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아시아 선교의 개척자
김상근 지음 / 홍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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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요시노 이발관>이란 일본 영화를 볼 때의 일이다. 마을의 전통이 된 소년들의 바가지 머리와 할렐루야 합창 부분에서, 헤어스타일에 불만을 품은 소년들이 서로 투덜댄다.'언제부터 이런 머리를 하게 되었을까?' 라고. 그러자 한 소년이 답한다. '샤비에르가 상륙했을 때부터 아니었을까?'

 

이렇듯 서양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쪽 책이나 영화를 볼 때에 하비에르(모국 스페인 발음. 그외 나라에 따라 샤비에르, 자비에르로 표기되어 등장함)는 전혀 뜻밖의 장면에서도(요시노 이발관!) 언급되곤 해서 그 동안 이 사람에 대한 지식에 목말랐다. 그러던 중, 올해 출간된 따끈한 이 책을 만났다. 제목으로 보아 너무 교회 성인 전기 스타일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기우였다. 16세기 문화교류와 르네상스예술에 대해 좋은 책 많이 내신 김상근 저자의 책이었으므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생애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는 1506년 스페인 나바레의 귀족 출신으로 태어나 파리대학에서 이냐시오 로욜라를 만나 예수회 창립 멤버가 된다. 예수회가 공인된 바로 이듬해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되어 포르투갈 무역선을 타고 리스본을 떠나 아프리카 동부의 모잠비크, 인도의 고아, 코친, 진주해변, 실론(스리랑카), 말라카(말레이시아), 몰루카 제도(인도네시아), 일본의 가고시마, 히라도, 야마구치, 후나이와 중국의 상천도에서 12년간 아시아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다 1552년 중국 광동 성 해안의 상천도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상천도에서 인도 고아의 봄 지저스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데, 오늘날까지도 전혀 썩지 않았다. 자연 미이라 상태가 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썩지 않은 것이다. 그는 1622년 이후 카톨릭 성자의 반열에 올라있다.

  

16세기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하비에르의 삶을 역사적 맥락에서 독자에게 재현해주고 있다. 르네상스 막바지의 유럽,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반종교개혁,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만남이란 큰 맥락 안에서 말이다. 저자는 하비에르가 태어난 곳부터 시신이 모셔진 인도 고아까지 직접 답사하여 이 책을 썼다. 그러기에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사진 도판이 풍부하다. 또 하비에르의 편지를 인용하여 그의 생생한 육성도 듣게 만들어 준다. 전혀 종교적 색채가 짙은, 성인찬미 일색의 책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얼마전에 블로거 친구분께 각각 '책 읽다 울어본 적 있는가''왜 역사책을 주로 읽습니까'란 질문을 듣고, 꽤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때 떠오른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이 책이기에 이 책의 주인공인 하비에르의 삶에 대해 계속 반추해 보게 되었나 보다. 난 책읽다가 잘 운다. 그런데 소설이 아니라 역사책 읽다가 운다. (약간 변태같다) 왜냐하면 그 시대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짊어지고 시대에 맞서 싸우거나 파멸해간 사람들의 삶이 내 가슴을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책 읽다 말고, 부모님 임종후에 상가집으로 돌아온 탕자처럼 주먹으로 가슴을 한번 치고 땅을 한번 치고 엉엉 운다. 그러다 책을 펴들고 묻는다. 왜 당신은 이런 선택을 했나요,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사셨나요,당신의 시대는 당신에게 친절했나요,,, (좀 나쁜 심뽀인데, 이러고 나면 현실의 내 소소한 문제가 가볍게 느껴지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이 역시 역사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도 나는 묻는다. 당신 내부의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살도록 이끌었는지를. 귀족으로 태어나 성직자의 길을 간 것은, 중세 귀족의 차남 이하에게는 오히려 보편적인 삶이었다. 그런데 그의 학식과 인품으로 유럽에 남아 대학을 맡는 등 보다 편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그 길을 간다. (물론 예수회의 규칙에 복종이 있기도 하지만) 게다가 새로 도달한 곳이 안정되어 좀 편해지려하면 그 곳을 후임에게 맡기고 또다시 더 먼 곳으로 떠나지 않는가? 그 사이 고초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범선에 의지하여 인도 쪽에서 중국, 일본으로 올라가려고 태풍을 이용하며 죽다 살아나기도 하고, 현지인의 경계와 무력 대응에 처하기도 하고(영화 미션의 도입부를 떠올리면 딱이다) 과부하된 업무에 지치고 병들기도 한다. 인간 가는 곳이면 늘 있는 파벌 싸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고 온화하게 사람들을 대하며 늘 정력적으로 일한다. 반면, 밤에는 교회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기도 한다,,, 성인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라고 괴롭지 않았을까, 힘들지 않았을까, 외롭지 않았을까! (여기서 나는 종교적 업적은 제외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하비에르에 대해 쓰고 있음을 밝힌다.)

 

물론 공과는 정확히 따져야 한다. 어찌되었든, 이런 선교사의 업적과 기록은 제국주의 팽창의 정보를 제공한 셈이고 현지의 갈등에 군대를 끌어 들여 선교하려는 등 타자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동등한 만남이 아닌 점,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인종주의적 차별의 시각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점 등등의 문제점은 냉정히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시대의 한계 내에서, 그는 최대한 노력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의 이런 선교 활동은 아시아 문명과 유럽 문명이 본격적으로 교류하게 되는 시발점을 열었다는 점에서, 16세기 유럽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별 5개 달았지만 오타 수정은 지적한다.

 

54쪽 4번째 줄에서,  

영국 '에드워드 8세'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영국 교회의 독립시도 ,,, 이 부분은 '헨리 8세'가 맞다.

 

*** 이하 사진 설명

 

 

 

하비에르가 활약한 포르투갈에서 인도, 동남아, 일본까지의 항해 루트를 빨간 선으로 표시해 보았다.

 

그 지도위에 <아시아 선교의 개척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본문 338쪽 부분, '썩지 않는 발' 사진이 실린 페이지를 펼쳐서 사진 찍었다.

 

책 뒷표지에는 이렇게 인쇄되어 있다.

'인도 고아에서 중국의 상천도까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걸었던 전도자의 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썩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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