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작가의 이름도 생소하고, 제목도 어렵다. 사실 쉽게 손이 갈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살짝 호기심이 생깁니다. 물론 주인공은 희대의 바람둥이(여자를 만나기만 하면 뭐 섹스네요) 범죄 추리소설 작가이지만, 헤밍웨이나 오손 웰스 등 1930-40년대에 이름을 날린 예술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뒷부분에는 히치콕 감독까지 등장을 하더군요. 사실 헤밍웨이는 크게 관심이 있는 작가는 아닙니다. 오손 웰스 영화감독은 좋아하지만요. 그런데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은 뒤 헤밍웨이에게 부쩍 관심이 가더군요. 정말 작가의 아우라가 작품 속에서 마구 뿜어져 나옵니다. 현실과 허구의 교묘한 결합. 이 작품을 읽으면 소설 속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해보고 싶어집니다.
미술과 살인을 접목한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로 이 작품을 정의내릴 수 있겠네요. 사실 미술과 살인을 접목한 작품은 한국에도 있죠. 미술을 전공한 이은 씨의 <미술관의 쥐>나 <수상한 미술관> 등등. 이은 씨의 작품들은 코미적인 요소가 가미된 바른생활 이미지의 추리소설이라면 <토로스 & 토르소>는 변태적이면서 엽기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사실 중반까지는 눈치 채기 힘든데, 마지막에 가면 정말 변태 미학의 끝을 보여줍니다. 초현실주의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죽은 시체에 미학적인 흔적을 남겨 놓습니다. 고장 난 시계라든지 타이어 등을 시체 안에다 집어넣고 전시를 하는 거죠(아,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1930년에서 1950년대까지 살인사건은 계속 이어집니다. 스케일이 무척 크죠(스페인을 시작으로 할리우드에서 쿠바까지).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엽기 연쇄살인사건. 폭풍과 전쟁을 배경으로 스파이들의 활약과 예술가들의 난교파티(?) 등이 펼쳐집니다. 주인공 헥터와 헤밍웨이의 여성 편력도 흥미롭습니다. 이들의 대화 또한 소소한 재미를 주고 있고요. 잔인한 엽기 살인사건을 제외하더라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사상과 인생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살짝 고민이 되지만요. 폭풍 전야, 헥터의 삶으로 레이첼이라는 한 여자가 들어오면서 끔찍한 악몽과 거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헥터의 삶으로 들어와 여운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여자. 그녀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누구일까?
현실과 허구의 결합, 트릭과 반전, 역사와 미술, 진한 여운과 잔상, 하드보일드와 추리, 그리고 로맨스와 살인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의 만남 등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온갖 흥미로운 요소들이 작품 하나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들. 처음 레이첼이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는 빠르게 장소를 바꿔가면서 진행이 됩니다. 호기심과 수수께끼를 안은 채 범인 찾기 게임은 계속 됩니다. 마지막 충격과 여운은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헥터와 레이첼……. 헤밍웨이나 오손 웰스를 능가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고요한 바다를 보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들의 삶, 격정적이고 파란만장하지만 부럽기도 합니다.