문인 듯싶다. 

- 본문 107쪽에서 인용

 

이교도 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중세 유럽의 바보들의 축제에서는 똥을 먹는 행위가 의식의 하나로 바뀌어 행해졌다. 사람들이 가득 모인 가운데 여자 옷을 입거나 광대 복장을 한 남자 배우가 제단에서 소시지와 피로 만든 푸딩을 먹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 소시지는 인간의 대변을 상징한다고 한다. 피로 만든 소시지라는 뜻의 프랑스어 '부댕(boudin)'은 배설물이라는 뜻도 있다. 영국에서는 헨리8세가 바보들의 축제를 폐지했지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까지 그 풍습이 남아있다.

- 본문 190쪽에서 인용

 

아무래도 지은이가 볼 수 있는 자료는 서구인이 쓴 영어자료였을 터, 세계의 다양한 배설 문화와 위생 관습을 다루면서 제국주의 시절 서구의 침략자나 여행가가 기록한 부분을 인용한 부분은 문화의 다양성,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으로 쓰여진 것이 많아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저자도 이를 인식하고 그점을 책에 미리 밝혀 놓았다. 이점 참 마음에 든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힌 저자의 이력 덕분일까. 덕분에 전공자이든 일반인이든 유명지식인이든 아니든, 저자 본인의 열린 마음과 시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읽기에 흥미롭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별 내용은 없고 그냥 여기저기 문헌에서 화장실과 배설에 대한 부분만 오려내서 주욱 연결해 놓은 것 같은 책이다. 역자 남경태씨를 믿고 골랐는데 지금의 남경태씨의 실력이 아닌듯하다. Prince of Wales 를 '웨일즈의 왕'이라 해 놓으신 부분은 정말 의아하다. 그외 인명을 전부 영어식으로 번역해 놓은 것도 요즘의 역자라면 절대 하지 않으실 일인데 말이다. 18년 전에 나온 책이라 그런가.

 

참, 믿을만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일본어 전공자)이 술자리에서 일본 토토사의 사훈은 '인류가 0을 싸는 한 토토는 영원하다'라고 말했는데, 사실일까? 현대 변기문화의 선구자는 일본의 토토사인데, 그 회사의 연구원이 쓴 화장실과 변기의 역사에 대한 책은 없을까? 만약 있다면 이 책보다 더 학문적(소리나는 대로 읽어보시라)으로 완성도가 높고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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