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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KBS 역사드라마 《거상 김만덕》이 기대했던 만큼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 못한 가운데 거상 김만덕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김영미의 『김만덕』, 이경채의 『김만덕』, 이수광의 『소설 김만덕』, 이경화의 『김만덕 : 제주 백성을 살린 구원의 여인』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18세기 후반의 인물을 21세기의 기준으로 보면 김만덕의 행동은 분명히 칭찬받을 일이지만, 역사적인 스펙터클은 여타의 역사소설에 비해 다소 부족합니다. 여자로서 거상이 되어 가난한 백성을 돌본다는 딱히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은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숨비소리』는 12세의 어린 덕만을 시작으로 50세 후반의 할머니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압축과 생략이 많아서인지 김만덕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더군요. 그래도 ‘참 멋있는 여성이구나!’라는 생각은 계속 들더군요.

  『숨비소리』는 제주와 여성, 매점매석,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여성이 거상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주 여자는 절대 제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제주 여자는 해녀가 되거나 농사를 짓거나 죽을 때까지 제주에서만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나는 것이죠. 제주 여성으로서 덕만은 그런 불합리한 제약들을 하나 둘씩 깨어 나갑니다. 물론 현실의 벽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만덕의 많은 노력들이 큰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말하기도 힘들고요. 그래도 거상이 되었고, 비록 단신이기는 하지만 제주 밖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제주와 여성, 차별 받고 억눌리며 그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겪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에도 여성의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네요. 

 

 매점매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진 자들의 횡포는 유행을 타지 않는 것 같네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논 99마지기 가진 사람이 1마지기 가진 자의 것을 빼앗는다고 하잖아요. 소설 속에 묘사되어진 거상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들에게는 뇌물을 먹여서 상권을 장악하고, 매점매석으로 상권을 어지럽혀서 가난한 자들로부터는 폭리를 취하는, 그야말로 개차반입니다. 제주의 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어도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돈을 벌어다주는 도구로 생각할 뿐.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거상은 거상의 자격이 없죠. 김만덕은 매점매석을 뿌리 뽑고,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며, 상인으로서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이윤을 취하면서 말이 아닌 직접 행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친 풍랑을 만나기도 하지만 지혜롭고 슬기롭게 헤쳐 나갑니다. “씨는 뿌린 대로 걷는다.”라는 말이 있죠. 거상 김만덕 주변에는 사람들이 남습니다. 스펙터클하고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잔잔한 재미와 소소한 감동은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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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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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이니치 문서(Voynich manuscript)는 약 600년 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책으로, 여러 그림을 포함하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문자와 언어로 쓰여 있다. 책의 이름은 책을 1912년에 입수한 폴란드계 미국인 서적상 윌프레드 M. 보이니치(Wilfrid M. Voynich)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문서는 총 17첩 272쪽으로 되어 있으며, 한 첩에는 각각 16쪽이 들어 있다. 그 중 현재 240여 쪽만이 남아 있으며, 나중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페이지 번호들 사이의 간격으로 보아 보이니치가 책을 입수할 당시에 이미 몇몇 페이지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글과 그림의 외곽선은 깃펜으로 쓰였으며, 그림에는 색칠이 입혀져 있다.” (출처 : 위키 백과) 

 

 

                      


  위키 백과사전에 기록된 보이니치 문서에 대한 내용과 삽화만 봐도 호기심이 불쑥 생깁니다. 보이니치 문자는 천문학이라는 얘기도 있고, 점술학, 암호학, 심지어는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다양한 학설과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약초 삽화는 정말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소설 속에도 나오는 목욕통 속에 들어가 있는 처녀들이 의미하는 것도 무척 궁금하고요. 무엇보다 보이니치 필사본이 예일대에 보관되어지기까지의 그 과정도 역시나 궁금합니다. 암튼 보이니치 문서, 그 자체는 과연 정말 의미가 없는 내용일까요? 아니면 천지가 개벽할만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해석하기 힘든 암호로 만들어져 비밀리에 전해진 것일까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저는 신이 장난감처럼 인간을 만들었다는(창조론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소인이나 골렘 같은 인조인간의 한 종류) 그런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 본론으로, 책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보이니치 코드>는 가톨릭 수도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신부 엑토르가 보이니치 필사본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지적인 미스터리 팩션 모험소설입니다. 설명이 조금 복잡할 수도 있는데, 우선 보이니치 필사본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이면서 역사적인 사실에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한 팩션이면서 멕시코와 스페인, 프랑스 등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보이니치 문서에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는 모험이야기입니다. 

 

  요하네스 케플러, 튀코 브라헤, 갈릴레오 등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가 과학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천문학부터 시작해서 점술학, 마법, 우주론 등 엄청난 지식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게다가 예수회와 가톨릭, 교황 등 종교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요. 따라서 종교에 무지하고, 과학과 서양의 16-17세기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습니다. 벌여놓은 판이 너무 크다고 할까요? 소설의 주인공 엑토르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가끔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요(정독 또는 재독이 꼭 필요한 소설이라 생각함). 가독성은 좋으나 흡입력은 조금 떨어지고, 방대한 내용을 기억하기에는 제 뇌의 용량의 한계입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픽션보다는 팩트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둔 것 같아서 호기심과 지식욕을 채우기에는 알맞으나 오락소설로는 조금 안 맞네요. 물론 보이니치 문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일부 독자들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확실히 어렵다는 느낌이 많이 드네요. 그래도 역시나 작가가 펼쳐놓는 16-17세기의 과학(특히 천문학)의 세계는 황홀하기 그지없네요.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케플러 법칙을 배울 때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요하네스 케플러 대단한 학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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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서사의 파괴와 언어의 실험이라는 일반 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힘들고 난해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제-1장’으로 시작하여 ‘제0장’을 거쳐 ‘제끝장’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는 무조건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정체하기고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갑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중구난방, 지그재그, 어디로 튈지를 모릅니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새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황스럽고, 길을 잃기도 쉽습니다. 도대체 나는 뭘 읽고 있는 것일까? 내가 제대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따라가는 것일까? 길 잃은 미아가 되기에 딱 좋은 무척 실험적이고, 비형식적이며, 자유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고기의 꿈, 꿈의 고기, 고기의 살, 살의 고기, 고기의 소고, 속의 고기, 고기의 속살, 속살의 고기, 고기의 샅, 샅의 고기, 일어나는, 물러서면서 건드리는 결, 손에 잡힌 것, 만질 수 없는 덩이. 것. 것. 짓. 것짓. 거짓거짓. 파고드는. 다듬거리는. 지글거림. 고기. 맛. 기억. 멈춤. 부스럭거리는. 고기. 눈들. 코들. 귀들. 혀들. 목구멍들. 똥구멍들. 기름진. 흘러내린. 흔들리는. 서걱거리는. 가려운. 삼키는.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따위의. 고기. 끝. 상. 고기의 언어. 언어의 고기. 속. 으로. 흘리는. 짓들. 뱉는. 고기의. 속. 살. (pp.288-289)

이후의 모든 시간은 다리가 잘려 나가리라. 결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할 것이다. 다리가 없다면 몸통으로 엉덩이로 기어가는 것이다. 어디로 기어가야 할지. 도무지. 이미 문을 닫았으니. 문이 열리기를. 누군가 밀고 들어오기를. 것은 기다리지 않는다. 초조한 것은 우리다. 것을 선택한. 그것이 우연이라 해도 우리의 선택을, 실패를, 난감함을 기록하기 위하여. 것의 이름으로. (p.359)

  사실 이런 언어의, 서사의 실험은 시에서는 조금 익숙하기도 한 것입니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이나 연왕모의 《개들의 예감》(〈상처>라는 시는 실제로 종이를 찢었습니다. 인쇄를 마친 후 일일이 수작업으로 누군가가 종이를 찢었겠죠?)에 이런 시도들이 보입니다. 백민석의 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에서도 역시나 그런 시도들이 보이고요. 소설의 형식과 문법들은 누가 정한 것일까요? 그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면 우리는 ‘이건 소설이 아니다.’라고 규정 지어버리고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죠. 소설의 형식과 문법에 있어서 더 이상의 발전은 없고, 퇴보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문법의 규칙을 깨고, 언어를 실험하며, 서사를 파괴하는 행위는 발전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여러 편의 시를 읽은 듯한(물론 그 과정은 무척 힘듭니다) 만족감은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재미있습니다. 이런 시도와, 이런 이야기와, 이런 자해는 말이죠.

  서사를 파괴하고 언어의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서사는 존재합니다. ‘제-1장’에서는 약방을 찾는 기억을 잃어버린 여자와 방황하다 미파(미치광이 노파)가 살고 있는 개들의 언덕(아마도 창녀촌인 듯합니다)의 집으로 다시 돌아 온 남자(그래서 주인공 남자는 부모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조차 모릅니다. 그의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만나서 섹스를 합니다. '삐꺼덕 삐꺼덕' 매트리스와 의자가 지켜보는 가운데(의자라는 존재는 ‘제끝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인간의 존재보다 사물의 존재가 더 중요한 듯) 열심히 땀을 흘리며 엉덩이를 흔들며 섹스를 합니다. 남자는 지하노숙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여자는 임신을 하면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제0장’에서는 뭐(뭐를 섬으로 데려온 여자)와 뭐(뭐가 데려온 남자 아이. 이 아이가 ‘제-1장’에서의 그 아이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제0장’의 이야기가 ‘제-1장’보다 앞선 이야기인 것 같은데, 다시 ‘제-1장’의 이야기와 만나더군요. 그래서 시간 파악은 포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매일매일 돌쌓기를 합니다. 의미도 목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시체 나르기. 주둥이가 돌아가서 이름이 주둥이가 된 개. ‘제1장’에서는 뭐와 뭐(“얘, 뭐야?”의 그 뭐입니다. 이름이 뭐입니다. 이름을 얻고 싶지만 이름이 없습니다)가 살고 있는 섬에 군인들이 찾아옵니다(대령이라 불리는 군인은 ‘제-1장’의 남자의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개들의 언덕에 그 미파를 알고 있으며, 어린 시절 군인놀이를 했던 ‘제-1장’의 남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남자입니다). 대령과 벙어리와 떠버리의 등장. 그들은 주둥이(개)를 먹고 붉은 반점이 생겨, 간지러움에 고통을 받다 죽습니다. 대령은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요.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일 수도 있는 ‘제끝장’에서 우리(뭐라고 규정지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우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우리도 스스로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 합니다. 인간과는 다른 존재)가 등장합니다. 뭐(그 남자 아이)는 이제 ‘것’이 됩니다. 우리는 것의 뇌 속으로 들어가고, 뇌가 기억하는(?) 곳으로 떠납니다. 우리는 ‘제-1장’에서 남자가 마주쳤던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되어 등장합니다. 다시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제-1장’의 남자의 시점에서 ‘제끝장’ 우리의 시점으로 시점만 밖일 뿐. 다시 이야기는 원점. 무장한 군인들과 성난 군중이 몰려오면서 끝이 납니다.

어떤 발자국은 스스로 일어나 주인을 찾아갈 것이다.

그 때 시간은 또 다른 목소리의 이름으로 지속될 것이다.

숨김없이 남김없이.

모든 것이 침묵의 반대편으로 소용돌이 칠 것이다. (p.374)

  언어의 연금술사. 무의미해 보이는 언어들로 이런 유의미한 문장과 의미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등장인물들의 생각들로 인해 서사의 파악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마음을 비우고 읽으면 이야기 속으로 충분히 빠져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존의 소설읽기에서 벗어나야만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기존 소설의 문법과 형식에만 얽매인다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거에요. 무엇보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의자, 대령, 뭐(것), (   ), 주둥이, 미파, 뭐(여자), 매트리스 등 인물과 사물에 숨겨진 의미와 이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재미도 꽤 있습니다. 물론 확실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아요. 그냥 내 맘대로 의미를 부여해서 이해하고 느낄 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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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성 살인사건 성 시리즈 1
키타야마 타케쿠니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염세주의적이면서 물리적 트릭을 다루고 있는 조금은 무거운 라이트 노벨’ 정도로 이 소설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을 듯싶네요. 세계의 종말. 1999년 9월의 어느 날. 9월 안으로 세계는 멸망한다고 합니다. 힘들게 머리 쓰면서 살인을 할 필요가 없죠. 더군다나 밀실살인은 말이죠. 조금은 당황스러운 이런 설정이 우선 재밌더군요. 뭐 증오나 복수심이 너무 강하면 자연사보다는 그래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겠죠(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래도 밀실살인은 조금 낭비 아닐까요? 공권력 자체가 무의미한 멸망하는 세계에서는 그냥 죽이고 도망가면 되거든요. 아무래도 살인자가 밀실살인에 무척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의문 사항들은 중반을 넘어가면 모두 다 밝혀집니다. 그 전까지는 판타스틱한 미스터리의 느낌이 많이 납니다. 게슈탈트의 조각(설명은 생략합니다)을 볼 수 있으며 세상이 어찌되든 상관없는 탐정의 등장 자체가 이상합니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상한 여자도 그렇고요. 클락성의 내부 벽에 얼굴이 있다는 믿기 힘든 사건을 의뢰한 소녀도 그렇고요. 모두 비정상적입니다. 그리고 뭔가 불운한 기운이 맴도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고요. 암튼 세 개의 (독립적인) 관으로 이루어진(각 관에는 거대한 시계가 있습니다) 클락성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밀실살인(구체적인 내용은 역시나 생략). 이 밀실트릭을 풀어야 합니다. 도대체 범인은 어디로 들어와서 죽이고 어디로 사라지고, 또 머리는 왜 저기다가 놔두었을까? 밀실트릭을 푸는 것은 둘째 치고 동기 자체가 미스터리입니다. 왜? 죽여야 했을까? 뭔가 비현실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트릭은 또 제 정신입니다. 물리적인 트릭. 개인적으로 이런 비슷한 트릭은 접했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이런 트릭은 처음이라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이 트릭은 중반까지 이어진 소설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트릭은 풀렸습니다. 사건 종결. 책장을 덮으면 되는데, 아직도 페이지가 많이 남았습니다. 아니 범인이 잡혔는데, 도대체 무슨 궤변을 늘어놓으려고 작가가 이러는 것일까? 조금 불충분하고 미심쩍었던 몇 가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뒤죽박죽. 반전의 반전. 그리고 (물론 이제는 익숙하기는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들. 사건은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면 세상은 망합니다. 뭐 소수는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모두 죽겠죠. 곧 죽을 인간들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면서 막을 내리는 암울하고 절망스러운 미스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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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드 어웨이 뫼비우스 서재
할런 코벤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마크를 당하고 있는 순간에 쏘는 슛. 즉, 상대의 블록을 피하면서 쏘는 슛이기 때문에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공률도 높지가 않죠. 바로 페이드 어웨이 슛. 눈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사물(진실)을 보기가 어렵죠. 그런데 눈앞에 바로 보이는 진실은 사람을 더 헷갈리게 하죠. 『페이드 어웨이』는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는 마이런 볼리타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사건 의뢰는 단순합니다. 실종된 유명 농구 스타 그렉을 찾아라! 그런데 사건을 깊이 파고들수록 헷갈리고, 진실은 점점 더 모호해집니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미로처럼 엉켜있는 다양한 문제들. 상대의 블록을 피하고 결정적인 슛을 쏘는 순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하필이면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에 운동선수가 주인공일까? 그리고 실종된 인물이 꼭 스포츠 스타였어야 했을까? 확실히 이유 없는 주인공은 없는 것 같아요. 마이런이 잘 나가던 전직 농구 스타여서 결말의 반전과 씁쓸함의 여운이 더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아요. 문장은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모호한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가독성이 꽤 높습니다. 어려운 문장도 없고, 문장도 짧아서 쉽게 읽힙니다. 물론 재미도 어느 정도는 보장하고요. 퍼즐 조각을 맞추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퍼즐 조각 한 개로는 도대체 어떤 그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흩어진 조각들이 합쳐지면서 완성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감탄을 하게 되죠. 갑자기 실종된 농구 스타, 주인공 마이런을 고용하는 구단주, 실종된 농구 스타의 집에서 발견된 피, 그리고 갑자기 발견되는 여성의 시체, 마이런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세력 등 도대체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개별 사건들 간의 연결 고리는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냥 단순 무식하게 계속 사건을 추적해야 할 뿐.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씩 끼어 맞춰지는 데서 오는 쾌감, 이 작품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조금 약하지 않나(여러 가지 면에서)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는데, 재미는 확실히 있네요.

덧. 저는 주인공 마이런보다 그의 친구 ‘윈’이 더 멋지더군요. 해결사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정보력과 자금력, 분석력이 뛰어나고 싸움도 잘합니다. 악당들도 무서워할 정도이니 뭐 말 다했죠^^ 마이런 시리즈를 계속 보고 싶은 이유는 사실 주인공 마이런보다는 바로 윈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발견한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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